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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제와 오늘

On December 05, 2014 0

과거의 기억을 살려둔 채 새로운 공간이 된 곳들을 돌아봤다. 어제가 된 서울과 오늘이 된 서울 속에 1937년, 1971년, 2014년이 마구 섞여 있었다.

- 한때는 가장 바쁜 사람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열심히 봤을 ‘문화역서울 284’의 시계.

“여긴 손님방으로 김수근 선생님이 백남준 같은 지인들과 차를 마시던 곳이에요.” 서울 종로구 원서동 219번지, 안국역에서 현대건설 빌딩을 지나 떡볶잇집을 지나 창덕궁 전에 맞닥뜨린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한두 평 남짓한 아주 작은 방에 키스 해링의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안경을 낀 키스 해링이 지하철의 비어 있는 광고판에 그림을 재빨리 그리고 도망가는 순간, 미술관을 지키는 스태프가 설명한다. 빈티지한 영상 위에 벽에 붙어 있던 한지의 검은색 무늬가 덧입혀져 마치 지지직거리는 필름 효과를 냈다. 만약 봤다면, 키스 해링도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5층으로 가는 길,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다 싶으면 통과하기 애매할 정도로 갑자기 폭이 좁아지는 계단에서는 이런 설명이 들려왔다. “김수근 선생님의 개인 방으로 가는 계단이라 선생님만 이용하셨어요. 그래서 폭이 좁아요.”

1 영등포 커먼센터 옆에는 수족보조기 가게가, 건너편에는 무료 급식소가 위치해 있다.
2 2012년까지 노부부가 살았다는, 대림미술관 앞 ‘빈집’의 2층 테라스.
3 복합문화공간 ‘신사장’은 신사동 먹자골목의 비틀거리는 아저씨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4 ‘문화역서울 284’의 내부 모습은 1925년 당시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다들 알다시피 건축가 김수근이 만든 공간 사옥이었고, 최근 아라리오가 이 공간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열었다.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살려 많은 부분을 그대로 놔뒀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바바라 크루거를 보러 이 공간에 들른 사람은 김수근의 역사와 철학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머리 나쁜 자신과도. 1971년에 만들어지고, 77년에 증축된 이 건물의 구조는 머리가 웬만큼 좋은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반층 개념으로 층을 모두 쪼개놓은 두 건물이 3층에서 이어져 있고 한쪽은 좁은 계단, 한쪽은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3층에는 중정처럼 탁 트인 공간이 나오며 그곳에서는 유리로 된 천장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다. 답답함과 열린 느낌이 묘하게 섞여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다른 크기의 창들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데 일조한다. 스태프가 “여긴 2-하층입니다” “여긴 신관입니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해줘도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김수근은 기능성이 중요한 사무실 건물을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계단은 턱없이 좁아 급한 용무로 뛰어 내려가야 하는 사람이 탓하기 좋으며, 천장은 너무 낮아 머리를 부딪칠까 봐 신경 쓰게 되는 존재며, 복잡한 구조는 동료를 찾으러 가는 데서 헤매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대답은 기묘한 전시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화장실에서 흘러 나오는 제럴딘 하비에르의 영상 ‘마담 a’, 나선형 계단 아래에 자리 잡은 김범의 ‘말 타는 말’, 원래는 야외였던 경비실 방을 차지하고 나선 개빈 터크의 ‘또 하나의 부랑자’. 이 공간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필요한 건, 상식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누구 말대로 북촌이 지닌 인간적인 조형미를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겠고.
40년이 넘은 공간 안에 놓인 동시대의 미술 작품을 뒤로하고 종로구 옥인동 168-2번지에 위치한 박노수미술관으로 향했다. ‘박노수’라고 써 있는 문패가 1972년부터 최근까지 박노수 화가의 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친일파로 잘 알려진 윤덕영이 일제 강점기 (1937년경으로 추정된다)에 딸과 사위를 위해 지은 이 집은, 1972년 박노수 화가의 집이 되었고, 지난 2011년 그가 종로구에 자신의 그림과 그동안의 수집품을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됐다. 지금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로 <화가의 집>을 개최하고 있었다. “벽돌과 목조로 된 집이에요. 우리나라 전통 마루보다 좁은 서양식 마루로 되어 있고, 이중 창문도 서양식이죠. 당시에는 서양 문물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일식이 가미되어 있어요. 당시엔 이런 양옥집을 지을 수 있는 인부가 우리나라에 없어서 중국 인부를 데려다 집을 만들었을 거라고도 추정하죠. 그래서 한식을 기본으로 하되 양식, 일식, 중식까지 여러 방법을 섞은 절충식 가옥입니다.” 박노수미술관 학예사 박이선 씨의 설명이다.

