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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인다

On March 07, 2014 0

익숙한 얼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심은경
인형처럼 가는 팔과 다리, 여백 없이 얼굴에 꽉 찬 눈 코 입을 가진 여배우들 틈에서 심은경은 조금 평범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써니>에서 빙의라도 된 듯 신들린 욕 퍼레이드를 펼치는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다. ‘이 아이, 심상치 않구나’. 대중의 뇌리 속에 박힌 작품은 <써니>였지만, 심은경은 사실 올해로 데뷔 10년 차 배우다. 열한 살의 나이에 데뷔해 <해신> <프라하의 연인> <황진이> <태왕사신기> <태양의 여자> <나쁜 남자> 등 굵직굵직한 드라마에 조·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이미 조연도 단역도 아니었다. 영화 <불신지옥> <반가운 살인자> <퀴즈왕> 등에서 주연급으로 연기하며 웬만한 중견 배우 못지않은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2008년엔 서태지와 함께 찍은 CF에서 ‘근데 아저씬 누구예요?’ 하며 깜찍하게 등장했던 소녀는 <써니>로 배우가 됐다. <써니>가 의외의 흥행률을 기록한 데에 심은경이 큰 몫을 했음에 이견을 다는 사람이 적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훌륭했다. 눈을 뒤집어 깐 채 흰자를 번뜩이며 ‘욕 랩’을 선보일 수 있는 10대 여고생이 흔하진 않으니까.

이후 심은경의 영화 필모그래피는 더욱 단단해지는데, 이듬해 영화 <로맨틱 헤븐>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고, 영화 <광해>에도 출연해 분량보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그녀가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쉬움을 남기더니, 올 초 <수상한 그녀>로 돌아왔다. 국민 배우 중 한 명인 나문희와 싱크로율 100 이상을 맞출 수 있는 스무 살의 여배우로. 갑자기 떠나버린 영화계의 샛별이 아쉬웠던 건 영화감독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사실 그녀는 미국에 있는 동안에 시나리오 여러 편을 받았다. 하지만 그중 <수상한 그녀>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개봉 직전까지 <수상한 그녀>를 기대하는 이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개봉 직후 심은경은 재조명을 받았다. 걸쭉한 사투리와 구수한 추임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질주하는 그녀의 연기는 진기 명기를 보는 듯했다. 이 진귀한 배우를 동년배의 어떤 배우가 대신할 수 있을까. 대체 불가, 반박 불가 소녀 배우의 앞날이 기대된다. 이건 20대 여배우가 귀하디귀한 우리 영화계의 기쁜 일이기도 하다.

임시완
임시완의 첫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은 꽤 성공적이었다. 극 중 한가인이 맡은 ‘연우’의 오빠 ‘허염’의 아역이었다. 열일곱에 장원 급제를 한 수재를 연기하기에 인상이 말끔한 임시완의 얼굴은 적격 이었지만, 여진구와 김수현이 휩쓴 세찬 인기의 폭풍 속에서 그 이상 무언가를 피워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안정적인 연기력은 합격점을 받았고, 시끄럽지만 재미있는 아이 광희만 있는 줄 알던 제국의아이들에 임시완이라는 또 다른 멤버가 있다는 존재감을 살렸으며,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해품달>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방송가에서 그는 블루칩이 되었다. 이내 <적도의 남자> 제작진도 임시완을 캐스팅했고, 드라마는 폐인을 모았으며, 그의 가치 또한 조용히 높아졌다.

이후 그는 웹툰 <미생>의 모바일 영화 주인공 ‘장그래’ 역을 맡았고, 보아와 함께 단막극 <연애를 기대해>에 출연하며 같은 멤버 광희가 부러워하는 ‘연기돌’이 되었다. 여기까지 임시완은 고만고만한 연기돌과 비슷한 길을 걸었고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2014년이 되자 그의 연기력에 대한 얘기가 새삼 화제가 됐다. 1천만 영화 <변호인>에 출연한 그의 모습은 보통의 아이돌이 아니었다. 송강호와 열연한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제국의아이들 임시완에서 배우 ‘시완’으로 10대는 물론 50~60대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늘었다. <변호인>으로 처음 임시완을 본 연령층 높은 관객은 그를 연기 좀 하는 참신한 신인 배우쯤으로 알고 있었다.

‘때 시(時)’에 ‘완벽할 완(完)’을 쓰는 이름이 기막힌 타이밍의 행운을 불러오는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공교롭게도 <변호인>의 배경인 부산은 임시완의 고향이었고, 연기한 인물 ‘진우’는 그가 다니던 부산대 공대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 쏟아진 찬사는 결코 행운에 기댄 결과물이 아니었다. 숙소에서 물을 받아 고문 신을 연습했고, 피폐한 상황에 처한 극 중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50kg까지 감량했다. 배우 곽도원은 일주일 동안 고문 장면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견딘 그를 대견해했고, 송강호는 후배 배우를 대하듯 쓴소리를 하며 그의 연기를 지켜봤다. 엄마 역을 한 배우 김영애는 첫 면회 신에서 끼니까지 거르며 신들린 듯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엔 신하균, 황정민 등 걸출한 배우들이 다녀가는 라디오 <공형진의 씨네타운>에 단독 출연해 배우 ‘시완’으로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도 했다. 그저 말갛게 수줍은 듯 씩 웃어 보이던 순진한 얼굴의 청년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미심쩍었던 건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미 그는 어느덧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진짜 배우‘시완’이다.

