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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해서 미안해

On January 06, 2012 0

패션계를 홀연히 떠났던 90년대의 ‘쿨함’이 다시 돌아왔다.

- 무덤덤하고 매트한 90년대의 얼굴들. 90년대식 쿨함을 보여준 피비 파일로 .



나에게 패션에 관한 첫 기억이자, 첫사랑은 90년대다. 당시 패션은 극도로 아방가르드하면서도 허무할 정도로 미니멀했으며, 최고급 캐시미어와 싸구려 나일론 소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믹스 매치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남의 시선이나 고정 관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하는 데다가 굉장히 실용적이었는데, 한마디로 정의하면 용감하리만큼 ‘쿨’한 태도인 것이다. 강박적으로 신중하고 간결한 선으로 메운 라프 시몬스식 질 샌더의 미니멀은 정갈함에 관한 자신감으로 패션을 증명했고(복식 구조에 충실한 심플한 화이트 셔츠, 블랙 재킷, 그레이 캐시미어 카디건, 터틀넥 등), 해체와 생략에 집중한 헬무트 랭(후들후들한 티셔츠 소재와 모든 것이 생략된 기본 골격만으로도 훌륭한 쇼를 전개했다)은 그야말로 충격과 히트를 동시에 몰고 왔다. 또 어딘가 부족한 불온함이 더욱 아름다운 케이트 모스, 여성성을 완벽하게 제거한 채 매트한 얼굴이 우아한 스텔라 테넌트 역시 내가 기억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패션은 신세기의 터널로 입성하면서 담백하고 단순한 쿨함 대신 극도의 아티스틱함과 드라마틱한 장식에 몰두했다. 알렉산더 맥퀸, 빅터 앤 롤프, 후세인 샬라얀이 보여주는 쇼는 패션이라기보단 차라리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다. 그리고 발렌시아가나 이브 생 로랑 같은 파리의 하우스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마크 제이콥스나 미우치아 프라다도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판타지의 최대치를 패션에 실현해 보였다. 음란하고 퇴폐적인 물랭 루주와 동서양을 넘나드는 오리엔탈 무드, 애니메이션과 3D까지 선보인 패션이 지루해질 때쯤 다시 90년대가 돌아왔다.

가요계에서는 그 시작을 UV(!)가 알렸다면, 패션계는 피비 파일로다. 90년대의 쿨한 정신을 다시 불러온 장본인. 셀린과 함께 그녀가 나타난 이후 고작 2년 동안 디자이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90년대의 것처럼 ‘쿨’해지길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피비 파일로의 첫 번째 셀린 쇼에서 본 블랙과 네이비의 간결한 컬러 조합, 가위로 싹둑 자른 듯한 가죽 스커트와 팬츠, 그리고 2012 크루즈 컬력션에서의 치렁한 핫핑크 실크 팬츠를 힙합 팬츠처럼 껄렁하게 입는 것 하며, ‘CELINE’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쓴 로고 티셔츠는 모두가 기억하는 90년대 패션이다. 90년대 키즈인 리카르도 티시나 알렉산더 왕도 이 쿨함이 신나긴 마찬가지. 그들은 자유로운 드레스 업 앤 다운을 추구한 90년대의 상징을 컬렉션에 적극 이용했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스웨트 톱이다. 최근 파일로와 티시, 알렉산더 왕은 종종 스웨트 셔츠를 컬렉션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는데, 그 위에는 어떤 하이패션적인 것을 더해도 심플하고 캐주얼하게 보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시의 제비꽃과 요염한 핀업 걸을 수놓은 스웨트 니트와 셀린의 클래식 재규어를 본뜬 면 분할의 스웨트 톱이 그렇다.

반대로 실용적인 스포티즘으로 드레스업을 보여주는 건 알렉산더 왕의 장기다. 후드 집업 니트와 유연한 실크 스커트에 스트리트적인 커팅을 더해 쿨한 드레스업 룩을 보여준다.이렇게 90년대 쿨함은 그 시절 패션 키즈들에 의해 21세기로 다시 돌아왔고, 모든 여성을 필요충분조건으로 열광시켰다. 흥미로운 건 실용적이면서 쿨한 루킹은 언제나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며 변신한다는 것이다. 90년대엔 실용주의와 미니멀을 더해 완벽한 테일러링과 최고급 소재에 후줄근한 면 티셔츠와 나일론 점퍼,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것이 최고의 쿨함이었다면, 지금은 섬세한 컬러와 예민한 소재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하이패션 소스에 톱숍이나 H&M 같은 칩하고 이지한 아이템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입고는 ‘뭐 어때’라는 뉘앙스의 룩을 입는 것이다. 그러니 패션을 대하는 쿨한 태도야말로 영원히 ‘킵’해두어야 할 것!과감한 여백과 선들로 채워진 비주얼들은 지금봐도 신선하다.

editor JUNG HEE IN
사진 JIMMY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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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HE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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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HOUSE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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