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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호 EDITOR'S LETTER

On September 18, 2015

셔츠를 꽤나 좋아합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지난 기획 회의 시간. 누군가 셔츠를 주제로 한 패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순간 계절 바뀌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래요, 셔츠는 역시 이맘때 그 매력이 폭발하죠.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의 초입에서 망설임 없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게 바로 깨끗한 면 셔츠. 그 옆엔 부드러운 속살처럼 야들야들한 실크 셔츠가 나란합니다. 셔츠를 좋아하는 건 이 두 매력 덩어리의 서로 다른 얼굴 때문입니다. 뻣뻣한 소재, 목선을 아우르는 보수적인 칼라, 일자로 쭉 뻗은 소매선, 앙 다문 입술처럼 견고한 소맷부리. 면으로 만든 놈은 태생이 남성복인 걸 대놓고 드러내 도리어 섹시합니다. 남자의 속옷이었던 셔츠가 여성의 몸에 입혀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연인 간의 백허그를 연상케 할 만큼 농염한 것도 사실이고요. 본래 남성복이 여성의 몸에 맞게 진화된 것이어서 인지, 셔츠를 스타일링 한다는 건 매우 요사스러운 일입니다. 때론 유니폼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단정함을, 때론 시스루 톱보다 더 색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니까요. 여밈 단추를 얼마나 풀었느냐(혹은 닫았느냐) 셔츠 깃을 어느 각도로 눕혔느냐, 소매를 얼마나 걷었느냐, 소맷부리에 주름을 얼마나 잡았느냐, 하의에 셔츠를 얼만큼 넣었느냐에 따라 인상이 바뀝니다(이런…요물!). 하나의 옷이 그 어떤 조력자 없이 이렇게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반면 프린트와 광택이 만발한 실크 계열의 셔츠는 화려함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남성복에도 이런 류가 종종 눈에 띄지만 개인적으론 뭐랄까 젠틀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셔츠 본연의 자세를 남성성에 두고 있는 저로서는 남자가 입은 페이즐리 무늬 실크 셔츠란 게 좀 거북살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야들야들한 셔츠는 농익은 여성의 관능미가 제짝입니다. 이런 류의 셔츠를 입은 여성의 어깨나 팔뚝을 보고 있으면 화려한 알비노 버마비단뱀의 거죽이 연상되곤 하거든요. 두 개의 셔츠는 이토록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다음의 교집합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격 있되 은근 섹시함’ . 아, 이다지 얄밉고도 여우 같은 컨셉트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러니 워킹 우먼에겐 최적의 아이템일수밖에요. 그래서 전 셔츠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절절히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 ‘Shirts Dressing’ (152p)에 등장한 그녀들은 모두 멋스럽네요. 셔츠를 갖춰 입는 데 도움이 될 그녀들의 스타일링 팁까지 꼭 눌러 담았으니 ‘내일 뭐 입지’를 고민하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 어떤 트렌드 설명보다 유용할 겁니다. 제대로 가을입니다. 셔츠 얘기만으로도 이렇게 흐뭇해지는 걸 보니.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63호

셔츠를 꽤나 좋아합니다.

Credit Info

2015년 10월 01호

2015년 10월 01호(총권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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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