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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산해진미 (1)

남해 보길도의 섬초·해초 밥상

On January 23, 2015

짙푸른 남해 바다에 구슬을 뿌린 듯 흩어져 있는 남도의 섬들. 그중 보길도는 늘 푸른 상록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따뜻하고 물 맑은 보길도의 겨울은 싱그럽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다. 섬에는 시금치와 봄동밭이 기세 등등 펼쳐지고, 바다에서는 각종 해초가 풍성하게 걷힌다. 섬초와 해초로 만든 보길도의 겨울 밥상은 이 계절 별미 중 별미다.

훈풍 부는 겨울 섬의 싱그러운 채소밭
한겨울 서해안고속도로에는 폭설이 잦다. 배 시간 맞추려 새벽 댓바람에 길을 나서면 먼저 짙은 안개를 만나고, 이어 방향도 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닥뜨리기 십상. 매번 낭패를 보면서도 남쪽으로 길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훈풍 부는 섬에서 받게 될 밥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 배로 40여 분이면 도착하는 노화도와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보길도는 연육교로 연결되어 있어 섬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이 없다. 들판마다 겨울 시금치와 봄동이 빼곡한데 뿌리가 길고 굵은 시금치와 봄동은 해풍을 견디기 위해 위로는 자라지 않고 바닥을 따라 잎을 넓게 펼쳐가며 자란다.

1 해풍 맞고 건강하게 자란 봄동은 2월까지 수확한다.
2 봄동마냥 건강한 웃음꽃이 핀 보길도 아지매와 음식 컬럼니스트 이명아 씨.
3 봄동 겉절이와 겨울 시금치무침. 봄동 2포기로 겉절이를 만들 경우, 마른 고추 10개, 양파·사과 1/4개씩, 마늘 2쪽, 생강 1쪽, 참쌀풀 2큰술, 액젓 4큰술을 잘 섞어 갈아서 쓰면 간이 딱 맞는다.

지금이 가장 맛있다! 겨울 시금치와 봄동
도시에는 한파가 밀어닥쳤지만 남녘 섬은 겨울에도 싱그럽고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보길도의 봄동밭에 수확철을 맞아 아지매들이 떴다. 칼로 일일이 따내가며 수확하는 동안 밭 전체에는 사각거리는 배추 소리 반, 아지매들 웃음소리 반으로 활력이 넘친다. 봄동도 배추인지라 물색없이 속이 들어찬 놈이 제법 있게 마련. 이럴 때는 꽃을 피우듯 손바닥으로 톡톡 쳐가며 펼쳐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다. 노지에서도 잘 자라는 보길도의 겨울 시금치는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 해풍 맞고 자란 시금치는 달고, 봄동은 고소해 어떻게 먹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만큼 맛나는 반찬이 된다. 시금치는 된장을 엷게 풀어 국을 끓여도 좋고, 데쳐서 무쳐 먹어도 달큰한 맛이 기가 막힌다. 소금과 참기름만으로 담백하게 무쳐도 좋지만 고추장과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치면 단맛이 배가된다. 아삭아삭하면서도 물이 많은 봄동은 액젓을 조금 넣어 겉절이로 무치거나 쌈으로 먹는다.

1 왼쪽부터 화랑기장, 잔젓, 송어젓. 화랑기장은 맛간장과 물 각각 1컵에 조청 2큰술을 섞어 끓여 식힌 다음, 씻어 건져 물기를 뺀 게 위에 부어 만들며 2~3일 숙성하면 먹을 수 있다. 먹을 때는 고춧가루와 마늘, 쪽파,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넣는다. 송어젓과 잔젓은 각각 1kg당 150g의 굵은 소금을 넣어 담그며 3개월 정도 지나면 꺼내 먹기 시작한다. 3가지 젓갈 모두 봄동 쌈이나 다시마 쌈에 얹으면 좋을 밥도둑이다.
2 봄동과 세모초, 쌈다시마. 젓갈을 양념해서 얹어 먹으며 봄동은 참기름 섞은 막장을 올려 먹어도 좋다.
3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쌈다시마, 세모초, 톳가루, 모자반. 모두 바위에서 뜯어 말린 자연산 해초로 여름에 주로 채취하지만 물때만 맞으면 겨울에도 조금씩 채취가 가능하다.