1 커먼센터 건물 외부에 나 있는 계단. 차갑고 어두운 영등포를 상징하는 듯하다.
2 아파트 세대에게는 독특한 전시 공간으로 느껴지는, 커먼센터 내부.
3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작은 창.
4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는 나선형 계단 밑도 전시 장소가 된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데에 있다. 그러니 이곳을 방문하기로 했다면 집을 나설 때 혹시라도 구멍 난 양말을 신었는지 확인해야 할 거다. 신발을 벗자, 마치 누군가의 집에 걸어둔 그림 취향을 구경하러 간 것처럼 조심스러워졌다. 왁스 칠을 해서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과 계단이, 낡은 것들이 주는 평온함을 선사한다. 응접실의 벽난로, 복도에 세워진 석상, 작업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작은 다락방의 아늑함 등 화가가 이곳에서 얼마나 편안한 상태로 그림을 그렸을지 눈에 선했다. 걸려 있는 그림은 몇 점 없지만 응접실, 안방, 다락방, 복도 등 곳곳마다 배치돼 있는 그림들이 마치 아는 사람이 그린 것처럼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집이었다는 과거의 시간 덕분에 여기엔 미술관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불편함이 없다. 다만, 여기서는 누가 아무리 웃긴 얘길 해도 크게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이 공간에서 가장 좋은 건, 집을 둘러싼 환경이다. 감나무, 대나무, 앵두나무, 벽오동나무 등 5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들과 화가의 섬세한 취향으로 정원에 놓인 향로석, 수석, 석등, 물확, 해태상 등이 (세상에서 가장 구태의연한 말로 표현한다면)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다. 화장실이 급한 게 아니라면, 정원 앞을 조용히 거닐어도 좋고 집을 등지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사람 키의 3배가 넘는 향나무와 세종마을 일대를 내려다봐도 좋다. 이 집의 한 가지 문제점이라고 하면, 도통 나가기 싫다는 거다.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기 전,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 통인시장 건너편의 또 다른 집으로 갔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떠난 흔적이 있는 장소다. 바로 대림미술관 앞 ‘빈집’이다.


이름 그대로 아무도 살지 않는 이 ‘빈집’에 2012년까지 노부부가 살았다. 2013년 그들이 이 집을 떠난 후 인근의 재밌는 공간을 찾던 대림미술관에서 이곳을 임대해 여러 가지 파티 및 기획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집에 들어서면 마치 단서를 킁킁거리며 결론을 도출하려는 탐정처럼 질문들이 마구 떠오른다. 이 집은 언제쯤 지었을까? 전기 스위치는 ‘내쇼날’이고, 시계는 ‘세이코’인 걸 보면 정서적으로 일본에 친숙하다고 느꼈던 시대에 만들어진 집일까? 이 집에 살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내쇼날 전기 스위치를 2012년까지도 썼다는 건 이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임을 뜻하는 건 아닐까? 엄청나게 큰 이 집은 이들이 꽤 부유하게 살았음을 증명한다. 2층에 연회를 즐길 수 있는 바가 설치돼 있는 걸 보면 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는 뜻은 아닐까? ‘축 산다호텔 개관’이라고 써 있는 자개로 된 전신 거울은 이 집이 산다호텔이 준공된 1967년, 그리고 개관된 1968년에도 있었음을 말한다. 산다호텔은 관광 호텔 시설 기준에 미달되는데도 허가를 내줬다는 이유로 관련 공무원들 뇌물 비리로 떠들썩했던 호텔이다. 어쩌면 이 집은 으리으리한 권력자가 살았던 집이었을지도 모른다.

-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 촬영팀이 방금 다녀갔다는 ‘문화역서울 284’의 중앙 홀.


