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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결혼생활 31년 풀 고백

‘나훈아 아내’ 정수경씨 단독 인터뷰

이혼 소송으로 관심을 모은 ‘트로트 황제’ 나훈아의 부인 정수경씨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7년 만에 남편과 얼굴을 마주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나훈아와의 31년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On June 02, 2014


1960~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으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기억되고 있는 나훈아(66세, 본명 최홍기). 하지만 최근 나훈아는 가수 활동보다 사생활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나훈아를 상대로 부인 정수경(52세)씨가 낸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상고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나훈아와 정씨는 1983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정씨는 “나훈아가 혼인 기간 중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행위를 저지르고 연락을 끊었다. 부양비와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나훈아가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부정한 행위를 했다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를 기각했다. 이에 정씨는 불복하고 항소했으나 대법원은 “나훈아가 부정행위를 저질렀거나 혼인 관계가 파탄 나 혼인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상고 기각을 판시했다. 그렇게 나훈아와 정씨는 대법원의 결정으로 다시 부부가 됐다. 7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연락까지 끊긴 채 지냈던 두 사람은 대법원을 통해 법적으로 부부임이 다시 분명해진 것이다.

정수경씨는 1976년 음반 <여군 일등병>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1978년에는 <이름 모를 그 사람>을 발매했으나 나훈아와 결혼하면서 활동을 접었다. 두 사람은 1982년부터 교제를 시작해 이듬해 결혼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정씨는 나훈아의 집을 찾아가 7년여 만에 재회했다. 그렇지만 20여 분간의 짧은 만남은 오히려 더 큰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다시 한국을 떠나 보스턴으로 돌아가려는 정씨를 어렵게 만나 인터뷰했다.


우선 나훈아씨와의 결혼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처음 만났어요. 연애 시절에는 남편이 내게 정말 잘했죠. 세간에는 남편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두 번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였어요.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된 것은 내가 처음이었죠. 또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도 내가 처음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첫 남편이자 아내로 부부가 됐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 기사를 보면 결혼 조건으로 나훈아씨에게 가수 은퇴를 요구했다고 하던데요.
사실이에요. 내가 남편에게 결혼 조건으로 가수 활동을 그만두라고 부탁했죠. 나 역시 가수로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가수 활동을 계속하면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당시 남편도 분명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단란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다만 연예계에 계속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변질되고 잊게 되기 싶다고 생각해 은퇴를 부탁했어요. 연애 시절에 그런 부탁을 했고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았죠.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신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내게 잘했어요. 나를 위해 만든 노래라며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던 로맨틱한 남편이었어요. ‘사랑’이라는 노래가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에요. 부부니까 종종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싸워본 적은 없어요. 남편이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 화를 내면 내가 그냥 참고 받아주곤 했죠.

두 아이에게는 어떤 아빠였나요?
결혼한 뒤 한국에서 온 가족이 함께 살던 1993년까지는 정말 좋은 아빠였어요. 특히 둘째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 딸이 어렸을 때는 남편이 머리를 빗겨주고 매니큐어도 발라줄 정도였으니까요. 매니큐어를 바른 뒤 빨리 마르라고 미니 선풍기로 딸의 손에 바람을 쐬어주기도 했어요. 또 남편은 자기 배 위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할 정도였죠.

1993년 정수경씨가 두 아이와 함께 하와이로 떠나면서 나훈아씨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가 되었는데요. 왜 하와이로 떠나게 되었나요?
기본적으로는 두 아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나도 함께 떠난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이는 절반의 이유일 뿐이죠. 그즈음 이미 부부 관계는 조금씩 비틀어지기 시작한 상태였어요. 내가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살면 힘들겠다 싶었죠.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심정이 결혼 전 남편에게 은퇴를 부탁할 때와 비슷했어요.

당시 남편 역시 외국으로 나가 기반을 닦고 거기서 살고 싶다는 얘길 종종 했어요. 난 그 말을 믿었죠. 내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계기로 남편도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오지 않을까, 그래서 진정한 새 출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세간에는 남편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두 번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였어요.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된 것은 내가 처음이었죠. 또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도 내가 처음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첫 남편이자 아내로 부부가 됐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당시엔 이혼을 생각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결혼 당시 아버지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대중의 시선 역시 ‘둘이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나’였죠. 그래서 그 누구보다 더 잘 살 거라고 결심했어요. 아니, 잘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내가 더 기다리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죠.