갖은 양념 친 젓갈 얹어 먹는 보길도표 쌈 밥상
섬토박이 김재녀 씨가 차려낸 밥상에는 멸치 그물을 올릴 때 딸려 오는 새끼 송어로 담근 송어젓, 잔젓, 화랑기장이 올랐다. 잘 삭은 멸치젓 맛과 비슷한 송어젓은 3개월 정도 삭힌 다음 잘게 다져 쌈에 얹어 먹고 2년 이상 숙성시킨 것은 달여서 국물만 받아내어 보관해두고 김치에 넣어 진한 맛을 낸다고 한다. 거무스름하면서도 보랏빛이 도는 잔젓은 개미만큼이나 잘디잔 새우로 담그는 귀한 젓이다. 육지에서 먹는 토하젓이 민물새우로 담그는 것이라면 보길도의 잔젓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되 바다 쪽에서 잡히는 보라색 잔새우로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송어젓과 잔젓을 섞으면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할 진하고 향기로운 잡젓이 된다. 이름은 잡젓이지만 맛은 깊고 진득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섬사람들의 봄동 쌈 먹는 법은 색다르다. 잘 삭은 젓갈에 매콤한 청양고추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 다음 얹어 먹는 것이다. 살짝 데친 다시마 쌈도 빠뜨릴 수 없다. 여기에는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그만인 해초, 붉은 세모초를 곁들여야 제격이다.

1 위로부터 파래장아찌, 황칠장아찌, 머위장아찌. 보길도 특산물인 황칠나무 잎은 4월에 나오는 새순을 따서 담그는 것이다.
2 싱싱한 해초와 섬초로 보길도표 건강 밥상을 뚝딱 차려낸 김재녀 씨.
3 11월부터 12월까지 말리는 디포리. 1월이야말로 연중 가장 신선한 디포리 국물맛을 볼 수 있는 시기다.

나물만큼 흔한 반찬, 싱싱한 섬초
간만의 차가 제일 커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사리만큼 재미있는 때가 또 있을까? 바위에 붙어 자라는 세모초며 모자반, 톳이 지천이니 그걸 뜯거나 바위 틈새를 따라 기어 다니는 작은 게를 주워 담아도 잠깐 새에 양동이 하나를 그득 채우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바다에 나가 찬거리를 마련하다니. 섬사람들에게는 텃밭에 나가 채소를 담아오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련만 뭍사람 입장에선 부럽기만 할 뿐이다. 섬에서 화랑기라고 불리는 작은 게로 담근 화랑기장 역시 며칠 전 바다에 나가 주워온 것으로 담근 것이라는데, 한 마리 집어먹어 보니 그간 먹어왔던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맹탕 싱겁게만 느껴진다.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맛
톳과 밤을 넣어 구수하게 지어낸 밥에 갓김치 깔고 조려낸 얼큰한 멸치조림을 곁들여 슥슥 비벼 먹어본다. 여기에 짭조름한 가리비젓에 세모초를 섞어 무친 가리비젓무침, 잣가루 섞은 겨자 소스에 무쳐낸 톳샐러드까지 바다 맛의 진수를 만났다. 잘 말려 거둔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는 디포리로 밑국물을 잡아 슴슴하게 끓여낸 모자반된장국이 개운하게 끝맛을 잡아준다. 이곳에서는 멸치 대신 디포리를 사용해 음식 맛을 내는 일이 많다. 대여섯 마리만 던져 넣고 끓이면 개운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돌아 별다른 재료를 넣지 않아도 음식 맛이 깊고 구수하기 때문이다. 아이 손바닥 길이보다 더 큰 대멸 말린 것은 대가리와 내장을 떼어내고 그대로 먹으면 짜지 않으면서도 고소해 간식 삼아 먹어도 좋다. 밑국물을 내면 디포리보다 좀 담백하다.

  • +INFO 섬초·해초 어디서 구입할까?
    모자반과 톳, 세모초, 쌈다시마 등의 해초류는 노화농협(061-553-5688)을 통해 소포장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잘 말린 햇멸치는 문근임 생산자(010-9881-7030)와 박은자 생산자(061-553-4717)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멸치는 1.5kg 상자 단위로 판매하며 볶음용 잔 멸치부터 대멸까지 크기와 종류에 따라 가격이 각각 다르다.
살아 있는 맛, 섬 메뉴 배우기

모자반된장국
재료
모자반(말린 것) 한 줌, 석화 100g, 양파 1/4개, 청양고추 2개, 된장 2큰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디포리 국물(물 4컵, 디포리 6~7마리, 무 7cm 1토막, 마른 표고버섯 5개, 대파 흰 부분 2대, 양파 1/4개)

만드는 법
1
냄비에 물 4컵을 붓고 디포리, 무, 마른 표고버섯, 대파 흰 부분, 양파 등을 넣어 끓인다. 거품이 나면서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 10분간 국물을 우려낸다.
2 모자반은 찬물에 담가 불린 다음 깨끗한 물에 서너 번 씻어 건져 송송 썬다.
3 알이 작은 석화는 슴슴한 소금물에 껍데기를 골라가며 씻어 건져 물기를 빼둔다.
4 양파는 채썰고 청양고추는 어슷썬다.
5 ①을 면보에 걸러 냄비에 붓고 끓이다가 된장을 체에 걸러 푼다.
6 ②의 모자반과 다진 마늘을 넣고 10분 정도 끓이다가 채썬 양파, 어슷썬 청양고추, ③의 석화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다.

