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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On September 10, 2010 0

 

옛 영화들을 우려먹는 할리우드의 꼼수라고 치부하기에는 몹시 아까운 리메이크 기대작들을 모았다. 부디 차려놓은 밥상을 뒤엎는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

 

 

마이 페어 레이디
1964, 미국


사랑과 신분 상승이라는 2가지 로망을 버리지 못하는 로맨틱 드라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못해 싫어하는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가 친구와의 내기에 이기기 위해 거리에서 꽃을 파는 일라이저 두리틀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존 매든 감독이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와 염려를 낳은 것은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일라이자 두리틀을 과연 누가 맡을 것인가였다. 감독은 영국 출신 여배우를 원했다는데, 원작에서처럼 사투리가 심한 두리틀이 “스페인에서 비는 평야에만 내린다”는 문장을 귀족식 영어로 구사할 때까지 발음 교정을 받는 장면이 들어갈 모양이다. 몇 차례 노래 연습도 했다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하차한 후 제2의 오드리 헵번이라 불리는 캐리 멀리건이 수식어에 걸맞은 자리를 꿰찼고, 히긴스 교수 역에는 휴 그랜트가 물망에 오른 상태다. 그나저나 이 영화의 1990년대식 변주가 <귀여운 여인>이었으니, 과연 21세기에는 거리에서 방황하는 하층 여성의 직업을 무엇으로 설정할지도 궁금하다.
2012년 개봉 예정.


혹성탈출
1968~1973, 미국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숭이가 인간을 다스리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혹성탈출>은 자그마치 5부작이다. 2001년 팀 버튼이 만든 리메이크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 건지 이십세기폭스는 <혹성탈출>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혹성탈출: 유인원의 반란(Rise of The Aps)>을 선보인다. 고양이와 개가 전멸한 1991년 북미 대륙을 배경으로 어떻게 인간이 유인원의 지배를 받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인 <혹성탈출 4: 노예들의 반란>을 토대로 한다고.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생각하며 백신 개발에 매달린 유전공학자와 그로 인해 지능이 발달한 원숭이 시저가 등장하는데, 무엇보다 탁월한 원숭이 캐스팅은 시저 역을 맡은 앤디 서키스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연기한 배우 말이다. 청바지를 입은 제임스 프랭코(유전공학자)와 프리다 핀토(영장류 학자 캐롤린 역) 옆에 모션 캡처를 위한 수트를 입고 캐릭터에 몰입한 그의 사진이 최근 공개됐는데, 3년째 재수 없는 사람도 웃게 만들 정도다. 2011년 6월 24일 개봉 예정. 

 

렛 미 인
2008, 스웨덴


<렛 미 인>은 여러 면에서 색다른 뱀파이어 로맨스를 보여주는 영화다.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잘 씻지 않는 뱀파이어 소녀(이엘리)가, 화장실에서 얻어터지는 것이 주요 일과인 왕따 소년(오스칼)을 지켜준다는 설정부터 그렇다. 또한 인간과의 사랑을 위해 피를 빨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남자 뱀파이어와 달리, <렛 미 인>의 이엘리는 배고픈 걸 싫어해 동네 사람을 여럿 잡았다. 물론 이엘리와의 사랑을 위해 너무 이른 나이에 가출까지 하는 오스칼을 보면, 뱀파이어를 향한 사랑은 하나같이 유난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주인공 나이보다 관람객 나이가 더 높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슬픈 사랑의 묘한 엔딩에 끌린 건지 맷 리브스 감독은 <클로버필드>의 속편 제작에 앞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대체 몇 백 년을 산 건지 세상 다 산 듯한 표정의 소녀는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 고든-레빗의 카운슬러인 여동생이자 <킥 애스: 영웅의 탄생>에서 ‘힛 걸’을 연기한 클로이 모레츠가, 창백한 피부에 짧게 자른 앞머리가 잘 어울려야만 하는 소년은 <더 로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코디 스밋-맥피가 맡았다. 10월 1일 미국 개봉.

 

카우보이 비밥_천국의 문
2001, 일본

톡 까놓고 말해 키아누 리브스에서 김이 살짝 샌다. 2071년 태양계를 무대로 ‘비밥호’라는 배를 타고 다니며 현상금 사냥을 하는 스파이크 스피겔은 그보다는 훨씬 젊어야 하니까 말이다. 서부극과 SF 영화를 합쳐놓은 듯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에 매료된 것은 이해하고도 남지만, <매트릭스>에서 인류를 구원할 영웅 ‘네오’로 등장한 지 10년도 더 된 그가 아닌가. 하지만 <나쁜 녀석들 3>의 각본을 쓴 피터 크레이그와 함께 각색 작업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이는 그를 막을 방법은 웬만해선 없어 보인다. 극장판 영화에서는 TV에 방영된 에피소드 중 핼러윈을 앞두고 벌어진 탱크 폭발 사고의 테러리스트를 쫓는 이야기만을 보여줬는데,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는 이 실사 영화에서 방대한 스토리를 얼마만큼 보여줄지는 아직 미정인 상태. 원작 제작진이 이 프로젝트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으니, 칸노 요코만큼 극적이고 아름다운 OST를 책임질 음악 감독을 구하는 일이 더 시급해 보인다. 2011년 개봉 예정.


