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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m's sounds

On July 11, 2014 0

하임(haim)의 세 자매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그들의 얼굴만큼 아름답다.

- 에스테가 입은 드레스는 래그앤본. 다니엘이 입은 셔츠는 더 쿠플스. 알라나가 입은 셔츠는 질스튜어트, 스커트는 래그앤본, 브레이슬릿은 까르띠에.

- Danielle, 블레이저와 팬츠는 모두 스텔라 맥카트니, 티셔츠는 유니클로, 슈즈는 지미추.

다니엘 하임(Danielle Haim), 알라나 하임 (Alana Haim), 에스테 하임(Este Haim), 세 자매의 밴드 ‘하임(haim)’은 요즘 로스앤젤레스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밴드다. 지난 3월 말의 어느 토요일 아침, 실버 레이크 근처를 산책하는 동안 하임에게 팬, 친구들, 팝스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런 인기와 무관하게 세 자매는 브런치 레스토랑에 모여 어젯밤에 일어난 강도 5.1의 지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더는 출입구에 서 있으면 안 돼.” 자매 중 가장 어리고 감정에 솔직한 22세의 알라나가 연어를 곁들인 에그 베네틱트와 과일을 주문하며 이야기했다. “내가 듣기론 밖으로 나가야 한다던데, 길거리 같은 곳으로 말이야.” 둘째인 25세의 다니엘은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다른 자매에 비해 말수가 적은 편이다. 알라나와 에스테는 자신에게 한 질문이 아닌 것에도 쉽게 답변하는 한편, 다니엘은 대개 다른 이의 의견에 동의하고 때때로 주어진 질문에만 대답했다.


다니엘은 포치드 에그와 치킨 애플 소시지, 채소를 주문했는데 다니엘의 주문을 듣던 알라나는 그녀와 같은 것으로 주문을 변경했다. “그리고 잘 때 머리 위에 베개를 하나 더 두라던데 내 생각에 그건 말도 안 돼.” 알라나가 지진에 대해 이어 이야기했다. “지진 전에 자살해버리라는 건 말이 되지.” 자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28세의 에스테가 말했다. 당뇨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그녀는 하우스 샐러드를 주문해 깨작거리고 있었다. 세 자매는 산 페르난도(San Fernando)에서 음악을 만들며 함께 자랐다. 그들은 어릴 때 밴드 로킨하임(Rockinhaim)을 만들어 밴 모리슨(Van Morrison)과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의 음악을 연주하며 길거리 공연에 참가했다. 그건 세 자매가 대중 앞에 선 첫 공연인 셈이었다. “아빠는 ‘꿈을 꾸다 깼더니 저희가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하셨어요.” 알라나가 말했다. 축구 선수였다가 부동산 업자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나이가 4세일 때 드럼 스틱을 처음 손에 쥐여주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아버지가 이야기를 좀 부풀린 것 같아요”라며 알라나는 머쓱해했다. 로킨하임은 돈을 벌려고 만든 밴드는 아니었지만 자매의 아버지 모데차이(mordechai)는 이 밴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토요일에 연습할 거야. 수지네에 놀러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엄포를 놓곤 했죠.” 커피를 마시며 다니엘이 말했다.


그때 모데차이의 훈련이 지금의 하임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알 도리가 없지만, 어쨌든 이 인터뷰를 하고 난 2주일 뒤 하임은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뜨거운 공연을 펼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6개월 전엔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그들의 데뷔 음반 을 발매했다. 뛰어난 리듬감과 스무스한 하모니가 인상적인 이 음반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하임의 음반이 곧 이글스(Eagles) 플리트우드 맥 (Fleetwood Mac)과 함께 TRL과 캘리포니아 라디오에 주야장천 나올 거란 건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은 현재 2012년에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성공적인 음반 쇼케이스를 한 뒤 꽤 많은 곳을 돌아다닌 후 잠시 LA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그들의 월드 투어는 1주일 후에 다시 시작한다). 브런치를 먹으며 알라나는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의 에드워드 드로스트(Edward Droste)와 대화하기 위해 양해를 구했고, 인터뷰 장소에 들른 하임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2년이 지나도 많이 자라지 않는 에스테의 머리카락에 대해 함께 걱정해주었다(그녀의 머리숱은 다른 자매처럼 풍성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Let Me Go’와 같은 곡에서 헤드 뱅잉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상관없었다). 브런치를 먹은 후 우린 가까운 농장 마켓에 들렀다. 이때 알라나는 중고 제품 가판대에서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찢어진 쇼트 팬츠를 찾아보았고, 다니엘은 알라나가 물건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그녀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그때 같은 동네에 사는 작곡가 친구가 다가오더니 울면서 자신의 이별 소식을 알렸다. 다니엘은 그녀를 꼭 안아주었고, 에스테는 심술궂은 노래를 불렀다(하임의 자매는 현재 모두 싱글이다).

