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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침마당> 떠나는 김재원 아나운서 뜻밖의 숨겨진 가족사 공개

매일 아침마다 다양한 휴먼스토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KBS <아침마당>. 지난 5년간 <아침마당>에서 사람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전하던 김재원 아나운서를 만났다. 그런데, 그의 인생도 드라마틱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On October 15, 2013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리처드 기어가 방송에 출연했는데, 평소 선망하던 스타를 만난 날이라 유난히 들떴던 것 같아요. 무사히 방송을 마치고, 리처드 기어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가 귓속말로 ‘당신의 배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신은 내가 만난 전 세계 MC 중 최고의 진행자다’ 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정말 짜릿했죠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환송회를 받은 행복한 아나운서
말을 잘하는 사람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이런 이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호감을 갖고 그 사람의 얘기를 경청하거나, 편안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KBS <아침마당>의 김재원 아나운서는 후자에 가까웠다. 우리네 사는 얘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가 돼주기도 했다. <사랑의 리퀘스트> <도전 지구탐험대> 등 KBS 간판 프로그램을 두루 거쳤지만 <아침마당>만큼 그 자신과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 프로그램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5년 동안 진행하던 <아침마당>에서 지난 4월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조용할 뻔한 그의 하차는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가득 메운 메시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침마당>의 시청자들이 그에게 최고의 환송회를 해준 셈이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저는 시청자들이 그냥 습관적으로 프로그램을 보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밥을 먹고, 가족과 얘기하듯 일상처럼요. 그런데 관찰하고 살피셨나 봐요.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말 한 마디 그냥 하지 않더라.’ 이런 얘기들은 절대 그냥 흘려 봐서는 나올 수 없는 응원의 말들이라 참 기분이 좋으면서도 울컥했어요. 저는 그저 배경처럼 자연스럽게 묻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신중하고 숙성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특히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태프들하고 환송회 하는 것도 두 달 뒤로 미뤘어요. 괜히 감정이 북받칠까 봐서요.(웃음)”
튀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다. 그래서 자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사람들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처럼 숙성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마당>을 하면서 그가 내내 되뇌던 말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매 회마다 원고가 40~50페이지 정도 됩니다. 작가들이 여러 차례 인터뷰하고 정리한 것이죠. 저는 그 대본을 받을 때마다 책을 읽는 기분이에요. 주인공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책’을 읽는 것이죠. 그리고 출연자가 나오면 책의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에요. 저는 그저 ‘책’을 읽고 궁금하던 것, 공감한 것을 말하기만 하면 돼요. 나머지 얘기는 주인공이 알아서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네요.(웃음)”
기억에 남는 출연자도 많다.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 조영찬씨는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복합 장애우다. 인터뷰를 할 때도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영찬씨와 교감했던 그날 방송은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프리허그’로 유명한 닉 부이치치씨를 만난 것도 잊지 못한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지만, 가슴으로 그와 포옹하면서 김재원 아나운서는 ‘말이 아니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을 절감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리처드 기어가 방송에 출연했는데, 평소 선망하던 스타를 만난 날이라 유난히 들떴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제 직업이 유독 더 좋아요.(웃음) 어쨌든 무사히 한 시간 동안 방송을 잘 마치고, 리처드 기어에게 인사를 하러 갔어요. 그런데 그가 갑자기 귓속말로 ‘당신의 배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신은 내가 만난 전 세계 MC 중 최고의 진행자다’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비록 입에 발린 칭찬일 수 있지만, 제게만 들리도록 그 말을 해주는데, 정말 그 순간만큼은 짜릿하더라고요. 이 일을 하는 동안은 그 말이 제게 평생 힘이 돼줄 것 같아요.”
매일 다짐하듯 생각을 다듬는 그는 최근 ‘말하는 법’에 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마음 말하기 연습>은 숙달된 아나운서의 스피칭 노하우를 담은 책이 아니다. 수십 개의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단락 하나마다 그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루아침에 아이디어 짜내듯 쓴 글이 아니란 의미다.
“평소 생각하는 것을 틈틈이 수첩에 적은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캐나다에서 3년 정도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할 기회가 많았죠. 일종의 자기 성찰 과정이면서 마음의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됐죠. 난 내가 다짐하고 생각한 대로 말하며 살고 있나, 어떤 얘기를 하며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됐고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려도 되는데 굳이 책을 낸 것은, 마음과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글이 겉절이처럼 신선한 것이라면, 저는 묵은지 같은 글이 아직은 더 좋네요.”
그렇다고 그와의 대화가 내내 조심스럽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일상의 대화로 돌아오니 누구나 하는 고민과 상처, 숨겨놓은 재치도 엿볼 수 있었다.

