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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과 성북동을 걸었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기대보다 대단하다. 영화 속 캐릭터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김남길을 만났다.

On July 21, 2015

 


배우 김남길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그렇다. 영화 속에서 만나는 김남길의 모습은 누군가를 애절하게 사랑하는 로맨틱 가이가 되었다가, 자신을 내려놓은 듯한 코믹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서늘한 눈빛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변신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2013년부터 팬들과 함께 나눔 활동을 전개하다 올해 초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 ‘길스토리’를 설립한 것이다. 몇 해 동안 언론에는 일절 말하지 않고 천천히 준비해온 일이다. 그가 만든 소셜 플랫폼에선 전 세계 팬들이 함께 나눔을 주제로 소통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한국 문화와 정서를 알리는 ‘길을 읽어주는 남자’ 캠페인을 시작했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김남길은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나눔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한 건 언제부터예요?
솔직히 예전에는 ‘나눔’이라는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가족이나 지인들도 행복하지 않고 힘든데 남을 도울 수는 없지 않나 하고 생각했죠. 그러다 우연히 2010년 1월에 한 방송사와 함께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복구 봉사활동을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절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내는 이재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했어요. 돕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일시적인 봉사활동은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만 남길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야 이곳에 잠시 머물다 돌아가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계속 고통 속에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길스토리’라는 글로벌 소셜 플랫폼이에요. 전 세계 팬들과 나눔을 주제로 한 소통의 창구를 마련한 거죠.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일이에요.

 


공익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특별히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알리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도 울고 있는 아이를 카메라에 담는 취재진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거든요.촬영보다 아이들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갈등하는 저를 보던 활동가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남길씨의 진심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면, 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잖아요. 지금은 집 한 채를 지어준 것뿐인데 이것이 열 채가 되고, 백 채로 불어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이후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나고 제가 촬영했던 프로그램을 통해 기금이 마련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배우로서의 영향력을 좋은 일에 쓸 수 있겠다’는걸요. ‘길스토리’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은 이유도 진심을 다해 하는 일은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알려지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알음알음으로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였는데 점점 규모가 커지다 보니 공신력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진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당시에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 팬 한 분이 길스토리에 도와달라는 글을 올리셨어요. 한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각국 팬들이 함께 힘을 보태자고 나섰죠. 다행히 필리핀 현지 구호단체와 연결되어 도움을 줄 방법은 찾았고, 한 클라우드 펀딩 기업의 도움으로 전 세계에서 후원금을 받아 현지 피해 지역의 3백 가정의 집을 복구해줄 수 있었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남을 돕는 데에도 시스템과 공신력이 있어야 하겠구나 싶어 NGO를 설립할 준비를 시작했어요. 나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이 움직일 때 더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렵지만 모두에게 유익한 방법을 택한 거죠.

함께하는 분들이 계셨나요?
인도네시아 봉사활동에 함께 다녀온 사진작가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세 사람이 시작했어요. 세 사람이 여섯이 되고, 여섯이 열둘이 되면서 자생적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고, 현재는 1백 명이 넘는 프로보노(자신의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전문가.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가 함께하고 계세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길스토리의 프로보노로 참여해달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어요.(웃음) 이제는 먼저 참여하겠다고 선뜻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길스토리’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거죠.

 


‘길스토리’ 프로보노로 참여하면 특별한 혜택이 있나요?
모든 분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계세요. 상업예술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재능이 상업적인 것으로만 평가받는 것에 한계를 느껴 공익 활동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굳이 누구를 돕는다는 거창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NGO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하는 일에 더 자부심을 느끼는 거죠. 저 역시 그렇고요. 좋은 인연을 만나서 저 역시 발전하고 성숙해가는 것을 느껴요.

