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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 보관된 언어유희

박진영은 말로 일어선 사람이다. 제아무리 음악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의 말발을 넘진 못한다. 그는 오늘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오늘의 박진영 신화를 일구어냈다. 그의 말 잇기 놀이에 유통기한은 없는 걸까.<br><br>[2008년 1월호]

UpdatedOn December 20, 2007

Editor 이지영 Photography 김지태 assitant 라혜영

말재주가 있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다. 동일한 능력이라 할지라도, 말재주에 따라 그 경중은 다르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라면, ‘말의 비중’은 두 배로 커진다. 같은 결과물을 포장하는 데 연예인의 말재주만큼 유용한 것도 드물다. 말로 가장 크게 성공한 연예인으로(그래 봤자 정치인의 그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최근 가장 ‘핫하게’ 거론되고 있는 박진영을 꼽을 수 있겠다. 6년 만에 가수로 컴백한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적어도 이 사람이 말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딴따라 박진영입니다.” 1994년 ‘날 떠나지 마’로 가요계에 데뷔한 박진영은 스스로를 ‘딴따라’라 소개하며 ‘언어유희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만 해도 그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그것은 곧 미남으로만 점철되었던 가요계에 굉장한 혼란이었으며, 노래만 잘하는 가수들 사이에서 확실한 달변가의 등장이었으며, 깡통 계급장으로 여겨지던 연예계에 대단한 엘리트의 출현이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을 딴따라라고 소개하는 놈이 누구일까?’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박진영의 ‘딴따라’ 발언은 계속됐다. 돌이켜보면 이는, 그가 엄청난 자신감으로 무장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을 ‘딴따라’라 부른다는 것은, 엄청난 자부심이 내재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가 데뷔한 1994년만 해도 ‘딴따라’라는 말은, ‘광대’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실제로 자신을 광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스스로 그렇게 칭할 수 있었겠나.) 물론, 사람들은 일류대 출신 박진영의 ‘자신감’을 우상시하기 시작했다. 박진영의 말은 그렇게 처음부터 약발이 먹혔다.
‘딴따라’로 자신을 알린 박진영은 연이어
“저 여자친구 있어요!”라는 충격(?) 발언으로
또 한 번 여론을 집중시켰다. 때가 어느 때이던가. 연예인이 이성 친구를 밝힌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로 인식되던 때였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있는 여자친구를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여자친구한테 엄청나게 미안한 일 아닌가요?” 솔직하다 못해 당당했던 그의 발언은, “역시 박진영은 대단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말의 활력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1995년 박진영은 월간지 <이브>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공개하면서 또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른바 여성의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게 그의 의지였다.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이 나의 나체를 보고 억눌린 성적 욕망을 일으켜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박진영은 대한민국 여성들의 성적 불평등에 대해 언제나 ‘말이 많았다’. 그는 마치 이 땅의 페미니스트를 대변하는 듯 말했다.
“섹스는 곧 사랑이지, 섹스가 곧 결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맹세 했다고요? 제 생각엔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박진영의 말에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게 됐으니,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히 세운 셈이다.
1996년 박진영은 한 고등학교에서 치른 ‘순결서약식’(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맹세)에 대해 거센 비난의 말을 던졌다. “섹스는 너무나 사랑해서 일체감을 느끼고자 하는 행위이지 결혼의 상징이나 증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전교생을 모아놓고 강제로 순결서약식을 할 수 있죠?” 당시 <김현철의 디스크 쇼>에 출연해 던진 박진영의 이 말은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그는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박진영의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제가 드디어 결혼하게 됐어요.
그토록 원하던 프러포즈를 받았거든요.”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하면서도 그는 좀 독특했다. 1999년, 그는 ‘여자에게 먼저 프러포즈를 받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졌다고 얘기했다. (박진영은 ‘반드시 남자가 먼저 프러포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 여자들의 고정관념이 한심하다며 통탄한 바 있다.) “저는 부인을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여자친구라고 부르죠. 저는 ‘부인’이라는 말에 숨은 개념이 너무 싫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 부인을 평생 여자친구라 부를 거예요.” 요란하다. 이렇게 요란할 수가 없다. 부인을 여자친구라 부르건 말건 대중이 크게 상관할 바는 없건만, 박진영은 대중을 상대로 ‘부인을 부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연’을 수도 없이 얘기했다. 그의 말이 계속되는 것이다.
