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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를 위한 나라

대한민국은 사방팔방으로 성장 중이다. 과도기라서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는 한국을 걱정하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UpdatedOn December 12, 2013

자신이 좋아하는 걸 선택할 수 있었다. 운이 좋은 편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좋은 게 뭔지 알 기회가 있었으니까.
누구나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데, 내 재능을 알 수 있고, 펼칠 일을 찾는다면 운이 좋은 거지. 누구나 그런 기회는 있겠지.

산업 디자인의 개념조차 없던 한국인이 디자인을 배우러 시카고에 갔다. 모든 게 생소했을 테니, 시카고의 다른 학생들보다 유리한 점도 있었겠다.
호기심은 더 많았을 거다. 또 영어를 못하니까 머리를 더 많이 썼을 거고. 담당 교수도 서투른 영어가 나를 더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하더라. 영어를 못하니 머리가 복잡하고, 주눅 든 상황에서 도전적으로 변하게 되더라.

한국에 산업 디자인의 뿌리를 내리겠다면서, 왜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을까?
실리콘밸리가 태동하던 시절이었다. 연고가 없으니 뉴욕이든, 시카고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됐다. 당시 디자인의 미래는 실리콘밸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애플이 등장하고, 반도체 공장이 생기던 미래 창업도시 시절이다. 지나고 보니 잘 선택한 거 같다.


뉴욕처럼 체계를 갖춘 곳보다는 태동하는 곳이 신생 업체에겐 더 유리했겠지.
맞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지금 한국처럼 꿈틀대던 시기다.

그럼 지금 한국 IT는 태동기인가?
정보나 근거를 갖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내 느낌이 시작인 것 같다.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실리콘밸리 갔듯이 이노디자인 설립하고 25년 만에 한국에서 태동하는 촉을 느꼈다. 한국은 많이 변했다. 어려서 세운 목표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은 IT 분야에서 기술력을 높게 평가받는 나라다. 하지만 디자인이 그 기술력을 받쳐준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 자동차도 생산 규모는 세계 톱5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멋진 차는 한국에서 안 나온다.
제품들도 몇 가지는 세계 1위지만, 디자인은 1위가 아닌 것 같다. 디자인은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와의 관계,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과 편리함,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과연 우리나라 제품들이 세계를 이끌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약간 부족하지 않나?

디자인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국내 제품 디자인의 수준이 낮다는 건, 그와 비례해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도 낮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 수준은 어떤 제조사 수준보다 더 앞서 있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오피니언 리더들과 얼리어답터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디자이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디자이너들의 업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화려함보다는 고충이 더 많겠지.
최근 창조경제란 말을 들었다. 창조경제가 잘되려면, 창조적인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다.
경제계나 사회, 문화가 발전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디자인은 예술과 달리 동반자가 꼭 필요하다. 생산과 설계, 판매를 해야 하니까. 한국은 그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다. 실제 일하다 보면, 인프라가 안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된다. 뭐 어떤 나라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극복하지 않았을까.
아직까지 기업인들이 디자이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그건 과정이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 열정도 전문성과 동반 상승하는 거니까.
하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목표에 도달하려는 도전 정신과 열정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높이고, 설득하고, 성공하고, 스토리를 보여주며 일해야 하니까.

흔히 나이가 들면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한 헤드폰은 모험에 가깝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면, 늙지 않는 거지? 디자인이란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고, 사용자가 어리면 그 젊은 감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기존에는 타 기업의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이번에는 이노 브랜드의 헤드폰을 제작했다.
헤드폰의 이름은 이노 웨이브다. 이번 제품은 이노 브랜딩의 시작이다. 몇 년간 우리 브랜드의 대상이 누군가를 많이 고민했다.
이노의 디자인과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젊은 층이었다. 주로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나이와 무관하게 이노 브랜드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걸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헤드폰이다.

재킷 엠포리오 아르마니, 니트 꼬르넬리아니, 팬츠 메종
by샌프란시스코 마켓, 머플러 하버스데이 제품.

디자인 회사가 제작부터 판매와 유통까지 한다는 건 위험한 모험이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이노라는 회사의 미래를 짚어보면 시장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독특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재능, 이노라는 브랜드의 DNA와 제작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포트폴리오가 있다. 이런 것들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것이 창업자의 가장 중요한 숙제다.
이런 포지션으로 남는 것은 미래를 위한 커다란 준비다. 헤드폰을 선보였지만 블루투스 스피커도 출시하고, 이어폰, 스마트폰 주변 기기들도 보게 될 거다. 생활용품 중 우리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거다.
예컨대 가방으로 시작해 1백 년 이상 지속한 명품 브랜드처럼, 우리도 미래를 위해 시작하는 단계다. 하나의 과정이지.

<퍼플피플>이라는 책과 트위터 활동을 통해 젊은 사람들의 멘토로 여겨진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즐기는 편이다. 대단히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책임감은 느낀다. 열심히 생각하고, 알리려 한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들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면 소중하겠고.
또 우리나라의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디자인 사업의 인프라를 덜 갖췄으니, 누군가는 벽을 허물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부여받은 건 아니지만, 나라도 디자인 산업 자체를 키워야만 한다고 믿는다.

