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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싸늘하게

On January 07, 2011 1

그린란드에서 식당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훈제 고래를 먹고 있자면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다’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 그린란드의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기.

그린란드 수도 누크(Nuuk)의 여름날 저녁은 기분 좋게 선선하다. 덕분에 새로운 친구인 뮤지션 얀 데브뢰데와 함께 조용한 거리를 거닐 수 있었다. 그는 최근 마을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에 관해 얘기해준다. 범인이 노란색 스쿠터를 훔쳐갔는데, 그게 꽤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누크에는 노란색 스쿠터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는 그린라드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해 말한다. “여기선 거짓말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게다가 멀리 나갈 수도 없어요.길이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 섬에는 신호등이 2개 있다. 하지만 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없는 건 사실이다. 마을 사이를 다니려면 경비행기로 짧은 비행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와 캐나다의 이웃으로, 북극해와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자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다.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광활하고 아름다운 일룰리사트(Ilulissat: ‘빙하’를 뜻하는 그린란드어)에서다. 일룰리사트는 웨스트 그린란드의 보물로, 북극권 한계선에서 북쪽으로 150마일 지점에 위치한다. 나는 바퀴 4개짜리 경비행기를 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러시아 억만장자이자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요트 옆에 정박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의 초대형 요트 ‘옥토퍼스(Octopus)’를 보고 있자니, 그린란드로의 여행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엇을 선물하면 될까?’라는 불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룰리사트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상상한 그린란드의 모습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이곳은 그림 같은 집들로 가득하고, 썰매 개 무리는 (참고로 여기서 썰매 개는 애완용이라기보다는 노동자에 가깝다) 긴 체인에 묶인 채 언덕 비탈에서 큰 소리로 짖어대며 8월의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호텔 아이스피오르에 체크인한 후, 전설의 빙하를 보러 세르메르미우트(Sermermiut)로 가기 위해 가이드와 함께 떠난다. 가이드는 나무 산책로를 걸어 내려가다가 간간이 멈춰서 원시 주거 흔적을 가리키고 그린란드의 전통 민요를 부른다. 그린란드 최초의 거주민은 4,000~5,000년 전에 정착한 초창기 이뉴이트(Inuit)족이었다. 관광 가이드가 들려주는 고대 그린란드 고래 사냥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배경음으로 개들이 짖어대고, 빙하 갈라지는 소리도 들린다) 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 사이에 서 있자니, 이곳의 역사가 마치 손에 만져지는 듯하다. 빙하를 보고 있으니 로마 제국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같다. 그린란드의 광활한 설원을 경험하면 지구가 얼마나 광대한지, 인간이 이곳에 거주한 시간이 얼마나 짧은 기간인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그날 밤 작은 레스토랑인 마마르투트에서 식사를 했다. 이곳은 무시무시하게도 바다표범 스테이크, 고래 스테이크, 바다표범 지방, 고래 가죽, 고래 기름, 그리고 믿지 못하겠지만 북극곰 수프 등 이 지방 특산 요리를 제공한다.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 지구 온난화의 전 세계적인 상징으로 부상한 바로 그 북극곰이 여기서는 수프의 건더기로 활용된다. 이곳에서는 철저히 자급자족 생활을 하는데, 이 요리가 결정적 증거다.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한 입 넣어본 뒤 이것이 일룰리사트의 매섭도록 차가운 밤 기온에 속을 든든하게 해줄 음식이었음을 깨닫고는 조금 심란해진다.

