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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맞춤 셔츠에 이니셜 자수를 수놓던 시대는 갔다

Ego Trip

On March 24, 2015

지금은 향수부터 빵에 바르는 스프레드에까지 이름을 새길 수 있다. 트렌드에 속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절실히 찾는 요즘, ‘나’라는 매개는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 됐다. 제품에 이름 석 자 새기는 일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학창 시절, 아끼던 학용품 위에는 늘 이름 석 자를 적은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운동화를 살 때는 신발 끈과 로고의 컬러를 고르며 ‘내 것’임을 티내려 애썼다.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몇 시즌 동안 네이밍 서비스는 유행을 넘어 현상이 되었다. 그 범위는 가방이나 지갑에서 향수병, 초콜릿, 페트병에까지 확장됐다. 마치 영역 표시를 하듯 물건에 이름을 새겨 ‘내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 대유행이 됐단 얘기.

그 시작은 2006년, 초콜릿 브랜드 엠앤엠스(M&Ms)의 ‘마이 엠앤엠’ 서비스다. 초콜릿 알갱이 위에 원하는 모든 이미지나 메시지를 코팅해 주는 서비스로 인기를 얻었다. 루이비통의 ‘몽 모노그램’(Mon Monogram)’ 시리즈가 그 뒤를 이었는데, 스피디나 트렁크 등 루이비통의 대표적 모델에 이니셜을 새길 수 있도록 했다. 가방을 받기까지는 한두 달쯤 걸리지만, SNS에 ‘인증 샷’이 올라오는 건 순식간. 이를 본 대부분의 친구는 그 가방이 누구 것인지, 얼마의 시간과 돈을 들였는지 단번에 파악한다.

  • 지난해 대히트를 기록한 코카콜라의 ‘셰어 어 코크’ 시리즈.
  • 가방에 원하는 이니셜과 스트라이프 패턴을 새길 수 있는 루이비통의 몽 모노그램 서비스.

그중 SNS를 가장 뜨겁게 달군 블록버스터 급 네이밍 서비스는 단연 코카콜라의 ‘셰어 어 코크’(Share a Coke)다. 이름뿐 아니라 ‘고마워, 사랑해’ 등의 글귀가 프린트된 라벨의 콜라병은 작년 초 거의 모든 이의 프로필 사진에 등극됐을 정도니까. 전 세계에서 매년 17억 개가 팔려나가며 ‘원래부터’ 잘나가던 코카콜라는 작년 한 해 단 하나뿐인 콜라병으로 더욱 ‘힙’한 명성을 이었다.

글로벌 광고 대행사 ‘레오 버네트’(Leo Burnett)의 전략 담당자 미셸 페레는 점점 몸집이 커지는 네이밍 서비스 트렌드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상품 안에 가치를 두려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어요. 내 이름이 새겨진 상품이 기존의 상품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죠.”

네이밍 서비스의 시대 고야드나 샤르베(Charvet)처럼 주문 제작 서비스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독점’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부자 고객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대중에게 닫혀 있던 문을 커스터마이징 마케팅을 통해 열기 시작했다. 미셸 페레는 이를 ‘매스클루시비티’(Massclusivity)라고 설명한다. 대중을 뜻하는 ‘Mass’와 특권적 의미의 ‘Exclusivity’가 합쳐진 신조어로, 일종의 대규모 주문 제작을 의미한다. 대량 생산된 제품이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으로 탄생한다는 뜻.

‘악마의 잼’으로 유명한 브랜드 누텔라는 페이스북을 통해 로고 대신 고객의 이름을 스프레드 병에 새겨주는 이벤트를 발표했고, 한 달 만에 4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좋아요’를 눌렀다. 누텔라의 프랑스 마케팅 담당자인 발렌티나 데스티노는 “누구의 냉장고에나 있는 누텔라가 ‘내’ 누텔라가 된 점이 특별하죠. 그 결과 브랜드와 고객들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어요”라고 밝혔다.

아이디어 상품 전문 온라인 숍 파이어박스(www.firebox.com)에서 판매하는 고전문학 전집은 제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구매 전 요청 사항에 입력만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철수와 영희』로 변경될 수 있다는 얘기.

“힙스터와 놈코어, 단 두 가지 단어로 모든 사람의 캐릭터를 표현할 수는 없어요. 네이밍 서비스는 개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디자인 컨설팅 회사 ‘페클레’(Peclers)의 전망 컨설턴트 앙투앙 뷔르제의 말이다.

  •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버버리의 2015 봄/여름 시즌 가방을 들고 있는 모델 조단 던과 말라이카 퍼스.
  • 이니셜 참 38만원 콜롬보.

