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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옴므가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를 영입해 에디 슬리먼의 기억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고뇌의 나날을 헤치고 당당하게 치른 첫 파리 컬렉션 직후 <아레나>는 디올 옴므의 새로운 창조자, 크리스 반 아쉐를 만났다. <br><Br>[2008년 4월호]

UpdatedOn March 23, 2008

Editor 구정란

2008년 1월 20일 오후 7시, 지난해에 비하면 따뜻한 날씨다. 이날은 디올 옴므의 디자이너로 영입된 크리스 반 아쉐의 첫 번째 컬렉션이 있었다. 2008 F/W 파리 남성복 컬렉션 중 가장 주목받았으며, 전 세계 패션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던 날이기도 했다. 결과가 어떻든 말이다. 파리 ‘오델 나시오날 데장발리드’에서 펼쳐진 이번 컬렉션은 칼 라거펠트와 존 갈리아노를 비롯한 세계에서 유명한 패션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시작 전부터 장관을 이루었다. 마치 새로운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가 선보이는 디올 옴므의 첫 컬렉션을 축하하러(혹은 심판하러) 온 사절단(혹은 배심원) 같았다고나 할까 .
쇼장은 에디 슬리먼이 추구했던 다소 팝적이고 가벼웠던 기존 분위기와는 달리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연출해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이 어둠 속에 그것도 사방을 둘러싼 창문을 등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행동을 보일지 궁금해하며 쇼의 시작을 기다렸다. 의문은 곧 풀렸다. 연미복을 입고 악기(마치 전장에 나온 십자군의 칼을 연상케 했다)를 찬 그들은 유명한 윔 멀텐스 오케스트라였으며, 윔 멀텐스을 비롯한 그의 군사들은 웅장한 멜로디로 쇼의 시작을 선포했다. 윔 멀텐스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벨기에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현대 클래식 뮤지션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번 디올 옴므 컬렉션을 위해 쇼 음악을 작곡했고 크리스 반 아쉐의 옷을 입은 모델들은 그의 연주에 맞춰 왕족처럼 위엄 있게 행군했다. 쇼 음악 하나만으로도 그는 전임자(에디 슬리먼은 디즈 뉴 퓨리탄즈처럼 감각적인 록밴드의 음악을 사랑했다)와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여준 것이었다.
크리스 반 아쉐에 의하면 컬렉션 무대와 장소는 네덜란드의 사진작가 데지르 돌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오랜 시간 인간과 자연을 관찰한 작품 사진을 선보이는, 사진이라기엔 매우 회화적이고, 현대 작가라기엔 어딘지 클래식한, 매우 엄격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의 작품이 크리스 반 아쉐의 컬렉션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커 보였다. 무대에 등장한 남성 모델들은 창백하리만치 흰 분칠을 하고 가는 머리띠른 두른 모습으로 회화적인 분위기를 만발하며 캣워크를 펼쳤다. 그들은 오만한 귀족 혹은 왕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 모델들은 아쉐가 아르헨티나 전역을 돌며 직접 캐스팅한 신인들로 그는 이 과정에서도 이번 컬렉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남미와, 아름다운 남미 남성들과, 남미를 촬영해왔던 작가 데지르 돌롱의 작품에서 풍기는 제3세계 문화의 아우라는 ‘우아함과 열정’의 기묘한 결합으로 분출됐다. 에디 슬리먼이 여드름투성이 미소년을 앞세워 펑키한 남성성을 표현했다면 그는 우아한 성인 남자를 앞세워 크리스찬 디올의 역사성을 재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바로 ‘르네상스’적인 감성을 사랑하는 크리스 반 아쉐만의 방식으로.
블랙 컬러의 다양한 소재, 르네상스 슬리브로 강조된 셔츠와 베스트 주름, 볼륨감이 인상적인 해머 팬츠, 버터플라이 장식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쇼트 코트를 입고 무대를 유영하는 창백한(하지만 아름다운) 모델들. 많은 이들은 이번 컬렉션이 디올 하우스가 전통적으로 표방해온 남성의 ‘우아함’을 내비쳤다고 평한다.
긴장감이 넘치던 쇼가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 아쉐는 친절한 손놀림으로 자신을 위해 음악을 연주한 윔 멀텐스를 관객들에게 소개했고 사뿐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많은 이들은 박수를 치며 이내 귓속말을 속삭였다. “우아하군. 디올다워. 하지만 옷이 너무 과하게 우아한 건 아닐까? 뭔가 실용적이면서 쉬운 룩을 다음 시즌엔 보고 싶군. 제발 우리를 흥분시켜줘. 미치도록”.

