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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철 전문 이성복 원장

치아 건강 프로젝트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이제 오래 사는 삶만을 꿈꾸지 않는다.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치아 건강. 명의에게 그 해답을 들었다.

On December 12, 2014


플라톤이 말하길, 신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보철 전문 명의인 강동경희대 치과병원 이성복 원장은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하며 옷매무새 하나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의사로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태도나 얼굴,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첫인상이 좋아야 제가 하는 이야기가 환자들에게 신뢰감 있게 전달될 수 있어요. 환자를 접하고 치료 과정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데, 환자들이 마음을 열어야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실력을 갖췄다면 그다음 중요한 것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인상이에요.”

의사들의 수술복은 대체로 푸른 계열이다. 붉은색을 계속 보게 되는 수술 시 잔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강동경희대 치과병원엔 흔히 알고 있는 초록색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이곳의 유니폼은 붉은 포도주색이다.

“우리 치과병원 유니폼만 빨간색이에요. 병원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치과병원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병원의 수술복이나 유니폼은 모두 푸른색이지만 저희는 크게 피를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색의 유니폼을 입든 상관이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치과병원에서만 유일하게 보라색, 빨간색, 하늘색 등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유니폼을 입습니다. 물론 처음엔 어색해서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니폼이 바뀐 뒤로 우리만의 색을 찾은 것 같아서 힘도 나고 환자들도 오히려 좋아해요. 수익도 유니폼을 바꾸기 전보다 훨씬 올라갔습니다.”

진취적이고 역동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이 원장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장으로 취임한 지 이제 1년 남짓이지만 ‘작지만 알찬 병원’ ‘환자를 위한 병원’을 목표로 치과병원을 운영해왔다. 치과병원의 특성상 여성 의료진이 60~70%를 차지하는데 이를 위해 교육연구부장을 여성 교수로 임명했고, 의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환자의 치료 만족도 향상 프로세스’를 지휘하기도 했다. 또 해외 환자들을 위한 국제 진료 분야의 새로운 치료 프로토콜을 도입해 치료 환자의 범위를 넓혔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이지만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치료가 이뤄지는 현장에 약간의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절도 있는 매너가 중요해요. 병원 내에서, 특히 환자 치료 중에는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수련의와 간호사들에게도 정확한 답변과 어시스트를 요구하죠. 수련의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환자에게 최대한의 매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환자는 고통스럽고 진지한데 그 앞에서 웃으며 농담을 던지면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혹시 자신을 두고 농담을 하는 게 아닌지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살가운 언어와 행동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그의 애정 표현 방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환자와 대화할 때는 마주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진료를 진행할 때도 앞으로 어떤 걸 치료하겠다. 무엇을 하겠다는 상황 설명을 붙입니다. 환자가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 환자는 더욱 편안함을 느끼고 신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환자에게 신뢰를 주는 의사, 이게 의사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것을 가장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이 원장은 수련의들에겐 호랑이 교수님으로 불린다.

“제가 진료 현장에 나타나면 다들 긴장해요. 처음 온 수련의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혼을 내요. ‘네가 절도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실수할 수도 있다. 실수가 벌어진 장소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이죠. 엄격하고 무서운 교수라는 타이틀이 다소 억울하긴 하지만 진료 현장을 벗어나면 누구보다 부드러운 남자랍니다”(웃음).


치아 건강 왜 중요한가?
“‘퀄리티 오브 라이프(Quality of Life, 삶의 질)’. 인류의 삶의 질을 증진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역할입니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살리기 위해 일분일초를 다투는 다른 외과적인 질환과 달리 치아 치료는 진료 현장이 긴박하게 돌아가지 않는 편. 치과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물으니 이 원장은 한층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린다.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시대가 왔어요. 우리나라 국민은 매년 평균수명이 1년씩 늘고 있어요. 그런 가운데 ‘늘어난 수명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죠. 답은 건강이에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선 예방과 재활이 가장 중요하죠. 치과 치료의 의미를 엄밀히 말하면 재활입니다. 도저히 씹을 수 없는 상태의 치아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해주고, 손실된 치아를 채워 넣는 재활이죠.”

이 원장은 임플란트 시술과 심미보철 치료, 틀니보철 치료 등을 전문으로 한다. 지금은 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비용도 처음보다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치료비용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민만 하다가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제가 임플란트와 보철 전문이긴 해도, 치아 상태가 악화되기 전부터 좀 더 신경 쓰고 관리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종종 들어요. 임플란트와 보철을 한 번 하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긴 해도 결코 적은 돈이 드는 치료는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소화제와 두통약을 평생 사 먹는 값보다 적은데 갑자기 큰돈이 나가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소화제와 두통약 사 먹을 만한 돈으로도 치아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하기만 해도 큰돈 쓸 필요 없이 건강한 치아를 100세까지 유지할 수 있답니다.”

