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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DROP

On July 20, 2015 0

디플로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우선 디플로라는 이름으로 마돈나의 바이럴 비디오를 만들었고, 비욘세에게 곡을 헌사했다. 또 메이저 레이저로 전 세계 페스티벌의 EDM 트렌드를 이끌었고, 애니메이션도 제작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더 매드 디센트라는 레이블의 수장이 되어 블록 파티라는 페스티벌까지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는 웨스 펜츠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신세계를 경험하려는 중이다.

디플로는 앉자마자 막 20세가 되었을 때, 친구와 함께 갠지스 강에 수영하러 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에서 수영을 하는데 갑자기 물살이 미친 듯이 빨라졌어요. 밖으로 헤엄쳐서 나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죠. 물에 떠내려가다 언덕 위에 있는 한 티베트 소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아이가 저희의 위급한 상황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더라고요.”

디플로의 생동감 넘치는 사연은 마치 존 어빙 작가의 소설 한 대목처럼 들렸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급류에 휘말려 한참을 떠내려가다 바위 위에 안착했다. 물을 토하며 몸을 겨우 끌어 올렸더니 바위에 긁힌 몸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10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느냐’고 묻자 그는 ‘그저 갠지스 강 너머의 자각몽 같았다’고 대답했다.

디플로가 히말라야 산맥에서 겪은 악몽 이후, 15년간 성취한 일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아직도 세상에 내보일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선셋 스트립의 넓고 쾌적한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면 갠지스 강의 피 묻은 돌은 도무지 연상하기 힘들었다. 벌키한 블랙 티셔츠를 입고 플리 플롭을 신었다는 것이 그때와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만 같다. 2015년만 해도 그렇다. 디플로는 스크릴 엑스와 함께 2월에 잭 Ü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다.

타이틀 곡은 카이자와 작업한 ‘Take Ü There’였고, 이어서 저스틴 비버와 ‘Where Are Ü Now’를 발표했다. 두 트랙은 유튜브 조회수를 무려 1만2천 뷰나 기록했다. 6월 1일에는 EDM 음악 활동 이름인 메이너 레이저로 세 번째 스튜디오 음반 을 공개했다. DJ 스네이크와 덴마크의 보컬리스트 MØ와 함께 작업한 ‘Lean On’은 심지어 엘리 굴딩의 버전으로도 발매되어 전 세계 댄스 파티 현장을 휩쓸었다.

FXX 채널의 심야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도미네이션 하이-데프(Animation Domination High-Def)>에서 방영하는 메이저 레이저 쇼도 있었다. 사이키델릭한 스타일의 카툰은 대마초에 빠진 사람들이 사는 행성에서나 볼 법한 야릇한 방송이었다. 곧이어 여름 내내 더 매드 디센트의 블록 파티를 열기 위해 북미 전역에 투어를 다녀왔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필라델피아의 작은 행사였지만, 이제는 19개 도시를 날려버리는 화려한 불꽃놀이 같은 성대한 행사가 되었다. 최근 발표한 음반 는 또 어떤가. 그의 역작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게 늘어놓자, 그는 케일 샐러드와 칠면조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럴 시간도 없고. ‘내가 마돈나와 작업을 했네, 케이티 페리 레코드와도 작업하다니!’ 이런 생각을 하다가는 해야 할 일을 다 놓쳐버릴 거예요.”

사람들은 개척 정신이 강한 그를 EDM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부른다. 백인 남자 한 사람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름을 알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정교하게 계산해서 추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걸어온 길은 본능에 가까웠고, 무한한 용기가 그에게 지구 10바퀴를 돌 수 있게 해줬다. 플로리다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필라델피아에서 전설적인 홀러트로닉스 파티를 열었을 때도 그에게는 자유로움이 흘렀다.

전 여자친구이자 뮤지션 M.I.A의 음악적인 방향을 잡아줄 때도 그랬고, 펑크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리니다드에서 소카(소울과 칼립소를 결합한 장르) 콘서트를 열고 킹스턴에서 레게 레코드를 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메시지는 늘 같았다. ‘돌을 뒤집어라. 그리고 그 아래에 어떤 문화적 가능성이 놓여 있는지 살펴봐라.’ 디플로는 언제나 자신에게 찾아와준 영감을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디플로가 앞에 놓인 노트북을 접으면서 말했다. “우리 모두 비슷비슷한 별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은 살면서 아주 오랜 시간 여행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음악을 만들면서 흘러가겠죠. 하지만 그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콘트롤할 수 없어요. 전 단지 끝내주는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그가 일어나면서 그린 컬러 에이비에이터 재킷을 걸쳐 입고 가방을 들었다. “20세 때의 인도 여행은 제 눈을 뜨게 한 경험이었어요. 그때는 내키는 대로 어디든 돌아다녔고 돈이 없으니까 모터사이클을 직접 고치고 마약을 팔면서 갖고 싶은 레코드는 모조리 샀죠. 한참을 그렇게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거야. 난 이제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WORDS NICOLAS STECHER
PHOTOGRAPHER SHANE MCCAULEY

Credit Info

WORDS
NICOLAS STECHER
PHOTOGRAPHER
SHANE MCCAULEY

201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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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NICOLAS STECHER
PHOTOGRAPHER
SHANE MCCAU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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