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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했습니다

<아레나>는 남성 패션계에서 그 이름값의 높이와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송구한 `폴 스미스`를 문패로 내걸었다. 폴 스미스. 우리나라로 치면 김철수처럼 평범한 이름일 터인데…. <br<br> [2008년 7월호]

UpdatedOn June 24, 2008

 이름값 한다는 문장만큼 우뚝한 게 또 있을까. 이름값이란 얼굴값이란 액면가에 비해 고상하고, 나잇값이라는 물리적 비교 대상에 비해 거룩하다. 사람의 이름값이란 삶에 대한 철저한 공과이니까. 이 달 <아레나>는 남성 패션계에서 그 이름값의 높이와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송구한 ‘폴 스미스’를 문패로 내걸었다. 폴 스미스. 우리나라로 치면 김철수처럼 평범한 이름일 터인데…. 참으로 제대로 이름값 하시는 분이다. 대한민국 남자들 누구도 그 이름 넉 자를 모르는 자 없으니. 저 멀리 영국의 환갑 넘은 디자이너인데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의 충정 깊은 팬이다.
나는 그가 제대로 남성적이어서 좋다. 남성복 디자이너가 남성적이라는 것이 왜 호감의 이유가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웃겠다. 아니, 설명을 해드리겠다. 패션이라는 건 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시각과 촉각을 만족시키는 형이상학적인 작업이다. 0.1인치 차이에서 오는 잔망스런 실루엣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커프스 끝단의 1도 차이에 사활을 거는, 세룰리안 블루와 프러시안 블루의 색감 차이에 분통을 터트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부류의 남성들에겐 ‘별스러운 유난’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유난스러움과 별스러움이 패션계를 움직이는 힘이자 상식이다. 그리하여 남성 디자이너들에게는 제3의 눈, 여성보다 더 여리고 파리한 그런 눈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때로 그들은 폭풍 전야처럼 음울하지만, 때론 그들은 휘핑크림처럼 폭신하다. 그 누구보다 대칭과 비례와 부분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 누구보다 좋은 음악, 좋은 그림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호들갑스러움과 순수함을 가졌다. 그래서 가끔 그들이 지어낸 옷은 설익은 미소년의 내의 같기도 하고, 새초롬한 여성의 속곳 같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폴 형님은 다르다. 그의 옷은 씩씩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옷을 두고 웃음을 포갠다. 맞다. 그의 작품은 명랑하다. 컬러는 대놓고 경쾌하고, 프린트는 대놓고 흐뭇하고, 디테일은 대놓고 재밌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매장에 가면 대놓고 놀이감도 많다. 미니 로봇에 미니어처 자동차, 피겨도 있다. 그는 그렇게 개궂다. 0.1인치의 신경쇠약적인 실루엣 차이보다 대놓고 알아챌 수 있는 ‘명랑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폴 스미스가 그랬다. 자신의 옷에는 작은 놀라움(little surprise)이 있다고.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겉으론 평범한 화이트 셔츠인데 커프스를 뒤집어보면 총천연색 천이 덧대 있다거나, 피케 티셔츠의 단추 중 한 개만 돌연변이처럼 컬러가 다르다거나 하는 것들. 이건 다른 남성복 디자이너들에게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순수 직설 화법이다. 연지곤지 꽃단장한 여자를 보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마초 기질을 옷가지에 대놓고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과연 누가 무심한 검정 가죽 지갑 안쪽에 일본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토플리스 소녀를 그려넣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 건강한 마초이즘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앞서도 말했듯이 요즘 남성복 디자이너에겐 이런 직설 화법이 도통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옷엔 ‘Surprise’가 아닌  ‘Delicate’한 감성이 내재되어 있다. 드러내지 않고 미묘하게 감추고 은유한다. 그러니 폴 형님이 직설법의 패션 성곽에서 영주가 되는 건 당연하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던 그는 이런 옷차림이었다. 허리 라인을 ‘절대’ 강조하지 않은 블랙 수트에 하늘색 면 셔츠. 셔츠엔 넥타이를 하지 않았고 대신 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놓은 채 흰색 면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누가 봐도 평범했다. 늘씬한 몸매와 큰 키, 은회색의 바람머리가 아니었던들 그는 그저 옷 살 시간도 없이 맹렬히 일하는 CEO 같았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에도 ‘Little Surprise’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연두색이 섞인 스트라이프 양말이었다. 육순이 넘은 폴 형님이 다리를 살짝 꼴 때마다 꼬물대는 연두색 양말이라니… 역시 스타일링의 핵심도 수컷의 일차원적 욕구를 제대로 드러내는 시각적 솔직함이다.

이 솔직함은 그가 디자인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단 수트(이번 <아레나> 표지 사진)에도 드러난다. 영국 여왕에게서  작위를 부여받은 폴 스미스가 영국 최고의 기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지어준 옷은 돌체&가바나표 AC밀란 선수단 수트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곱기로 따지자면 돌체&가바나의 작품에 한 표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말디니가 입었던 블랙 수트는 허리라인이 유연하게 피트됐고 전체적으로 검은 푸마처럼 미끈하고 날렵했다. 하지만 우리의 박지성과 호날두가 입은 폴 스미스의 수트는 담담하다. 수트 라인은 클래식에 기초해 현란한 곡선이 없고 그저 담백한 직선이 먼저 눈에 띈다. 매치한 스트라이프 넥타이와 셔츠 역시 마찬가지. 그렇지 않아도 맹호 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은 더욱 더 각진 남성미를 뿜어낸다. 폴 형님의 선 굵은 손맛 때문이다.

<아레나>의 박지호 기자는 커버스토리를 실은 기사 전문을 이렇게 썼다. ‘분야를 불문하고 영국이 낳은 최고의 걸물 세 가지를 꼽는다면? 우리만의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걸 허락한다면 아마도 디자이너 폴 스미스,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아레나>일 것이다. 과연 이 셋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까? ’
그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는 이 달 <아레나> 표지를 통해 실현되었다. 폴 스미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에게 맹수의 수트를 해 입혔고 루니·하그리브스·호날두·판데르 사르
박지성을 포함한 선수단은 그와 함께 화보를 촬영했으며, 그 사진을 <아레나> 편집부로 보내왔다. 그렇게 ‘이름값 하는 폴 스미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클럽과 아레나’의 황홀한 만남은 이루어졌다! 세상에.

 


아레나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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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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