자아도취 마케팅 버버리 홈페이지에서는 트렌치코트 같은 헤리티지 아이템에 이니셜을 새겨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1년부터 시작된 ‘비스포크’(Bespoke) 프로그램으로, 런던 리젠트 거리에 위치한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제공하던 클래식한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연장한 것이다. 신제품인 ‘마이 버버리’ 향수 역시 네이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엑스몰에 오픈한 버버리 뷰티 박스 매장에서도 90ml 이상의 마이 버버리 향수를 구매하면 병 위에 이니셜을 새겨준다. 이 서비스로 큰 성공을 거둔 버버리는 모든 향수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지 고민 중이다.

미셸 페레는 “사람들은 자아(Ego)를 경쟁하듯 SNS에 드러내요. 자신이 남들과 구별되고, 만인에게 공개되길 바라면서요. 제품에 새겨진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내 이름이 적힌 누텔라 병을 보며 스스로에게 존재감을 확인받는 거죠. 적어도 안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에요”라고 분석한다.

“아이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끼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소속감을 넘어 자신의 존재감까지 확인받고 싶어 해요. 당연히 ‘나’라는 무기는 남들에게 없는 비장의 카드가 되는 거죠.”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자아를 확인하는 동시에 남들에게 돋보이고 싶은 기분까지 충족시켜 준다. 누텔라나 코카콜라 같은 메가 브랜드의 네이밍 서비스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대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동시에 남들과 똑같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뿐인 병 디자인에 열광하는 이유다. 늘 매출 향상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브랜드에게 ‘보편화’는 마땅히 감수해야 할 숙명이다. 앙투앙 뷔르제 역시 “프라이빗한 제품들이 대규모로 돌아다니는 것은 브랜드에게 결코 반가운 일만은 아니죠”라고 동감한다.

이때 네이밍 서비스는 보편화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좋은 전략이다. 상품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동시에 희소성을 유지하는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자신의 존재에 심취한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미셸 페레는 확신한다. “네이밍 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그만큼 브랜드를 알릴 수 있어요. 또 고객이 제작에 직접 참여해서 브랜드의 투명함까지 증명할 수 있죠. 이 작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어요.”

  • 1년 넘게 니키 힐튼의 곁을 떠나지 않는 ‘잇 백’은 바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고야드 백!
  • 나는 하이디 클룸이 아니다’라는 글귀의 티셔츠는 하이디 클룸이 입었을 때 가장 빛나는 법.

남과 다르다는 착각 한 가지 성분만을 변화시켜 향수 제조에 참여하거나 프린트만 바꿔 스튜어트 와이츠먼 부츠의 공동 디자이너가 된다. 혹은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영화 제작에 참여해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다. 이런 일들 전부는 당신에게도 가능한 이야기다. 요즘 어딘가에 이름 한 줄 새기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이쯤에서 자동차 브랜드 포드(Ford)의 창설자 헨리 포드의 아이러니한 명언이 떠오른다.

“누구나 원하는 컬러의 모델 T를 고를 수 있다. 그게 블랙이기만 하다면!”

모델 T는 포드의 첫 대량 생산 자동차로,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빨리 마르는 블랙으로 차체의 컬러를 통일했다. 그의 말처럼 네이밍 서비스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브랜드에게도 소비자에게도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향수 브랜드 아틀리에 콜로뉴(Atelier Cologne)가 2010년 휴대용 케이스 각인 서비스를 론칭할 때만 해도 그들은 이 서비스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대신 후각적 체험을 풍부하게 할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론칭 이후 브랜드는 ‘대박’이 났고, 결론적으로 향보다는 특별한 서비스 덕이 컸다.

“큰 사이즈의 향수를 구매하면 여행용 스프레이에 둘러진 가죽 띠에 이니셜을 새겨줘요. 가죽은 8가지 컬러 중 선택할 수 있죠. 이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어요. 론칭 이후 50만 병이 팔렸고, 이 서비스가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했어요.” 아틀리에 콜로뉴의 공동 창업자이자 운영자인 크리스토프 세르바셀의 말이다.

무엇보다 이 트렌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모두가 특별한 셀러브리티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발끝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법한 핫 셀럽조차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액세서리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나는 하이디 클룸이 아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셀피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하이디 클룸처럼!

WORDS : Lionel Paillès
ILLUSTRATOR : Paul Grelet
EDITOR : 서지현
PHOTO : 김영훈(제품), Splashnews/Topic, Imaxtree, ©Louis Vuitton, Coca Cola

발행 : 2015년 51호

지금은 향수부터 빵에 바르는 스프레드에까지 이름을 새길 수 있다. 트렌드에 속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절실히 찾는 요즘, ‘나’라는 매개는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 됐다. 제품에 이름 석 자 새기는 일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Credit Info

2015년 04월 01호

2015년 04월 01호(총권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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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Lionel Paillès
ILLUSTRATOR
Paul Grelet
EDITOR
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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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제품), Splashnews/Topic, Imaxtree, ©Louis Vuitton, Coca C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