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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를 믿지 마세요

우리는 세 치 혀로 너무 쉽게 다른 이를 정의하고, 재단하고, 짓밟고 산다. 조규찬은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이미지`들에 경기를 일으켰다. 그래서 자꾸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고 말한다.<br><br>[2008년 11월호]

UpdatedOn October 20, 2008

Photography 김지양 Editor 이기원 Hair&Make-Up 이소연 Stylist 김영은

송과 라디오를 통해 습득한 가수 조규찬에 대한 이미지. 젠틀하다, 부드럽다, 예의 바르다 따위의 것들. 하지만 그는 차분한 문어체 말투로 자신을 정의하려는 그 모든 어휘들이 싫다고 했다. 뮤지션 조규찬과 자연인 조규찬 사이의 간극 때문에 무수히 많은 상처를 받아왔고, 마음을 닫게 됐다고. 그러니 괜한 형용사를 남발하면서 그를 견적하려는 수작은 부리지 않겠다. 그는 옷감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3류 재봉사의 가위질이 제일 싫다고 했으니까.

얼굴이 많이 탔네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낚시하면서 살았어요. 민물낚시를 자주 하는데 항상 혼자 가요. 너무 낚시에만 집중해서 함께 간 사람들이 싫어하거든요.

처음 만나서 악수할 때 손을 맞잡는 게 아니라 살짝 갖다 대고는 그냥 빼시더군요. 경계하는 것 같았어요.
원래 사람을 만나는 데 서툴기도 하지만 특히 힘의 원리가 작용하는 관계에 반감을 많이 가져요. 지금 우리 둘이 만났지만 당신이 더 강자잖아요. 펜을 쥔 건 당신이니까. 방송국의 프로듀서, 심지어 방송국 경비 아저씨도 마찬가지죠. 그런 상황이 잘 용납이 안 돼요.

지금도 그러니 20대에는 더했겠네요.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니까 남도 용서하지 못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서…. 어떨 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죠?
너무 많아서 딱 한 가지를 짚어내지 못하겠어요. 잘 용서하거나 대충 넘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 자신을.

“정말 순수하게 앞에 있는 사람을 껴안으며 인사를 했어요. 전 그 순간에 귓가를 스쳐 간 바람과 나뭇잎들의 흐느낌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졌거든요.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얘 뭐야’가 되는 거죠.”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군요.
네. 그런데도 오해받을 일은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정말 순수한 동기로 앞에 있는 사람을 껴안으며 인사를 했어요. 상대방은 황당할 수 있겠죠. 저는 그 순간에 내 귓가를 스쳐 간 바람과 그날 아침에 봤던 나뭇잎들의 흐느낌 때문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거든요. 그래서 내 앞에 있는 사람과 포옹하면서 인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얘 뭐야’가 되는 거죠. 그게 저의 아이러니예요. 제가 수도승같이 살아왔다면 오해받을 일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마음을 열고 행동할 때, 사람들은 제 맘과 같지 않아요. 그 간극 때문에 오해도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곧 리메이크 앨범이 나오잖아요. 사실 리메이크라는 것이 조금 ‘끝물’ 같기는 해요. 왜 하필 지금이었나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실적인 얘기만 하면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 때문이라고 말할 게요. 정규 앨범보다는 리메이크 앨범을 내고 싶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리메이크 앨범을 제작한 건가요? 오직 회사의 권유 때문에?
아니에요. 저도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제가 이제껏 한국 가수들의 곡을 리메이크한 적이 없었었는데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혼자서 프로그래밍까지 다 했거든요. 이번 앨범은 저 자신의 프로그래밍 능력에 대한 시험대라는 의미가 있어요.
앨범 리스트를 봤어요. 그런데 조금 놀랐던 건, 곡들이 너무 평이하다는 거였어요. 물론 리메이크의 본질은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포장하는 거겠지만… 보통 리메이크 앨범에는 일부러라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넣는 법인데, 뜻밖의 발견이랄 게 없어 보였어요.
선곡의 90%는 회사에 맡겼어요. 회사에 80~90년대 여자 보컬리스트 노래 중에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노래를 골라달라고. 왜냐하면 그런 노래들이야말로 그때의 정서와 계절의 향기가 녹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요리사라고 쳐요. 전 너무 강한 향을 내는 재료를 거부한 거예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재료를 썼을 때 제 손맛이나 배합이 힘을 발휘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당신의 오랜 팬들은 조금 실망할 것도 같아요.
…팬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어요. 팬이 뭐예요? 음악팬이라는 사람들이 뭐예요?
음악팬은 모르겠고, 조규찬의 팬은 정의할 수 있겠죠. 특정 순간에 조규찬의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공감했던 사람들이죠.

