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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얘기

On August 13, 2015 0

삶이 퍽퍽할수록 사람들은 먹는 것에 열광한다. 6인의 필자가 거창하거나 소박하거나, 맛있거나 맛없었던 한 끼에 대해 얘기했다.




멸치국수
나는 대화를 할 때 제스처나 맥락보다는 말의 메시지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음식에도 제법 비슷한 경향이 있다. 음식점이 어느 동네에 있는지 또는 누구와 함께 먹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효한 건 오직 이 음식이 내 입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다. 그러나 이런 천성에 가까운 고집에도 작은 예외가 있었다. 제대 후 첫 학기에 무슨 ‘공간’에 대한 에세이 같은 걸 내야 했던 적이 있다. 용산참사 현장에 대해 쓰려고 직접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대충 끼니를 때우려고 바로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철거된 지 오래지 않은 집창촌이었다. 그곳에서 ‘용산 성매매’라고 검색해보니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정확한 이름은 ‘막달레나 공동체’인데, 이옥정=막달레나 씨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조그마한 사회 단체는 그 구역의 성매매 여성을 모아 바자회를 열고, 임대 주택과 관련된 행정 처리를 해주는 일을 했다. 학대나 폭행의 굴레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이 단체의 최우선적인 업무다. 이들은 후원금과 일일바자회에서 차를 팔아 모은 돈으로 용산의 후미진 곳 어딘가에 음식점을 차렸다. 나는 이 ‘동고리’라는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남의 불행에서 무슨 냄새가 나나 킁킁거리는 것 같아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동네 국숫집이었다. 어쩐지 조심스레 문을 열게 되고, 괜스레 눈치 보듯 내부를 살펴보게 되고, 어딘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주문을 했더랬다. 그냥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밖은 겨울 초입인 데다 내 것이 분명한 멸치육수 냄새가 비릿하게 풍겼다.

우습게도 맛에 대해선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으로 국물을 들이켠 뒤 식탁에 그릇을 내려놓을 때의 소리 탓에 불편했던 기분이 다소 개운해진 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학업, 애정 전선, 가족 문제 등 전방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내게 아마 멸치국수가 바닥을 치고 올라와 다시 한번 삶과 부딪치는 사람들의 기운 같은 걸 전해준 거 같기도 하다. 그날은 결국 인터뷰를 하지 못한 통에 에세이는 다른 주제로 갈겨 내버렸다. 결과적으론 겨우 동네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하루를 온통 심각하게 보낸 셈이다. 그럼에도 하나 알게 된 게 있다면, 음식은 때론 음식 이외의 그 무엇이라는 것.
-뮤지션 이은후


파스타
어렸을 때만 해도 파스타는 스파게티로만 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 속 파스타는 스무 살 서울로 상경하면서 먹게 된 음식 중 하나였고, 최근에는 꽤 자주 찾게 되었다. 파스타 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도, 파스타 자체도 많은 종류와 소스가 있다는 걸 알아가면서 나름 재미도 느꼈다. 토마토소스의 긴 면발만 알고 있다가 더 넓고 맛있는 세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뭔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기쁨만큼 크다. 파스타는 먹는 방법도, 그 종류도 많은 만큼,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기도 하는 동시에 맛있는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집에서 쉬는 날이 거의 3~4달에 한 번꼴이어서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규칙 비슷한 걸 세워놓았다.

그때마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 재료를 동원해서 만들기 때문에 종류는 크림 파스타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일 확률이 백 퍼센트에 가깝지만, 나는 내가 만든 음식에 만족하는 편이다. 다른 요리도 아니고 왜 하필 파스타냐고 하면 따로 배우지 않아도 검색하면 레시피가 다 나올 만큼 생활과 가까운 음식이라서다. 그만큼 파스타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또 여럿이 함께 먹기도 하는 음식이다. 파스타를 투박한 요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파스타는 재료 하나, 비율 하나라는 디테일이 좌우하는 신기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메뉴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내 경우에는 잘 지내고 싶은 사람과 먹는 음식 중 하나로 파스타를 선택하는 편이다.

