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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제대로 쉬게 될까?

휴가지에서도 강박을 느껴요

On July 29, 2015

대체 왜 그냥 쉬지 못하는 걸까? 미친 듯이 잘 놀아야 하고, 뭔가 얻어내야 하고, 발전하려 한다. 물고기 공포증이 있으면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러 세부에 갔다. 휴가가 아까우니까.

휴가를 다녀왔는데 피곤하다. 회사에 복귀하니 당연히 피곤하지. 그런데 휴가 중에도 피곤했던 것 같다. 휴가 사진을 정리해 본다. 즐거워 보인다. 세부 보홀 섬의 파란 바다, 집채만 한 고래상어, 어느 각도에선 봐줄 만한 비키니 사진. 페이스북에 뭘 올릴까 고민하다 관뒀다. 세부는 좀… 그렇잖아?

‘힙 터지는’ 업계 관계자가 “세부요? 패션지스럽지 않네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변명을 하자면, 세부는 안중에도 없었다. 네팔 트레킹과는 또 다른 느낌이니까. 두 달 전부터 네덜란드행을 예약했는데, 그 날짜에 중국 출장이 잡혔다. 그런데 마침 메르스가 번졌고, 상하이 영화제에 한국 배우마저 거부했던 중국인 만큼 출장도 당연히 취소됐다.

그래서 급히 예매한 곳이 세부다.
그럼 이 힙 터지지 않은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까. 뭐든 해야 했다. 휴양지인 건 알지만 ‘아, 그래서 거기 갔구나’ 할 명분을 찾고 싶었다. 좀 창피하지만 그랬다. 그래서 찾은 게 스킨스쿠버였다. 세부에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많이 따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 이거야. 세부에 7일이나 머무니까 입문인 오픈 워터, 그다음 단계인 어드밴스까지 따고도 남았다. 다이버 숍에 전화를 걸었다.

“저, 제가 물고기 공포증이 있는데 그 자격증 딸 수 있을까요? 오… 오프….” “오픈 워터요?” “네, 그거요.” 물고기도 계속 보면 귀엽다고 해서 예약했다. 남들이 왜 세부냐고 물어보면 “오픈 워터를 따러 간다”고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스킨스쿠버 협회인 PADI까지 들먹이며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바다 수영을 한 적 있나?

그때쯤 올리브 TV에 있는 친구는 런던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녀의 스케줄은 테이스티로드 런던판 정도로 보였다. “하루에 여길 다 돌 수 있니?”라고 물었더니(다 먹을 수 있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워낙 음식을 좋아한다며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 런던에 먹으러 가기도 하나? 그녀는 어쩌다 런던을 택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직업을 살려 레스토랑 리스트 업을 한 것 같다. 거기에서 뭐든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얻어올 심산으로 보였다.

이쯤 되니 ‘휴가 강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요즘 강박이란 단어를 많이 쓰니까. 자기 계발 강박, SNS 행복 강박, 건강 강박…. 나도 내 주변도, 24시간 열심히 살고도 죄책감을 느끼니 휴가에서도 뭐든 해내고 싶어 한다. 나처럼 자격증이라도 따거나, 뭐든 배우거나, 미치도록 잘 놀고 싶어 한다. 작년에 휴대전화도 꺼놓고 라오스로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간 회사에 사표 던지는 심정으로 세상과 단절돼 쉬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찌뿌드드했는데도(만성피로다) 기어이 밖으로 나가 크루즈 하고, 수영하고, 뜨겁게 달궈진 해먹에 누워 있었다. 더, 더, 더 잘 쉬어야 해. 지치는지 베개에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었다. 한 번은 한 달 휴가 왔다는 프랑스인이 “일주일?” 하고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래, 우린 일 년에 많아야 일주일 쉰다. 그 일주일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고!

다시 세부 얘기로 돌아와서, 결국 그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땄냐고? 땄다. 처음 3박 4일은 필기 공부와 스킨스쿠버만 했다. 저녁 먹으러 비치에 나간 게 다였다. 그 비치는 해 떨어진 뒤에만 가서 한 번도 낮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자격증을 따려면 첫날 이론 수업을 5~6시간 듣고 이틀 뒤 필기시험을 봐야 한다. 지구과학을 배운 고졸자면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10개 틀렸다. 60문항 중 12개 틀리면 떨어진다. 매일 5~6시간 스킨스쿠버를 하고 녹초 상태로 밑줄 치며 공부했는데 이 모양인 건 그냥 내 탓이라 하자. 내가 왜 휴가까지 와서 에어컨 냄새 나는 교실에 앉아 암기하고 있는 걸까. 의욕이 안 났다. 필기야 그렇다 쳐도, 스킨스쿠버는 전혀 체질이 아니었다.