“‘사단’이라는 말 자체는 소위 패거리 문화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프로듀서를 보고 음반을 구입한다는 것은 이미 구매자의 관심이 가수에서 음악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하거든요.” ‘딴따라’에 이어, 그가 이슈화시킨 단어는 다름 아닌 ‘사단’이다. ‘작곡가 김형석 사단’이라는 의미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 단어는 고스란히 박진영의 것이 되었다. 그는 본인을 포함, 비, 별, 노을 등 JYP 소속 가수들을 통틀어 ‘박진영 사단’이라 칭하며 또 한 번 말의 성능을 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사람들은 또 한 번 ‘박진영 사단’을 지지하며 그들을 통틀어 ‘외양보다는 실력이 우선인 가수’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말발이 먹힌 셈이다.
“스타 한 명 준비시켜서 내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절차를 필요로 합니다.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한 캐스팅팀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인재를 교육시킬 수 있는 인재 양성팀도 필요하죠. 물론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보내는 일은 음반 제작팀이 맡아야 하고, 이를 언론에 알리고 홍보하는 일은 마케팅팀이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하려다 보면 회사 규모는 커지기 마련인 거죠. 대형 기획사에서 스타들이 많이 나오고 이들의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그의 말발은 적중했다. 당시 SM, YG, JYP 등 대형 기획사 출신 가수들이 너무 판을 치는 것 아니냐는, ‘대형 기획사 독과점 풍토’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박진영은 또 한 번 말발로 이를 불식시켰다.
“우리 사회엔 민족주의로 먹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 노래 등 문화 상품에서 한류라는 국가 라벨을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2007년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내뱉은 박진영의 이 말이 또 한 번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그는 한류에 민족주의 개념을 이어 붙인다는 것에 상당히 불만인 듯 보였다. “이웃 나라 국민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문화를 공유하려고 힘쓰는 것. 그래서 서로 싸우기 전에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나 같은 딴따라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박진영 아니랄까봐 그는 꽤나 신랄하게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역시나 반응은 뜨거웠다. 네티즌과 언론이 찬반양론을 펴가며 그의 ‘말’에 대한 검토를 해댔다. “박진영의 발언은 새로운 게 없다. 혹시 그가 주장하는 내용보다 그 말을 했던 상황이 논란을 촉발한 건 아닐까. 세계 대중문화의 본산인 미국, 그것도 하버드 대학 강연을 앞두고 한류를 비판한 게 마치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처럼 비쳤기 때문 아닐까. 나는 그렇게 본다.”
문화 평론가 남재일의 이 같은 발언은 ‘여전히 박진영의 말발이 이슈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 꿈을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그냥 무대 위에서 계속 공연하다 죽는 게 제 꿈이죠. 나이가 70, 80세가 되든 관객이 10명, 20명이 되든 계속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박진영이 ‘얼마 전’에 알게 됐다던 본인의 꿈은, 그러나 꽤나 오래 전부터 계속 해오던 말이다. 이쯤에서 대중이 조금 우둔해 보이는 이유는 박진영의 말들이 거의 대부분 ‘늘 해오던 것’일 뿐인데 여전히 그의 말에 솔깃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여자친구와 아이는 갖지 않기로 오래전 결정했어요. 또 살면서 서로에게 한 번은 바람피울 기회를 주기로 했고요.” 최근 보도되고 있는 박진영의 말들 역시 이미 그가 아주 오래 전부터 늘 해오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처음 들은 양(설사 처음 들었을 지라도) 그의 말을 경전에 모시려 하며, 심지어 그를 추앙한다.
박진영이 내뱉는 수도 없는 말의 핵심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는 늘 대한민국의 틀에 박힌 고정 관념에 불만을 느끼고, 이를 깨려 한다. 성에 대한 문제의식, 여자들의 성적 불평등, 그리 반갑지 않은 민족주의, 보수주의 등등 그가 내뱉는 말들이란, 거의 이 몇 개 키워드 안에서 움직인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시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그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단순한 언어유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진영이 대단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음악성, 비즈니스 능력은 엄청날 정도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대단한 것인지, 그의 말이 그럴싸한 것인지 적어도 분간할 줄은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고통이었어요. 연습실에서 3~4년 동안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로 지내온 거잖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진영이 형을 원망했었죠.” 실제로 비가 한숨과 함께 내뱉었던 이 말은 의미하는 바가 꽤 크다. 박진영이 대단한 비즈니스맨이라는 것. 그리고 비를 키워낸 박진영의 신화는, 그의 말 덕분에 엄청나게 포장된 선물세트라는 점이 그것이다.
“과묵하고 겸손하지를 못해요. 그것이 콤플렉스죠. 난 조그만 일 하나만 해도 ‘내가 이것 했다’고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거든요.” 참으로 다행이다. 그의 ‘자랑하기 좋아하는 콤플렉스’가 오늘의 박진영 신화를 만들었다. 지금도 박진영의 말은 계속되고 있다. 그 말에 대중이 속고, 그 말이 박진영 신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의 말 덕분에(?)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일희일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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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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