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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컴백 열전

On September 09, 2015 0

이름값 톡톡히 하는 배우들이 혹평도 뛰어넘을 각오로 새로운 판에 뛰어들었다.

미세스캅 : 김희애

“40대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남편을 빼앗기거나 헌신적인 엄마가 되는 거죠.” 김희애는 <미세스캅> 기자 회견에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열망에 상응하듯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무던하게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 그간 JTBC에서 안판석·정성주 사단과 함께한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에는 (정작 그녀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영철이 희화화하던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대사를 칠 때나 고개를 돌릴 때는 그녀 특유의 쉼이 들어가 있었고, 눈빛과 목소리에서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느껴졌다.

<미세스캅>의 최영신은 인간적이고 소박하면서 본능적이다. 범인이 나타날 만한 곳을 누구보다 빨리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움직이는 강력반 팀장이면서 집에 가면 돌봐주지 못하는 딸아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엄마가 된다. 다만, <밀회>의 오혜원이 아니라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범인에게 목이 갈라지도록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 김희애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다.

이 낯섦에 익숙해지려면 이 드라마가 여형사를 감정에 치우친 여린 여자나 자식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워킹맘으로 그리던 기존 수사물에서 벗어난 전개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암살 : 전지현

전지현은 오랜만에 새 옷을 입었다. 새롭게 단장한 모습은 극이 끝나고도 강렬하게 남는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떨어져 살던 일란성 쌍둥이 자매를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모습은 같지만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자매의 얼굴에는 <도둑들>의 예니콜과 <베를린>의 련정희도 스친다. 하지만 그녀가 전작에서 보여주던 어떤 것보다 묵직한 흐름이 읽힌다.

“그런다고 독립이 될 것 같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두고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그녀에게 묻는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허공을 바라보며 스스로 되뇌던 그녀의 동공과 어조에서 모든 것이 판가름난다. 관객을 실망시킨 적 없는 쟁쟁한 남자 배우들 틈바구니에서도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지. 예의 모습과 다르지만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극 중에서 베레모를 쓰고 허리선이 들어간 코트를 입은 모습과 클래식한 웨딩드레스를 걸치고 총격 신을 펼치는 장면을 목도한 관객은 포털사이트에 ‘전지현 베레’ ‘전지현 코트’ ‘전지현 드레스’라는 연관 검색어를 만들어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배우이자 스타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배우가 연기력으로 또 한 번 주목받는 것이 얼마나 희소가치 있는지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암살 : 이정재

최동훈 감독의 화면 안에서 이정재는 또 한 번 ‘나쁜 놈’이 되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2012년의 <신세계>를 기점으로 <도둑들> <관상> <빅매치>까지 40대 거친 남자의 폭발적인 매력을 관철시켰다. <암살>에서 그는 독립 운동을 하다 변심한 스파이 염석진이 되었다.

근 몇 년간 보여준 그의 강렬한 연기력과 카리스마만으로도 이번 작품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고,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밤낮없이 쫓기면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염석진이 되기 위해 15kg을 감량했고, 꼬박 이틀을 새우고 촬영에 들어가는 노력을 쏟았다. 극이 끝나갈 무렵, 법정에서 천연덕스럽게 옷을 벗으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것처럼 결백을 주장할 때는 영화 <에비에이터>의 광기 어린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연상되었다. 그럼에도 예기치 않게 뜨거운 냄비에 손을 댄 것처럼 놀라웠던 전작에서의 새로움은 없었다.

반복적인 인상에는 팔짱으로 응수하는 냉정한 관객에게 그는 이제 또다시 신세계를 만들어서 보여줘야 할 시기가 아닐까.