멘토로 여겨지지만 가르치려는 건 아니고,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면 될까?
그렇다. 생각을 전하고,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든다. 이런 행동은 조용하지만, 일종의 운동이 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운동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하는 역할이 디자이너한테는 더 밝은 미래, 새로운 목표를 세울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자인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또 의견이 하나로 수용되어야 한다.
공동 노력을 통해 디자인은 더 승화될 것이다.

디자인처럼 창의적인 활동,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건 개인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건 서구적인 사고에 가깝다.
한국은 굉장히 유기적이고, 유대감이 강하다. 이게 독이 될 때가 많지만, 오히려 전혀 새로운 것이 창출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서양 문화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한국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의 고전적인 예술성은 무시 못한다.
한국만의 예술 감각, 놀기 좋아하는 문화, 음악과 춤이 전부 창의적인 사업과 디자인의 기초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타고난 창의적인 끼가 있다. 그런 것들이 한류의 중심이 되고, 산업에서 희망을 보여준다. 음악, 드라마를 통해 시작된 한류가 디자인과 결합하면 국가 경제적인 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할 것이다.
왜냐면 음악처럼 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제품을 통한 디자인 한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한류가 버블이라는 의심을 보내기도 한다. 과연 한류 콘텐츠가 디자인과 결합한다면 정말 가치 있을지, 또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한류의 가치는 춤과 노래,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다. 풍류 한국의 문화를 세계화하는 일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제품을 통해 판매하는 거다. 디자인이 코리아의 모티브를 담는다면, 내가 보기에는 대박이다. 지인이 말하길, 우리의 T라인 콘셉트가 태극 라인에서 모티브를 잡아, 컬렉션을 만들기에 전략적으로 상당히 유리하다고 한다. 왜냐면 아주 거대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큰 이미지로 성공하게 되면, 한국 브랜드 자체가 성장하는 것이고, 외국인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T라인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고, 미래에도 편리해야 하며, 보기에도 아름다워야 한다. 전 세계인을 위한 콘셉트이기에 성공할 확률도 아주 높다.

T라인은 태극기를 활용한 디자인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강한 국가색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T라인은 국가 색깔이 없는 게 매력이다. 태극의 선만 채용한다. 선에 역사를 담고, 활용하려는 것이다. 실제 제품을 보면 태극의 모양을 찾기 쉽진 않을 거다. 태극에서 나오는 곡선만 살짝 보인다. 디자인 자체는 이노스럽고, 모던한 코리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같은 맥락에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나들길도 태극기의 이미지로 디자인됐다.

나들길 지나갈 때, 태극기의 이미지를 느끼진 못했다.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들길을 자세히 살펴보면 건곤감리가 새겨진 의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테이블, 안락의자, 식탁, 캐비닛 이런 가구들을 모두 T라인으로 제작했다. 현재 T라인 컬렉션을 런던에서 전시하고 있다. 컬렉션이 유럽 시장에서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들에 T라인 매장을 갖고,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이다. 한국의 브랜드를 승화시킬 수 있다면, 한국에서 태어난 디자이너로서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나들길을 디자인하게 된 것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한류 콘텐츠와 함께 한국의 디자인을 함께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은 디자인 자체가 한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그렇게만 된다면 국가적인 수익은 엄청날 거다. 한국의 디자인이 알려진다면, 국내의 디자인 산업은 대폭 상승할 거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움츠러 있다고 보면 된다. 디자인 산업 전반을 키우고 싶다. 부자들을 위한 디자인도 많이 했고, 최고의 대기업을 위한 히트 상품 디자인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디자인의 대중화, 디자인 산업 키우기 그리고 디자인으로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대량생산을 통해 새로운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까지 할 수 있다.

그걸 목표로 보면 될까?
최근 몇 년 동안의 고민이, 이제 결과물로 나오기 시작한 거다. 그중 하나가 나들길, T라인 컬렉션, 이노웨이브 등이다.
미래를 위한 우리 회사의 비전이랄까?

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들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한다는 건 에너자이저이다. 생활에서 무엇보다 신선한 에너지가 될 테니까.

목표가 생기고 목표에 대한 동력이 되니까?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을 누군가 즐겨 쓸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대단히 환상적인 일이다.
디자이너로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항상 소비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관찰하니까. 직업병처럼 사람을 볼 때 먼저 눈길이 가는 습관 같은 게 있을까?
마주 앉은 사람, 지나가는 사람, 의도치 않게 누군가로부터 영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없었던 일을 만들어낼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통해 뭘 만나거나, 영감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그건 항상 미래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더욱 호기심이 나고, 설레는 거지.

그럼 요즘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나?
이거 어떡하지? 거짓말할 수도 없고. 안 보이는데? 뭐, 앞으로는 보이겠지. 하하.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진혁
STYLIST: 문승희
HAIR: 김나영
MAKE-UP: 석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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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진혁
Stylist 문승희
Hair 김나영
Make-up 석민희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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