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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아내’ 윤원희의 일상다반사 마지막 회

엄마의 도전

On September 04, 2014


저는 학창 시절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이었습니다. 사과를 그리라면 다 새빨갛게 칠하고, 유리컵을 그리라면 우왕좌왕 ‘투명한데 어떻게 그려?’라고 하는 예술적 영혼이 부족한 아이였더랬죠. 제 눈엔 명암이고 뭐고 사과는 다 빨개 보였고, 유리컵은 ‘투명한데 무슨 색을 더하란 말이지?’라며 의아해했어요. 수채화를 그릴 때는 계속 덧칠해서 항상 스케치북이 찢어지곤 했습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일화는, 고교 시절 미술 숙제를 완성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의논드리러 갔더니, “너의 그림은 완성되나 완성되지 않으나 똑같으니까 그냥 내”라고 말씀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림 그리기’ 영역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로 지정해두고 근처에도 안 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큰아이를 발도르프 대안학교에 보내다 보니 여름방학에 엄마용 숙제가 생긴 것입니다. 2학기용 <읽기> 책을 엄마가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큰아이를 발도르프 대안학교에 보내다 보니 여름방학에 엄마용 숙제가 생긴 것입니다. 2학기용 <읽기> 책을 엄마가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제게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개학날이 다가오면서 불안 증세가 오고, 결국 저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색연필을 이용해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시와 글 15편을 엄마가 직접 쓰고, 각 편마다 내용에 맞는 삽화를 그려야 하는 대작업이죠. 제게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개학날이 다가오면서 불안 증세가 오고, 결국 저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도전했습니다.

먼저 인터넷을 뒤져 만화가들의 삽화를 검색했습니다. 실사 사진도 검색해 열심히 따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대가 참 많이 변하긴 했나 봅니다. 제가 미술 앞에서 좌절하던 학창 시절엔 인터넷이 없었고, 그릴 대상을 찍은 사진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의 그림이나 팁을 쉽게 접하지 못해 더욱 헤맸지요. 그런데 지금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론과 샘플을 보면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택할 수 있고, 그리는 도구가 색연필이다 보니 지우개로 지울 수도 있고, 색을 계속 덧칠해도 종이 질이 좋아서인지 찢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실천한 팁 중 일등 공신은, 사물의 경계는 검은색이 아니라는 팁이에요. 어릴 땐 항상 뚜렷한 검정 선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것 같은데 말이죠. ‘개혁적인’ 변화를 경험하면서 제 그림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상태로 완성됐습니다. 남편은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시어른들도 아주 의외라는 반응이셨어요. 큰아이를 위한 숙제였는데 엄마인 제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이번 방학 숙제가 아니었다면 제 평생의 콤플렉스 영역인 ‘그림 그리기’ 따위는 늙어서 요양원에 가서나 해볼 수 있는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기쁨’이 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편도 어릴 때 피아노 선생님이 “이 아이는 음악엔 소질이 없다”라고 했다나요? 하하.

어쩌면 독자 여러분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에서 기쁨을 찾는 행운을 경험하게 될지도 몰라요. 건강을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도전을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윤원희씨는…
가수 신해철의 아내이자 지유(9세)·동원(7세)의 엄마. 재일교포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일본 지점에서 근무했다. 결혼 13년 차 슈퍼맘으로 강남 생활을 접고 현재는 경기도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사진
이진하,윤원희
2014년 10월호

2014년 10월호

기획
하은정
사진
이진하,윤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