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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FASHION, NO STREET

On October 26, 2012 0

지금 이 순간, 패션이 가장 판타스틱하게 펼쳐지는 곳은 유명한 모델이 걸어 나오는 캣워크도, 셀럽이 찍고 있는 화보 속도 아니다. 바로 당신들이 누비는 스트리트.



손가락으로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말고는 무엇도 들리지 않고 모니터 외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팽팽한 마감 한가운데, 한 장의 사진 덕분에 고요한 편집부가 시끌벅적해졌다. 2013 S/S 패션위크 때문에 뉴욕에 간 <나일론> 패션 에티터가 ‘스타일닷컴’ 메인 화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쇼의 피날레를 마치고 돌아서는 디자이너 모습도, 행사장 포토월 앞에 선 유명 셀럽도 아닌 내 옆자리 동료가 말이다. 그녀가 스타일닷컴에 입성한 건 우연히 찍힌 토미 톤의 스트리트 사진 덕분이다. 옅은 핑크색 지방시 셔츠에 브릭스톤의 커다란 검정 페도라를 쓴 채 당당하게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익숙하지만, 스타일닷컴을 통해선 본 그 모습을 볼 줄이야! 물론 그녀가 평소 알투자라와 아쉬시, 지방시와 앤 소피 백 같은 전위적이고 고스한 룩을 사랑하고,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스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전형적 패션피플이긴 하지만, 마감 때면 같이 야식을 먹고 원고를 쓰는 평범한 직장 동료일 뿐인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여배우나 슈퍼모델 같은 셀러브리티가 아닌 에디터와 바이어 블러거 같은 일반인의 룩에 관심을 갖게 됐다.

패션위크 기간이면 쇼의 런웨이와 리뷰만큼 포토그래퍼들이 찍은 쇼장 앞 스트리트 풍경이 여러 사이트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사토리얼리스트와 잭앤질부터 시작해 토미 톤과 남현범까지, 그들이 찍는 스트리트의 사람들은 디자이너 컬렉션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바버와 톰 브라운, 샤넬과 이자벨마랑, 질샌더와 프라다를 멋지게 트위스트한 룩을 차려입은 낯선 그들의 모습을 보는 건 쇼만큼이나 재미나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제 굳이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패션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스트리트는 캣워크와 화보에 이어 패션을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신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조가 아닌 ‘조합과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패션은 디자이너들에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실루엣과 디테일로 매 시즌 혁명과 같은 ‘창조’를 원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패션은 지난 복식사를 재조합하는 것으로 창조를 대신했다. 믹스&매치, 칩&시크, 빈티지와 아방가르드는 모두 이 시절 등장한 트렌드들. 패션에 있어 컬러나 실루엣보다 스타일링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캣워크는 점점 웨어러블해지고 새로운 ‘룩’ 대신 새로운 ‘매치’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패션의 흐름은 ‘무엇에 무엇을 매치하느냐’에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매치하느냐’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한때는 샤넬 재킷과 H&M 티셔츠,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드레스와 젤리 슈즈를 스타일링하는 것이 옷을 입는 쿨한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잘 빠진 재킷 하나를 ‘어떻게’ 걸치느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아마 피비 파일로였을 것이다. 그녀는 끌로에 시절부터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기보다는 어떻게 입고 어떤 제스처를 취하느냐에 날카롭게 집중한 디자이너였으니깐. 블랙 박스처럼 담담한 재킷을 입지 않고 어깨에 툭 걸치거나, 포멀한 루킹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삐딱하게 넣는 등 녀가 제안하는 미묘한 제스처에 사람들은 열광하며 포즈 자체가 하나의 패션이 된 것이다. 이렇게 패션은 새로운 창조에 더 이상 목숨 걸지 않는 대신 포즈와 스타일링과 배열에 신경 쓰는 것으로 패션을,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바꿔 말하면 이제 즐길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 된 것이다.

패션을 재배열하는 역할을 하는 에디터 카린 로이펠트와 안나 델로 루소 역시 이제는 디자이너 못지않게 영향력을 발휘하며,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패션의 창조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이패션은 점점 쉽고 친근하되 유니크한 터치가 들어간 룩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리트까지 내려왔다. 오죽하면 아크네와 오프닝 세리머니 같은 하이엔드 캐주얼 브랜드들이 루이비통과 디올 같은 오래된 패션 하우스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유서 깊은 하우스 브랜드인 겐조가 침몰 중인 브랜드를 구하는 처방으로 누구도 아닌 ‘오프닝 세리머니’의 레온과 캐럴 림으로 디렉터를 갈아 치운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웨어러블과 유니크, 포즈와 제스처, 위트와 트위스트,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같은 것들이 평행을 이루며, 지금 2012년의 패션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이 가장 리얼하게 분비되는 곳은 화보도 캣워크도 아닌 스트리트다. 그들의 사소한 스타일링이 가장 날카롭고 생생한 패션 신을 만들고 역으로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이번 시즌 질샌더의 쇼에서 코트를 한 손으로 여미고 워킹하던 모델, 이젠 셀린의 루킹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어깨에 걸친 코트 역시 이미 스트리트에서 보던 것들이다. 이제 패션에서 조합과 매치, 포즈와 제스처가 중요해지면서 누구든 패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다.

editor JUNG HEE IN
일러스트 KIM SUYO

Credit Info

월간 나일론

디지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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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HEE IN
일러스트
KIM SU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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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U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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