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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에덴의 동쪽>

On October 28, 2008 1

“아니요.”보다 “예.”를 잘하고, “싫어요.”보다 “좋아요.”를 잘하는 이연희는 비정상적인 유전자 덕분에 손바닥을 햇빛 가리개로 쓸 수 있을 만한 작은 얼굴과 사람인지 학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긴 팔과 다리를 갖고 태어났다. 네안데르탈인도, 스키니 진을 입은 21세기형 청년도 마다하지 않는 남자의 로망, 그러니까 ‘예쁘고 착한’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못 믿겠다고?

우리는 두 번째 만났다. 겨우 7개월 만이다. 그때 이연희는 옴니버스 영화 <내사랑>을 홍보하느라 전국을 돌며 관객에게 인사하던 차여서 숨을 헐떡거리며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작품만 달랐지 이번에도 상황은 똑같다. “중간고사를 치른 것도 아닌데 집에 오면 그냥 뻗어버려요. 제가 좀 덜 바쁘면 차도 마시면서 편하게 얘기하면 좋을 텐데요….” 바쁜 사람이 안 바쁜 사람에게 결코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닌데 기죽은 강아지 꼬리처럼 말끝을 흐린다. “그때 우리가 나눈 마지막 얘기 기억나요? ‘스물일곱이 되면 남들이 이연희 정말 최고지,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어요. 우린 그때 다시 만나기로 했고요.” “아, 기억나요. 너무 빨리 만났네요. 저 아직 그때랑 똑같아요. 최고가 되기엔 한참 멀었는데 어휴 어쩌죠?”

하지만 이연희는 그새 많은 걸 해치웠다. 장진 사단의 지휘 아래 배우 소지섭과 상업성 단편영화 <유턴>을 찍었고, 유지태와 함께 출연한 강풀 원작 <순정만화>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으며, 지금은 남녀노소 TV 앞에 똬리를 틀게 만드는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촬영 중이다. 구미가 당길 만한 요소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넣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만든 드라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을 달군다. 이연희도 예외는 아니다. 귀담아들을 얘기도 있고 들으나마나 한 얘기도 있다. “전 지금 생애 두 번째 위기를 맞고 있어요.”


이너로 입은 블랙 슬립은 91만원 스텔라 매카트니, 멀티 컬러 라이닝의 시폰 원피스는 1백5만원 드리스 반 노튼, 블랙 스타킹은 3만8천원 플라스틱 아일랜드, 옷핀이 달린 위트 있는 플랫 슈즈는 21만4천원 포틴 데이비드.

‘원더걸스’의 선예가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갈고닦은 칼이 수없이 많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이연희도 아마 한 다스는 될 거다. 친언니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1학년 때 연예인 오디션에 응모했다가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춤, 노래, 연기, 발성 등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훈련을 톡톡히 받았다(아무래도 기획사가 칼을 뽑을 날을 기다리며 꼭꼭 숨겨놓은 게 아니었을까). ‘소녀시대’가 될 뻔도 했지만(이연희는 ‘소녀시대’와 같은 소속사다) 무대에 서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내 연기를 보고 누군가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연기를 택했다. 얼떨결에 하게 됐지만 하고 나니 재미있다. 엎드려 배우는 데는 타고나서, 무릎이 까지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연습했다. 언니, 친구, 식구 할 것 없이 그녀의 몇 안 되는 인맥은 연기의 조언자로 써먹었다. 화면이 실제보다 1.5배로 확대돼서 보이는 걸 미리부터 알았던 그녀는-원체 말랐지만-여배우라면 연기도 잘해야 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도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카키 컬러의 저지 소재 집업 재킷과 롱 원피스는 가격미정 릭 오웬 바이 G. 스트리트 494, 그레이 컬러의 니트 레깅스는 가격미정 모스키노, 플랫 슈즈는 10만원대 프렌치솔 런던솔.

러그 디테일 재킷은 70만원대 알렉산더 왕 바이 디테일, 패턴 스카프는 가격미정 루이까또즈.

그럼에도 그녀는 아찔하고도 처절한 신고식을 치렀다. 징징거릴 겨를도 없었다. “드라마 <해신>에서 수애의 어린 시절을 맡았어요. 몇 장면 안 나오는데 사극이라 까다로울 것 같아 6개월 전부터 대본 받아 들고 만날 연습했어요. 그런데 호랑이 같은 감독님에게 늘 깨지기만 하는 거예요. 선배님들 식사하러 간 사이 밥도 못 먹고 감독님이랑 연습했죠. 감독님은 저 때문에 밥도 못 드시고…. 아역이기에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올라요. 제 첫 번째 위기였습니다.” ‘이참에 때려치워?’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지만 연예인 되는 걸 유일하게 말린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소속사에 들어갈 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거기 들어간다고 해서 다 연예인이 되는 게 아니니까 일단 즐겨봐라.’ 어디 한번 즐겨보자 했어요.”