“요즘 환자들 중에는 처음 의사와 만난 날 바로 수술을 진행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그건 좀 무모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 환자의 재정 상태나 성격에 맞는 치료 방법이 여러 가지 있거든요.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기 때문에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치료를 진행하게 되고 나중에 환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예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치아 치료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니니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 의사를 만나보고 자신에게 맞는 비용과 치료 방법 등을 신중히 고려해서 진행하세요.”

이 원장은 관심사도, 취미생활도 다양하다. 빨간 유니폼도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으며, 치과병원 앞 작은 라운지의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까지 모두 까다롭게 골랐다. 아침엔 수영을 즐기고 틈틈이 책도 읽는 부지런쟁이다. 이런 지금의 모습이 의대생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시절에도 에너지가 넘쳤어요.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당시 치과대학의 커리큘럼이 지금처럼 빡빡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 동아리며, 운동 관련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었어요. 치과대학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다 할 정도로 각 학년에서 저를 알았지요. 학교 공부도 생각보다 운이 좋아 일본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요. 덕분에 남들처럼 공부만 하면서 버티는 것과는 달리 풍성한 경험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낼 수 있었죠.”


다방면으로 이렇게 끼가 넘치는 의사가 또 있을까? 아마도 이 원장의 끼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이화여대 불문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셨던 이 원장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덕분에 위로 네 명의 형제는 모두 인문학을 공부했다.

“아버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한국에서 최초로 번역하신 분이고 그걸 최초로 받아 적은 사람이 바로 저예요. 아버지는 불문학, 큰아버지는 영문학을 하셨죠. 우리 5형제도 저를 빼고는 다들 문과 쪽으로 갔어요. 근데 저만 어떻게 치과의사를 할 수 있었느냐 하면, 아버지께서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되던 해에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막내였는데 제 진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원장도 처음부터 치과대학에 입학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가세가 급격히 기운 영향이 컸다.

“처음 치과대학을 지원했을 때 어머님이 제게 물으셨어요. 문과 집안에서 상의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치과대학을 지원했느냐고요. 전 그때 간단하게 대답했어요.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 평생 호강시켜드리고 싶다고. 그때 어머니는 한참 생각하신 뒤 세 가지를 당부하셨어요. 첫째는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그 일을 남들보다 정성 들여 해서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은 내가 좋아서 하는 그 일이 남에게 흥미도 끌고 많은 이로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전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어요. 다행히 치과대학의 공부가 제게 잘 맞기도 했고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저는 학생들에게 누누이 이 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치과의사로서 남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공헌의 철학을 실천하고 지킬 때’라는 것을요. 도덕심과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선생님으로 불려선 안 됩니다.”

남들에게 이로움을 줘야 한다는 공헌의 철학을 가슴에 품은 채 치과의사로서 사명을 갖고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고행이었다. 그러나 힘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들 때마다 이끌어준 은사님 덕분이었다.

“아버지처럼 외국 물 좀 먹어보고 싶었는데 학생 시절엔 여러 가지 여건상 꿈도 꾸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 멘토이던 최부병 교수님께서 일본으로 자주 연결을 해주셨죠. 덕분에 일본에도 가게 됐고, 일본에서 했던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나중엔 미국으로도 가게 되었습니다. 은사님은 차갑고 칼 같은 분이셔서 저도 처음에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많이 혼나기도 했죠. 하지만 은근하게 잘 챙겨주신 분이었어요. 제가 없는 데서는 제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을 옮겼을 때도, 병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도 은사님은 제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갑자기 막히는 상황이 생기면 은사님이 해주셨던 애정 어린 조언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아마 그분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저는 없었을 거예요.”

오늘도 이 원장의 진료 리스트는 많은 환자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가장 매너 있는, 의사라는 이름에 가장 충실한 의사 이성복 원장은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명의는 많을 거예요. 제가 대외 활동을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남의 눈에 우연찮게 띄어 명의라는 이름을 달게 됐지만 어딘가에서 저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명의라는 명찰을 단 이상 명의처럼 살아야겠습니다.”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9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

CREDIT INFO

취재
전유리
사진
신빛
2014년 12월호

2014년 12월호

취재
전유리
사진
신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