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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패션 취향에도 높고 낮음, 옮고 그름이 있을까?

패션 격차, 당신도 사실은 느끼고 있죠?

On May 11, 2015

얼마 전, SNS에서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광화문 패션을 ‘조꼼례’(조이너스 꼼빠니아 예츠)라 칭한 모 패션 칼럼이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 김지영이 말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나와 다른 패션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친다.

‘스타일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이다.’ 대학 시절 어느 책에서 읽고 밑줄을 쳐놓은 문장이다. 그 뒤로 스타일, 패션, 취향에 대한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스타일, 패션, 취향에 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거다. 누군가의 스타일을 좋다 혹은 나쁘다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짓이다. 다만 ‘저 사람은 나름의 스타일이 있구나’, ‘이 사람은 이 부분의 취향이 분명하구나’ 식의 생각은 가능하다.

스타일이 후졌다거나 취향이 나쁘다는 식의 판단도 곤란하다. 문화인류학에서도 누누이 배우지 않았던가. 각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지 이 문화가 저 문화에 비해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판단은 불가하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나 느낌을 갖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당위성이 분명하다고 해서 하지 않는다면 내가 진즉에 성인군자가 되었거나 득도를 했겠지. 잘되지 않기에 되뇌곤 한다. 스타일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난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름 힘주고 나갔다. 지난 시즌 L사의 셔링 스커트는 양쪽으로 주름을 한껏 잡아 뒤쪽 가운데로 리본을 드리운 듯 묶어놓은 형태다. 뒤태에 한껏 집중한 이 치마는 독특한 디자인과 잘 늘어나는 편안함으로 나의 선택을 받았다. 뒤에서 보면 한껏 솟아오른 리본만 보일 지경이다. 아이, 사랑스러워. 그러나 친구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달라도 한참이나 달랐다.

“어머, 이 공룡 뼈는 뭐야?”
아마도 그 친구에게는 내 어여쁜 셔링 스커트가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에 솟아 있는 골판처럼 보였나 보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참고로 그 치마의 색깔은 회색이었다. 화사한 색감도 아니다 보니 더욱 공룡 뼈처럼 보였을까. 보는 시각에 따라 나의 셔링 리본이 누군가에게는 공룡 등에 있는 오각 골판처럼 보일 수도 있는가 보다.

기분이 나빴냐고? 나와 오랫동안 봐온 친구이고, 그 친구의 패션 감각상 절대 시도할 수 없고 시도할 리도 없는 스타일의 옷이다. 친구의 취향을 익히 알고 있으니까. 얌전하고 무난한 스타일의 옷. 아마도 옷장을 열어보면 색상의 범주가 크게 2~3가지를 넘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비비드한 색상의 옷을 입거나 파격적인 디자인을 시도한 걸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기분 나쁘지 않다. 서로의 취향이 너무도 다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 그리고 어쩌면 ‘무슨 소리야, 이렇게 예쁜 치마를 보고 공룡 뼈라니. 패션을 모르는군’이란 마음도 조금 있었을 것이다. 내 취향에 관한 자신감, 내 스타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갖고 고른 옷이라 누가 뭐래도 내 눈엔 예뻐 보이는 옷이다. 친구의 반응이 나를 생채기 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그 정도의 감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공룡 뼈라 한들 쟤가 끄떡이나 하겠어?

패션과 취향에 대해 우월감과 열등감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전혀 없다고 시치미 떼기도 어렵다. 한 번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고, 나는 그저 다양성만을 보고 있다고 말하면 위선자가 된 기분이다. 분명 더 세련된, 더 발전한, 더 진보적인 타입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할 종류의 말이 있다. 취향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패션 스타일에 대한 언급이야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특정 브랜드를 싸잡아 얕보는 태도는 곤란하다. 우리에게 감히 특정 브랜드의 정체성을 폄하하고 깔볼 권한이 있는가.

한동안 점프슈트에 꽂혀 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옷을 계절별로 입고 다닌 적이 있다. 하이웨이스트의 검정 점프슈트는 화장실에 갈 때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한 아이템이다. 나와 친한 디자이너 한 명은 내가 그 옷만 입고 가면 ‘미용실에서 입는 옷’ 아니냐며 농담을 하고, 가끔은 머리를 감겨 달라고 내밀기도 했다. 취향에 관한 농담도 상대를 잘 안다는, 혹은 상대를 믿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만약 그가 아무리 나와 친한 사이라 해도 “뭐야, 겨우 그런 브랜드를 몇 개씩 산 거야?”라고 말했다면 내게 심한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취향들이 온전히 내 노력에 의해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한정 없이 겸손해져야 하며, 쓸데없이 우쭐해질 필요가 없다. 내 의지만으로 취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괜한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자괴감에 시달릴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문화란 결국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기에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배려와 존중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타인이 우리의 배려와 존중 따위를 바라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패션에 무슨 격차가 있어요? 다양성만이 존재하죠”라고 뻔뻔하게 말할 자신도 없지만, “너는 겨우 그런 브랜드를 입니?”라고 면박을 줄 당당함도 내게는 없다. 잘 실천되지 않기에 자꾸 곱씹으려 노력할 뿐이다. 스타일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야.

WORDS : 김지영(『웬만해선 그녀의 컴플레인을 막을 수 없다』의 저자)
EDITOR : 손안나
PHOTO : Imaxtree, Dollar Photo Club

발행 : 2015년 54호

얼마 전, SNS에서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광화문 패션을 ‘조꼼례’(조이너스 꼼빠니아 예츠)라 칭한 모 패션 칼럼이 사람들의 공분을 산 것. 김지영이 말한다.

Credit Info

2015년 05월 02호

2015년 05월 02호(총권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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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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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xtree, Dollar Photo 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