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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레터 10월호

벌써 일 년

이번 달에도 역시 바흐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UpdatedOn October 01, 2013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 박지호







이번 달에도 역시 바흐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제목만 덩그러니 달아놓은 편집장의 글. 새하얗게 발열하는 모니터 화면 위에 까만색 커서만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이즈음은 편집장에게는 참으로 고독한 시간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원고를 모두 탈고한 에디터들은 대지를 기다리며 구석에 놓인(편집장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에 살포시 자리 잡은) 캠핑 의자에 기대 조용히 단잠을 청하거나, 지금 막 내려받은 재패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플레이하느라 여념이 없고, 아니면 자정을 막 넘긴 이 시간까지 대로 옆 어딘가에 차를 주차시킨 채 꾸벅 졸며 기다리고 있을 ‘오빠’를 위해 화장을 고친다(빨리 보내달라고 속으로 투덜대는 소리가 복화술처럼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미안하다 태경아. 생일에도 마감과 야근을 해야 하는 게 에디터의 숙명인 것을. 해피 버스데이).

지난 며칠간, 대략 원고지 수천 장이 넘는 기사와 수백 장이 넘는 화보 비주얼을 쉴 새 없이 컨펌하느라 반쯤 혼미해진 정신을 간신히 가다듬은 채 아이폰을 꺼내 ‘Classsical’ 앱을 구동하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차례로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는다. 오늘은 ‘미사 B’까지는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욕조에 몸을 푹 담근 채 듣는, 만 한 음악은 세상에 또 없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황홀한 표정으로 천상의 은혜를 갈구하는 모습은 자칫 ‘미친 X’처럼 보일 수 있어서…). 그러고 보니 벌써 일 년. 편집장이라는, 지극히 흥미롭지만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직위를 맡아 정신없이 내달려왔던 지난 시간들 동안 바흐가 없었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물론 때론 모차르트의 영롱하면서도 음탕한 피아노 협주곡에 끌릴 때가 있고, 라흐마니노프의 서글픈 웅장함이 짙게 내리 깔린 피아노곡이나 쇼스타코비치의 지성적 비극미가 올곧게 발산되는 교향곡을 찾게 될 때도 있지만 결국 언제나 위급 상황(원고가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마비되거나, 심적으로 깊이 디프레스됐거나 등등) 때 찾게 되는 건 바흐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이 지극히 취향적인 코드를 담뿍 담아 존경의 상찬을 바치는 그 바흐와는 거리가 좀 있다. 또한 영화 <설국열차>에서 봉준호 감독이 꼬리칸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평온하게 유지되고 있는 앞쪽 칸의 평화로운 풍광을 그릴 때 클리셰로 사용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정조와도 차이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하루키가 소설 <1Q84>에서 ‘평균율 클라비어’를 끊임없이 반복 묘사하며 암시했듯, 12음계를 모두 사용한 완벽한 ‘수학적인’ 음률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저절로 얻게 되는 균형감이나 안정감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 탓일 것이다. 아니, 내 비록 종교와는 거리가 멀지만 (평론가들에게 음악인이 아니라 ‘작업인’이라는 위트 섞인 찬사를 듣기도 했던) 바흐에게 있어 음악이란,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완성하기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정갈한 자세로 앉아 지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음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음률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저절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파블로 카잘스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의 한 고서점에서 거의 잊혀져가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빛바랜 악보와 우연히 조우한 뒤 12년을 매일같이 연습한 끝에 역사상 가장 짜릿한 데뷔곡으로 파란을 일으켰던 그 센세이션. ‘예술가이긴 하지만 또한 육체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멘트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습했던 그 시퍼런 결기가 단조롭게 연주되는 첼로 독주 안에 무심하게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지난 일 년간 홍수처럼 쏟아지는 업무의 틈바구니에서 미세하게나마 뇌리 속에 새길 수 있었던 몇 가지 디테일들은 거의 바흐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려나?

To be continued…

P.S. 10월호를 서점에서 막 집어 든 당신, 표지 비주얼이 좋든 싫든 간에 입안에서 저절로 놀라운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맞다. <아레나>는 과감하게 10월호의 콘셉트를 ‘아이돌’로 정했다. ‘소녀 팬들의 우상’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성지 최초로 지금 가장 ‘핫’한 남자 아이돌을 표지로 끌어들여 남성성이 물씬 풍기는 아트워크를 진행했으며, 아이돌에게 금기시된 모든 것을 연상케 하는 독한 코드를 집어넣은 길티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심리학자와 영화감독과 음악 평론가에게 각각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즉 빛과 그림자를 촘촘하게 분석한 크리틱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4년 전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과 빅뱅의 역사적인 조우의 순간을 표지에 담아내며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처음으로 주목했던 우리는, ‘아이돌’이라는 현상이 이제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한류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니 하는 유의 수준 낮은 논의 말고 말이다).
그렇다. 지금 한국 사회는 (거칠게 보면 아이돌의 원조라 볼 수도 있을) 비틀스가 아티스트로 거듭나며 지금의 ‘브리티시 록’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던 영국의 음악사적 의미에 버금가는 중요한 시기를 아이돌과 함께 관통하고 있다. 훗날 한국의 아이돌이 긍정적인 토대였을지, 아니면 부정의 아이콘으로 전락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민국 건국 이래 신중현과 홍대 앞 인디 신을 제외하고 이처럼 음악적 맥락에서 활발한 사회적 논의와 재생산,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수행된 국면이 또 있을까 싶다.
당신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아이돌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당장 추석 기간에 체육대회, 추석맞이 노래자랑 등 온갖 프로그램을 휩쓸 수백 명의 아이돌 군단을 떠올려보라). 이 흥미로운 문화적 코드를 활용한 보다 더 창의적인 기사와 아트워크를 <아레나>는 지속적으로 수행해나갈 것을 약속한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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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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