정답이네요.
특정 순간이란 전제가 없다면, 그건 팬이 아니라 추종이고 광신이겠죠. 그들의 생각은 하염없이 흘러요. 그렇게 각자 자기 인생 살다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의기투합은 좋아요. 하지만 제가 어찌 그 수많은 마음의 모양을 주물 뜨고 헤아리겠어요. 그런 거짓이 어딨고, 위선이 어딨어요.

달변이네요.
사실 이런 얘기는 모호하고 관념적이에요. 만약 이 인터뷰 내용을 독자들이 읽고 새 음반이 어떨까 하고 궁금함을 가진다면 제가 지금 하는 얘기, 활자화될 말들을 믿지 말고 일단 앨범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은 말로 하기 힘드니까.
상처받기 쉬운 타입 같아요.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처는 둘째치고 전 그냥 생존하고 싶은 거예요. 살고 싶은 거죠. 인간에 의해서 인격이 왜곡되고 재단당하는 건 또 다른 살인이거든요. 저는 무수히 살인을 당해왔어요.

(무수히?)
물론이죠. 그래서 인터넷도 아예 안 해요. 80년대 라이프스타일로 살아요.

어떤 오해가 가장 많죠?
젠틀하다, 예의 바르다, 바른 생활 사나이다, 뭐 성격이 조용하고 차분하다 따위의 것들이죠. 그렇지만 그 누구도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저의 전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를 위선자로 평가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한테 다시 스무 살 때로 돌아가서 음악 할 거냐고 물으면 단호히 아니라고 할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밤에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던 그 순간, 그 행복감으로 16년을 견뎌왔을 뿐이에요.”

말 많은 애들이 그 사람 없는 데서 뒷말 하기 쉬운 타입이군요.
전 정말 음악만 하고 사는 게 목표예요. 나서기가 싫어요. 무서워요, 세상이.

데뷔 때부터요?
시기마다 편차는 있었지만 항상 평탄치 않았어요. 요즘이야 이른 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 스무 살이면 굉장히 어렸으니까.
하긴 당신이 데뷔 앨범 냈을 때 천재다 뭐다 호들갑을 많이 떨었죠. 방송 출연도 많았고요.
저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온 사람들이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니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해요. 그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불행이죠. 사람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착하고, 사랑에 목마른 영혼인데. 하지만 그런 개인들도 군중 속에 있으면 본성이 바뀌더라고요.

담배를 많이 태우시네요.
피우다가 안 피우다가 그래요. 작업할 때나 인터뷰할 때는 많이 피우게 돼요.

안 피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담배가 도움이 되나요?
사실 직업적으로 생각하면 피우면 안 되죠. 하지만 담배가 집중하고 침잠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소라 씨의 앨범에는 항상 Thanks to에 세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죠. 김현철과 고찬용, 그리고 조규찬. 이소라 씨는 당신의 보컬 디렉팅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죠.
이소라 씨는 저 아니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요. 이소라 같은 보컬리스트가 왜 굳이 디렉터가 필요하겠어요. 이미 그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데.

그런데 왜 계속 그녀는 조규찬에게 보컬 디렉팅을 맡기는 거죠?
마음의 문제예요. 이소라 씨가 저와 생각을 나누면서 부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느끼는 것 같아요. 항상 이소라 씨가 저에게 처음 하는 질문은 이거예요. 이걸 어떤 느낌으로 불러야 할까. 일단 그렇게 시작해서 큰 틀을 만들고 좁혀 들어가는 거죠.

누군가의 보컬을 디렉팅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잘 와닿지 않아요.
좋은 보컬이란 목소리를 얼마나 곱게 내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전체 그림을 보고 어느 자리에 연못을 만들고, 언덕을 만들겠다는 구조적인 성찰을 하는 거예요. 목소리와 악기들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각각의 음들을 가수가 어떻게 짓누르고 여느냐에 따라 노래의 인상이 바뀌어요. 그런 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목소리라도 힘을 못 받아요.