딱히 의미를 두는 건 아니지만, 특히 엄마와 식사할 때, 묘하게 계속 파스타를 선택하게 된다. 내겐 소소한 기억이 꽤 많다. 그만큼 내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음식이다. 나와 같은 이름의 유명한 프리랜서 기자, 칼럼니스트가 있기에 음식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묘하지만, 먹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니까.
-칼럼니스트 블록


야끼우동
일이 일찍 끝났는데 딱히 약속도 없는 날이면 저녁 끼니가 제일 걱정이다. 자취 생활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주특기 요리가 있다거나, 요리를 위한 재료를 사두는 것은 여전히 남 얘기다. 그렇지만 음식은 먹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음식남녀> <카모메 식당> 등의 영화부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아프리카 TV의 먹방까지 안 본 것이 없다. 이렇게 먹방이 등장하는 영화, 드라마를 전전하다 우연히 찾은 것이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행사 직원이자 30대 노처녀 희본은 남자친구와도 결별하고, 살은 찌고, 특별한 낙이 없는 삶을 산다.

그러나 매일 저녁 그녀가 만들어 먹는, 소소한 저녁 밥상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데, 왠지 유난히 먹음직해 보인다. 냉장고에 남은 야채로 만드는 굴소스 볶음밥이나, 어제 먹다 남은 치킨으로 만든 깐풍기, 생각보다 간단해 보이는 야끼우동까지…. 드라마를 보고 나면 ‘나도 한번’이란 생각과 함께 집 냉장고를 슬쩍 열어보게 됐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부터 굴소스는 내게 아무데나 넣어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소스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야끼우동이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지, 보고 난 다음 날부터 자꾸 그 맛을 상상했다. 퇴근길에 야채와 어묵, 우동 면과 마법 소스인 굴소스를 사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야채를 썰어 넣고 굴소스만 넣으면 끝날 줄 알았던 요리가 왠지 내 뜻대로 안 됐다. 싱거운 것 같아 굴소스를 더 넣을수록 소스가 졸아 프라이팬에 달라붙기만 하고 야채와 면발에는 하나도 간이 배지 않는 찝찝한 기분만 더해갔다. 대충 마무리하고 접시에 담은 야끼우동은 초등학생이 장난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버리기 아까워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다 먹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요리가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법의 소스라 여기던 굴소스는 그 이후 손도 대지 않은 채 부엌 찬장에 그대로 있다.
-프리랜스 에디터 이상희


낙지덮밥
2013년 여름, 뉴욕 브루클린의 이름 모를 어떤 외딴 골목. 나는 홀로 걷고 있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길 앞에서 내 다리는 그만 맥없이 풀려버렸다. 나는 브루클린의 끝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지역 신문사의 인턴이었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편집장은 뜬금없이 매주 8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Street Talk’라는 거리 인터뷰 미션을 부여했다. 당연히 쉬울 리가 없었다. 짧은 영어 실력, 사진 찍히길 원하지 않는 이들,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까지. 매일같이 머리가 하얘져 식은땀을 흘리기 일쑤였다. 그날 역시 그랬다.

몇 시간을 돌아다녔음에도 할당된 인원의 절반조차 채우지 못해 참담한 심정으로 길거리 벤치 위에 널브러져 행인의 움직임만 눈으로 좇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때가 훌쩍 지난 뒤라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동쳤다. 매일같이 KFC, 서브웨이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던 때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기름이 자르르하게 튀겨진 닭이나 차가운 치즈를 입에 무는 순간 허기진 마음이 그것을 받아내지 못하고 도로 뱉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가끔 스쳐 지나곤 했던 근처의 한식당이 떠올랐다. 이름 하여 ‘김치’.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직관적인 상호명이다. 아무튼 그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그저 주고받았을 뿐인데, 마음이 왜 그리도 안녕하던지. 고민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낙지덮밥, 그것도 최대한 맵게. 아예 땀으로 모든 걸 씻어낸 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충동이 나를 이끌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앞에 등장한 낙지덮밥의 비주얼은 너무나 친숙한 모습 그대로여서 나는 오히려 그 친숙함이 생경했다. 윤기가 흐르는 쌀알 위에 살포시 덮여 있는 불그스름한 양념장, 그리고 그 틈새에 오동통한 크기로 적당하게 자리 잡은 낙지 다리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알싸한 양념장 향이 코를 기분 좋게 간질였다. 신중하게 한 숟가락을 떠서 입 안에 재빨리 옮겨놓았다. 보들보들한 낙지 다리와 아삭한 상추, 그리고 싱싱한 콩나물이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밥알과 함께 요란하고 빠르게 어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 엄습하는 고춧가루의 매콤함. 혀를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짜릿하고 환상적인 매콤함! 나는 정신없이 숟가락을 떠서 덮밥을 입에 넣고, 또 매워서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또 먹기를 반복했다.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운 뒤에도 나는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강렬하고 아찔한 맛의 여운이 나를 놔주지 않은 탓이다. 영혼이 충만해지는 따뜻하고 푸근한 덮밥 한 그릇. 그렇게 나는 다시 힘을 얻고 거리를 향해 박차고 나아갈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을 진부한 대사들 중 하나로 넘겨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밥심이라는 단어의 위력을 그토록 강렬하게 체험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오늘 점심은 광화문에 있는 기가 막힌 낙지 전문점에서 해결해야겠다.
-PD 신재호


