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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호 EDITOR'S LETTER

On June 19, 2015

이번 주에 내가 뭘 했더라?

이번 주에 내가 뭘 했더라? 음… 가만있자, 신종 전염병 때문에 굵직한 패션 브랜드 매장 오픈 행사가 취소됐지.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한가할 뻔.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남들이 아프면(석 달 열흘간 행사만 준비했던 스태프들이 닭 쫓던 개처럼 넋 놓고 울부짖었다지. 허무해 허무해 하면서) 나도 아픈 게지, 암 그렇고 말고.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지는 브랜드 관련 행사는 매출 난항의 불우한 예고편. 일 년에 한 번 폭죽처럼 팡 터지는 화려한 바캉스 쇼핑 붐이 찍소리 한 번 못 내고 사그라진다. 딱 이맘때만 절정에 달하던 페스티벌 릴레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명을 이어간다. 육감적인 보디랭귀지가 넘치던 해변은 묵언수행 중이다. 돈, 돈, 돈, 돈이 돌지를 않는다. 그래서 돌아버릴 지경에 이른 사람이 눈 돌아갈 만큼 차고 또 넘친다. “여러분, 여러분의 ‘퐌타스틱’한 여름을 위해 지갑을 여세요!”라고 핏대를 세워야 할 수많은 브랜드의 목울대가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다. 피 말리는 눈치작전 혹은 힘 빠지는 자괴 모드에 돌입, 가뜩이나 없는 예산에 허리춤을 바짝 틀어쥐는 건 당연한 수순. 그 최전방에 패션 매거진이 있다. 브랜드의 신상 홍보를 등에 업고 머니 에너지를 충전하는 우리가 말이다. 말하자니 입만 아프지만 그 에너지 충전이란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너도 나도 마찬가지인 돈 얘긴 이제 그만하자. 더 기가 찬 건 한국 스태프들은 당분간 출장 오지 말라는 공문을 받아든 글로벌 브랜드 관계자들. 전장을 누비다 셔츠에 묻은 더운 기운을 털어낼 새도 없이 열어본 이메일! 그런데 이런 단어가 줄줄이 들어 있으면, 오호 통재라! 주야장천 내달렸던 한국 스태프들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쪽 일을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한국 잡지 퀄리티가 세계 최고’라는 일관된 찬사는 늘 한국 스태프들의 초인적인 ‘슈퍼 파월’ 때문이라는 사실. 보통 자본과 시스템이 퀄리티 유지의 기본인데, 희한하게 한국은 ‘그거’ 없이도 ‘그게’ 된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코리언의 힘이다. 눈치와 감각에 집중력까지 더한 알토란 같은 유전자를 탑재한 인간들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이래서 무너지는 것 또한 한순간이다. 시스템이 빚어낸 퀄리티는 사람이 무너져도 유지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만으로 엮어낸 퀄리티는 외부의 자극이 심해지면 와르르 무너진다. 이번 대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았나.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린 스스로를 ‘의료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하지만 시스템의 부재는 이 알량한 의료 선진국의 허점을 노려 한 방에 비수를 꽂았다. ‘원더풀! 뷰티풀! 판타스틱! 어메이징! 퍼펙트!” 호들갑스러운 칭찬 세례를 받던 ‘슈퍼 파월, 코리언’. 사실 그때마다 우리는 불안했다. 이 칭찬이 계속 이어지려면 희생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러고 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막 햇살이 다녀간 것 같은 나른한 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했던 기억. 낮잠을 깨고 나서도 한동안 늘어져서 멍하니 해를 쫓던 기억. 그런 시간의 공백이 좋아서 비실비실 입가를 실룩대던 기억. 사회생활이란 걸 이 대한의 땅에서 하는 동안, 시간이 그리 느리게 가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될까. 이번 주, 안팎으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기록으로 다 남기지 못할 만큼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었고,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결과가 쏟아졌다. 아, 그래서 이번 주에 내가 뭘 했더라?

PS. 멘붕이라는 표현,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건가 봅니다. 2주간 아이 학교는 휴교를 했고, 브랜드의 행사는 전면 취소되면서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전 괴발개발 이런 레터를 쓰기에 이르렀죠. 하지만 압니다. 이번에도 악으로 깡으로 ‘슈퍼 파월 코리안’이 해결책을 찾고야 말리라는 것을. 하…! 좀 벅차겠지만 말이죠.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57호

이번 주에 내가 뭘 했더라?

Credit Info

2015년 07월 01호

2015년 07월 01호(총권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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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