우엉밥
재료
쌀 2컵, 밤 12개, 마른 우엉 1/2컵, 톳가루 3큰술, 양념간장(맛간장·물 1½큰술씩, 참기름 1큰술, 고운 고춧가루·다진 마늘·깨소금 1작은술씩)

만드는 법
1
쌀은 씻어서 2시간 불렸다가 체에 밭쳐둔다.
2 밤은 껍질을 벗긴다. 마른 우엉과 톳가루는 체에 한 번 쳐서 이물질 없이 준비해둔다.
3 밥솥에 불려둔 쌀을 넣고, 밤과 마른 우엉, 톳을 얹어 밥을 짓는다.
4 밥이 다 지어지면 살살 섞어 그릇에 담고 양념간장을 곁들인다.

  • + 맛간장 만들기
    국간장과 매실청을 7:3의 비율로 섞고 말린 사과나 말린 배 등 건과일을 한 줌씩 넣어서 끓여 만든다. 팔팔 끓고 거품이 올라오면 뚜껑을 연 상태에서 20분 정도 약한 불에서 은근히 달이듯이 끓인 후, 불을 끄고 식으면 걸러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먹는다.

톳샐러드
재료
톳 300g, 오이·양파·사과 1/2개씩, 소금 약간, 잣 소스(잣 2큰술, 생강맛술·매실청·고춧가루·식초 1큰술씩, 소금 약간, 조청 1작은술, 연겨자 1/2큰술)

만드는 법
1
생톳은 잡티를 골라내고 살짝 데쳐서 물기를 빼고 4~5cm 길이로 썬다.
2 오이는 반으로 갈라 씨 부분을 긁어내고 어슷썬 다음 소금을 약간 넣고 10분간 절였다가 흐르는 물에 헹궈 건져 꼭 짠 다음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살짝 볶아 식힌다.
3 양파는 채썰고 사과는 껍질째 양파와 같은 크기로 채썬다.
4 잣은 고깔을 떼고 깨끗한 면보나 페이퍼타월 위에서 잘게 다진다.
5 분량의 재료를 섞어 잣 소스를 만든다.
6 볼에 톳, 오이, 양파, 사과를 넣고 준비한 잣 소스를 넣어 버무린다.

멸치조림
재료 갓김치 5포기, 냉동멸치 400g, 양파 1/2개, 청양고추 2개, 멸치국물 3컵(물 3컵, 국물멸치 10마리, 무(5cm 크기) 1토막, 마른 표고버섯 3개, 대파 흰 부분 1대, 양파 1/4개), 조림장(맛간장 4큰술, 깨·마늘 1큰술씩, 후춧가루 1/2작은술, 생강술·맛술·고춧가루 2큰술씩)

만드는 법
1
냄비에 물 3컵을 붓고 국물멸치, 무, 마른 표고버섯, 대파 흰 부분, 양파 등을 넣어 끓이다가 거품이 나면서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 10분간 국물을 우려낸다.
2 갓김치는 물에 씻어서 짠 기를 빼고 물기 없이 꼭 짠 다음 가닥가닥 떼어놓는다.
3 냉동 보관해두었던 생멸치는 꺼내 자연해동시킨다.
4 분량의 재료를 섞어 조림장을 만든다.
5 양파는 채썰고 청양고추는 어슷썬다.
6 냄비에 손질한 갓김치를 펼쳐서 담고 ①의 멸치국물을 면보에 걸러 붓고 끓인다.
7 갓김치가 익어 야들야들해지면 ③의 멸치를 그 위에 담고, 준비한 조림장을 끼얹어 끓인다.
8 국물이 반으로 졸아들면 ⑤의 양파와 청양고추를 얹어서 한소끔 더 끓인다.

짙푸른 남해 바다에 구슬을 뿌린 듯 흩어져 있는 남도의 섬들. 그중 보길도는 늘 푸른 상록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따뜻하고 물 맑은 보길도의 겨울은 싱그럽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다. 섬에는 시금치와 봄동밭이 기세 등등 펼쳐지고, 바다에서는 각종 해초가 풍성하게 걷힌다. 섬초와 해초로 만든 보길도의 겨울 밥상은 이 계절 별미 중 별미다.

Credit Info

기획
김일아 기자
글과 진행
이명아
사진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