다음 날, 배를 타고 디스코 베이(Disko Bay)를 건너니 빙하가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나타난다. 그리고 최초로 고래를 발견했다. 저 멀리 혹등고래 2마리가 보였다. 우리는 약 50명의 주민이 사는 촌락 로드 베이(Rode Bay)에 잠시 정박했는데, 그곳에서 독일인이 운영하는 작은 레스토랑 H8에서 훈제 생선과 절인 고기를 점심으로 먹고, 다시 만을 건너 일룰리사트로 돌아와 아틱 호텔이 자랑하는 레스토랑 울로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곳의 셰프 예페 에이빈드 닐슨은 모든 요리에 엄청난 정성을 들인다. 고기는 적당히 연하고, 채소는 훌륭한 맛과 식감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마지막 코스가 나온 후 주방에 들어가 그와 악수를 했다. 훈제 고래, 순록, 사향소를 생각하면 사람들 대부분의 입에선 그다지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있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만들었다. 저녁 식사는 아주 인상적인 이 지방 고유의 칵테일, 그린란드 커피로 정점을 찍는다. 위스키, 칼루아, 커피, 그리고 크림 위로 불붙은 그랑 마니에르(3~4년 숙성한 코냑에 오렌지 향을 가미한 40℃의 프랑스산 혼성주) 줄기가 쏟아진다. 북극광(북극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발광 현상으로 빛은 약할 때는 희게 보이지만, 강할 때는 빨강과 초록의 아름다운 색을 보인다)을 눈앞에 펼쳐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칵테일에 들어간 알코올과 카페인의 양이 하도 많아 눈앞에 무엇이 펼쳐 보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누크로 돌아와 아틀란틱 뮤직이라는 음반 가게에 들어선다. 주인인 이반 엘스너의 말에 의하면 가게 이름과 같은 이름의 음반 레이블도 운영하는데, 매년 무려 7만 장을 팔아치운다고 한다. 그의 아들 크리스찬은 가게에서 일도 봐주고, 동네 친구와 함께 애트모스피어릭 록(부드럽고 몽환적인 록 장르) 밴드 ‘나누크(Nanook)’에서 노래도 한다. 그는 작별 선물로 나에게 그린란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신들의 음반을 준다. 서늘한 보컬이 듬성듬성한 드럼 비트 사이에서 울부짖는다. 음반 가게를 나와 대디스라는 이름의 환상적인 바에 들어간다. 칙칙한 색의 나무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는 낡은 카펫과 당구대가 설치돼 있다. 이곳 누크가 현재 오랫동안 이어진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이 신생 수도는 온갖 건설 현장과 신축 주거 건물의 골격 등으로 어지럽혀져 있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에 처음 지어 한 번도 손보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아파트 단지도 보인다. 이들 아파트에서 생애 최초의 ‘카페미크(Kaffemik)’를 접했다. 카페미크는 그린란드의 오래된 전통으로, 오후 시간에 이웃집에 모여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먹는 걸 의미한다. 외관은 볼품없을지라도 방문한 집의 내부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노부부는 나를 초대한 게 신이 났는지 내내 친절했고, 손으로 직접 뜬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보여줄 때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이 너무 섭섭해하기에 디저트를 무려 세 그릇이나 비우고 말았다.

얼마 후, 한스 에게데 호텔에 있는 바에서 데브뢰데와 함께 고트호프(Godthaab)라는 맛있는 지역 맥주를 한 잔 했다. 한스 에게데는 누크를 세운 노르웨이-덴마크 루터교 선교사의 이름이다(오늘날까지도 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데브뢰데의 동료 나이브 닐슨을 만났다. 그녀는 밴드 블랙 키스의 드러머 페트릭 카니와 함께 작업한 자신의 최신 음반 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영화감독 테렌스 맬릭과의 친분도 과시한다. 그녀는 그의 영화 <뉴 월드>에도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불행히도 자신이 출연한 장면은 편집됐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은 동네 밤 문화를 보여주겠다고 자청한다. 여러 군데의 바에 들러보지만 손님들이 거의 없다. 결국 적당히 떠들썩한 곳을 찾았는데, 그곳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바인 크리스틴무트다. 그 안에서는 똑같이 술 취한 단골과 관광객이 지역 카피 밴드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그린란드에서의 마지막 날 밤, 배핀 베이(Baffin Bay)의 남쪽 끝에 삐쭉 튀어나온 작은 식당 니피사에서 식사를 했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훈제 고래를 먹고 있자니, 그린란드는 용기 없는 자들을 위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건재한 지방 풍습이며 어마어마하게 준엄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주긴 한다. 얼음으로 만든 산을 보고 있을 때만큼, 내가 남자라는 존재감을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남성답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남성다움을 최대한 필요로 하는 곳이기는 하다. 외려 이곳은 모두에게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느끼게 한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그린란드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1.몇 안 되는 풀타임 거주민 중 하나의 눈을 통해 바라본 로드 베이.
2.그린란드에서 인기 있는 순록 고기로 만든 우아한 요리.
3.디스코 베이를 건너며 가까이서 바라본 빙산.
4.세계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빙하 중 하나에 위치한, 일룰리사트의 주택들.

Stefan
사진 stefen eisand, carsten egevang, jens henrik, ruth gundahl madsen, stefan marolachakis

Credit Info

Ste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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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Ste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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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박은선 2010-04-02

역시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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