아들 그리고 아버지로 산다는 것
밖에서는 늘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에 열중하는 그도 사춘기 아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인가 보다.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 매일 보는 자식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요즘은 ‘후기 인상파’에 접어들어 ‘묵언 수행 중’이죠.(웃음) 늘 똑같은 표정에, 하루가 끝나면 ‘힘든 건 없었니?’ 정도의 안부를 묻는 게 거의 유일한 대화예요.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왜 저럴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생각을 바꿨어요. 그 시절 저를 떠올려보니, 말을 안 하는 대신 참 많은 생각과 공상을 했던 시기를 보낸 것 같아요. 입을 닫고 있어야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는 시기인 거죠. 그래서 억지로 아들의 마음을 열려고 하기보다는 ‘아빠와 엄마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다. 네가 말을 하면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사인만 보내는 거예요. 가끔 기분 좋으면 아빠와도 몇 마디 나누기도 해요. 하하.”
그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아들의 나라, 남편의 나라, 친구의 나라….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나라를 가게 된다. 그는 그중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가장 여행하기 힘든 곳이라고 말한다.
“그럴수록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담석증으로 오진해 수술을 하고 난 후에야 간암인 걸 알았죠. 그래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시 ‘아들의 인생’에서 어머니 없는 삶은 생각지 못한 상황이라 많이 당황하고 방황했죠. 아버지도 묵묵하셨던 편이라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어요. 그때는 아버지도 저도,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힘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제가 아버지의 나라에 와보니,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아들을 챙기고 바라봐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구나 깨달은 거죠. 제가 가장 안타깝고 후회되는 것은 그 뒤로도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거예요.”
그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 부자(父子)는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 그는 스물아홉, 미국 유학 중에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아내와 함께 귀국했다. 아버지는 병상에서 눈물로 아들을 맞이했다. 그 병실에서 KBS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아내가 직접 입사지원서를 받아온 것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입사 준비를 했다. 병원의 모든 사람이 그를 응원했다. 합격 소식이 전해지자, 아버지는 소리는 낼 수 없지만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94년에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그리고 6년 동안 누워 계셨죠. 아들이 나오는 TV를 보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어요. 아버지가 말씀을 못 하실 때가 돼서야 저는 아버지랑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비록 눈빛으로 나누는 대화였지만, 늘 서로 건강과 안부를 챙기고 정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떠나실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아버지와 얘기하고 마음을 표현할 걸 하는 후회는 있죠. 아마 어릴 적 그때처럼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아들은 조용히 스스로 영글어가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리더 역할을 도맡고, 제법 엉뚱한 구석이 있는 반면에 엄마 아빠도 깜짝 놀랄 만큼 품이 넓은 아이로 크고 있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들이지만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아빠, 엄마, 저를 믿고 끝까지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쑥스러워하며 진심을 전하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들을 보면,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이건 제 입으로 말하기 좀 쑥스러운데요.(웃음) 학원에 안 다니는 대신 학교에서 영화 제작반, 방송반 같은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학원에 보내려고 했더니 청소년 학대라며 안 가더군요.(웃음) 그리고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조건이 ‘일주일에 1만원씩 받는 용돈 6년 치를 한꺼번에 달라’는 것이었어요. 5백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을 어떻게 굴렸는지 혼자 7백만원까지 만들더라고요.”


중1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4년에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그리고 6년 동안 누워 계셨죠. 아들이 나오는 TV를 보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어요. 아버지가 말씀을 못 하실 때가 돼서야 저는 아버지랑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비록 눈빛으로 나누는 대화였지만…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가족이 캄보디아에 가족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본 아들이 자신이 모은 돈을 학교 짓는 데 보태라며 선뜻 쾌척하기도 했다고.
“아이가 학원에 안 가는 바람에 절약된 돈까지 보태서 1천만원을 학교 짓는 데 썼어요. 말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선뜻 내놓아서 정말 놀랐어요. 캄보디아에 사는 친구를 서울에 한 달 정도 초대한 적도 있어요. 홈스테이 형식으로 함께 생활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봉사라는 것이 무조건 베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너무 낯선 환경에 온 아이는 미처 우리의 배려와 호의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예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세 끼 내내 고기반찬을 주며 먹으라고 했으니, 그게 얼마나 큰 실수인가요. 서서히 적응할 시간을 줘야 했는데, 마음만 앞선 거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물론 아들과 아내도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짝꿍으로 만났으니, 벌써 알아온 세월만 34년이다.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아옹다옹하던 시절, 선생님이 빨간 글씨로 ‘짝꿍하고 친하게 지내세요’라고 적은 일기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대학은 달랐는데, 같은 교회에 다녔어요. 대학 다닐 때는 서로 소개팅도 해주겠다고 나설 정도로 ‘친한 친구’였죠. 그러다 비밀 연애를 시작했어요. 어릴 적부터 안 사이라 우리는 정말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요. 그래서 결혼하고도 크게 싸울 일이 없었죠. 여행이 취미라 함께 여행도 많이 다니고, 특히 휴직하고 캐나다에 연수 갔을 때도 아내가 큰 힘이 돼줬고요. 그때는 샌드위치가게, 스시집 등에서 아르바이트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친구처럼 그렇게 서로 등을 맞대고 산 게 벌써 20년이 다 됐네요.(웃음)”
매일 아침 걸어서 회사에 출근하는 그는, 한강 다리 위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고, 분을 삭이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거나 추억을 꺼내기도 한다.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그가 갑자기 부러워졌다. 그의 꿈은 앞으로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더 많이 가족과 사랑하는 것이다.
“예전에 프로그램 하나를 잘리고 혼자서 그리스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웃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마치 주인공이 실제로 내 옆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음 말하기 연습>이 시작이라면, <여행 말하기 연습> 같은 책을 써도 재미있겠네요. 아들도, 아내도, 일도 중요하지만, 저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어요. 인생을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이제야 그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사람의 인생을 책 한 권에 비유한 그의 말에 따르면, ‘김재원의 에세이’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앞으로 그가 써 내려갈 진솔하고 담담한 인생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아침마당>을 통해 진행자로서 최고의 찬사를 들은 김재원 아나운서. 그의 하차를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홈페이지 메시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CREDIT INFO

기획
김은향
사진
안호성, KBS 제공
2013년 06월호

2013년 06월호

기획
김은향
사진
안호성,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