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Radar

내 인생의 소~울 푸드

On December 30, 2011 0

국수 한 그릇 말고, 고봉밥에 코를 부비며, 짜장면 비벼 먹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저마다 군침 돋우는 따뜻한 이야기 하나쯤 숨겨놓고 있다. 만화 그리는 3인이 보내온 내 인생의 소울 푸드!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얼마 전 출간된 < 소울푸드 > 에는 시사평론가, 소설가, 일러스트레이터, 가수, 잡지사 편집장 등 다양한 인간 21명의 음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군가의 음식 이야기를 들으며 무릎을 칠 수도, 잊고 있던 나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산울림'의 김창완은 토요일 아침 특별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식당으로 향한다. 그러곤 메뉴라곤 수제비와 콩나물비빔밥이 전부인, 그러나 가게 가득 비틀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식당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들깨 향 가득한 수제비 한 그릇을 주문한다. 그가 들깨 향으로 추억하는 건 어린 시절 들판을 쏘다니며 그야말로 개구리 뒷다리까지 구워 먹던 장난꾸러기 시절부터 병상의 아버지에게 도시락 싸가지고 간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하나같이 비틀스의 옛 노래를 따라 흐르고 머물고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그를 잠식한다. 그는 글의 말미에 이런 말도 남긴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삶은 늘 한끼 식사일 뿐'이라고. 책에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 딴지일보 > 총수 김어준의 배낭여행기도 있다. 남유럽의 자외선에 노곤해진 그가 갑작스레 택한 노르웨이행. 그는 그곳 페리에서 만난 한국인 배낭여행객들과 의기투합해 관광지로 향하려다 갑자기 노선을 바꾼다. 그건 바로 해안가로 내려가서 라면을 끓여 먹자는 것. 피오르의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라면을 먹는 한국인들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해 질 무렵 토스카나의 허름한 식당에서 수프를 먹는 셰프 박찬일, 최고의 숙취 해소 음식인 빨계떡을 찾아 내고는 소설까지 잘 쓰게 됐다는 작가 박상 등. 이 한 권의 책은 읽는 내내 군침 돌게 하고 음식 냄새를 피운다.


엄마표 오징어국
엄마가 기분 좋은 날이면 해주던 동그랑땡, 양파와 감자를 갈아서 부쳐주던 감자전, 한겨울 상을 펴고 앉아 먹던 김치부침개. 내게 있어서 '소울푸드'라고 할 만한 것들은 결국 다 엄마 손을 거쳐서 나온 음식들이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런 내 영혼에 각인된 음식 중에서 < 슈퍼스타K > 를 방불케 할 정도의 내적 고민과 경합을 거쳐 내가 선택한 것은 오징어국이다. 아마 날씨 탓이 꽤 클 거다. 생각해보면, 딱 이맘때다. 쌀쌀한 날씨가 추워진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쯤 엄마는 늘 오징어국을 끓였다. 오징어와 무, 파를 썰어 넣은 매콤하고 칼칼하고 시원한 오징어국. 오징어국이 나오면 일단 좀 침착해야 한다. 그 비주얼과 입맛을 당기는 매콤한 향기에 빠져 무턱대고 입에 털어 넣었다간 입천장이 죄 까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호호 불어 조심스레 입에 넣는다. 뜨겁고 매콤하다. 고춧가루의 칼칼한 매운맛이다. 매운맛을 음미할 때쯤 잔뜩 썰어 넣은 무가 힘을 낸다. 외국인에겐 어쩐지 설명할 자신이 눈곱만큼도 없는, 뜨거운 국이지만 시원한 맛. 그래 그 시원한 맛이 가득해진다. 국물을 떠 먹고, 또 떠 먹고. 어느새 국그릇에는 오징어와 무만 남았다. 아… 오징어국의 생명은 국물인데! 하지만 내 입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잘 안다기보단 그렇게 만든) 엄마는 이미 이런 사태에 대비해 한 솥 가득 오징어국을 끓였다. 한 국자 크게 떠서 또 국물이 가득해진다. 아, 행복하다. 또 한 숟갈 입에 넣는다. 그래. 이 맛이다. 정말.이상하게도 오징어찌개를 파는 곳은 있어도 오징어국이 나오는 밥집은 흔치 않다. 사 먹고 싶어도 사 먹을 도리가 없는 거다. '오징어, 파, 무, 고춧가루만 있으면 가능하니 그냥 나 혼자서라도 끓여 먹어볼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만다. 왜냐고? 내게 오징어국이라는 건 엄마가 끓여주던 딱 그것, 그 맛이니까. 이 오징어국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내 영혼의 음식이니까.
_이크종(엽기발랄 독거 청년 생활기 <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 작가)


