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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의 기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프레젠테이션(PT)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숨이 거칠어지며 속이 거북해지는 증상에 시달린다. 남자라도 별 수 없다. 일명 `PT의 달인`으로 통하는 황의건의 긴급 처방전.

UpdatedOn April 24, 2006

 내가 하는 홍보라는 업태는 말 그대로 ‘서비스’다. 서비스업에서 흔히 말하는 노동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이며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단은 역시 말과 글이다. 여기에 경쟁력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을 든다면 그건 바로 미모다. 그렇다. 홍보는 말도 예쁘게 해야 하고 글도 멋지게 쓸 줄 알아야 하며, 호감 가는 외모로 상대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을 줄도 알아야만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다.

업계 사람들은 흔히 칭찬 반 질타 반으로 “황의건은 말을 참 잘한다”고 한다(물론 요즘은 피부도 좋다고 하지만…).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말만 앞선 애드리브는 순간을 모면할 뿐 질풍노도와 같은 길고 긴 프로젝트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 막 입증해낸, 검증된 홍보맨이다. 나는 말을 잘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로 생각의 양과 깊이를 늘린다. 풀리지 않는 일은 묘안이 떠오를 때까지 생각하지만 누구처럼 안 나오는 아이디어를 위해 방에 들어가 실마리를 찾을 때까지 자신을 학대하며 쥐어짜내진 않는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나가서 술을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지인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세련되게 나만의 방식으로 흡수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PT를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밑 작업이다. 뇌를 즐거움으로 여는 식! 나는 말을 잘하는 황의건이 아니라 생각을 잘하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기술을 연마한 프로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

우리 홍보맨들의 노동이 ‘서비스’라면 수익 모델은 바로 ‘아이디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언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디어가 상품성이란 가치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프레젠테이션의 기술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시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논리며, 남과 다르게 이 논리를 펼치는 위트 있고 매력적인 콘셉트, 그리고 예산을 고려하는 살아 있는 현실 인식이다.

올 초, 나는 10여 건의 프레젠테이션에 목숨을 걸며 일사분기를 보냈는데 자살 충동마저 느낄 만큼 PT의 강행군이 이어졌다. 치졸한 경쟁 시스템의 압박 수비, 자존심과의 치열한 싸움, 물리적인 시간의 압력 등등….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 모든 걸 극복하며 다시 PT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내 PT를 즐거워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나는 단순히 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서 PT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들을 지적으로 즐겁게 하기 위해 PT를 준비한다. 난 언제나 한 편의 독립영화를 준비하듯이,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영화 속 배우가 되어 청중을 향해 나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나는 우선 PT 문서 형식의 독특함을 우선으로 한다. ‘오피스h’라는 회사 자체가 부티크 PR 에이전시이기 때문에 회사의 콘셉트와 부합되는 비주얼을 깐깐하게 고르려고 애쓴다. 일반 기업들의 그것처럼 나도 파워포인트를 사용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지만 나의 PT 문서에는 텍스트보다는 키워드로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모든 키워드는 관련 비주얼과 함께 멋지게 보여야 하며 현란하고 촌스러운 애니메이션 효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페이지에 한 아이디어(One Page, One Point)가 내 PT 문서의 기본 형식이다. 글을 많이 생략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시각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아이디어를 도난당할 확률이 매우 낮아서다. 실제로 오피스h의 기획서를 황의건의 멘트 없이 본다면 아무런 파워도 줄거리도 없다. 아이디어 보안을 위해 PT 문서만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한 문서로 철저히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기획서에서나 쓰는 업계의 상투적인 용어나 서술 방식, 신선하지 못한 아이콘 등은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타이틀은 언제나 광고 문구처럼 입에 착 달라붙고 프로젝트에 딱 맞는 영문 카피 타이틀을 만들어 서문에 붙인다. 이때 글자는 내 취향대로 영어는 센트리 고딕, 한글은 반드시 바탕체를 고집한다. 컬러도 해마다 트렌드 컬러를 정해 오피스h의 PT 문서는 다른 경쟁사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말한다.  

오피스h가 생산하는 파워포인트의 텍스트 문서와 함께 PT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힘은 황의건만의 언어 표현에 달려 있다. 나는 어느 자리든 예의를 크게 잃지 않는 범위에서 은어나 속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비유도 사실적이고도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올 1월, 아우디 코리아에게 처음 프레젠테이션했을 때도 내가 이해하는 아우디를 샴페인에 비유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클래식한 ‘크뤼그’라면 아우디는 전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니콜라 푸이앗트 퀴베 팔메도르 96년산’과도 같다”고 표현했고, 계약이 성사된 몇 달 후에 우리는 아우디 A8-뱅앤올룹순 론칭 행사의 공식 음료로 그 샴페인을 쓰게 되었다. 아우디에 대한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미학적 이해가 마케팅적으로 통한 셈.

문서만큼 또 하나 중요한 건, 그날의 PT 내용이나 자리에 잘 맞는 패션 코디다. 최근 지오다노 우먼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나는 클라이언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굳이 지오다노의 옷을 입고 가지 않았다. 대신 경쟁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1만9천원짜리 브라운 트랙 수트에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옷들을 믹스앤매치했다. PT 중반부에서 퀴즈를 내며 내가 입은 옷의 가격을 맞혀보도록 유도했고, 값이 비싼 것과 싼 것 그리고 최근 믹스앤매치 경향을 나를 통해서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그 트랙 수트의 가격을 ‘0’이 하나 더 있는 가격으로 오인했고 우리 모두 럭셔리와 가격에 대한 가치에 대해 실제로 되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냉랭했던 초반부의 분위기가 사라졌고 클라이언트도 마음을 열며 여러 가지 질문을 캐주얼하게 던지며 워크숍 같은 분위기의 열띤 토론이 오고간 최상의 프레젠테이션이 되었다. 물론 나는 지오다노 업무 분장 미팅을 위해 내일 오전 10시, 그곳으로 출근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PT할 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소품을 이용하고 온몸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두 달 전에 있었던 LG 패션의 신규 여성복 ‘모그(MOGG)’ 프레젠테이션에서 나는 오프닝을 파리 콜레트에서 구입한 (L’AIR)라는 세련된 방향제를 30여 명의 청중들에게 뿌리면서 화려하게 시작했다. 브랜드를 후각으로 정의하며 오프닝을 한 것. 모호한 패션의 콘셉트를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정의하면서 생각의 문을 넓히고자 한 시도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덕분에 청중의 마음을 쉽게 연 상태에서 PT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옷이 아닌 오브제들의 그림과 사진 등으로 브랜드를 구체화하며 내가 브랜드를 이해하고 있음을, 시장을 파악하고 있음을 세련되게 증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다음으로는 홍보 마케팅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매체 스케줄과 샘플 기획안을 통해 실행 계획을 설파했다. 요즘 나는  5월 3일, 모그 바이어 & 프레스 론칭 준비로 무척 바쁘다.

PT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업무(Task) 중 하나이자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무서운 동기 (Motivation)다. 동시에 PT는 나 스스로를 배우게 하는 스승이다. PT는 스스로 배우는 과정을 통해 여러 분야의 정보를 부지런히 취합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며 마켓에 대해 여러 각도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워크숍이다. 심지어 PT는 내게 숭고한 종교의식처럼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내 가치를 더 높여 경제적인 동물로서도 더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는 과정이니까. 그래서 고행의 연속이지만 득도하는 그날을 위해 달게 PT를 접수하고 실행한다. ‘PT不敗의 황의건’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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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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