박노수미술관이 나가기 싫은 집이라면 빈집은 혼자 있기 좀 으슥한 집이다. 오래된 커튼과 샹들리에, 커다란 괘종시계가 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마저 감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파티가 열릴 때면 이 공간의 으스스함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진다. 자주 찾고 더럽힐수록 공간에 생기가 생긴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공간은 손때와 먼지,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같은 더러운 것들로 구성되는 걸지도 모른다. 대림미술관은 이 집에 대해 어떤 식의 개보수나 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음악과 음식이 결합된 ‘일렉트로 키친 파티’ 때는 빈집에 있는 방 10개를 예약자에게 대관해 친구들과 파티를 벌일 수 있게 했으며, 지난 9월에 열린 <마담 뺑덕: 욕망의 서막展> 때는 거실에 있는 장식장 곳곳에 사진들을 배치해 재미를 줬다.


빈집을 나와 한때 가장 많은 사람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쳤을 옛 서울역으로 갔다. 기독교를 믿으라는 외침과 노동자의 고용 안정 시위, 그리고 노숙자의 보장받지 못한 생계가 한데 모여 있는 가장 뜨거운 장소에, 문화 공간 ‘문화역서울 284’로 탈바꿈한 옛 서울역사가 서 있다. 서울은 추한 것도 말할 수 있는 도시다. 예술이 그 추한 것을 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면, 이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어제까지 <암살> 촬영팀이 영화를 찍고 갔어요.” 문화역서울 284의 문화공간운영과 김윤애 주임의 말이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 옛 서울역사가 최적화된 장소임은, 다음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옛 서울역사는 1900년 건설됐고, 1925년 르네상스풍의 절충주의 건축 양식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스위스의 루체른 역사를 모델로 디자인했으며, 전 도쿄대 교수 츠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했으리라 추측된다. 서대문과 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철도의 남대문역사로 시작해 교통과 물류의 중심 역으로 성장한 옛 서울역은 KTX가 개통된 뒤에는 찬밥 신세가 됐다. 지금의 역사는 1925년의 모습을 당시의 사진첩과 비교하며 완벽 복원한 상태다. 1층 중앙홀 양측의 매표소, 1, 2등 대합실과 3등 대합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 사용하던 귀빈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이던 ‘서울역 그릴’까지 복원된 이 공간은, 당시의 공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심지어 한국전쟁 때 벽체에 박힌 총탄의 탄두까지 그대로 뒀다. 이곳엔 소란, 억압, 계급의 공기가 모두 있었다. 한 세기 가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푼 희망과 좌절감을 안고 서울에 올라오거나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이곳을 오갔을지 생각하니 문 손잡이 하나, 계단 하나까지 범상치 않게 보였다. 지금 이곳은 서울역이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활용한 전시 <서울역문화공작소-공간의 기억>을 준비 중이다. 김윤애 주임은 말한다. “작가들이 보통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면, 공간 자체가 특이하니까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도시, 과거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려고 작정한 듯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뭔가를 지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도시 서울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걸까?

1 문 하나, 전화기 하나 등 ‘빈집’에 있는 모든 것은 2014년의 것으로 보기 힘들다.
2 일제 강점기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박노수미술관 내부.
3 을지로 금융 산업 건물 사이에서 고요함을 선사하는 스몰하우스 빅도어.
4 스몰하우스 빅도어의 천장은 오래된 건물의 역사성과 현재라는 시간의 동시대성을 고민해 나온 결과물이다.