여행에서 우리가 먹은 맛없는 것들
여행에서 먹은 맛있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당신이 인생 최고의 스테이크를 먹다 접시에 떨어진 육즙을 얼마나 게걸스럽게 핥았는지, 상대방은 시큰둥할 뿐이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거다. “맛있었겠다.” 그러므로 나는 베를린에서 문어 파스타를 먹고 셰프에게 키스할 뻔한 일, 포틀랜드에서 트러플 오일 감자튀김을 먹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 울 뻔한 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야생 허브와 방어알 샐러드를 먹고 채식주의자가 될 뻔한 일을 얘기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먹은 끔찍한 음식에 대한 얘길 듣고 싶어 하니까.

어차피 여행은 맛없는 음식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나. 비행기 음식 말이다. 여행자는 언제나 배고프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다 신경 쇠약에 걸린 후로부터 한 세기나 지났지만 여행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우설을 못 먹어 안달인 내가 불가리아 소피아의 ‘알리바바’ 식당에서 우설 요리를 한 입 먹고 토할 뻔한 얘기를 한 적이 있던가?

아마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그럴 때 친구들은 자기도 당했다는 듯 프랑스에서 먹은 비둘기 요리, 핀란드에서 먹은 타이어 맛 젤리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여행에서 먹은 맛없는 것들은 여행, 혹은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모험의 본질과 같다. 그 끔찍하고 지독한 음식은 여행지를 급진적으로 기억하게 하고 삶을 농담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가끔 재수가 좋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우쭐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비트를 가득 넣어 진분홍색을 띠는 러시아 수프 보르쉬를 먹는데 육개장 맛이 떠올라 정신을 잃을 뻔했다. 어쩌면 이 한 번의 행운을 위해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음식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숟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나지언


스테이크
유인원이 살던 숲에 큰 불이 나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모두 불탔다. 이후 들판으로 나온 유인원은 주로 동물을 사냥해 먹기 시작했는데, 날것으로 먹던 고기를 우연히 발견한 불로 익혀 먹으며 인류 최초의 요리인 스테이크가 탄생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부터 거대했던 내장은 작아져 원활한 직립 보행이 가능해지고 늘어난 잉여 에너지는 뇌를 수천, 수만 배 이상 발달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엄청난 결과물은 어쩌면 모두 스테이크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제대로’ A스테이크를 먹고 있을까? 한국에서 스테이크는 대부분 소고기 스테이크를 말하고, 소개팅에서 남자들이 피하고 싶은 비싼 음식으로 인식된다. 특히 소고기 중 한우가 가장 비싼데, 이는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등급이 높고 값비싼 한우의 과도한 마케팅이 부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소고기가 유명한 다른 나라와 지역을 보면 과도한 마블링보다는 살코기 자체를 육질의 핵심 요소로 평가하는 곳이 많다. 우리가 마블링과 한우에 대한 막연한 칭송을 조금 내려놓으면 아마도 소개팅의 성공률이 조금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엄청나게 많은 맛집과 음식 레시피가 쏟아지는데 단맛, 짠맛, 매운맛, 모두 다 좋지만, 이번 주말에는 꼭 스테이크를 먹자. 어떤 맛집도, 좋은 등급도 필요 없이 4cm 이상으로 두툼하게 썬 육우를 동네 정육점에서 저렴하게 사서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뒤 집에 있는 팬에 올리브유와 버터를 넣고 강한 불에서 겉면을 바싹 익히자. 익은 스테이크를 잠시 식혀 큼지막하게 썰어 단 한 조각도 남기지 말고 온전히 다 먹는 것이다. 그러면 그 어떤 음식보다 오래전부터 우리를 구성하고 발전시킨 스테이크가 단단하지만 육즙이 가득하게 당신과 나를 회복시켜줄 것이다.
-요리사 권영인



EDITOR KANG YE SOL
DESIGNER JEONG HYE 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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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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