NGO를 만들고 처음 시작한 캠페인이 ‘길이야기: 길을 읽어주는 남자’라고 하던데, 이 캠페인은 무엇을 하는 건가요?
‘길이야기 캠페인’은 한국의 길과 그 길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이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첫 번째로 성북동을 택했죠. 성북동의 문화, 역사, 인문학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가이드와 가이드 필름을 만들었어요. 저는 제작 총감독이자, 출연과 내레이션을 맡았죠.

어떤 분은 “관광 캠페인이냐, 지역 홍보를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곳들이 상업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하지만 길스토리는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과연 지역의 상업적인 발전만이 우리에게 존재 가치를 주는지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죠.

 


왜 하필 ‘길’을 주제로 정했어요?
‘길’은 우리의 역사, 인생, 감성, 사람, 삶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에요. 어떤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죠. 사람과 사회가 소통하고, 관계 맺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공간도 바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곳이죠.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쁘지는 않았나요?
지금도 영화 <판도라> 촬영 때문에 거의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요.(웃음) 길이야기 캠페인은 작년 초부터 준비한 건데, 전체 기획회의부터 대상 지역 선정, 현장 답사, 제작팀 헌팅까지 모두 함께 움직였어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제가 제 살길만 찾으면 되나요?

제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 캠페인을 만들기까지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길을 찾고 조사하는 기간만 6개월이 걸렸고,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만 3~4개월은 걸린 것 같아요. 특히 촬영 마감이 영화 촬영 및 개봉일과 딱 맞물린 거예요.

어렵게 딱 하루 시간을 냈는데, 그날 하필 비가 온다는 거에요. 촬영을 접어야 하나 수백 번을 생각했죠. 직전날 밤까지 영화 촬영을 하다가 오전 10시에 성북동에서 스태프들을 만났는데,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구름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지더라고요. ‘이 캠페인 잘되겠구나’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쁘지는 않았나요?
지금도 영화 <판도라> 촬영 때문에 거의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요.(웃음) 길이야기 캠페인은 작년 초부터 준비한 건데, 전체 기획회의부터 대상 지역 선정, 현장 답사, 제작팀 헌팅까지 모두 함께 움직였어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인데 제가 제 살길만 찾으면 되나요?

제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 캠페인을 만들기까지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길을 찾고 조사하는 기간만 6개월이 걸렸고,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만 3~4개월은 걸린 것 같아요. 특히 촬영 마감이 영화 촬영 및 개봉일과 딱 맞물린 거예요.

어렵게 딱 하루 시간을 냈는데, 그날 하필 비가 온다는 거에요. 촬영을 접어야 하나 수백 번을 생각했죠. 직전날 밤까지 영화 촬영을 하다가 오전 10시에 성북동에서 스태프들을 만났는데,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구름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지더라고요. ‘이 캠페인 잘되겠구나’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어떤 길이 가장 좋던가요?
‘길상사’의 길이오. 마치 도심 속의 쉼터 같았어요. 천천히 길을 걸으니 눈을 감고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느림의 미학’을 길상사 길을 걸으며 깨달았어요. 북정마을 골목길도 좋아요. 속도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사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이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라고 얘기해주는 거 같거든요.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길도 생각나고, 동네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웃을 수도 있고요. ‘사람 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길스토리 캠페인을 전개하며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처음엔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저 자신을 돕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엔 늘 저 자신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요.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려고 하고,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무작정 행동만 앞세우기보다 제 주변부터 보듬으려고요. 나중에는 행복이 차고 넘쳐 누구와도 나누고 싶은 진심들이 모이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 캠페인을 보고 무엇을 얻었으면 하나요?
제가 길을 읽어드릴게요. 편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제가 그랬던 것처럼 도시 생활의 빠른 속도감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들어도 좋고, 눈을 감고 들으면서 저와 함께 걷는 상상을 해도 좋아요. 당장 떠날 수 없을지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김남길은 그렇게 누구도 선뜻 가지 않았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김남길. 그와 함께 걷고 싶은 오늘이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김형석(에보니앤아이보리)
2015년 07월호

2015년 07월호

취재
정희순 기자
사진
김형석(에보니앤아이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