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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ugust 22, 2014 0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하지만 조급해하진 않는다. 내가 만난 한예리는 그랬다.

 

 

- 톱과 레깅스는 모두 MM6,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예리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촬영장에 도착했다. 스태프가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서로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만났던 사람 그리고 일상에 대해 짧은 시간이지만 긴 대화를 나눴다. 에디터가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처럼 한예리 역시 <나일론>을 꼼꼼하게 보고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일론> 화보에 대한 궁금증이며, 에디터가 만난 인터뷰이 중 궁금했던 사람은 누군지 마치 성실한 독자처럼 물었다. 솔직히 이런 인터뷰이는 처음이다. 그 덕분에 그녀가 어떤 결의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배우로 성장할지 그려볼 수 있었다. 순수한 영화의 힘을 믿고, 영화가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배우란 느낌. 그리고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배우란 본인이 가진 연약함과 결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대상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촬영이 끝나면 모니터로 모여 촬영한 사진에 대해 많은 얘길 나누는데, 한예리 씨는 아예 모니터 쪽을 보지 않더라고요. 혹시 화보 촬영이 불편한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제 모습을 확인하는 게 어색해서 그래요. 왠지 화보 사진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거든요.(웃음)


<해무> 개봉 전 잠시 휴식기간을 가졌다고 했죠. 그동안 어떻게 보냈어요?
난생처음 동생과 함께 홍콩 여행을 다녀왔어요.


홍콩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였나요?
울창한 나무요. 

 

왠지 홍콩 하면 음식이 먼저 떠오르는데, 예리 씨 대답은 의외네요.
음식은 당연히 맛있었죠. 풍경이 기억에 남는 건 우리나라의 가로수처럼 정갈한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나무가 꺾이면 꺾인 채로, 울창하면 울창한 대로 그대로 두더라고요. 그런 풍경이 정말 ‘홍콩답다’고 생각했죠. 또 한 가지는 동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너무 몰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 둘 사이에 대화가 많이 부족했다는 걸 실감한 여행이었죠. 올해 들어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여행지에서 예리 씨를 알아본 사람은 없었나요?
아직 제가 어떤 배우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평상시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불편한 점도 별로 없어요. <해무> 촬영지였던 거제도에선 상호 선배님이 어딜 가나 환영을 받더라고요. 아주머니들에게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죠. 드라마에 자주 출연한 희준 선배도 인기가 많았어요. 오히려 윤석 선배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는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 했죠.

 

‘내가 배우가 됐구나!’라고 생각한 시작점은 언제였나요?
정확한 시점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번 작품을 하고 나서 스스로 탄력받았다고 느껴요. <해무>를 끝내고 나니 다른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신나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욕심이 점점 많아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연기란 정말 좋아해야만 가능한 일이구나!’라고 실감하고 있죠. 

 

 

 

- 드레스와 톱은 모두 오브제, 워커는 래그앤본 by 비이커.

 


배우로 처음 돈을 벌었을 때 스스로에게 어떤 선물을 했어요?
사실 독립영화에 출연할 때는 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땐 ‘재미로 딱 서른까지만 하자!’란 생각이 컸죠. 처음으로 상업영화를 통해 큰돈을 쥐었을 땐 부모님께 전부 갖다드렸어요. ‘배우로서 이 작품이 끝일 수도 있어. 앞으로 얼마나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왠지 기념될 만한 걸 남겼을 줄 알았는데, 대답이 시시한 걸요?
워낙 소소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래요. 힘든 촬영을 끝내고 브라우니나 초코 케이크를 사 먹으면 다 풀려요.(웃음)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종류별로 시켜 놓고, 한 입씩 다 먹어보는 거거든요. 단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한예리식 연기는 어떤 거라 생각해요?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관객 입장에서 보기에 제 연기가 어떤 스타일인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한예리식 연기는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일리가 있는 답이에요. 저는 연기에 임할 때 마음을 편하게 먹는 편이거든요. 어쩌면 배우로서 경력이 짧기에 그런 표현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요. 아직까지는 한 신에서 ‘연기 테크닉을 가미해 이렇게 더 전달해보자…’란 계산을 할 만큼 노련하진 못하죠.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연기와 나쁜 연기의 기준이 있나요?
영화감독이 원하는 바를 충분하게 표현한 연기가 좋죠. 반면 감독은 원하지 않지만 배우가 의도하는 바를 영화에 넣었다면 그건 나쁜 연기겠죠. 그만큼 배우에겐 좋은 감독을 만나는 일이 중요해요. 배우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영화가 잘못되면 전적으로 감독님 책임이라고 들릴까요?(웃음)

 

데뷔 후 쉬지 않고 작품을 했잖아요. 혹시 소진되는 느낌은 없었나요?
소진됐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아직 경력이 짧죠. 사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배역보다는 다른 인물과의 앙상블에 중점을 둔 배역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소진될 만큼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어요. 