안소니 짐머
2005, 프랑스


이 영화를 보고 분통을 터트린 사람들의 불만은 하나같다. 바로 예상 가능한 반전. 전체적인 성형을 해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는 돈세탁의 대가 안소니 짐머가 대체 누구인지, 그를 쫓고 있는 국제 경찰과 의문의 조직, 옛 애인 키아라(소피 마르소 분)는 몰라도 웬만한 관객은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 다 알아차릴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그녀가 유혹하는 번역가 프랑수아의 심한 짝짝이 쌍꺼풀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릴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삶>을 연출한 플로리아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그 역할을 조니 뎁에게 준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그를 유혹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스파이가 안젤리나 졸리라니 캐스팅부터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관광객(<투어리스트>)’이라는 다소 뜬구름 잡는 제목으로 반전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덜어낸 이 영화의 각본은 <유주얼 서스펙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매쿼리가 맡았다.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가 완성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내년 최고의 반전이 될 것이다. 2011년 상반기 개봉 예정.

 

진정한 용기
1969, 미국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남자, 존 웨인의 대표작 <진정한 용기(True Grit)>는 국내에서 <용기 있는 추적>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친 원수를 찾아 나선 딸 마티 로스의 나이가 심하게 어렸기 때문에 나온 제목 같은데, 아무리 서부 시대의 독립심 강한 소녀라지만 고작 14세에 복수를 실행하다니 뒤로 넘어갈 만한 용기다. 이 말도 안 되는 복수를 가능하게 만든 조력자는 주정뱅이 애꾸눈 보안관 루스터 커그번(존 웨인 분), 살인 사건으로 같은 인물을 찾고 있는 텍사스 보안관 라 비프. 존 웨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서부 영화의 고전이지만, 영화의 리메이크에 나선 코엔 형제는 어린 시절 자신들이 열광한 것은 영화가 아닌 찰스 포티스의 동명 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올해 <크레이지 하트>로 존 웨인만큼이나 늦게 아카데미의 한을 푼 제프 브리지스가 루스터 커그번을 맡았고, 맷 데이먼은 글렌 캠벨이 연기했던 라 비프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탁월한 사격 솜씨를 보여준 배리 페퍼는 자신과 성이 같은 갱단의 두목 네드 페퍼를 연기한다. 12월 25일 미국 개봉. 

 

폭풍의 언덕
1939,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은 필독서였던 <폭풍의 언덕>은 매회 운명의 장난이 넘쳐나는 ‘막장 드라마’에 적응하도록 면역력을 키워줬다. 요크셔 명문가 집안의 딸 캐서린이 아버지가 데려온 가여운 집시 소년 히스클리프와 한집에서 성장하며 사랑에 빠지는 것부터 아침저녁에 하는 일일 드라마 소재로 익숙하다. 마음과 달리 명문가 집안의 에드거와 결혼한 캐서린에게 상처 받고 떠난 히스클리프가 훗날 부유해져 돌아와서 하는 일은, 에드거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이고 말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을 윌리엄 와일러가 영화로 만든 이후 줄리엣 비노쉬와 랄프 파인즈가 출연한 1992년 작품을 비롯해 영화와 TV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횟수만 10여 차례. 이 정도 되니 나탈리 포트먼이 캐서린을 연기한다는 소식에 식상하다는 반응이 없지 않았는데, 올해 초 카야 스코델라리오로 캐스팅이 바뀌었다. <스킨스>의 에피가 허리를 졸라맨 시대극 드레스를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시도다.
2011년 개봉 예정.

 

스필버그, 대체 무슨 일이죠?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고 떠들썩하더니 어느새 잠잠해진 영화들

 

 

<하비>(1950)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영화로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거대 토끼 이름이 ‘하비’다. 주인공 엘우드 P. 다우드 역을 톰 행크스와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차례로 포기한 후 본인도 감독 자리를 포기했다. 

 

 

<올드보이>(2003)
미국 네티즌이 최민식의 사진에 윌 스미스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합성한 포스터로 스필버그와 윌 스미스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걸 반대하는 운동까지 벌였는데, 좀 허무하게 끝났다.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판권 확보를 못해 제작이 중단된 것.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두 거물의 망신스러운 일로 기억될 듯하다.

 

 

 

<환생>(2003)
그리워해준 사람들 앞에 환생해 나타난 사람들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직접 감상한 후 리메이크 판권을 획득했다. 덕분에 그가 직접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사화됐고, 원작의 주인공 초난강(구사나기 쓰요시)은 그 소식에 무척 감동스러워했다. 그게 벌써 2년 전. <글래디에이터>의 윌리엄 니콜슨에서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브루스 조엘 루빈으로 각본가가 바뀐 후 소식이 없다.


 

 

Credit Info

201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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