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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영화만 보나

On January 06, 2012 0

물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만 보지 않는다. 배우가 입은 옷도 봐야 하고, 그들이 먹는 음식도 봐야 하며, 배우가 울고불고 난리 칠 때 뒤에 걸려 있던 커튼의 패턴, 탁상 위에 올려놓은 시계 색깔까지 보느라 바쁘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집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을 해본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싱글맨 single man(2009)
콜린 퍼스가 아침에 천천히 침실에서 일어나 집 안의 복도를 지나 부엌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 동안 2초마다 감탄했다.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영화 제작 데뷔작 <싱글맨>은 누가 아니랄까 봐 모든 장면이 화보 같다. 그는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라는 것을 핑계로 원 없이 레트로 시대의 멋을 부려보겠다고 작정한 것 같다. 화장실의 휴지 걸이처럼 아주 작은 디테일에까지 무지 신경 쓴 티를 낸걸 보면 말이다. 덕분에 영화에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아주 단순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나무집이 등장한다. 영화를 위해 만든 세트라기엔 너무 완벽하다 했더니 역시 세트가 아니라 건축가 존 라트너(John Lautner)가 1949년에 지은 집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시내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집의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고, 심지어 회전문처럼 모든 유리벽이 열리기까지 한다. 콜린 퍼스가 죽은 연인을 회상할 때마다 등장하는 집 안 곳곳에선 톰 포드의 완벽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집 안의 정갈하고 단정한 모든 가구와 물건이 차례대로 자신이 쓰일 순서를 조용히 기다리는 듯하다. 모든 공간, 모든 램프, 모든 카펫과 슈트, 그리고 가구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간결하며 완벽하다.


훔친 키스 Stolen Kisses(1968)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파리는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파리의 낭만과 우울, 미완성된 청춘의 나날을 보여주는 트뤼포는 언제나처럼 파리를 몽상가들의 도시처럼 유쾌하면서도 우울한 도시로 창조해놓고 관객의 마음을 잔뜩 부풀게 한다.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 ‘드와넬’은 사설 탐정 사무소에 들어가서 한 신발 가게에 위장 취업을 하고, 나중에는 신발 가게 사장의 부인을 짝사랑하게 된다. 이때 그가 초대받아 가게 된 사장의 집은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전형적인 파리의 고급 아파트인 그 집의 양쪽으로 활짝 여는 프렌치 도어 너머에는 프랑스식 발코니가 있다. 물론 그 발코니에 서면 먼발치로 에펠탑이 보이고, 천장은 높고 아주 단순한 구조로 거의 직사각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집이 남다르고 느낌 있어 보이는 건, 드와넬이 차를 마실 때 앉아 있는 고전적인 의자, 우아한 커튼 색깔, 하얗고 길고 고상한 식탁이 모두 근사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와넬의 짝사랑 상대인 사장의 부인이 우아하고 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레코드 플레이어를 보면 왜 사람들이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더 비싼 값으로 사고파는지 절로 이해될 거다. 지금 세대에는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클래식하고 미니멀하고 우아한 물건으로 가득 찬 그 아파트를 보면 당장이라도 파리의 그 집을 그대로 서울로 옮겨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뉴욕 스토리; 라이프 레슨 new york story;life lessons(1989)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아파트를 일컫는 ‘로프트’ 낭만의 진수를 느끼려면 옴니버스 영화 <뉴욕 스토리>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라이프 레슨’을 봐야 한다.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에는 아치형의 창문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뉴욕의 복잡한 풍경이 어우러질 때 운치 있다. 욕실과 부엌, 거실, 작업실이 모두 한곳에 경계 없이 모여 있지만 욕실 부분은 바닥을 녹색으로 칠해놓고,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커다란 거울을 비스듬히 세워놓는다든지, 넓은 공간 한가운데에 80년대 미국에서만 볼 법한(물론 이 영화를 8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진달래색 카펫만 덩그러니 깔아놓은 후 소파와 클래식한 스탠드를 세워놓고 거실처럼 사용한다. 이런 불규칙하고 순서가 없는 배치는 지금 봐도 화성에나 있을 것 같은 공간처럼 독특하고 멋지다. 이 로프트에 사는 화가 ‘닉 놀티’는 자기보다 10배쯤은 더 커 보이는 캔버스에 유화를 마구마구 색칠하는데, 그의 행동이 유별나 보이지 않는 건 이렇게 큰 컨버스가 있어도 여전히 휑해 보이는 넓고 높고 하얀 공간 때문이다.

수영장 pool(2009)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엄마(코바야시 사토미 분)를 만나러 온 딸 사요(카나 분)는 숲 속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은 수영장과 사방이 뻥 뚫려 야외에 있는 것만 같은 집을 어색해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파라다이스 같기만 하다. 보기만 해도 나른하고 평온해지는 나무집은 천막처럼 밀짚을 씌운 지붕에 나무 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침실을 뺀 모든 공간이 허리 높이밖에 안 되는 낮은 벽과 창문 없이 뻥뻥 뚫린 사면으로 이뤄져 있다. 덕분에 설거지를 하든, 엄마랑 싸우든 고개를 어느 쪽으로 돌려도 집 주변을 둘러싼 나무와 꽃, 숲과 새를 실컷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먼지 하나 없을 것처럼 하얗고 깨끗한 바닥은 소박하고 튼튼한 나무 가구들과 예상 외로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나무 숲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작은 야외 수영장이다. 싱싱한 꽃나무들과 식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수영장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할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하다. 서울엔 이런 데 어디 없수?

클로이 chloe(2009)
내용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도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든 건 캐서린(줄리안 무어 분)이 사는 집 때문이었다. 으슥한 숲 속에 산장처럼 생뚱 맞게 서 있는 캐서린 부부의 집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가정집이라기엔 너무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예사롭지 않은 이 집 또한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다. 레바인 하우스(Ravine House)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건축물은 건축가 드류 만델(Drew Mandel)이 만든 집으로 2007년에 지어졌으며 토론토에 있다. 박스를 여러 개 쌓아 올린 듯한 외관도 재미있지만, 미로처럼 이리저리 위아래로 꼬여 있는 집 안의 구조도 매력적이다. 집의 바닥뿐 아니라 천장까지 결이 곱고 매끈한 나무 벽으로 메워져 있고, 모든 옆면은 유리벽으로 이루어졌는데, 가는 나무 창틀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구조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든다. 줄리안 무어가 창백한 얼굴로 아름답고 깨끗한 그 집을 신경질적으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모습은 불안하면서도 우아하다. 하지만 레바인 하우스의 환상적인 구조가 압권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캐서린이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놓고 복층 구조의 공간에서 유리 박스 같은 방에 앉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밑을 바라보며 전화를 하는 장면이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유리 박스 속에 줄리안 무어가 갇혀 있는 듯한 이 장면은 레바인 하우스를 단지 집이라는 기능을 넘어선 하나의 디자인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editor LEE SA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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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ANG HEE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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