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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의 도보 여행

On October 15, 2013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서울 한복판에 시간의 숨결을 머금은 건축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1백여 년 전 서양 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의 근대 건물들은 서양과 한국 전통이 뒤섞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울의 기억 속을 걷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영화와 비운을 한 몸에 품다 낙선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낙선재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족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덕혜 옹주가 생활했던 비운의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낙선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의 24대 임금인 헌종이 경빈 김씨와 자신을 위해 지은 사적인 공간으로 조선 왕가의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낙선재는 인정전과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쉬이 발길이 가지 않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왕비의 손이 닿지 않도록 중궁전에서 가장 먼 창덕궁 끝자락에 지었기 때문이다.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던 낙선재, 낙선재와 나란히 지은 경빈 김씨의 처소 석복헌, 석복헌 옆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 왕후가 지낸 수강재 이 3개의 건물을 총칭해 낙선재라 부른다. 낙선재가 품고 있는 로맨스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헌종과 경빈 김씨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다. 헌종은 첫 번째 왕비 효헌 왕후 김씨가 세상을 뜨자 전례 없이 왕비 간택에 참여한다. 이때 헌종은 경빈 김씨를 마음에 품지만 명헌 왕후 홍씨가 계비로 간택된다. 그 후 3년, 왕비에게 생산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헌종은 경빈 김씨에 대한 깊은 총애와 왕후로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자신과 경빈 김씨만을 위한 석복헌을 지어 선물했다.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이 ‘취선당’을 희빈 장씨에게 선물하듯 말이다.

낙선재는 흥성대원군이 쓴 ‘장락문’ 현판이 붙은 정문을 넘으면 넓은 정원에 정면 6칸, 측면 2칸, 단층 팔작기와 지붕의 규모가 큰 익공집이다. 앞으로 돌출된 누마루는 사다리꼴의 높은 초석 위에 방주를 세워 만들고, 누마루 바로 아래 분구 주변의 얼음이 깨진 독특한 문양이 눈길을 끈다. 문짝 역시 무늬가 다양해 어느 공간에서나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집 뒤로는 큰 석재를 쌓아 만든 화계가 있고, 화계 사이사이 굴뚝과 각 단의 꽃나무, 괴석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한국 궁원의 전통 정원을 볼 수 있다. 이 아름답고 사적인 공간에서 조선 왕조 역사상 그 어느 여인보다 왕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는 경빈 김씨의 행복은 헌종이 스물세 살에 병으로 승하해 단 2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헌종의 슬하에 자식이 없어 궁중의 법도대로 사가로 내쫓긴 경빈 김씨(당시 나이 열아홉 살)는 인사동 사가에서 일흔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많지만, 궁에서 일어났던 낭만을 통해 역사와 생활양식을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접근법일 것이다. 막다른 길의 아름다운 후원과 짧지만 열정적이었던 로맨스, 왕과 나라를 잃고 비통함을 씹어 삼키던 왕족들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낙선재, 지금 다녀와도 좋다.

1 맨 앞으로 돌출한 누마루를 비롯해 공간 이동이 편리하도록 한 쪽마루, 다락방 등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2 무늬를 넣어 장식한 낙선재의 꽃담. 반복되는 문양이 지금 보아도 세련됐다.
3 작은 석축을 계단식으로 쌓아 꽃과 화초를 심은 화계. 화계 꽃담 옆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육각형 정자 상량정(평원루)을 볼 수 있다.
4 구름 위에 누각을 지은 듯 누마루 머름대 아래 유유히 흐르는 구름 문양, 그 밑 아궁이의 불기운을 막아주는 얼음 장식 문양 등 모든 것에 의미가 담겨 있다.
5 누마루와 온돌방 사이의 둥근 만월문이 이색적이다.
6 낙선재는 헌종의 검소한 성품대로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여느 사대부집과 다르지 않다.

Information

관람료 3천원(청소년과 65세 이상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6~8월 오전 9시~오후 6시 30분(2~5월·9~10월 오전 9시~오후 6시, 11~1월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안내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30분까지 2시간 간격(해설 시간은 약 1시간) 가는 방법 종로 3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조선 최초의 근대건축가 박길룡이 선보인 개화 한옥 민가다헌

민가다헌은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최초의 개량 한옥이자 명성황후의 친척 후손인 민병옥 대감의 집이었다. 화신백화점 등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룡은 전통 한옥에 서양 주거 방식을 도입한 한옥 개량화 운동을 펼치며 1936년 민가다헌을 선보였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화장실과 욕실을 내부에 넣고 전통 한옥에서 빛이 잘 들지 않는 안방 등을 전면에 배치, 채광을 좋게 했으며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해 각 방을 긴 복도로 연결했다.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해 채광과 보온을 동시에 꾀하고 내부에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빅토리아 양식의 우아한 가구들을 놓는 등 입식 구조를 채택했다.

현재는 퓨전 한식과 와인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어 외국인부터 내국인까지 독특한 한옥의 정취에 이끌린 이들이 즐겨 찾고 있다. 서양의 주거 양식이 들어오던 초기 개량 한옥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한옥에서의 주거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 볼 만하다.

건축 연도 1936년 주소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66-7
영업 시간 정오~오후 11시(오후 3시~6시 브레이크 타임)

고종 황제의 카페 정관헌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에서 커피를 접하고 그 맛에 푹 빠진 고종 황제는 서울로 돌아와 덕수궁 안에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했다. 설계는 조선 러시아 공사관과 중명전, 손탁 호텔 등 조선 말기의 초대 근대 건축물을 다수 만든 러시아의 사바친이 맡았으며, 삼면이 발코니로 된 회랑 형태로 지어 자연 풍광을 보며 다과를 즐기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주위에 있는 함녕전, 소나무 숲 등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의 정관헌에서 고종은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놓고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며 부인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열강의 침략 등으로 침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곤 했다.

한국 전통의 목조 건축에 정면 7칸, 측면 5칸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사슴 등의 한국 전통 문양이 조각된 서양식 발코니 등 서양 문물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이 섞인 초기 근대 건축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방문객도 회랑에 재현해놓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덕수궁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커피에 독을 타 고종 황제를 시해하려던 역사적인 사건을 담은 영화 <가비>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건축연도 1900년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 5-1 덕수궁 내
개방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 기타 덕수궁 입장료 1천원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서울 한복판에 시간의 숨결을 머금은 건축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1백여 년 전 서양 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의 근대 건물들은 서양과 한국 전통이 뒤섞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울의 기억 속을 걷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Credit Info

진행 / 리빙센스 편집부 사진
임상현, 김지훈, 최재인, 조영수, 박병진
도움말
안효진(쏭내관의 재미있는 史 교육현장 효상궁), 김용관(<영조의 세 가지 거짓말> 저자)
참고 서적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열화당)

2013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진행 / 리빙센스 편집부 사진
임상현, 김지훈, 최재인, 조영수, 박병진
도움말
안효진(쏭내관의 재미있는 史 교육현장 효상궁), 김용관(<영조의 세 가지 거짓말> 저자)
참고 서적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열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