김주혁
영화평론가 허지웅 왈, ‘최악의 드라마’인 <구암 허준>의 주인공은 김주혁이었다. 주변의 누구도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없었고, 어쩌다 본 사람들도 이 드라마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일일 드라마, 매일 우리는 채널을 돌리며 김주혁을 봐야 했다. 영화 속 주인공만 맡아 연속 스트라이크를 치던 김주혁이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희한한 현상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사실 김주혁은 2세 배우로 아버지(고 김무생)의 후광 없이 천천히 조연부터 자신의 길을 닦아온 연기력 괜찮은 배우다. 1998년 <흐린 날에 쓴 편지>라는 다소 낯선 드라마부터, <카이스트> <라이벌> <흐르는 강물처럼> <프라하의 연인> 등 조금 색이 바랜 작품을 지나, 영화 <싱글즈>에서는 ‘수헌’, <홍반장>에서는 ‘홍반장’,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는 ‘광식이’로 분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에 대한 관심은 스캔들, 동료 배우와의 연애 등으로만 이어졌고, 이쯤 찍었던 영화 <투혼> <커플즈> 등은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그리고 곧 몰락하는 배우의 수순처럼 그는 일일 드라마로 돌아왔으나 이 또한 그가 원하던 결과물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김주혁은 달랐다. 이전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그것도 방송 한 회 만에. <1박2일>의 ‘구탱이형’으로. 진짜 영광 굴비를 맞히는 게임에서 ‘굴비감별사’로 굴비에 대한 지식을 별안간 뽐내며 잠시 맏형으로서의 체면치레를 하는 듯했으나, 인기 투표만 했다 하면 0표를 따내는 비굴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의 기대를 만족시켜줬다. 게다가 부족한 게임 이해 능력으로 억울함과 서운함을 토로하며 의도치 않게 시청자의 동정심을 유발하며 호감 상승 중이다. 그는 자신이 왜 <1박2일>을 하겠다고 한 건지 순간순간 후회한다고 했다. 하나 무슨 소리, 이제 막 재밌어지려고 하는 참인걸. 점점 궁금해지는 김주혁의 새 모습을 잔뜩 기대하며, 오늘도 그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이연희
이연희라는 배우는 꾸준히 우리 곁에 있었다. 드라마 <금쪽같은 내새끼> <해신>에서의 작은 역할부터 <부활> <어느 멋진 날> <에덴의 동쪽>에서의 조금씩 눈에 띄는 역할도 거쳐왔다. 2006년에는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덕에 나름 국민 첫사랑으로,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의 발랄한 여주인공을 지나 영화 <순정만화>에 이르기까지 내내 청순했고, 수채화처럼 아련했다.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경찰 역을 맡았던 <유령>이나 <구가의 서>처럼 시간이 되면 TV 앞으로 사람들을 모으던 드라마에도 연이어 출연했다. 하지만 이 많은 작품과 긴 시간 속에서 그녀가 얻은 건 이연희라는 이름만 들어도 움찔하게 되는 ‘발연기 하는 여신’의 이미지였다. 그런 그녀가 애석하게 느껴져 일부러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려고 한 적도 있다. 말하고 움직이는 이연희는 보기 힘들지만, 멈춰 있는 그녀의 사진은 얼마든지 책상 앞에 붙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주연으로 연기한 드라마를 찾아보게 되는 날이 왔다.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으로 나타난 이연희는, 분명 이연희였지만 예전의 이연희 같지 않았다. 한층 짙어진 화장과 껄렁한 태도의 그녀가 어쩐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오지영’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몰입하며, 함께 기뻐하고 분해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허겁지겁 달걀을 입 안에 쑤셔 넣어 흉해진 얼굴도 감추지 않았고, 언제나 미소를 지어야 하는 엘리베이터 걸의 숙명 앞에 울음을 삼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이연희는 예전보다 예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보다 연기하고 있는 이연희에 대한 반가움이 컸다. 거침없이 ‘오지영’이 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숨이 트였다. 연기력 호평 기사가 줄을 잇고, 그녀의 연기력이 아닌 오지영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었다. 아직 그녀의 어색한 표정과 마주할 때면 덩달아 어색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지만, 장족의 발전을 한 그녀에게 박수를 쳐줘야겠다.


김현중
김현중의 시작은 다른 아이돌과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SS501’이라는 이름으로 소녀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으며, 2009년에는 <꽃보다 남자>로 여느 아이돌처럼 연기에도 발을 담갔다. 두 번째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로 활동을 이어갔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하지만 이 성실한 청년은 미니 음반 2장을 내고, 타국에서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3년 7월, 2년 만에 세 번째 음반을 들고 컴백해 예능 프로그램에도 잠깐 얼굴을 비쳤다. 그러다 올해 KBS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감격시대 : 투신의 탄생>에서 파이터 ‘신정태’가 되어 돌아왔다.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동생을 잃고, 매일 거리에서 음모의 세력에 맞서 주먹을 날리며 살아가는 신정태의 흙 묻은 옷은 김현중에게 잘 어울렸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짧은 머리, 상처와 핏자국은 한 회도 쉬는 날이 없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내뱉는 길지 않은 대사는 허세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언제나 날 선 눈빛으로 카메라를 노려보는 장면도 오그라들지 않았다.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고 태평하게 말하던 <꽃보다 남자>의 지후 선배는 없었다. 대신 날고, 뛰고, 온몸을 던지며 17대 1의 혈투를 벌이는 비운의 파이터 신정태가 있을 뿐이었다. 무게감 있는 연기력과 압도적인 액션 신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지만, 비정한 운명에 발길질하며 신음하는 피투성이 신정태가 진심으로 안타까워지던 순간, 비로소 ‘배우 김현중’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겐 그저 막 배우가 되려는 그의 변화를 즐겁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editor CHO YUN MI
contributing editor KIM HYE SOO
사진 KIM NAM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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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YUN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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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YE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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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NAM WOO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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