서울을 설명하는 데서 잠깐이나마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인 숙박 시설을 빼놓을 순 없다. 서울의 숙박 시설은 불안과 회환, 근심을 끌어안은 장소다. 두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50년 넘게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호텔로 탈바꿈한 ‘스몰하우스 빅도어’, 하나는 여관이던 건물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꾼 ‘신사장’이다. 금융 산업 빌딩들이 가득한 을지로 골목, 다동 115번지에 자리한 스몰하우스 빅도어는 원래 롯데백화점 수선실과 물류 창고, 그리고 사무실과 당구장 등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호텔에 남아 있는 차가운 사무실 계단과 복도에 뚫린 천장이 사람들이 바삐 드나들던 사무실 공간으로서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3층과 4층을 나누기 위해 새로 만든, 3층 계단 끝의 문은 원래 이 사무실 건물에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으면서 방문자에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구분 짓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호텔을 디자인한 디자인 메소즈의 남정모 대표는 “강남만 해도 60년 가까이 된 건물이 없죠. 이 시간을 갖고 있는 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손님에게도 좋을 것 같았고, 주변 환경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건물의 공간을 부분적으로 살린 이유를 말했다. 정신없는 빌딩 숲 사이에서 혼자 침착하고 조용한 스몰하우스 빅도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빼입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낀 허름한 사람 같다. 이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서야,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4층 높이에서 바라본 주변 환경은 모두 고층 높이의 건물로, 이 건물이 단지 조금 낮다는 이유만으로도 서울의 혼잡함과 욕망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게 한다. “을지로는 호텔이 들어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에요. 주변의 비즈니스호텔이 주지 못하는 조용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골목 하나만 나가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나오죠. 고요한 이곳에서 사람들이 차 한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건물 하나가 그 지역의 풍경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싶지만, 신사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신사장’ 역시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휘청거리는 풍경에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신사장’이라는 상징적인 이름부터 건물 외관과 내부의 기둥과 천장, 계단 등 많은 것을 살려둔 이유를 크리에이티브 그룹 ‘리어’의 정은아 디렉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된 것은 일부러 만들 수도 없잖아요. 공간 자체가 주는 낡은 느낌이 좋았어요. 여행자가 머무르는 숙박 공간이라는 이곳의 역사성이 크리에이터들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길 바랐어요.” 그녀는 다양한 창작자들이 이 공간에 모여들면서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움직임이 생성되면 좋겠다고 했다. 2층 창밖으로 커다랗게 보이는 ‘잠원동’ ‘한남대교’ 등의 이정표가 이 공간을 유머러스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이곳이 가진 지역적 특색을 환기시킨다.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더라?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서울에서 제일 혼란스러운 곳이자 가장 물질적인 곳, 영등포였다. 영등포역을 등지고 영등포 청과시장 쪽으로 걸어가다 수족보조기 가게들을 지나면 커먼센터다. 여기는 그야말로 아방가르드한 곳이다. 건물 바깥에 걸린 전시 포스터가 아니었으면 뭘 파는지 잘 모르겠는 수상한 가게쯤으로 여기고 쓱 지나쳤을 것이다. “원래 중국집이었어요. 근데 야반도주했대요. 철거 불러서 다 치우고 천장 다 뜯고 전기 깔고 화장실 고치고 그 정도만 했어요.” 커먼센터의 함영준 디렉터는 이 건물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1층엔 음식을 위아래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의 흔적이 보인다. 위층은 더 재미있다. 비좁은 방 여러 개로 구성돼 있다. 원래 있던 촌스러운 벽지도 대부분 그대로다.


“인스타그램 하는 애들이 엄청 왔죠.” 함영준 디렉터는 미술이라는 게 어디서든지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이 이미 깨달았으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이런 공간으로부터 페티시를 느끼는 점이 커먼센터를 매력 있게 만들어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를 환기하는 거죠. 아파트에서 자란 애들은 이곳의 전선 같은 것만 봐도 예쁘다 느끼고 사진을 찍는 것 같아요.” 독특한 건물 구조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전시 역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굳이 이 거친 동네를 오게 했다. 지난 9월에 열린 에서는 사진가 19명이 각각의 방을 자신의 사진으로 꾸몄으며, 내년 2월에 열리는 가구 페어에서는 가구 디자이너들이 각각의 방을 1인 가구가 사는 쇼룸처럼 꾸밀 예정이다. 커먼센터 주변은 그야말로 카오스다. 어쩌면 이게 서울일지도 모른다. 한쪽에는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올라가 있는 타임스퀘어 건물이, 한쪽에는 집의 경계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쪽방촌이, 또 다른 한쪽에는 주민의 욕을 먹고 사는 노숙자의 컨테이너가 있다. 서울은 움직이고 있다. 누추하고 불편한 기억을 버리려던 서울은, 이제 그것을 조금씩 인정하는 것 같다.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 같은 공간에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CONTRIBUTING EDITOR NAH JI UN
PHOTOGRAPHER NAH JI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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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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