베테랑 : 유아인

그간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밋밋한 적이 없다. 위태로운 ‘패션왕’이었고, 스승을 사랑한 어린 ‘피아니스트’,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외톨이’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치명적인 불안함을 안고 있다. 둘째 부인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재벌가의 막내아들 조태오. 아버지 말고는 어떤 것도 무섭지 않은 그는 모든 사람을 놀잇감처럼 만든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때리고, 격투 상대가 되어준 경호원의 발을 부러뜨리고, 사무실을 찾아온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와 관리 소장에게 글러브를 던지면서 결투하게 만든다. 자신 말고는 그 어떤 사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적인 모습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심지어 번들거리는 얼굴에서 입가의 근육을 조금씩 올리면서 사람을 조롱할 때는 몸이 떨릴 만큼 무섭다.

조태오는 유아인이 배우 생활에서 처음으로 맡은 악역이다. 외줄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등장하던 그가 첫 악역을 맡았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인지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연기를 잘한다는 표현은 빈 공간보다 작은 퍼즐 조각을 들이대는 것 같다.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혼동하게 하는 그의 표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베테랑 : 황정민

황정민의 스펙트럼은 한 편에서 반대로 넘어가는 무지갯빛 용수철처럼 넓다. 우직한 아버지, 한 여자밖에 모르는 바보, 어리바리한 정치인,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섬뜩한 깡패. 그럼에도 사람들은 황정민에게 따뜻하고 정의로운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의로운 형사 서도철은 황정민을 위해 잘 차려둔 밥상 같다. 불의를 못 참는 서도철에 어울리는 배우는 많겠지만, 황정민이 표현하는 서도철만큼 응원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재벌이라는 견고한 계급의 범인을 넘어뜨리기에 앞서서 그는 멈춰서지 않는다. 승진에 목을 매면서도 득 될 것 하나 없는 범행 검거 현장에 끝끝내 오고 마는 극 중 오 팀장(오달수 분)의 심정이 관객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자본에 굴복한 관할서 형사들에게 뱉는 일침을 듣고서도 이 구수한 아저씨를 지지하지 않기란 힘들다. 개봉 3일 만에 관객 132만 명을 넘어선 <베테랑>은 계속해서 흥행 가도를 달린다면 시리즈물로 나올 계획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숱하게 터지면서도 포기를 모르는 서도철이 좀 늙어 있을 거다. 하지만 사건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여전히 타협 않는 ‘꼴통’일 것 같다. 대책 없는 세상에서 이런 사람은 희망이니까.

어셈블리 : 정재영

KBS2 드라마 <어셈블리>는 정재영이 데뷔한 지 20년 만에 처음 출연하는 드라마다. 그가 연기하는 진상필은 용접공으로 20년 넘게 일하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하고 3년 동안 복직 운동에만 몰두한다. 가슴은 뜨거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렇다고 불의를 보고 지나칠 줄 모르는 단순 무식하고 용감한 캐릭터 자체다.

아무 가능성도 희망도 없지만 우직하게 자기 길만 걸어가는 진상필은 정재영이 스크린 속에서 주로 하던 얼굴과 크게 다르진 않다. 고등학교 중퇴 이력을 가진 노동자가 당의 꼭두각시로 세워졌지만 민생에 대한 일념 하나로 고여 있는 물에 돌멩이를 던진다. 그럼에도 이 유토피아적인 발상이 시청자에게 먹히진 않았다.

회차가 계속될수록 하락하는 시청률의 이유를 이 작품 하나에만 둘 순 없지만 매주 제자리걸음을 하는 세태에서도 패기로 가득한 주인공에게 공감하기는 좀 힘들다. 첫 드라마 출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정재영의 호흡은 놀라웠지만, 대책 없이 열정적인 이 무식한 남자를 두 팔 벌려 응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름값 톡톡히 하는 배우들이 혹평도 뛰어넘을 각오로 새로운 판에 뛰어들었다.

Credit Info

EDITOR
KIM JI YOUNG
ILLUSTRATOR
TOR KIM WON MAN
DESIGNER
NAM SANG HYUK

2015년 09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KIM JI YOUNG
ILLUSTRATOR
TOR KIM WON MAN
DESIGNER
NAM SANG HY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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