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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호 EDITOR'S LETTER

On February 04, 2015

이제 아침나절 햇살이 제법 노르스름하다. 서슬 퍼렇던 찬 기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EDITOR IN CHIEF 안성현

이제 아침나절 햇살이 제법 노르스름하다. 서슬 퍼렇던 찬 기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딱 요런 날씨엔 퍽퍽했던 신문의 문체마저 촉촉하게 느껴진다. 조간신문 구석구석을 애무하는 기분으로 훑던 중, 한동안 미셸 오바마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라치아>는 옷차림에 담긴 유명인들의 패션 지령을 수시로 분석하는 잡지다. 미셸은 우리의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유력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옷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도 하거니와 그녀 자체가 옷을 잘 입기 때문이다. 여기서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은 예쁘게 입는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녀는 옷에 문체를 녹여내는 지략가다. 난 지위가 높아질수록 이 패션 지략의 등급도 높아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최신 트렌드를 온몸으로 감각 있게 표하는 패피들보다 몇 수는 위인 패션 지략가들은 옷으로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지난해 말 배우 강소라는 3만원대의 H&M 미니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음으로써 지략가 세계에 입문했다. 그녀는 SNS를 달구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토플리스보다 안젤리나 졸리의 2만원짜리 블랙 드레스가 주는 격 있는 파워를 추구하는 부류일 거다. 대중은 그들이 뿌린 메시지를 착실히 주워섬긴다. 그녀들의 허황되지 않은 패션 소비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자 한다. 외교 사절이라 불리는 정치인 와이프들은 이 같은 패션 지략에 올인해야 하는 팔자다. 원피스 릴레이션십의 대가 케이트 미들턴 세손빈은 해외 순방에 오를 때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컬러의 원피스부터 챙긴다고 한다. 초저가 브랜드부터 최고의 디자이너 제품까지 고루 섞는 것 역시 기본 중의 기본. 미셸 오바마의 옷차림은 그 정도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연관 검색어에 제이크루가 있을 정도로 그녀의 중·저가 브랜드 공략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미국 영부인의 옷은 50억 달러,그러니까 5조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옷을 입을 때 예쁠까를 따지는 건 사치다. 이 옷을 입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를 따지는 게 먼저다. 미셸은 색채학적으로도 영민하다. 그녀의 옷차림엔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이 적다. 대신 희망과 화합을 상징하는 옐로, 레드 계열이 많다. 민주당의 상징 컬러인 블루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만큼 정치색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야 할 때 입는다. 스커트와 팬츠를 입는 비율은 약 8 : 2 정도. 대체로 어머니의 정서가 필요할 땐 스커트, 스포츠나 건강 행사 땐 팬츠를 입는다.

내가 아침나절 그녀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한 건 사실 생경한 그녀의 와이드 팬츠 때문이었다. 뉴스의 호들갑스러운 ‘히잡을 쓰지 않은 영부인’이란 타이틀 때문이 아니었다. 히잡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대부분의 기사는 미셸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클린턴 국무부 장관도 메르켈 총리도… 많은 서구의 여성 정치인도 히잡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신문 한 귀퉁이에 박힌 그녀의 팬츠 차림을 한참 바라보다 검색창을 두드려 옷의 색깔을 확인하고 난 후 웃었다. 블루 셔츠와 재킷. 차라리 이번 패션에서 주목할 건 이 블루 컬러와 와이드 팬츠. 노동자와 인권을 상징하는 블루 컬러의 메시지. 좀처럼 입지 않던 팬츠를 논란이 될 게 뻔한데도 굳이 입고 나선 그녀의 뚝심. 2015년 오늘까지도 여성 운전이 금지된 그런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가운뎃손가락. 기호학의 대가 롤랑 바르트는 샤넬을 일컬어 ‘패션의 새로운 문체’라고 했다. 아마 지금 그가 살아 있다면 미셸을 ‘강건체의 대모’라 일컬었을 거다.

PS 이번 호에도 <그라치아>는 옷차림이 내뱉는 문체들과 패션의 기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찬히 읽어주시길.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48호

이제 아침나절 햇살이 제법 노르스름하다. 서슬 퍼렇던 찬 기운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Credit Info

2015년 02월 02호

2015년 02월 02호(총권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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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