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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가수 찾기

On January 27, 2012 0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쎄씨봉, 조용필, 산울림 등 저만치 기억 속에만 있던 뮤지션을 재조명해볼 기회가 많았다. 이 멋진 뮤지션들 말고도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가수들은 누가 있을까? 달라도 너무 다른 피처 에디터 세 명이 꼭꼭 숨어버린 훌륭한 뮤지션들을 찾으려 기억을 더듬었다.


정태춘 Jeong Tae Choon
막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사춘기 무렵,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생이던 언니가 놓고 간 테이프였는데, ‘고향집가세’라는 구수한 목소리도 좋았고,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던 가사도 좋았다. 어린 마음에 난 그를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꼽았고, 나이 들어서는 공연도 찾아다니고 남몰래 그의 얼굴과 분위기를 이상형으로 삼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교복 입고 도시락 들고 찾은 공연장에서 그에게 증명 사진을 내밀며 나를 기억해달라 말하고, 악수도 나눴다. 손목에 찬 전자 시계와 갈색 외투 자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실 ‘정태춘’이라는 세 글자 앞에서 나처럼 고백하는 이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를 만나는 이들이 대학가의 뜻있는 공연장에서나 운동 가요를 배우는 신입생의 언저리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언어를 그를 통해 배우고 익힌 나는 무심코 쓴 문장에서 그의 사유, 그가 자주 쓰는 단어의 흔적을 발견한다. 90년대를 지나며 ‘환멸’이라고 말한 그의 요약을 기억하고 있고, 서해를, 빈 들녘을 바라보는 정태춘식 시선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더 이상 노래를 짓지 않겠다고 한 자조 섞인 고백에선 한없이 슬펐지만 어쩌랴 그의 성찰과 선택은 애초 내 것이 아니었음을. 아내 박은옥이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되는 이름. 여전히 세상과 삶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는 그의 노래. 우연히 그의 노래, 그의 이름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시절이 좋아져 나는 옛 테이프를 뒤적이지 않아도 CD를 찾지 않고도, 스마트폰만으로 그의 노랠 무한 반복 들을 수 있지만 돌아가고 싶다. 또 그립다. 공연장에서 울리던 그의 노래와 기타 소리를 듣고 싶다. 시대에 대한 어떤 연대로 울고 웃을 수 있는 그 순정한 무대가.
KI NAK KYUNG


한영애 Han Yeong Ae
어렸을 때 아빠가 한영애의 LP판을 듣고 있으면 좀 무서웠다. ‘다크 포스’ 깔린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어쩐지 낯설었다. 그 때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와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유행하던 때니까. 아빠가 늘 듣던 LP판 속 한영애는 머리를 부스스하게 하고, 입술에도 다크 초콜릿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으니, 어린 시절에 “여보세요, 거기 누구없소?”라는 노래가 시작되면 일단 무서운 생각부터 들었던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한영애의 노래를 작정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JK김동욱 때문에 한영애의 음악을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JK김동욱이 부른 ‘조율’의 원곡이 한영애의 것이었으니까. 어떤 느낌일지 감이 안 왔다. 그렇게 한영애의 노래를 찾아 들어봤더니, 그야말로 신세상(!)이 펼쳐졌다. 과거 우리나라 여자 뮤지션 중에 이렇게 독특한 보이스의 보컬이 있다는 걸 왜 진작 몰랐나 싶었다. 어릴 때 기억 때문에 무섭게만 들리던 ‘누구없소?’를 들어보고, 가사를 살펴보다 충격을 받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 번 불러봤어’ 같은 가사는 시와 같았고, 이런 가사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불러내는 한영의 목소리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허스키한 보이스 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영애의 팬이라는 친구의 추천으로 ‘여울목’, ‘건널 수 없는 강’, ‘루씰’ 등을 들으면서 연신 감탄했다. 한영애의 음반 중 가장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2집 <바라본다>를 듣고는 한영애란 뮤지션이 지금까지 과소평가되었단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영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노래를 추천한다. 그녀의 음악을 들어보면, 아마 당신도 나처럼 충격을 받을 거다. 그리고 고마울 거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여자 뮤지션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CHO YUN MI

