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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호 EDITOR'S LETTER

On April 20, 2015

글로 접한 많은 이들의 죽음 중,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글로 접한 많은 이들의 죽음 중,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사회학자였던 스콧 니어링에 관한 그의 아내 묘사다. 그는 아내인 헬렌 니어링에게 말했다. “내가 쓸모 있는 존재일 때까지만 살고 싶소. 내가 당신을 위해 나무를 운반할 수조차 없다면, 나는 가는 게 나을 거야.” 어느 날, 그들의 집이 있던 보몬트 숲 속 나무 식탁에 앉은 그가 잔잔히 선언했다.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 해요.” 그는 침대에 누웠고, 그대로 곡기를 끊었고,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그러곤 조용히 자신의 몸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녀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느리고 품위 있는 에너지 고갈’이라 표현했다. 그러고는 그 죽음이 ‘동물의 그것과 같다’고 말했다. ‘동물의 그것!’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미지의 문을 연 것 같은 기분? 초등학교 운동장을 처음 보았을 때의 광활함 같은 그런 느낌?
“동물은 죽을 때를 안다. 그걸 연장하려고 기를 쓰지 않는다. 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 곡기를 끊고 조용히 몸을 버린다”고 그는 말해 왔었다. 이들 부부의 글을 접하기 전, 지금의 내 삶이 지나치게 인위적(동물의 삶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라치아> 모바일 웹 개편과 해시태그 마케팅에 대한 회의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는 나지만. 그래도 ‘동물의 그것’이라는 문장을 윗주머니 한쪽에 넣어두고 산다. 동물적인 삶에서 지나치게 멀리 가지 않기를…, 나를 곧추세우는 부적처럼 잘 보관하고 있다.
이런 생각, 나만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이런 생각이 거대한 물결이 됐다. 패션지 용어로 말하자면 ‘트렌드’다. 트렌드란 것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그래서 대세를 이루는 ‘주류’를 뜻한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주류’는 뭘까? 벚꽃이 피기 한참 전부터 패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우먼스 트레이닝’(Woman’s Trainning), ‘애슬레저’(Athleisure)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만남의 테이블 위엔 늘 코코넛 주스와 각종 트레이닝 웨어의 룩 북이 그득했고. 미팅의 늪에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인위적인 삶’을 벗어나 ‘동물의 그것’으로 향하려 안간힘을 쓰는구나. 목표는 피로 사회, 우울 사회, 모바일 사회, 선택 장애, 분노 조절 장애…, 이 단어들로부터의 해방! 그래서 2015년 하고도, 봄의 패션은 동물적이다. 근육질을 추종한다. 그러다 보니 패션 업계에서 주목하는 여성 스포츠의 범위가 엄청 넓어졌다. 필라테스와 피트니스, 요가, 러닝 사총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스케이트보드와 서핑에 이어 줌바 댄스, 발레, 테니스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종목을 방불케 한다.

이번 호 <그라치아>는 이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 종마처럼 다져진 모델 한혜진의 몸을 필두로, 구석구석 자연으로 뛰쳐나가길 권하는 동물적인 옷들을 담았다. 때로는 치타 같고, 때로는 표범 같은 자연 친화적인 몸을 가진 이들의 관리 노하우 역시 담았다. 이 트렌드는 모바일이 초 단위로 우리를 짓누르고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는 요즘을 기점으로, 내일도 모레도 더하면 더했지 수그러들진 않을 것이다. 이름하여 ‘나 돌아갈래, 동물적인 몸으로’란 트렌드.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53호

글로 접한 많은 이들의 죽음 중,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다.

Credit Info

2015년 05월 01호

2015년 05월 01호(총권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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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