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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June 12, 2015 0

영화 속에서 드러난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새 얼굴.


영화 <나쁜 사랑>의 주인공 마크는 우연히 만난 여인 실비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문득 발견한 뒷모습에 호기심을 느끼고, 겨우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감정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작스럽다. 그러나 조용한 밤거리를 산책하는 그 여자가, 샤를로트 갱스부르라면 납득하는 수밖에 없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몸에 크게 걸친 겉옷, 투박한 신발까지 보여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그녀는 프랑스 밤거리의 풍경에 그린 듯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여자는 번지기도 전에 미소를 숨기고, 안개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인연처럼 마음에 스며들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딱히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여자. 흐릿해서 오히려 자꾸만 되짚게 되는 여자,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그런 여자다.

<나쁜 사랑>에서 그녀의 외모는 수많은 소녀가 닮고 싶은 ‘프렌치 시크’의 전형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배우의 고정된 이미지를 아예 프랑스 여성 일군을 대표하는 특정한 이미지로 활용한다. 실제 모녀 사이인 카트린 드뇌브와 키아라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한 실비의 엄마와 여동생이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화려하고 우아한 프랑스 여성이라는 점은 더더욱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스타일을 일종의 캐릭터로 해석하게 한다. 앙상한 팔을 드러낸 헐렁한 티셔츠는 언제나 무채색이며, 몸에 걸친 것 중 빛나거나 찬란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토록 과시하거나 주장하는 바 없는 여자가 동생의 약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남자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는 데서 영화 속 멜로는 절정을 맞는다.

말하자면, 영화는 그토록 시크한 여자의 도무지 떨칠 수 없는 욕망을 그린 풍경화인 것이다. 그러나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관객에게 실비를 설득하기 위해 스타일 너머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환기한다. 사랑이 주는 환희와 절망은 물론, 이성과 충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내면을 연기하는 그녀는 감정의 갈피마다 섬세한 표정을 남긴다. 스타일로 캐릭터를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활용한 영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이나 <수면의 과학>에서 그녀가 보여준 가벼운 포즈를 떠올리면 <나쁜 사랑>에서 그녀의 연기는 집요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랫동안 유명인의 딸, 패션 아이콘이라는 포지션으로 소환되고는 했지만, 이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프랑스가 자랑스러워해도 될 배우의 자리에 명실공히 오르고도 남는다. 그저 섬세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에 상찬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올 상반기에 국내에서 연이어 개봉한 영화 3편 속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사뭇 다른 인물 3명을 연기했다.

프랑스식 멜로인 <나쁜 사랑>과 달리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 <웰컴 삼바>에서 그녀는 좀 더 여성스러운 스타일과 선명한 감정을 선보이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도시 여성을 그려냈다. 무채색 계열의 취향은 익숙해 보이지만, 큰 소리로 화내고 밝게 웃거나 춤을 추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해서 신선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리아>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무책임하고 방만한 엄마를 연기했는데,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특유의 발성까지 바꿔버릴 정도였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그녀는 연둣빛 점프슈트부터 록시크 스타일의 코스튬까지 눈을 의심케 하는 작위적인 의상을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소화하며 특유의 분위기마저 지운 채 인물에 몰입한다. 영화의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는 공포 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로서 유명인의 딸이 견뎌야 하는 결핍과 고독을 자전적인 이야기에 가깝게 그려놓았고, 역시 스타의 딸로 유명세를 겪으며 성장한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를 연기한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볍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영화 속에서 자신을 재연하고 배반하며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영리할 뿐 아니라 대범하고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시작은 2007년 가을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뇌 수술이었을 것이다. 수상 스키를 타던 중 사고를 당해 뇌출혈 판정을 받은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MRI 촬영 당시의 감정을 노래로 만들어 발표할 정도로 당시의 경험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수줍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작품을 고르던 그녀는 직면한 죽음에서 달아난 뒤 여배우들에게 가혹하기로 악명 높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크라이스트>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성적인 욕망 사이에서 극단적인 파괴 본능에 사로잡힌 여인의 이야기인 <안티크라이스트>는 대본만 읽고도 물망에 오른 여배우들이 난색을 표할 정도로 잔혹한 영화였다. 그러나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몸을 드러내고, 남자의 신체를 절단하고, 자신의 육체마저 파괴해버리는 무참한 연기를 해낸 뒤 그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뿐 아니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와 <님포매니악>에 연이어 출연해 불안에 잠식당하는 여인과 파란만장한 경험을 거친 색정광을 각각 연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녀는 내내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고, 가녀린 몸으로 움츠리고, 그럼에도 누구보다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기이한 여자들을 거듭 만들어냈다. 너무 연약해서 지나치게 강렬한 여자들 말이다. 혹독한 영화들이 지나고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선택하는 작품의 결이 전례 없이 다양해졌음은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뮤지션 세르주 갱스부르와 여전히 패션 아이콘으로 거론되는 아티스트 제인 버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대부터 영화에 출연하고 음반을 발표하며 대중 앞에 자신의 성장사를 고스란히 공개해왔다.

<귀여운 반항아>로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소녀였다가, 아버지인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 부른 ‘레몬 인세스트’로 근친상간 논란에 휩싸였다가, 미국으로 진출하라는 어머니 제인 버킨의 격려에 힘입어 영어로 영화를 촬영하는 무국적성의 배우가 되기까지, 그녀는 줄곧 선택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어깨에 얹힌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금기에 가까운 장면을 통과하면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자신의 한계를 새롭게 설정했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기대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원하기만 한다면 멜로와 드라마는 물론, 빔 벤더스의 영화에 출연하는 동시에 <여인공화국의 재키>와 같은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2016년 개봉이 예정된 그녀의 큰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년 만에 제작되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속편이라고 한다. ‘무심한 듯 시크’한 그녀가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머지않아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MTV 무비어워드에서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EDITOR KANG YE SOL
WORDS YOON HI SUNG
ARTWORK JUNG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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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YE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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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HI SUNG
ARTWORK
JUNG HAN

2015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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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YE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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