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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 갔을 때

On November 13, 2015 0

영화 종사자 5명이 경험한 영화제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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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칸영화제는 그 명성만큼 크고 화려하고, 날씨마저 빛난다. 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공식경쟁부문의 영화들이 낮부터 밤까지 수많은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공개되고, 해변에서는 매일 밤 파티가 벌어진다. 그야말로 화려한 영화 축제. 하지만 이 축제에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칸영화제는 관객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다. 영화 상영 대부분은 영화제 게스트 아이디인 배지 소지자, 혹은 해당 상영의 초대장을 가진 특별한 사람만 관람한다. 그래서 공식경쟁부문 영화들이 매일 상영되는 뤼미에르 극장 근처에는 언제나 초대장을 구하는 종이를 들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일반 관객이 즐비하다. 


그렇지만 영화 산업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이 거대하고 불친절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은 있다. 비싸고 번잡한 휴양지 칸 대신 프랑스 남부의 여유와 낭만이 있는 니스에 머물며 아침마다 해변가 기차 여행으로 칸에 이동할 수도 있으며, 영화 산업 관련자가 아닌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는 영화제 패스도 있다.
물론 이 패스는 가장 나중에 입장하는 꼬리칸 패스지만. 또 영화제 게스트들은 바빠서 발 한번 담그기조차 힘든 칸 해변에서 휴양지의 바다와 햇빛을 즐기다, 밤이 되면 그 해변의 벤치에 앉아 야외 상영을 봐도 좋다. 호텔 주변을 걷다가 길에서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를 만나는 행운은 덤. 그리고 조금만 축제의 중심지를 벗어나 예전 도심지로 가면 1백 년은 족히 넘은 로컬 레스토랑이 있고, 옛 도심에선 어디든 조금만 올라가면 바다와 도시 전체를 감상할 수도 있다. 영화 산업 관련자가 아니라면, 칸영화제는 영화를 중심으로 즐기기보다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로서, 그리고 그중 하나로 영화를 즐기는 것이 좋다. 일부러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니 프랑스 남부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칸영화제 시기(5월)에 맞춰 가면 좋을 것이다.

 

 _박혜진(영화 프로그래머)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매년 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북미 지역 최대의 다큐멘터리 축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가 다소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라면, 핫독스영화제는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한 행사다.

올해와 작년에 프로듀서로서 참가한 핫독스영화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다양한 관객층이다. 연령, 인종, 성별을 불문하고 수많은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토론토 시내 곳곳의 상영관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으며, 관객 수백 명을 수용하는 대형 상영관도 매진 사례를 이룬다. 다큐멘터리 전용 방송 채널이 있고, 1년 내내 다큐멘터리만 상영하는 전용 극장이 있을 정도로 이 장르는 캐나다 대중문화에 깊이 침투해 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현실의 창조적 처리’라는 유명한 말로 다큐멘터리를 정의한 스코틀랜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존 그리어슨이 1938년 캐나다 정부의 초청을 받아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캐나다 영화인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또 캐나다가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국가인 만큼 다큐멘터리는 수십 년 동안 각 이민자 집단이 자신들의 삶과 리얼리티를 표현하고 재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2015년 핫독스영화제 유료 관객은 사상 최대치인 20만 명을 돌파했는데, 토론토 인구가 6백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수치다. 그 이유는 핫독스영화제의 균형 잡힌 프로그래밍에 있다. 이 영화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를 북미 지역에 소개하는 관문이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을 조화시키는 데 기발한 감각을 발휘했다. 오락과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적 다큐멘터리,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교육적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많은 관객을 유인한다. 또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고, 예술적으로 전위에 나아간 실험적인 작품,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고전들도 상영함으로써 다큐멘터리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존중한다.
가령 올해 핫독스영화제에서는 <우유(Milk)>라는 제목의, 세계 6대륙 여성의 모유 수유와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아기용 분유 산업의 역학 관계를 비판적으로 탐색한 작품을 상영했는데, 상영이 끝난 뒤 관객 5백여 명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며 연출자인 노에미 바이스 감독과 출연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한편 프로페셔널 다큐멘터리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핫독스영화제는 동시대 다큐멘터리 산업에서 가장 앞선 트렌드를 파악하고 투자부터 배급까지 다양한 스킬을 습득하며, 전 세계 동료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는 강력하고 유익한 산업 전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빅토리아 대학에 자리한 ‘로저스 인더스트리 센터(Rogers Industry Center)’에서 열리는 수십 개의 세미나와 컨퍼런스, 이곳의 잔디밭에 설치된 하얀 텐트 안에서 열리는 오후 칵테일파티인 ‘해피 아워’는 늘 인파로 붐빈다. 20세기 초 보자르 고딕 양식으로 지은 고색창연한 저택인 ‘하트 하우스(Hart House)’에서 열리는 피칭 행사와 이곳의 아름다운 중정에서의 점심 식사, 토론토 시내 중심가 곳곳에 흩어진 바와 카페에서 매일 밤 열리는 파티를 경험하고 나면 1백만원에 가까운 아이디(ID) 패스 비용이 아깝지 않다. 아, 나는 내년에도 핫독스에 다시 가고 싶다.

 

 _한선희(<만신> <망원동 인공위성> 프로듀서)
 

 

예테보리국제영화제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는 예술과 문화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예테보리국제영화제는 북유럽 최대 영화제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상반기 유럽 영화제 중 스타트를 끊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와 2월 초에 열리는 독일 베를린영화제 사이에 개최하기 때문에 세 영화제를 둘러보며 특색을 비교할 수도 있다. 

작지만 아늑함에서는 그 어느 공항보다 가장 인상 깊은 란드베터 공항을 나서며 처음 맞이한 예테보리는 눈발이 흩날렸고 고요하고 어두웠다. 추위와 적막을 거쳐 찾아간 어느 소박한 건물은 상영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차가운 바깥 풍경과 대조를 이루며 왠지 귀여운 인상을 주었다.