그 후에도 우리는 미드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곡 ‘Breathe Me’를 작곡한 호주의 유명 작곡가 시아(Sia)도 마주쳤다. 그녀는 하임을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얘들아! 역시 너희가 성공할 줄 알았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흰 티와 모자, 진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감춘 키가 작은 이 작곡가는 이런 말을 더했다. “부자가 되면 좋지. 너희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있잖아. 너희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이 말에 하임 자매는 “우리는 부자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가령 팜 스프링스의 집 같은 것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자리를 떴다. 지금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할 수 있기까지 하임은 사실 음반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계속해서 용기를 얻으며 밴드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들끼린 메탈리카의 데이브 머스테인과 같은 존재라 칭하는) 부모님의 격려 덕에 하임은 2007년 밸리에서 열린 친구의 파티에서 공연을 했고, 그로부터 5년간 쉬지 않고 하임은 매일같이 공연했다.

- alana, 셔츠는 질스튜어트, 스커트는 겐조.

그 공연은 대부분 다른 밴드의 무대에서 오프닝을 맡는 것이었는데, 그때 그들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가능성 있는 밴드에게 한 달간 월요일 밤 11시에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스트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에코(The Echo)에서 공연을 하는 것. 그건 지역 뮤지션들에게는 통과 의례와도 같았고, 실버선 픽업스 (Silversun Pickups)와 포스터 더 피플(Foster the People)과 같은 밴드처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하임에겐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다. “무대에 설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어요.” 소시지를 자르며 다니엘이 말했다. “우리와 달리 밴드를 결성한 지 두 달 만에 에코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은 밴드를 보며 심란했죠.”

그들의 곡 ‘The Wire’나 ‘Forever’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정도로 하임은 마니아 사이에 인기를 끌었지만, 레코딩에 대해 전혀 몰랐던 그들은 음반을 낼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그 당시 밴드의 미래는 불확실했고, 자연스레 멤버들은 다른 직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에스테는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18세에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음악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UCLA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제게 ‘너는 대안이 없는 상태잖니’라고 말했어요.” 토스트에서 아보카도를 빼내며 에스테가 말했다. “제가 나이가 가장 많잖아요.” 전문가들이 말하는 장남, 장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능력 이상의 학습 효과, 성실함, 통제성, 그리고 신중함. 그 탓인지 에스테는 공연 투어 중엔 두 동생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하지만 평소엔 집에서 tv를 볼 때 자신이 보고 싶은 채널을 강요하는 것 외에는 딱히 리더 노릇을 하진 않는다. 그녀는 심지어 알라나가 자신이 새로 산 화이트 셔츠 드레스를 입으려고 해도 간섭하지 않을 정도다. 반면 다니엘은 아메리칸 레그(American reg)의 신발 코너에서 일하며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고,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자매의 둘째들은 보통 뭔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익숙하고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하며 반항적인 면이 있긴 해도 사회성이 좋다고들 한다. 그 요소 중 몇 가지는 다니엘에게도 잘 들어맞는데, 예를 들어 다니엘은 SNS를 번거로워해 트위터 계정조차 없고, 소위 ‘쿨하게도’ 베니스에 있는 이미 헤어진 남자친구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을 말하자면 ‘Days Are Gone’의 대부분은 전 남자친구의 집에서 작곡했다.

그들의 열정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건 밴드 스트로크(Stroke)의 덕이 컸다. 2008년 독립 기념일에 다니엘은 친구에게 그의 절친이 여는 파티에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고, 그 절친은 바로 스트로크의 멤버 제니 루이스(Jenny Lewis)였다. 그 파티에서 뮤지션들은 저마다 즉흥적으로 음악을 연주했고, 에스테와 다니엘은 각각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했다. 이때 루이스는 “와우! 저기 여자아이들 좀 봐!”라는 반응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엘은 하임의 리허설 도중 루이스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헤이! 다음 투어 때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어. 네가 와서 연주해주지 않을래?” 다니엘은 기뻐서 팔짝팔짝 뛰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투어에 참가하기로 한 다음 날 스트로크의 다른 멤버 줄리언 카사블랑카(Julian Casablancas)는 다니엘에게 자신의 솔로 음반 의 공연에서 기타를 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임의 말에 의하면 종종 줄리언은 능력자처럼 나타나 “너희 밴드는 지금 뭐가 문제야?”라고 물었다. 다니엘은 이에 “우리는 몇 년간 일주일에 세 번씩 연주를 하지만 음반 레코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브로 연주하는 건 그만두고 어떻게든 음반을 내는 게 지금의 하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알라나가 입은 드레스는 발렌티노. 다니엘이 입은 셔츠는 산드로, 진은 와일드폭스. 에스테가 입은 스웨터는 래그앤본, 네크리스는 바네사 무니.