하와이에서 지낸 13년 동안은 어떻게 지냈나요?
우리가 하와이에 온 뒤에는 정말 잘 지냈어요. 남편 역시 기러기 아빠지만 한 달에 한 번은 하와이로 왔고 여름방학에는 내가 두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갔어요. 겨울방학이면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남편이 생활비를 부쳐주거나 하와이에 올 때 직접 가져다주곤 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게 지냈죠.

보스턴으로 이사를 결정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남편이 그러길 원했어요. 아무래도 하와이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자주 와야 했는데 나와 딸이 보스턴으로 이사 가면 우리에게 오는 횟수를 줄여도 될 거라고 여긴 것 같아요. 같은 미국이지만 하와이에 비해 보스턴은 한국에서 정말 많이 멀어요. 하와이야 8시간이면 올 수 있지만 보스턴은 18시간이나 걸리니까요. 서서히 우리에게 오는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잖아요.

사실 2004년 무렵부터 남편에게 이상한 낌새가 있긴 했어요. 아들이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닌 뒤 거기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자주 안 와도 주위에서 보는 눈도 줄어들 테고. 그렇지만 저는 하와이가 좋았어요.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도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나훈아씨의 요구로 보스턴으로 가게 된 것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내가 딸이랑 단둘이 하와이에서 지내는 것을 아들이 계속 걱정했어요. 아무래도 남편과 떨어져 미국에서 두 아이와 지내다 보니 아들과 많이 각별했죠. 내게 아들은 때론 남편 같고, 때론 친구 같은 존재예요. 정말 서로에게 아무런 비밀이 없을 만큼 사소한 얘기까지 다하며 지내거든요. 그래서 결국 아들 곁으로 가게 된 거예요.

보스턴으로 떠난 뒤 실제로 나훈아씨의 방문이 줄어들었나요?
2006년 여름에 보스턴으로 이사했는데 남편은 네 번 온 뒤 발길을 끊었어요. 그렇게 7년 동안 얼굴을 못 보게 된 거죠.

구체적으로 이상한 낌새란 뭐죠?
2004년 무렵부터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노래를 그만하고 떠나고 싶다는 얘길 자주 했어요. 여자의 육감으로는 노래만 그만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과도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아니, 우리 가족으로부터 떠나려고 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마지막 만남은 언제였나요?
2006년 연말에 보스턴 집에 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여행을 떠나 쉬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 뒤 한 달 정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취하려 했더니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연락처가 끊겨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1년 정도 우리에게 오지 않겠구나 여겼어요. 1년이 지난 뒤에는 2~3년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7년이 됐죠.

2007년 거듭되는 소문으로 인해 가족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었죠. 미국에 있어도 인터넷을 통해 소식은 다 접할 수 있고 아이들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그런 얘길 다 들었으니까요.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긴 만큼 어느 소문은 말도 안 되려니 했고, 또 어느 소문은 정말 사실일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야쿠자가 등장하는 ‘신체 절단설’은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우리하고도 연락이 끊긴 터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요.

나훈아가 8집 앨범을 내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결혼 초 나훈아·정수경 부부의 단란했던 한 때.


2008년 루머 해명 기자회견을 본 심정은 무척이나 착잡했어요.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기자회견을 다 볼 텐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나 개인적으로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애들 보기가 민망했어요. 아이들도 상처를 받았죠.
딸이 고3 때인데 몰래 숨어서 울었어요.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2008년 나훈아씨의 루머 해명 기자회견을 본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착잡했죠.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기자회견을 다 볼 텐데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인터뷰하는 건 좋지만 수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나이와 입지를 생각해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죠. 나 개인적으로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애들 보기가 민망했어요. 아이들도 상처를 받았죠. 딸이 고3 때인데 몰래 숨어서 울었어요.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미국에서 이혼이 이뤄진 과정이 궁금합니다.
2010년에 미국에서 이혼이 이뤄졌어요. 2006년 말 남편이 떠난 뒤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 등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남편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있는 것이라곤 달랑 집뿐이었어요. 미국에선 이혼을 해서 싱글맘이 되면 학자금, 세금, 보험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들과 상의해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미국에선 일정 기간 이상 남편과 연락이 안 되는 등 ‘유기’가 인정되면 쉽게 이혼이 돼요. 그래서 미국에서 이혼 소송을 시작한 뒤 6개월여 만에 이혼이 이뤄졌어요. 그 덕분에 딸 대학 등록금은 혜택을 받았지요.

이번에 한국을 찾아 방송 인터뷰 등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민 많이 했어요. 한국에 와서도 굉장히 망설였어요. 워낙에 남편이 유명한 사람이고…. 그런데 남편이랑 연락이 안 된 게 7년이 넘었어요. 이렇게 안 보면서 호적상으로만 부부로 되어 있고,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있을 순 없지 않겠어요? 부인인데 남편이 어디 사는지, 무얼 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연락도 안 되고 만날 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한국에 오고 인터뷰도 했어요.

