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비하인드 그라치아

2015년 9월 1호 EDITOR'S LETTER

On August 19, 2015

3주 전쯤 ‘두 남자’와 제주에 갔습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3주 전쯤 ‘두 남자’와 제주에 갔습니다. 늘 가던 구좌읍 한동리를 지나 종달리에 들어섰을 때, ‘동네’라는 간판의 카페를 발견했죠. ‘동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맘이 말캉해져 이미 파란 대문을 열고 있더라고요. 뭣보다 우리 세 식구(두 남자는 아들과 남편이에요)를 사로잡은 건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전권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처박고 만화 삼매에 빠졌죠. 더치커피와 함께 뚝딱 한 권씩 소화하고 다음 약속 장소로 가는데 다들 아쉬운 입맛을 다셨어요. 그때부터! 제주 시내 모든 서점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심야에 『심야식당』을 몽땅 다 읽어내릴 작정이었죠.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난 전화를 하고, 아들은 응원을 했습니다. “엄마, 포기하지 마!”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검색에 검색을 거쳐 서점 주인장들과 통화를 했지만 실패! 그때 남편의 긴박한 외마디. “만화방은?” 남편에게 ‘지니어스’라는 호들갑스런 찬사를 보내곤 서귀포시의 몇 안 남은 만화방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냐고요? 실패! 느린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담백한 만화로 밤을 지새우겠다는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 많이 슬펐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교보문고에서 몽땅 다 샀어요. 읽고 난 소감? 추운 새벽에 들이키는 우동 국물처럼 뜨끈했습니다. 이 ‘추억의 맛’이 그리워 휴가차 떠난 제주에서도 그리 집착했구나…. 현재의 나를 깊게 돌아보게 됐죠. 혀가 아니라 가슴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에 집착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게 바로 마음의 결핍 때문 아닐까요? 과거를 일깨워 현재를 따뜻하게 하는 소울 푸드의 정서가 2015년 가을을, 아니 미래 10년의 매일을 자극할 거라고 믿습니다. 모바일 세상에 갇혀 살게 된 우리란 동물이 작년 한 해를 집밥과 킨포크라는 화두 속에서 살았던 것처럼. 특히 패션은 과거 집착형 시제를 보여줄 겁니다. 물기 쏙 뺀 피로 사회에서 촉촉한 엄마 품을 찾는 아이처럼 말이죠. 사실 정서적 소울 푸드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창의 바이러스는 사라져버릴 겁니다. 무슈 디올이 자신의 창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꾸시던 정원과 그 꽃들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패션의 역사는 ‘결핍’의 역사로부터 비롯됩니다. 무슈 디올이 장미 정원을 그리워하게 된 건 2차 대전 직후 결핍된 여성성이 그리워서였을 겁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 결핍이 화두가 된 1960년대엔 미니스커트로 상징되는 모즈 룩이, 베트남 전쟁으로 평화에 대한 결핍이 대두되었던 1970년대 초반엔 꽃과 진으로 상징되는 히피 룩이 세상을 장악했었죠. 서정과 정서가 창의의 영감인 디자이너들에게 지금의 세상은 ‘악의 축’일 겁니다. SNS, 디지털, 불황, 피로, 우울 등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고도 남을 사회적 요소를 딛고 트렌드를 창의하는 그들에게 남은 건 추억의 소울 푸드뿐이죠. 그래서일 겁니다. 이번 2015 F/W 컬렉션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서적 회귀가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시골 처녀의 목가적 의상을 구현한 미우미우, 할머니 옷장을 뒤져 만든 것 같은 의상이 넘쳤던 구찌의 캣워크, 엄마의 처녀 시절이 그리워지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컬렉션…. 그 증거가 가을의 포문을 여는 <그라치아>의 쇼핑 섹션(178페이지부터)에도 담겼습니다. 이번 시즌의 옷들을 미리 살펴본 에디터들이 떠올린 추억의 영화들과 함께 말이죠. 장담하건대, 2000년대 초반 눈부셨던 패션계의 ‘퓨처리즘’ 같은 트렌드는 이제 한동안 볼 수 없을 겁니다. 디자이너들도 저처럼 ‘심야식당’류를 찾아다니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PS 2015 F/W 트렌드가 서정적이고 목가적이고 할머니적(?)이라, 마감을 하는 이 와중에도 시각적 피로가 없고 참 좋네요. 덧붙이자면, 122페이지의 기사도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우리 타임 푸어에서 벗어납시다’라는 칼럼인데요, 꼭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61호

3주 전쯤 ‘두 남자’와 제주에 갔습니다.

Credit Info

2015년 09월 01호

2015년 09월 01호(총권 61호)

이달의 목차
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