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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자보다 멋질지도 몰라

On July 22, 2011 0

리카코가 전철역에서 입고 있던 하늘색 원피스는 아오이 유우보다 청순했다. 타에코가 시골 가는 기차에서 입고 있던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하이웨이스트 진은 또 어떻고. 만화 여주인공의 스타일도 1960년대의 안나 카리나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귀를 기울이면
고작 16세밖에 안 됐다고 하기에는 센세이션하다고 할 만큼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즈쿠는 가죽 페니 로퍼에 발목 위로 살짝 올라오는 흰 양말을 매치한다. 한여름에도 양갓집 규수처럼 밖에선 절대 양말을 벗는 법이 없는 그녀는 두 번은 삶은 것 같은 새하얀 양말과 로퍼에 잘 어울리는 무릎 위 스커트, 얇은 스웨터를 즐겨 입는다. 프레피 룩 같기도 하고, 영화 <핑크빛 연인> 속 몰리 링월드 같기도 한 시즈쿠의 스타일은 책벌레인 그녀가 날마다 정독하는 책이 혹시 ‘패션의 완성, 남몰래 멋쟁이 되는 법’ 따위가 아닐까 의심스럽게 한다. 패션에는 무심하다는 설정 탓인지 패턴이나 형태에 욕심을 내지 않는 대신 다양한 색상의 상의를 입는다. 시즈쿠가 입는 ‘색’들은 소극적일 것만 같은 이미지와 달리 이번 시즌 질 샌더만큼 강렬하고 짙고 밝다. 짙은 상아색 반소매 블라우스와 스커트에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따라 하고 싶을 정도니까. 시즈쿠의 히든카드는 빈티지 가죽 브리프케이스. 사서인 아빠한테 점심 도시락을 전해주러 도서관에 갈 때도, 여름방학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시즈쿠의 한 손에는 그 가죽 브리프케이스가 들려 있다. <애니 홀>의 다이앤 키튼이 들었다면 더 없이 근사했을 이 가방 덕분에 그녀는 지적이고 세련된 여자아이로 변신해서 미소년 세이지 앞에서도 당당히 튕길 수 있었던 거다.

추억은 방울방울
도쿄 여자인 타에코는 여름휴가를 맞아 들뜬 마음으로 시골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농촌의 일손을 돕기 위해 편한 스트라이프 면 티셔츠와 진을 입고 있지만, 거기에는 잔느 모로도 울고 갈 파리 여자의 발칙한 우아함이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목이 늘어난 긴소매의 감색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흰색 하이웨이스트 진의 밑단을 롤업해서 매치한 타에코가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봤다면, 그녀의 가죽 트렁크를 들어주고 싶어 안달 났을 남자가 한 명쯤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녀가 밭일을 돕기 위해 입은 작업용 바지는 한 수 위다. 패턴이 프린트된 배기팬츠는 기하학적이고 귀여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뉴욕의 디자이너 브랜드, ‘모시운(Mociun)’이 연상된다. 기본 형태의 티셔츠에 제인 버킨이 입었을 법한 클래식한 하이웨이스트 진을 즐겨 입는 타에코의 스타일은 도쿄 여자지만 자유롭고 절제된 멋을 아는 파리지앵의 오라를 뿜어낸다. 흰색 티셔츠에 크림색 진을 입고 연보라색 양말을 신는 놀라운 센스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아 참, 신발 이야기를 잊을 뻔했네. 타에코가 신는 하얀색 로퍼는 자넬 코네 같기도 하고 코코 섬너 같기도 하다. 적당히 캐주얼하면서 고전적이기도 한 로퍼 하나로 제인 버킨의 젊은 시절을 지향하는 타에코의 스타일은 훌륭하게 완성된다. 근데 시골 간다는 여자가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챙겨간 거야.