 

여운이 길게 남은 영화가 있어요?
<남쪽으로 튀어>에서 딸 캐릭터가 기억에 남아요. 성격이 밝고 유쾌해 연기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군도>에는 카메오로 출연했는데, 그때 김해숙 선배님이 정말 잘해주셔서 잊히지 않아요. <환상 속의 그대> 찍을 때는 연기 잘하는 희준 오빠 상대역이란 점에 감사했죠.


만약 연기를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 것 같아요?
매번 작품 끝날 때마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연기를 못하게 되면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속상해하진 말자고 마음을 다잡죠. 나이 들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영화 만드는 걸로 서운한 마음을 풀래요. 캠코더도 좋고, 아이폰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시나리오 작업을 해본 적 있어요?
지인들이 제게 단편 시나리오라도 써보란 얘기는 종종 했어요. 하지만 연출보단 연기에 더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스토리를 만드는 것보다 연출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성향이거든요.


독립영화 할 때는 멜로 전문이었잖아요. 상업영화에서 멜로 연기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요즘 상업영화 중에 멜로 시나리오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번에 출연한 <해무>엔 멜로가 있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웃음)


 

 

- 재킷은 올세인츠, 톱은 아메리칸 어패럴, 쇼츠는 씨위.

 


<해무>에서 유일한 여자 캐릭터였죠. 본인이 연기한 ‘홍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의 욕망과 집착, 뒤틀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나리오에 먼저 끌렸어요. 그런데 대본을 여러 번 읽어봐도 홍매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배우가 이 정도인데 관객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란 고민도 많았어요. 영화 속에서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어지러운 상태를 만드는 게 해무라면, 선원들한테는 홍매가 해무 같은 존재였을 거예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배우마다 캐릭터를 파악하는 방법이 다르던데, ‘해무’ 같던 홍매 캐릭터로의 진입은 어땠어요?
사실 캐릭터에 빠르게 몰입하진 못했어요. 그래서 홍매가 있는 공간을 먼저 이해한 뒤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어요.


혹시 심성보 감독이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진 않았나요?
조언을 해주시기보단 시시콜콜하고 허심탄회하게 영화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덕분에 감독님이 생각하는 부분과 제 생각을 일치시키는 게 순조로웠어요. 


김윤석, 김상호, 유승목, 이희준, 박유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했잖아요. 혹시 위축된 적은 없어요?
선배이기 전에 진짜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현장은 힘들었지만 그게 버겁다고 느껴지기보단 오히려 재미있었죠. 농담으로 제가 7번째 선원이라고도 말했을 정도로, 여배우라고 각별하게 대해주는 건 없었어요. 그런 부분이 제가 연기하는 데 편하고 자연스러웠다는 걸 말해두고 싶어요.


김윤석 씨는 영화 찍으면 의상을 꼭 한 벌씩 남겨둔다는 얘기를 했죠. 예리 씨도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전리품이 있나요?
저도 윤석 선배처럼 영화 속 아이템을 소장하는 게 버릇이라면 버릇이에요. 이번에는 홍매의 신발을 간직하려고요. 신발이 예쁘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감정이 증폭되는 요소가 됐거든요. 아마 영화를 보면 누구라도 그 신발이 갖고 싶어질 거예요.


<해무>가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봉준호 감독님이 저한테 <접속>과 같은 작품이 될 거라고 얘기해주셨는데,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배우로서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어요. 감독님께 고맙단 얘기를 전하고 싶어요. 봉 감독님 평처럼 개인적으로도 그런 영화로 남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영화도 찍고, 무용 공연 연습도 했다면서요?
제 인생에서 무용은 빼놓을 수 없죠. 9월에 아르코 극장에서 열리는 무용 공연에 오를 거예요. 연락드릴 테니 꼭 오세요. 혹시 제가 연락을 못 해도 꼭 와줘야 해요!

 

 

EDITOR KIM YEON JUNG
PHOTOGRAPHER MOKE NA JUNG
MAKEUP LEE SOOK KYUNG
HAIR SON HYE JIN
ASSISTANT KIM BO RA

Credit Info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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