이소라 씨도 앨범이 참 늦어지네요. 올봄부터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곡 작업은 다 끝났는데 가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완성이 돼도 맘에 안 드니까 계속 다시 쓰는 것 같았어요.
많은 뮤지션들이 조규찬을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라고 칭송하죠. 저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해요.
사실 최고라는 단어는 저한테 가당찮은 말이에요. 저는 그냥 음악을 만들면서 노래도 하는 사람. 그 정도가 맞아요. 보컬리스트는 보컬리스트로서 위치가 있고 평가받아야 마땅한 분들이 따로 있어요. 조용필 선배님이나 임재범, 박완규, 나얼, 한영애, 이소라 같은. 그런 분들이 진짜 보컬리스트예요.

본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아뇨 전 제 목소리가 ‘차암’ 맘에 들어요.(웃음)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인 것 같아요.

결혼하신 지도 햇수로 5년째네요. 결혼 후 내셨던 8집 앨범에는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있었죠. 결혼이 준 영향이었을까요?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음악과 생활은 별개예요. 음악인으로서 조규찬이 발견해낸 결과물들, 그리고 생활인 조규찬의 생활은 아주 동떨어져 있어요. 아기 울음소리에서 새로운 선율을 발견해내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기 울면 달래기 바쁘고,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하고.

아무래도 혼자일 때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특히나 아티스트에게는 말이죠. 식솔을 부양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 않나요? 별로라고 생각하는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하는 경우같이.
다행히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요. 곡 의뢰라든가, 프로듀서라든가 OST 같은 걸 할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런 것들이 많았다면 클라이언트들의 입맛을 많이 맞춰야 했을 거예요.

하지만 플라이투더스카이나 윤하 같은 젊은 가수들의 작업에도 참여하셨잖아요. 그들의 속성이 당신과 썩 어울려 보이진 않았어요.
솔직히 딱 맞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래서 저를 찾았겠죠. 새로운 것을 입히고 싶은 마음. 저도 용납할 수 있는 선까지 다가가주고, 그들도 마찬가지고. 접점을 찾은 거죠. 저는 재미있었어요.
조규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자예요. 조규찬이 뭔가 재수 없는 모범생 이미지라고 생각하죠.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말할 것 같은. 자아가 강한 남자는 남자들 세계에서는 쉽게 인정받지 못하잖아요. 한국 남자들은 위계질서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절 싫어한다면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거겠죠.

그러고 보면 조규찬의 노래에 나오는 남자들은 뭔가 특이했죠. 가지 말라고 다리 붙잡고 울고불고 하는 게 아니라, 연인에게 토라지고 삐지고, 그래 난 원래 혼자가 어울렸어 하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남자들. 그런데 그게 더 조규찬 같았어요.
가사 안의 모습은 제 경험의 재구성이겠죠. 저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믿지 않아요. 에로스적 사랑이란 상당히 가변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은 구조예요. 언제든 변해서 달라질 수 있는.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가사가 나왔을 거예요.

벌써 데뷔한 지 16년이네요. 데뷔 당시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나요.
…저는 음악 안 해요. 음악이라는 것 때문에 행복해질 여지가 많았지만, 음악을 하기 때문에 불행한 적이 더 많았어요. 그리고… 제 노래를 좋아해주는 분들께는 건방지고 죄송한 표현이지만 저는 지금까지 해온 게 없는 것 같아요. 진심이에요. 앨범 판매량, 호의적인 평론, 이런 것들이 단 한 번도 저를 행복하게 한 적이 없어요. 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저한테 다시 스무 살 때로 돌아가서 음악 할 거냐고 물으면 단호히 아니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불특정 다수 속에 살면서 음악을 듣기만 할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밤에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던 그 순간, 그 행복감으로 16년을 견뎌왔을 뿐이에요.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나요.
행복도 있었지만, 그런 걸로만 버티기에는 저를 말살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말살이라는 표현을 쓰시네요.
네. 말살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은 음악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런 저라도 이제는 음악을 하고 살아야 해요. 저의 업보죠, 업보.

살풀이라도 해야겠네요.
그럴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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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지양
Editor 이기원
Hair&Make-Up 이소연
Stylist 김영은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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