2008 S/S 컬렉션과 2008 F/W 컬렉션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번 컬렉션에서 당신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지난 시즌 디올 옴므를 위한 내 첫 번째 컬렉션은 대단히 짧은 기간 동안 작업되었기 때문에 쇼 안
에 나를 녹이는 대신, 과거로 돌아가서 이 뛰어난 브랜드의 창고을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내게 있어 디올이 무엇인지, 남성들을 위한 패션계에서 디올이 갖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영속적이면서 우아함에 바탕을 둔 근원적인 컬렉션이 태어난 것이다. 솔직히 난 정말 멋진 옷들을 디자인하기만을 원했다. 그것이 내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2008 F/W 컬렉션에서 내 목표는 달랐다. 난 새로운 남성성, 급진적인 우아함을 창조해내고 싶었다. 쇼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극적이며 시적으로. 새로운 디올 남성복이 오만한 표정을 가진 왕자, 현대의 기사로 말이다.
런웨이에 선보인 의상과 선보이지 않은 의상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캣워크에서는 극단적인 것들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 옷들은 극단적, 급진적 미학을 보여주는 시적인 라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웨이에서 선보이지 않는 나머지 컬렉션 옷들도 내겐 대단히 중요하다. 당신이 숍에서 구입하는 것들이 아무리 심플해 보일지라도 컬렉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올에 합류한 이후 당신의 첫 번째 런웨이 쇼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었나?
강렬하고 매혹적인 프로젝트였다. 아틀리에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난 매번 그들의 솜씨에 압도당하곤 했다. 럭셔리한 오트 쿠튀르 디테일은 의상에 필수다. 내가 보여주려고 애써온 급진적 우아함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디테일들이다. 뮤지션 윔 멀텐스와 함께 일하는 것 역시 똑같은 감동과 놀라움의 원천이 되었다. 난 그의 음악이 가진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한껏 즐겼다. 내 의상들의 의미를 그대로 ‘실어 나르고’ 있는 쇼 음악을 듣자마자 우리가 정말 시적인 순간을 창조해냈음을 알았다. 그건 정말 파워풀했다.
당신이 ‘도전’하는 목표점은 무엇인가?
나는 현대적인 동시에 우아한 컬렉션을 창조해내기를 정말로 원한다. 이런 극단적 미학은 내가 늘 추구해온 것이다. 궁극적 목표는 남성들을 캐리커처로 변화시키지 않고 멋지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쿠튀르적으로. 다시 말해 아름다움의 진정한 사원이랄 수 있는 디올 같은 패션 하우스에서는 이런 부분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 그것은 Mr. 디올이 지켜온 독창성과 예리한 반-순응주의 이상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개인 컬렉션만을 준비했을 때와는 다르게 한 해에 네 개의 컬렉션(개인 컬렉션과 디올 옴므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바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운 좋게도 디올 팀들과 내 브랜드의 팀들 모두 대단히 재능 있어서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들은 나보다 더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이다. 역시 일하는 데는 팀의 호흡이 중요하다. 팀원이 훌륭하면 네 개가 아닌 그 이상의 컬렉션도 준비할 수 있다.
무엇이 다가올 미래에 디올 옴므의 새로운 시그니처 룩이 될 것인가?
우아함과 디테일을 강조한 현대적인 룩. 동시대적이면서 매우 귀족적인 것.
누군가 디올 2008 F/W에서 세 개의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어한다면, 무엇을 추천하겠는가?
누가 무엇을 입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주름 잡힌 작업복 셔츠가 필수다. 자수를 놓은 가죽 재킷도. 아주 스트레이트한, 혹은 그와 반대로 커다란 주름이 잡힌 팬츠는 강력한 ‘건축적’ 룩을 예고한다.
당신의 2008 S/S 컬렉션에서 화이트 셔츠는 대단히 특별했다. 어떻게 ‘화이트 셔츠’를 주목하게 되었나?
화이트 셔츠는 언제나 우아한 옷장의 기본이며 스타일에 매우 활기를 주는 아이템이다. 디올의 의류 창고 안으로 다이빙한 뒤 나는 남성복에 매우 고급스런 디테일을 가미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화이트 셔츠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화이트 셔츠는 패션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컬렉션 전체의 스토리를 쓸 수 있는 흰색의 텅 빈 페이지와도 같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만 말해달라.
글쎄…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나를 사랑하는 것들.
일을 마친 뒤에는 보통 무엇을 하는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스포츠, 친구 만나기, 파티, 전시회 등등.
특별히 디올 옴므에서 준비하는 내년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의 다음 호를 위한 작업에 초청받았다. 난 큐레이터가 될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는 건 큰 영광이고 기쁨이다.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현재로선 그것 외에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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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구정란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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