방송을 보니 나훈아씨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라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책임지겠다고도 했죠. 그럼 정수경씨가 귀국해서 재결합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7년 만에 어렵게 남편을 찾아가 만났어요. 그렇지만 단 20분 정도 만난 게 전부였죠. 당시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을 방송에서 일부 공개했는데 그때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다만 미국 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귀국하라는 것인데 그게 불가능해요.

미국에서의 이혼을 취소하고 다시 부부 관계를 회복하려면 본인이 직접 미국으로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하거든요. 그건 안 하겠다고 버티면서 나보고 미국에서 그 일을 정리하라는데 그건 말이 안 되죠. 말로는 본인이 다 책임질 테니 미국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라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제시하고 있잖아요. 결국 우리하고 다시 같이 살 생각이 없다는 얘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요?
곧 보스턴으로 돌아가요. 이젠 아이들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하와이에선 이웃들이 우리가 나훈아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았지만 보스턴에선 잘 몰라요. 그냥 싱글맘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죠. 그렇게 미국에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려고요.


‘뇌경색’ 나훈아, 건강 상태는?


<우먼센스>는 2012년 5월호를 통해 나훈아 부부의 이혼 소송을 특종 보도한데 이어, 같은 해 11월호에서는 나훈아가 뇌경색이 발병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당시 나훈아는 뇌경색 초기 증세를 보여 전문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2008년 이후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키우고 있었다.

항간에 티베트 등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나훈아는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을 통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건강하게 느껴졌다. 아내 정수경씨가 최근 나훈아와 만나 녹음한 음성 자료 속 나훈아는 자신의 의사를 똑똑한 발음으로 전달했다. 뇌경색 증상이 거의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은 듯 보였다.

가족의 입을 통해 나훈아의 근황도 전해졌다. 나훈아의 여동생은 오빠의 행방에 대해 “오늘 아침에 ‘세상 참 싫다’며 가방을 둘러메고 떠났다”면서 “오빠도 지금 상황에 대해 많이 가슴 아파하고 ‘이 책임을 어떻게 피하겠느냐’고 얘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나훈아의 40년 지기 친구인 남강일씨는 최근 나훈아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책 <불후의 광대 나훈아>를 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에는 자신의 팬클럽에도 한 장의 사진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비밀에 쌓인, 오로지 음악으로만 승부를 보고 싶어 했던 가수 나훈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다.

나훈아의 측근으로 유명한 남강일씨는 “현재 나훈아와 연락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몇 년 전부터 양평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모두 ‘카더라’일 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씨는 “나훈아가 세상에 대해 염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예술가적 기질을 빌려 잠적해 있는 상태인 것 같다”면서 “1970년대에도 긴 공백 후 화려한 컴백을 했던 나훈아인 만큼 이번 공백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컴백을 준비하기 위한 두 번째 여백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복귀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나훈아는 1966년 데뷔 이후 3천여 곡을 발표했다. 트로트 가수로는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로 ‘사랑’ ‘잡초’ ‘무시로’ ‘울긴 왜 울어’ 등 8백여 곡을 작사·작곡했고 히트시켰다. 토속적인 음색과 정열적인 무대 매너로 여고생부터 중년 팬까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며, 1970년대에는 한국 가요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우뚝 섰다.

따라서 그는 “내 공연을 보려면 직접 티켓을 사서 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노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당대 모든 가수들이 출연을 희망했던 삼성가 파티에 초청된 것을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만큼 여자관계도 화려했다. 나훈아는 정수경씨와 혼인하기 이전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있다.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첫 번째 이혼 직후 11세 연상인 배우 김지미와 전격 결혼을 선언해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나훈아는 1981년 가요계에 복귀를 선언하며 가수생활을 반대해온 김지미와 1982년 6월 결별하게 된다. 아내 정수경씨는 이들과의 결혼이 정식 혼인관계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1983년 4집 ‘하얀 새’로 인기를 회복한 나훈아는 1985년 14세 연하의 후배 가수 정수경씨와 영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까지 결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두 번의 결혼처럼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인다.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취재
신민섭·김포그니(<일요신문> 기자)
사진
<일요신문> 제공, 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 캡처
2014년 04월호

2014년 04월호

기획
장은성
취재
신민섭·김포그니(<일요신문> 기자)
사진
<일요신문> 제공, MBC <리얼스토리 눈>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