한 번은 페리를 타고 조금 외진 곳에 자리한 상영관을 찾아가야 했다. 얼어붙은 강을 지나 눈 내린 한적한 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어디선가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 소녀가 나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 같은 상상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외침 따위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삼켜버릴 것처럼 어두운 고요의 공기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낄 때 왠지 무섭다기보다는 온전한 고독함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불현듯 <렛 미 인>도 공포보다는 고독을 더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저 멀리 붉은 네온사인이 여기가 영화제 상영관임을 알려왔다. 영화관보다는 독특한 구조의 소극장인 듯한 곳에서 스트린드베리의 실내극 같은 스웨덴 영화를 한 편 봤다. 주인공의 생일 파티에 모인 등장인물 각자의 모순과 불편한 진실을 건조한 유머로 그린 코미디 영화였는데, 스웨덴에서 화제가 된 영화라지만 아마 예테보리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유럽 영화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이기에 영화제 성격이 짙은 작품 말고도 좀 더 상업적인 영화,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북유럽 영화를 마음껏 골라 볼 수 있었다. 온통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이야기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상영 중간중간 예쁜 골목 속 아담한 카페에 들러 향긋한 시나몬롤에 따끈한 핫초코를 곁들여 몸과 마음을 녹인 뒤 다시 어둠 속을 헤치면 나만의 보석을 발견한 듯한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_이정은(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해외팀) 

 


정동진영화제 

많은 영화제 속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제가 있다. 바로 ‘정동진영화제’다. 그야말로 무공해 자연 힐링 영화제다. 영화제 하면 치열한 예매 전쟁에서 선점한 영화를 하루 종일 너덧 편씩 보고 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영화제도 있지만, 영화뿐이 아닌 그곳의 자연과 함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호흡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제도 있는 것이다. 6년 전 처음 정동진영화제에 참여했을 때의 낯설지만 정겨운 영화제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영화제에 참가하는 관객은 모두가 앙증맞은 레드 카펫의 주인공이 되며 친절한 영화제 스태프들이 모기 퇴치를 위해 직접 쑥을 베어 모깃불을 피우고, 운이 좋으면 모기장 텐트에 돗자리와 뻥튀기까지 제공되는 로열석에서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국내 유일의 관객 직접 참여상인 땡그랑 동전시상식이다. 본인이 지지하는 영화 깡통에 동전을 넣으면 그 동전 개수로 순위가 결정되고, 그날 모인 모든 동전을 수상한 감독에게 수여한다. 내가 지지하는 영화를 응원하며 어린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동전을 흔쾌히 투척하는 모습과 ‘땡그랑땡그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교내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밤 풍경은 훈훈함 그 자체다.


 17년 동안 변함없이 관객과의 친근함을 유지한 덕분인지 매년 영화제를 능숙하게 즐기는 관람객이 많아지고 있다. 낮에는 근처 바닷가에서 눈에 익은 독립 영화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과 눈인사를 하거나 물놀이와 모래찜을 하며 한낮을 바다에서 즐기다가 허기질 땐 바닷가에서 짜장면도 시켜 먹는 풍경 또한 정겹다. 또 독립 영화 감독과 스태프가 셰프로 참여해, 직접 재료를 구입해서 만들어주는 집밥의 맛은 백문이 불여일식이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다음 해가 기다려지는 영화제다.

 

_강주희(아트나인 이사)
 

 

해외 영화제  

어느 순간부터 관객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 영화제를 다니게 되었다. 새로운 영화를 보게 되는 ‘설렘’보다는 과연 관객이 내 영화를 좋아하게 될까 하는 ‘긴장’이 훨씬 더 앞서게 됐다. 그게 국내 영화제가 되었든, 해외 영화제가 되었든 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매번 극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떨림 속에서 담배를 줄창 피우곤 한다. 

해외 영화제가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활력소다. 나처럼 호주머니에 구멍난 가난뱅이가 자비를 들여 해외에 갈 일이 어디 있겠나. 칸, 베를린, 베니스 같은 도시를 영화제를 핑계로 공짜 여행을 하고 다닌다. 


영화제 파티나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내 영화의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빼고는 대부분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가난뱅이 감독에게 주어진 절호의 여행 찬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도시는 이야기책이며 걷기라는 언어로만 해독 가능하다”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관광 코스가 아니라 그 도시의 시장통, 할렘가, 공원 등지를 닥치는 대로 다니면서 그 도시의 이미지를 두 눈 속에 채집하곤 한다.
영화제는 국내든 해외든 규모와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 정도에 따라 그 형식이 조금씩 변주될 뿐 ‘영화와 관객의 만남’이라는 불가역적인 상수를 지닌 축제다. 나처럼 바짝 겁먹은 감독들이 세상에 내놓는 새로운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설렘’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제에 간다는 것’의 차이는 축제에 자신을 참여시킨다는 설렘일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영화’ ‘술’, 그리고 ‘수다’가 영화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3대 요소겠다.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영화 상영 후에 열리는 감독과의 대화에 꼭 참여하라. 그리고 극장에서 나와 친구들과 그 지역 맛집에서 술을 마셔라. 마지막으로 영화를 시간 속에 흘려보내지 말고, 욕을 하든 찬사를 보내든 맘껏 그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어라. 그러면 이미 당신은 충분히 영화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_이송희일(영화감독)  

영화 종사자 5명이 경험한 영화제에 대한 단상.

Credit Info

EDITOR
PARK UI RYUNG
DESIGNER
NAM SANG HYUK

2015년 10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PARK UI RYUNG
DESIGNER
NAM SANG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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