첫날은 수영장에서 연습하는데도 깊이 내려갈수록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코를 잡고 숨을 내쉬는 ‘이퀄라이징’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후엔 이퀄라이징을 너무 자주, 세게 해서 코가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눈은 푹 꺼지고 코는 시퍼런 것이 참 안됐다. 둘째 날, 바다로 진출해 15m 수심에 들어갔다. 강사는 산호를 맨손으로 만지면 따갑고 부풀어 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해양 생물을 만질 염려가 있어 장갑은 줄 수 없단다. 절대 안 만지겠다고 했다. 안 믿었다. 결국 산호에 몸이 닿지 않도록 신경 쓰느라 다리에 경련까지 일었다. 운동을 너무 안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강사와의 갈등은 좀 이따 얘기하도록 하자. 어쨌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물속에서 마스크를 벗고, 호흡기를 빼고 다시 끼는 동작들을 완수해야 한다. 난 왜 지금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는가. 나만 빼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우주에서 유영하는 기분이에요. 누나는요?” “나? 자연의 섭리는 거스르면 안 되는 거 같아. 인간은 육지 동물이잖아.”

셋째 날, 다들 발리카삭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다. 스킨스쿠버가 좀 익숙해져 드디어 바닷속 풍경을 봤다. 최면을 걸었다. ‘이건 아름답다, 아름답다…. 그래 뭐가 무서워, 강사와 동료들이 함께 무리지어 다니는데.’ 그때 물고기 떼가 다가오면서 평정심을 잃었다(말했다시피 물고기 공포증이 있다). 허우적이고 나니 옆에 아무도 없다. 여기는 수심 20m. 한쪽은 절벽이고, 아래는 새까맣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떨지 말자, 배운 걸 떠올리자. 1분 동안 그 자리에서 동료를 기다리다 안 오면 위로 천천히 올라가는 거야. 어제 강사가 빨리 올라가다 폐가 터져 죽은 한국인 얘기를 해줬으니까 더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데 보트의 프로펠러 쪽으로 올라와버렸다. 그 보트가 출발했다면 내 머리는 프로펠러에 작살났을 거라고, 강사가 그랬다. 바다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혼나본 적 있나? 34세인데, 생판 모르는 남들 앞에서 혼나니 외롭고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 다이버 숍에만 강사들이 10여 명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스킨스쿠버에 빠져 세부로 넘어온 이들이었다. 강사 자격증을 딴 지 이제 3개월 된 여자부터(잘 가르칠 수 있는 거?), 한 7개월 했더니 지겨워 죽겠다고 다시 권태에 빠져버린 20대 남자까지. 그가 내 강사였는데, 한국이 싫어 떠나왔더니 필리핀도 싫어지는 모양새였다. 그 기간은 모든 게 부정적이었기에, ‘다이버 숍 사회’도 달갑지 않았다. 일상을 떠나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이곳의 일상에 젖는 기분이었다. 축축했다. 내 휴가는 망했다. 3일은 공부했고, 한 번은 죽을 뻔했으며, 어렵게 딴 자격증은 앞으로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스킨스쿠버를 다시 안 할 테니까.

이쯤 되니 네가 못해서 그런 걸 왜 난리냐고 전국의 스킨스쿠버 마니아들이 화낼 수도 있겠다. 그저 이 모든 게 나의 휴가 강박이 자초한 일임을 말하고 싶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쉬면 될 걸, 왜 자꾸 뭘 하려 드는지. 런던에서 먹다 지쳐 돌아왔을 내 친구는 과연 즐거웠을까? 내게 남은 건 바닷속에서 찍힌 몇 장의 사진(역시 사진은 미화)과 자괴감이었다. 다음 달 카드 대금과 함께 또 한 번 휴가의 기억이 떠오르겠지. 왜 스스로에게까지 힙 터지는 척하려는 걸까. 곧 ‘베를린으로 영감받으러 떠난다’는 친구도 제발 ‘휴가’가 되길. 그 영감으로 너의 커리어와 SNS를 업그레이드시키려 들지 말고.


고난의 7박 8일

  • 휴가 강박 때문에 신청한 스킨스쿠버 자격증 코스가 남긴 것? 그을린 얼굴, 죽을 뻔한 사고, 왜 이러고 사나 하는 후회.

EDITOR : 김나랑
PHOTO : 김나랑

발행 : 2015년 59호

대체 왜 그냥 쉬지 못하는 걸까? 미친 듯이 잘 놀아야 하고, 뭔가 얻어내야 하고, 발전하려 한다. 물고기 공포증이 있으면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러 세부에 갔다. 휴가가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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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1호

2015년 08월 01호(총권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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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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