서지원 Seo Ji Won
얼마 전 예능 요정으로 거듭난 정재형이 한 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내 눈물 모아’를 불렀다.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그는 곡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시울을 붉혔다. 서지원과의 추억이 떠올라서라고 했다. 클래식을 전공하던 정재형이 다른 가수에게 처음으로 준 곡이 이 노래였다. 돌이켜보니 서지원은 3년간 짧게 활동하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간 가수였다. 친구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던 시절, 나는 서지원에게 빠져 있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여리고 곱게 생긴 오빠는 노래도 잘했다. 데뷔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으로 (나 같은) 소녀팬을 모았다. 그리고 1996년 새해가 되던 날, 서지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는 오빠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슬펐다. 의식적으로 꽤 오랫동안 그의 노래를 피했다. 너무 좋아해서 더 그랬다. 그러다 오랜만에 서지원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정재형 때문에 그의 노래는 여전히 촌스럽지 않았다. 90년대의 전형적인 신시사이저 반주와 노골적인 코러스와 과도한 에코가 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정직한 창법 때문인지, 가사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한 달 내내 ‘내 눈물 모아’, ‘I Miss You’, ‘또 다른 시작’, 그리고 그의 유작 음반인 의 ‘그때가 좋았지’를 듣고 있다. 가사가 요즘처럼 노골적이지도, 예전처럼 지나치게 철학적이지도 않은 그의 노래 가사가 마음을 살랑살랑 움직였다. 서지원의 노래만 듣고 있는 나를 보고 남자친구는 ‘변태같다’고 했고,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친구는 ‘나도 듣다 보니 못 끄겠다’고도 했다. 활동 기간이 짧았던 탓에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서지원의 노래를 추천한다. 이건 한 사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더 듣길 바라는 ‘한때 서지원 소녀팬’으로서의 바람이기도 하다. CHO YUN MI

박정운 Park Jung Woon
19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누린 박정운의 노래는 막상 그 시절엔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이런 축축하고 감성적인 노래에 관심을 갖기에 난 좀 어렸다. 1989년 데뷔해 오장박(오석준, 장필순, 박정운)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거쳐 91년에 발표한 2집 솔로 음반 <오늘 같은 밤이면>은 이듬해에 큰 인기를 얻었고, <토요 대행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련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는 이런 노래를 좋아하기엔 뭘 몰랐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건 대학교 때 여름이다. 당시 나와 내 무리들은 매일 밤 모여 신나게 놀았다. 그때는 어디서 뭘 해도 함께 있으면 즐거웠는데, 우린 당시 옛 노래에 꽤 심취해서 만날 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새로운 90년대 가요를 자랑했다. 박정운의 노래는 그때 다시 듣게 됐다. 쿨하지 못해 미안한 진짜의 마음, 너무 좋지만 그리워하기만 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담은 가사와 애절한 발라드의 멜로디는 좀 느끼하고 진부한데도 마음을 끄는 게 있어 자꾸 반복해서 들었다. 특히 우르르 몰려다니며 왁자지껄 다 함께 신나게 놀다가 새벽에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으면 헛헛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의 20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갖고 싶어도 잘 안 되는 90년대 청춘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이 노래 속에는 빼곡히 담겨 있다. LEE SANG HEE

김두수 kim doo soo
김두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처음 만난 건 <한겨레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였다. 기타 하나 메고 그야말로 방랑자의 영혼으로 서울을 찾은 어느 가객에 대한 기자의 글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더랬다. 우리가 월드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며, 세자리아 에보라,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을 접하듯 외국인은 한국인 가수 중 김두수를 듣는다고 했던 글귀도 기억난다. 그 끌림 때문에 노래를 찾아 듣고 음반을 사 모으고, 어느덧 나는 신청곡을 틀어주던 허름한 술집에서 그의 노래를 주문하는 열혈 팬이 돼 있었다. 쉬운 노랫말에 담긴 짙은 우수, 떠돌이의 정서 등은 그의 노래가 지닌 매력인데, 그건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떠는 듯 목울대를 울리는 창법과 기타 선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일단 김두수는 읊조리듯 부른다. 기타도 하나의 목소리로 연주한다. 길과 바람, 강과 꽃, 들과 세월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의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눈보다 먼저 단출한 행색이, 모자에 가린 얼굴의 그늘이, 말없이 새어나오는 침묵의 눈빛이 마음에 남아 있다. 민속 록으로 인식되어 희귀 음반으로, 한때는 중고 음반 가게에서 고가로 판매되던 그의 1집에 대한 명성, 거기 실린 ‘귀촉도’가 시인 서정주의 장례식 조곡으로 들려지기도 했다는 일화, 풀피리, 통기타 메고 소리를 찾아 자연으로 떠난 청년의 시간들. 이 모든 것은 김두수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노래란 어느 개인의 시간과 만날 때 더욱 은밀하고 애타는 것이라, 2002년 발매된 이 음반 <자유혼>에서 만난 곡 ‘나비’와 ‘청보리밭의 비밀’은 내 추억에 잊지 못할 장면을 연출한 노래기도 하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의 ‘나비’를 들으며 한없이 작아지고 서글퍼서 흘러내린 새벽의 눈물을, 그때 알아버린 생의 처연한 슬픔을. KI NAK KYUNG

editor CHO YUN MI
사진 JEONG JAE HWAN
어시스턴트 KIM JI YOUNG

Credit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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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YUN MI
사진
JEONG JAE HWAN
어시스턴트
KIM JI YOUNG

2012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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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YUN MI
사진
JEONG JAE HWAN
어시스턴트
KIM JI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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