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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쇼핑 전기

On June 25, 2010 0

그래 봤자 성공 아니면 실패가 해외 쇼핑의 전부라지만 여기 4명의 이야기는 좀 재밌다.

+ new york good
모두가 그렇듯 나는 해외 쇼핑에서 나만의 아이템과 레어 아이템 찾기에 집착한다. 그리고 해외 쇼핑의 성공은 전적으로 이런 아이템을 얼마나 싸게 샀느냐에 달렸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뉴욕은 내게 최고의 승률을 안겨준 곳이다. 한 달이라는 긴 여행 기간은 여행객 쇼핑 특유의 섣부른 판단도, 폭 좁은 가격 비교도 방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뉴욕 땅을 밟은 지 이틀 만에 발견한 ‘Century 21’에서의 일이다. 처음 들어섰을 때 1990년대에나 입었을 법한 아이다스와 나이키 티셔츠로 꽉꽉 채워진 광경을 보며 ‘괜히 왔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둘러나 보자고 올라간 2층 한구석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국내에서 1백 번도 넘게 고민하며 쓸쓸히 돌아서야 했던 마틴 마르지엘라의 화이트 파워 숄더 재킷을. 믿을 수 없게도 딱 한 장, 그것도 딱 내 사이즈에 단돈 30만원으로 말이다.
‘아, 이런 게 바로 운명이구나.’ 싶었다. 이후 다른 매장을 돌며 커다란 쇼핑백 2개를 가득 채워, 여행 자금의 2/3를 탕진했지만 괜찮았다. 그 재킷은 남은 여행의 배고픔을 말끔히 씻어줄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사실 고백하자면, 지금도 그 재킷을 입고 있노라면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눈 씻고 찾아봐도 내 주변에서 그 재킷만큼 성공적인 가격의 쇼핑기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더 이상 행복할 수는 없다. 노승미(주얼리 디자이너)


+ new york bad
국내에서는 아닌데 꼭 외국만 나가면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난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얼굴은 또 왜 이렇게 큰 걸까’ 등등. 늘씬하고 하얀 외국 애들 앞에서 괜히 부모님을 원망한다. 그건 추운 날씨에 장사 없다며 차려입은 여행자 패션 탓도 크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외국 가서 첫 번째로 산 아이템은 언제나 실패였다. 빨리 여행자 티를 벗으려는 무분별한 욕망의 발로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수아 오종 영화에 나올 법한 예쁜 애들이 점원이라면 잘못된 쇼핑은 극한으로 내달리기 일쑤다. “예뻐요” 한마디에 산 아이템만으로도 모마(moma) 전시가 가능할 정도다. 뉴욕에 갔으니 아이비 리그에 다니는 애들이 입을 법한 건강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옷을 사와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 랄프 로렌이 대학생을 위해 만들었다는 ‘폴로 럭비’ 라인이라니, 난 여기서 뭐 하나는 기필코 사가겠다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국내에서 구매 대행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희소성도 구매욕에 불을 댕겼다. 하지만 뭘 입어봐도 바보 같았다. 야구 점퍼는 짧았고 면바지는 엉거주춤한 라인을 드러냈다. 하지만 점원이 입은 파란색 보이스카우트 셔츠는 그런대로 괜찮았다(솔직히 목은 짧아 보였고 길이는 드레스처럼 길었다는 게 나중에 내가 내린 이성적 분석이다). 점원과 눈웃음을 교환한 뒤 나는 계산대로 향했다. 결과는? 오늘 가격표를 뗐다. 입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정비소에서 일하는 애처럼 보인다. 나지언(<나일론> 피처 디렉터)


+ london good
런던 쇼핑의 정석은 누가 뭐래도 백화점이라고? 사실이다. 셀프리지·리버티·해로드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이 백화점들은 디자이너의 특성에 맞춰 그룹핑이 잘 돼 있어 쇼핑하기에 편하고, 다양하고 재미난 셀렉션이 돋보인다. 물론 런던 쇼핑 초보자라면 ‘닥치고 백화점!’이 맞겠지만 런던에서 활동한 내게 백화점보다 나은 쇼핑 스폿은 그리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디자이너 셀렉트 숍과 개성 강한 부티크들이 그것. 즐겨 찾던 숍으로는 도버스트리트 마켓, 비스토어(b-store), 브라운스(browns), 스타트(start), 코콘투자이(ktz), 마이 슈가랜드(my sugarland) 등이 있다. 이곳들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건진 수확 중에 아직도 레전드로 남아 있는 건 코콘투자이에서의 쇼핑. 컬러풀하고 강한 그래픽의 아이템으로 가득한 이곳은 최근 국내 스타일리스트들이 많이 찾는 곳. 2NE1식 스타일이 유행하기 전 언젠가, 나는 숍에 들어서자마자 청키한 네크리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크고 화려한 네크리스를 목에 걸고 다니는 이는 런던에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쇼핑은 나에게 모험과도 같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걸쳤느냐고? 웬걸. 골드와 화이트, 블랙의 커다란 구슬이 연결된 그 네크리스는 최근 이효리가 뮤직 비디오에 하고 나와 화제가 되었다. 이보다 더 희소가치가 높을 수 있을까? Yoni P(스티브제이앤요니피 디자이너)


+ london bad
언젠가 런던에 갔을 때 잊고 싶은 추억이다. 여행 목적은 잊어버린 채 오직 쇼핑만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쇼핑백은 가득 찼고, 총알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핑계는 충분했다.
‘이런 브랜드는 절대 서울에선 못 사잖아’에서부터 ‘와! 이 브랜드가 이렇게 저렴했어?’까지. 해로드·리버티 백화점 등 고급 쇼핑 플레이스와 톱숍처럼 대중적인 스토어를 두루두루 섭렵했다. 차라리 좋아하던 셜록 홈스가 살았던 베이커가에 가서 추억이나 쌓을 것을. 어쨌든 런던 쇼핑기의 최대 실수는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들른 COS 매장에서 벌어졌다. 비행기 시간에 쫓겼는지, 평소 군침을 삼키던 아이템이어서 였는지 난 바보 같은 일을 저질러버렸다. 클래식한 장화 ‘헌터’가 노련한 ‘시티헌터’인 나를 사냥해버린 것.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헌터는 소수만 아는 숨은 보물이었다. 헌터 장화를 보는 순간 내 소유욕은 치솟았다. 당시 한화로 10만원 미만의 합리적인 가격도 한몫했다. 내 발 치수보다 큰 290mm 사이즈에 칙칙한 국방색이라는 문제는 당시 눈이 뒤집힌 내게 ‘돈 케어’였다. 그렇게 함께 간 친구에게 융자한 뒤 손에 넣은 헌터 장화. 결론적으로 난 그 장화를 신을 수 없었다. 너무 컸고, 그해 우리나라에선 장마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아버지의 낚시용 장화로 전락했고, 그나마 아버지의 작은 발에는 너무나 거대했기에 진흙탕에 박혀 한 짝을 잃어버렸다.
김현태(<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코리아> 패션 디렉터)


- 에디터 : 최유진
- 일러스트 : 홍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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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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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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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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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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