그리고 줄줄이 영화를 찍었다. 누구누구의 아역, 누구누구의 친구(의 친구), 누구누구의 여동생, 회상 신에 뒷모습만 잠깐 나오는 누구누구의 죽은 옛 연인도 아니었다. “너 그 장면 생각 안 나?” 애써 떠올리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그녀의 첫 영화는 <백만장자의 첫사랑>, 두 번째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 세 번째 영화는 <내 사랑>이다. 모두 주인공이고 심지어 상대 배우는 현빈, 강동원, 정일우다. “은 감독님이 워낙 독특하셔서 감독님의 지시대로 움직이다 영화 중반부터 차차 의사소통을 시작한 거고, <내 사랑>은 이한 감독님이 처음부터 날 믿고 맡겨줬지요. 하지만 늘 그렇듯 작품 초반에는 하도 긴장해서 잠도 잘 못 자고 소화도 잘 못 시켜요. 살도 많이 빠지고요. 대본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지만 주인공에 대한 부담을 떨쳐낼 방도가 없었어요. 근데 신기한 건 현장에 가면 이상하게 긴장이 풀리는 거예요. 내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웅성대고 저쪽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지만 지금은 흠, 너무 힘든걸요.”


다크 그레이 컬러의 울 소재 상의는 1백 27만원 마크 제이콥스, 부드러운 새틴 턱으로 디테일을 더한 슬림 원피스는 가격미정 베라 왕 바이 제이 로즈로코 뉴욕, 체인 네크리스는 가격미정 랑방, 플랫 슈즈는 10만원대 프렌치솔 런던솔.

독특한 커팅의 원피스는 가격미정 제로 마리아 바이 무이, 머리에 올린 깃털 소재 숄은 가격미정 샤넬.

뭔가 느낄 새도 없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이 힘겹고,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잘 알지 못하는 게 또 힘들다. 멜로드라마가 좋고 예쁘게 나오는 게 좋고 지금까지 보여준 말괄량이 고등학생 소녀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게 좋아서 선택한 작품이다. 홍콩 현장에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탓에 몸도 많이 지쳤다. 부산영화제도 개막식만 잠깐 보고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었다(그러고 보니 감기가 잔뜩 들어 종종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묻고 지우고 고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배운 대로 정석대로, 의사의 진료대로 약사의 처방대로 꼬박꼬박 지키는 데도 뭐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그게 뭔지 잘 몰라서 답답하다고 했다.


“내년 초까지 50부작 아닌가요?” “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지금도 중요해요.”
“인터넷 댓글 같은 거 읽어요?”
“안 읽어요. 절 아는 사람들이 제게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만 받아들여요. 남들이 뭐라는 거 다 신경 쓰고 살다간 이도저도 안 돼요.”
“자신이 중요하단 얘기죠?”
“물론이에요. 스스로가 중요하죠. 만족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찾아가는 중이에요. 마음을 아주 조금만 비울까봐요. 그래야겠죠?”
식어버린 스타벅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살짝 웃어 보인다. “충분히 즐기려고요.”


스물한 살이면 슬슬 밖으로 도는 나이다. 언니보다 친구가 좋고 집보다 예쁜 카페에 앉아 있는 게 더 좋은 시절. 시나리오를 볼 때도 한참을 앞서가는 것보다 또래가 알고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고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철난 맏딸처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운운하고, 첫사랑이나 풋풋한 사랑보다 아프고 생채기 나는 성숙한 사랑 역이 더 좋다.
“그런 면에서 <에덴의 동쪽>의 영란은 제가 하고 싶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인물이죠. 앗, 이 드라마보다 이제 막 크랭크업을 마친 <순정만화>를 먼저 보여드는 게 순서상 맞는데…. 거기서 유지태 아저씨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철부지 아이거든요. 제가 성숙하고 있는 걸 차례대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위기는 스포츠에만 있는 게 아닐 거다. 스스로 인정하는 두 번째 고비를 삼키고 난 뒤에는 더 단단해질 테니까. 역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볼륨 디자인의 니트 볼레로는 가격미정 제로 마리아 바이 무이, 니트 점프 수트는 2백 17만원 스텔라 멕카트니, 레인부치는 10만원대 나인 웨스트.

베이식 티셔츠는 2만 8천원 플라스틱 아일랜드, 니트 비딩 원피스는 90만원대 마틴 마르지엘라 6 바이 에크루.


- 에디터 : 이민정 (피처), 한연구 (패션)

- 사진 : 샐리 최
- 헤어 : 라영 (피오레)
- 메이크업 : 이은주 (피오레)
- 어시스턴트 : 송진숙

Credit Info

월간 나일론

디지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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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피처), 한연구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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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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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영 (피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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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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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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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피오레)
어시스턴트
송진숙

1 Comment

김아람 2009-01-22

우리엄마랑 비슷한나이라고 생가하니 카일리 미노그 정말 대단하네요.완벽한공연의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것 같아요,투병을 이겨냈으니 앞으로 건강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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