마루코는 아홉살
왜 앙큼하고 깜찍한 여자의 정석은 늘 단발머리일까?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이 입고 나오는 멜빵 원피스와 짧고 산뜻한 단발머리는 수많은 여자의 로망이 되었다. 하지만 공효진의 단발머리가 아무리 사랑스럽다고 해도 마루코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일자 단발머리와 서스펜더 플리츠스커트, 노랑과 빨강으로 이뤄진 상하의의 색 조합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멋쟁이의 과감한 시도지만 마루코가 입으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입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마루코만큼 멜빵 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아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3등신 그림체의 마루코가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다고 치부하면 오산이다. 똑같아 보여도 은근히 다른 마루코의 룩을 구분하자면 흰색 블라우스와 플리츠스커트, 그리고 노란색 카디건, 또는 흰색 반소매 티셔츠에 빨간 반바지가 되겠다. 그러나 가끔 상상 속에서 공주님이 되거나 별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 입는 칼라만 흰색으로 이루어진 H 라인 색색의 원피스는 미셸 윌리엄스가 얼마 전 5월호에 입고 등장한 프라다와 펜디, 샤넬 원피스만큼 예뻤다면 좀 심했나? 상큼하고 귀여운 마루코의 스타일은 알렉사 청이 즐겨 입는 스타일링 공식과도 매우 비슷하다. 알렉사 청은 패션에 관해서는 실험적인 시도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본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도록 사랑스럽고 귀여운 스타일링을 즐겨 입는데 마루코가 바로 그렇다는 말씀.

빨간 머리 앤
화려한 패턴이나 장식이 달린 옷을 입지 않는 건 멋 부리는 여자아이들을 천박하게 여기는 마릴라 고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하고 밋밋한 원피스를 즐겨 입는 앤은 모자나 케이프로 멋을 부린다. 앤이 입는 간결한 디자인과 청아한 색감의 옷들은 ‘코스믹 원더 라이트 소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구조적이고 간정한 형태와 부드럽고 아늑한 색감의 코스믹 원더는 앤이 지나치게 검소한 방 창가에 앉아 매일 멋지고 근사한 것들을 공상할 때 입고 상상 속 무지개 위를 걸으면 잘 어울릴 것만 같다. 끔찍하게 지루하고 심심한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일평생을 보내는 앤이지만, 패션 잡지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면서도 신기하게 옷 잘 입는 애만큼이나 어떻게 해야 본인이 화려하지 않아도 돋보이는 지 안다. 어릴 때만 해도 옷 한 벌만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앤도 나이가 들면서 실크 블라우스 없이도 멋 좀 낼 줄 아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만화인데도 불구하고 진화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깔끔하고 둥근 칼라를 살짝 내놓도록 스웨터 안에 레이어드하고 모직 재킷에 페도라를 잊지 않는 그녀의 스타일은 마거릿 호웰의 겨울 컬렉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 정도다. 게다가 매튜 삼촌의 장례식에서 입었던 검은색 드레스는 샤넬만큼 우아하고 목이 길어 슬픈 모딜리아니의 여자들보다 고상하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패션 디렉터라도 따로 있는 건가?

바다가 들린다

만화로만 봐도 예쁜 애들이 있다. 영화로 치면 <라 붐>의 빅(소피 마르소 분)쯤 될 것 같은 리카코는 예쁜 부잣집 막내딸들이 그렇듯 변덕이 죽 끓듯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늘씬한 몸매와 긴 생머리는 캠퍼스 룩의 전형인 ‘카디건 어깨에 두르기’와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꼭 맞춘 듯 잘 어울려서 ‘얼굴이 예쁘니까 마음도 예쁠 것’이라는 헛된 망상을 남학생들의 가슴에 심어준다. 고교생의 첫사랑을 담은 이 만화의 남자 주인공 타쿠는 어딘가 모르게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비슷하지만 어른스럽고 진중해 보이는 그가, 본인은 스타일도 없는 주제에 예쁘고 스타일 좋은 리카코를 좋아하게 되는 건 실망스러우면서도 수긍이 간다. 네온이 섞인 듯한 짙은 다홍색 블라우스에 보일락 말락 하게 스카프를 두르고 회색 펜슬 스커트를 입은 건 A.P.C의 광고 캠페인이 연상되면서 프랑수아 아르디도 떠오르게 한다. 심지어 엄마 몰래 가출할 때조차,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여자처럼 아크네 스타일의 빨간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하이웨이스트의 면 반바지에 말끔하게 집어 넣고 쿨하게 맥주와 콜라를 섞어 마신다. 물론 안하무인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하고 말지만. 그런데 그녀는 주사를 부릴 때마저 옷에는 맥주 한 방울 안 흘리고 예쁘고 깨끗하게만 입을 것 같다. 왜일까? 어쨌든 스타일 좋고 매력 있는 여자란 빅만큼 어리고 프랑수아 아르디 뺨치는 몸매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니까.

ASSISTANT EDITOR lee sang hee
사진 kim ju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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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ang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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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ung ho

201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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