“전 그가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겼죠. 왜냐하면 전 그의 엄청난 팬이었으니까요”라고 다니엘은 덧붙였다. 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 중엔 샤워를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하임은 ‘Running If You Call My Name’과 같은 몇몇 곡을 작곡했다. “우리는 <예술의 전쟁>이란 책을 읽었어요.” 다니엘이 말했다. “그 책은 매일매일 예술을 위해 노력하라고 말했죠. 그래서 거의 1년간 우리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작은 파트, 작은 섹션으로 곡은 완성해갔죠.” 세 자매는 예술적 방향성에 대해선 거의 이견이 없었다. “다 같이 처음 ‘My Song 5’를 들었을 때를 기억해요.” 알라나가 말했다. “다니엘이 첫 비트를 들려주었을 때 전 ‘대체 어젯밤에 무슨 약을 한 거야?’라고 말했죠.”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Ep 음반을 내기 위한 곡을 만들어냈고, 레코딩을 시작했다. 그들의 프로듀싱은 작곡가이자 영화음악 제작 자인 루드비그 예란손(Ludwig Göransson)이 맡았고, 결국 그들은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 정식 데뷔 음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음반을 내고도 2012년에 열린 굵직한 페스티벌 중 어느 라인업에는 들지도 못했고, 그들의 매니저가 오스틴 근처의 공연 몇 개를 잡아주었을 뿐이다.

- este, 재킷은 톱숍, 드레스는 발렌티노, 오른손의 반지는 바네사 무니, 왼손의 반지는 까르띠에.


“우리의 첫 공연 관객은 세 명뿐이었어요.” 알라나가 말했다. “그리고 세 명 중 한 명은 춤추고 있는 아기였죠! 하지만 공연할 때마다 점차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마지막 공연에선 사람들이 꽉 차서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어요. 아마 춤추는 아기 덕분이었나 봐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음반, 그리고 공연인 만큼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그것이 그들을 더 섹시하게 만들었다. 몇 주 후 37℃가 넘는 뜨거운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그들은, 에스테의 표현을 빌리면 ‘엉덩이에 땀이 나도록’ 열정적인 공연을 펼쳤다. 알라나는 망사로 된 흰 톱에 우리가 함께 쇼핑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볐고, 그 왼쪽에 에스테는 블랙 크롭트 톱에 스커트, 트레이드마크인 레드 립을 하고선 관객과 농담을 나누곤 했다. 그 가운데에 선 다니엘은 가죽 베스트와 진, 블랙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2012년 컬럼비아사와 계약한 이후로 그들은 또다시 녹음하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투어 스케줄이 너무 꽉 찼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두르는 대신 그래미상 수상자 아리엘 레추셰이드(Ariel echtshaid)와 같은 프로듀서와 작업하며 작업의 퀄러티를 높였다. 아리엘은 세 자매를 꼬드겨 다양한 하모니와 복잡힌 비트로 이뤄진 곡 ‘The Wire’를 만들어내도록 독려했다. “우리는 그 곡을 대여섯 번 정도 녹음했는데 정말 힘들었죠. 조금만 사운드가 달라져도 곡을 망치게 되니까요. 엄청 어려운 곡이라니까요.” 하지만 그 완벽주의는 빛을 발했고 ‘The Wire’가 들어간 음반 은 미국 내에서만 17만 장 넘게 팔렸으며, 2013년 대부분의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다시 그들의 긴긴 역사 이야기를 끝내고 LA에서 그들과 나눈 대화로 돌아오자. 시아와 농장 마켓에서 가슴 축소술과 DJ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때로 말이다. 시아와 함께 길을 걷던 우리는 호주의 팝 가수 한 명을 발견했고, 시아는 그를 ‘허그스(HUGGS)’라고 소개했다. “너는 허그를 잘하니? 허그스?” 에스테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너 그곳이 커진 건 아니지 설마?” 시아가 말했고, 세 자매는 다들 웃었다. 세 자매의 웃음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일깨웠다. 그건 마치 하임이 들려주는 음악처럼 나름 아름답게 느껴졌다.

photographs MARVIN SCOTT JARRETT
words PHOEBE REILLY
makeup georgie eisdell

hair john d.
manicurist miho okawara
photo assistant wes klain
digital tech brandon jones
stylist assistant michael kozak
shot at siren studio, los angeles

Credit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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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VIN SCOTT JARR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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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EBE REILLY
makeup
georgie eisdell
hair
john d.
manicurist
miho okaw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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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 k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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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on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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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kozak
shot at
siren studio, los angeles

2014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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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VIN SCOTT JARRETT
words
PHOEBE REILLY
makeup
georgie eisdell
hair
john d.
manicurist
miho okawara
photo assistant
wes klain
digital tech
brandon jones
stylist assistant
michael koz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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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studio,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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