면발은 아름다워!
국수를 너무나 사랑하는 난 면이야말로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식재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랜 보관성은 물론이거니와 길고 가늘게 빠진 아름다운 자태며 매끄럽게 입속을 가로질러 품위 있게 식도로 미끄러지는 질감과 어떤 양념과도 잘 어우러져 수천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응용력까지, 면은 아름답다! 난 산골에 위치한 읍내에 살던 그야말로 촌년이었는데, 고향을 떠나는 자가 진정 성공한 사람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철칙에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고향을 생각하면 오래된 흑백사진의 바스러지는 종이 소리가 들려온다. 애증이 뒤엉켜 쓸쓸하고 짠한 기분이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없다. 그러나 부모님은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에 기어이 다시 돌아가고야 말았기 때문에 나도 서른이 되어서야 종종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특히 지난여름은 아이들의 유치원 방학과 만화 마감이 맞물려 한 달이나 시골에 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외갓집에서 올챙이와 개구리를 잡으며 신나게 놀 때 나는 어릴 적 다니던 읍내 도서관에서 만화를 그렸다. 도서관이 이렇게 작았나? 아이들을 귀찮아하던 도서관 직원도 아줌마인 내겐 무척이나 친절하다. 점심을 늘 싸갈 수가 없어 도서관 근처의 이름도 구수한 '이모야식'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운명의 국수를 만나게 될 줄이야. 바로 이 맛이다. 가난한 맛. 수입 밀가루의 심심한 향이 그대로 확 느껴지는 손칼국수. 사골 육수에 칼로 칸칸이 썰어낸 면, 그 위에 김과 깨소금을 확 뿌리고 청양고추가 잔뜩 들어간 양념장이 고작인 손칼국수 한 그릇.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강렬했다. 옛날 맛이다. 요즘 칼국수는 해산물이나 고기 양념을 듬뿍 넣어 밀가루 본연의 구수한 맛을 내는 칼국수가 사라졌다. 너무 멋을 내느라 고유의 맛을 잊어버린 것이다. 여기는 멋 내는 옷들을 다 벗어버린 완전 누드의 밀가루 맛이 있다. 한 달 내내 칼국수를 점심으로 먹으며(물론 한 그릇만 시켜 먹고 가는 내게 이모님은 늘 눈을 홀겼다) 고향을 만끽하자니 마음도 점점 누그러졌다. 읍내 큰길을 가로지르는 다방 아가씨들의 호기로운 오토바이 소리도 흥겹게 느껴지고 촌티 나는 날라리 양아치 애들도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가. 쇠락해가는 읍내의 콘크리트 건물도 나름 빈티지해 보이고 악다구니만 남은 듯한 시장터의 아줌마들에게서 삶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원래 난 이런 맛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서울의 중산층이 되고 싶어 아등바등 살아온 나는 너무 피곤했던 거다. 나 원래 촌년인데, 너무 무리하며 살았던 거야. 멋 부린 화려한 국수보다 이런 소박하고 촌스러운 거 좋아. 가난한 국수 한 그릇에 이렇게 안심하게 되다니. 드디어 따뜻하고 담담한 고향으로 돌아왔다.
_조주희(만화 잡지 < 윙크 > 에 < 키친 > 연재 중)


햄버거에 대한 오래된 명상
사춘기에는 누가 간섭하는 게 제일 싫은 법이다. 하지 말라는 것, 입지 말라는 옷, 먹지 말라는 음식만 골라 먹고 싶은 심보, 그게 사춘기의 공통된 경험일 터. 나는 사춘기가 좀 늦은 편으로 고2 시절을 내내 그런 심보로 보냈다. 미술학원 다닌답시고 수업 빼먹고 영화관에 들락거리던 시절. 먹는 것도 예외가 아니어서 요리 솜씨 소문난 엄마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간 곳 없고 먹자골목만 휘젓고 다녔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새로 생긴 햄버거 체인점에 앉아 당시로선 새롭고 흥미롭기까지 한 '세트 메뉴'를 앞에 놓고 열심히 씹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외출 나온 엄마가 유리창 밖에서 내 그런 '외도'를 발견하신 거다. 뭐 별로 잘못한 것도 없고 해서 그 일은 그날로 잊었다. 그런데 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엄마의 눈에는 햄버거라는 존재가 매우 미심쩍게 보였던 모양이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햄버거가 위생이나 영양 면에서 걱정스러운 음식이라는 정보가 어디에도 없던 만큼 생각해보면 대단히 앞서가는 감각이었던 셈. 장정일의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이라는 훌륭한 시에서조차 햄버거는 '맛있고 영양 많은…'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고집스럽게 햄버거를 원했다! 당연한 일이다. 햄버거가 얼마나 맛있는데. 엄마는 끈질기게 나를 어르고 달래고 거의 협박까지 하면서 햄버거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며칠 후, 햄버거를 잊기 위해 실의에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내 앞에 햄버거 접시가 놓였다. 엄마가 직접 만든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저녁 준비를 따로 해야 하는데도 햄버거를 만들려고 오후 내내 분주했을 엄마의 시간을 생각하니 햄버거 맛이 한편 씁쓸했다. 엄마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명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를. _강모림(웹툰 < 비굴해도 괜찮아 > 연재 중)

editor KI NAK KYUNG
사진 JUNG JAE HWAN

Credit Info

editor
KI NAK KYUNG
사진
JUNG JAE HWAN

2011년 12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KI NAK KYUNG
사진
JUNG JAE HWAN

0 Comment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