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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말하는 갱년기장애 다스리는 법

내 나이 쉰 살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다시 찾아왔다. 중년의 사춘기, 갱년기장애에 대해 윤병구 교수가 말한다.

On March 10, 2015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갱년기. 사람마다 증상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덥고, 땀이 나는 통에 잠도 못 잔다는 주부들이 한 집 걸러 한 집에 있다. 주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토크쇼 스타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다루는 주제이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윤병구 교수는 학자들이 갱년기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쭉 한길만 걸어왔다.

“보통 폐경이 되면 갱년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두 가지가 상당히 연관은 있지만 반드시 폐경 이후 갱년기가 시작된다고 볼 수는 없어요. 폐경 전후로 시작된다고 보는 게 맞죠. 한 번 겪고 난 뒤에 다시 오는 경우도 있고, 40대 초반에 겪을 수도 있어요. 폐경 후에도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내는 이도 많아요. 이렇게 각각 다른 양상으로 오는 게 갱년기예요.”

갱년기는 난소의 기능이 약해져 여성호르몬 분비가 줄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이 발현되는 시기를 말한다. 여성은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고 임신 능력이 정지되는데 그것을 폐경이라고 한다. 여성은 살면서 세 번의 성징이 나타난다. 태아일 때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첫 번째 성징이 나타나고, 청소년기에 생물학적인 성별이 특화되는 2차 성징을 맞는다. 그리고 성호르몬의 불균형을 겪게 되는 3차 성징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갱년기인 것이다. 갱년기는 ‘중년의 사춘기’로도 불리는데 실제로 증상들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신체적으로는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얼굴과 목 주변이 달아오르면서 붉어진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덥다가도 추운 오한, 땀이 많이 나는 발한, 잠이 쉬이 들지 않는 불면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내장지방이 증가하면서 복부비만이 나타나고 질건조증이나 위축성 질염과 같은 비뇨기 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방광염과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 치매까지 찾아올 수 있으니 주부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갱년기 연구의 목적과 의의가 여기에 있습니다. 갱년기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며 각 증상이 정확하게 어떤 기전으로 갱년기 증상들이 발생하는 것인지는 아직 연구 중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여성호르몬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갱년기는 호르몬과 함께 연구되고 있습니다. 중년 여성 중에 기분이 우울하고 여기저기 쑤시는 느낌이 드는데 병원에서는 특별한 질환이 없다고 할 때는 호르몬 변화를 진단해볼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호르몬이 없어져 생기는 질병이니 그걸 낫게 하는 열쇠도 호르몬에 있다. 실제로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호르몬제가 일으키는 각종 부작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치료를 주저하는 여성이 많다. 여성호르몬제가 유방암을 일으킨다거나 몸에 좋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윤 교수는 호르몬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오히려 병을 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성호르몬이 유방암을 일으킨다는 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여성 건강 계획(WHI)의 일부 연구가 완료되기 전 중단되면서 마치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모두 유방암에 걸리는 것처럼 알려졌죠.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입니다.”


"여성호르몬을 꾸준히 사용했던 70대 환자가 있어요. 그분이 며칠 전에 저를 찾아와서는 아이 돌보는 도우미를 하게 됐다고 자랑하시더군요. 친구들은 요양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은 이렇게 건강하다고 하시면서요. 여성호르몬의 효과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죠"


지난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약 27,500명의 폐경 여성들을 대상으로 호르몬요법에 따른 유방암의 위험을 밝히기 위한 8.5년 간 대규모 임상시험을 실시한 바 있다. 연구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제1그룹은 자궁이 있는 폐경 여성 16,608명, 제2그룹은 자궁이 없는 폐경 여성 10,892명이 참여했다. 자궁이 있는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단독 투여하면 자궁내막증식증이 생기기 때문에 1그룹에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과 프로제스토겐(황체 호르몬제, 월경을 조절하는 스테로이드 약제)을 섞어 투여했고, 2그룹에는 에스트로겐만 단독 투여했다. 그 후 5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1그룹 여성들은 유방암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때문에 1그룹은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했다. 이 사실이 중간에 밝혀지면서 호르몬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이다.

2그룹 또한 유방암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참가자들이 이탈했고 결국 연구는 결과를 보지 못한 채 7년 여만에 조기 종결됐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들에 대한 추적 관찰을 계속했고 그 결과는 2011년 4월 미국 의학협회지에 발표되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1그룹과 달리 2그룹에서는 에스트로겐 단독 치료가 유방암의 위험성을 오히려 낮춘다는 것이었다. 1그룹 연구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들이 치료를 받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의 상대적 위험성이 25%가량 높았지만, 2그룹 연구에서는 상대적 위험성이 23%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1그룹의 유방암 위험성이 25%가량 높다 해도 이는 인구 1만 명당 8명꼴로 아주 미미한 수치일 뿐이다. 따라서 윤 교수는 호르몬 치료로 인한 유방암의 위험성은 크게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궁이 없는 여성들이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았을 때 유방암 위험성이 오히려 줄었어요. 또한 최근 연구에 의하면 프로게스토겐의 유방암 예방 효과가 약마다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자궁이 있는 여성들도 에스트로겐과 함께 프로게스토겐을 잘 선택하여 투여하면 유방암 위험성은 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구나 이 결과는 미국 여성 대상이었고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유방암 발생률이 1/3 정도 더 낮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호르몬 치료는 잘만 하면 여성들에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요. 최근 급격하게 늘고 있는 대장암 발생을 줄이고 각종 암에 의한 사망률을 예방하거든요. 일부 호르몬 약은 분명 유방암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 효과가 너무 미미해서 넓게 봤을 때 나쁜 점보다는 유익한 면이 훨씬 많습니다. 물론 자신의 상태에 따라 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토겐을 확실히 구분하여 복용해야 하는 것은 잊지 마십시오.”

여성호르몬은 이름처럼 완전하게 여성의 편이다. 피부 노화를 예방하고 체중 증가를 억제하며 체지방 감소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동안과 젊음에 열광하는 요즘 여성들에겐 꼭 필요한 존재다. 윤 교수에게 오랜 시간 호르몬 치료를 받아온 환자들의 경우도 마치 시간을 거스른 듯 회춘 효과를 보고 있다.


“여성호르몬을 꾸준히 사용했던 환자가 있어요. 지금은 70대 할머니죠. 근데 그분이 며칠 전에 저를 찾아와서는 아이 돌보는 도우미를 하게 됐다고 자랑하시더군요. 친구들은 요양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은 이렇게 건강하다고 하시면서요. 또 다른 환자는 자궁 적출 수술을 한 뒤로 꾸준히 여성호르몬을 복용했는데 폐경이 된 자신의 딸과 함께 외래 진료를 왔을 때 보니 두 사람이 같은 연배로 보이더군요. 여성호르몬의 효과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죠.”

윤 교수는 장기적인 호르몬 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환자는 지금 80대 중반이신데 피부를 보면 60대 같으시거든요. 특히 주변의 친구들은 거동조차 불편하신 분이 많은데 어머니는 정정하시죠. 여성호르몬 치료를 잘하면 골절, 당뇨, 심근경색, 우울증, 치매 등을 예방할 수 있어요. 노인 여성들의 사망 원인으로도 자주 오르내리는 질환이기 때문에 여성호르몬제의 득과 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처방받으면 지혜롭고 현명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노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윤 교수는 여성이라면 산부인과와 많이 친해질 것을 당부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자주 들러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산부인과를 아직까지도 아이를 낳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잖아요. 많은 노인 환자분들이 산부인과에 들어오시면서 민망해하세요. 반대로 청소년들도 산부인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서 처음 문을 두드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산부인과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정기적으로 방문해 검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병이 있어서 낫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를 측정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서 병을 예방하는 곳이니까요.”

한 광고에서 ‘갱년기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카피를 쓴 적이 있다. 실제로 갱년기 증상은 건강을 잘못 관리해서 오는 병이 아니다. 건강한 여성이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남성도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 하지만 여성에게만 그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적었을 땐 의학적 관심도 적었다. 그럼에도 윤 교수가 산부인과, 그것도 갱년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저희 집안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저까지 모두 산부인과 의사예요. 제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산부인과를 선택했을 땐 갱년기라는 의미 자체도 정립되지 않았죠. 갱년기에 대해서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가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자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명의라는 수식어가 붙었나 봐요. 감사하고 좋긴 하지만 그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 참 무겁게 느껴집니다. 저는 아직 환자들에게 많이 배우는 의사거든요.”

윤 교수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힘껏 달리고 있다. 아직 해야 할 공부가 많다. 호르몬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계속 들여다볼 수밖에 없단다.

“앞으로도 호르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주요 병들과의 상관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거든요. 학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의사들과 교류하고 아이디어도 얻고, 미처 진행하지 못했던 임상실험들도 진행해보고 싶어요. 특히 이제는 남성의 갱년기장애를 비롯해 남성호르몬에 대해서도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갱년기로 인한 우울감 때문에 따사로운 봄볕도 느끼지 못하는 당신. 가까운 산부인과로 달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만 더 내 안의 여성을 살핀다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이제껏 달려온 길보다 훨씬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21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

CREDIT INFO

취재
전유리
사진
이진하
2015년 03월호

2015년 03월호

취재
전유리
사진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