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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나가 털어놓은 [맥심]의 여자 에디터로 사는 법.

야한 사진이나 찍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요?

On January 19, 2015

여자들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준 연예인 급이다. 손안나가 털어놓은 [맥심]의 여자 에디터로 사는 법.

UFC 임현규 선수와의 촬영 중 니킥을 날리는 손안나 에디터.

나는 남성지 <맥심>의 여자 에디터다. 하루 종일 어떤 비주얼이, 어떤 아이템이 ‘남자’에게 먹힐까 궁리한다. 말하자면 나는 이종석의 입술보다 현아의 골반에 더 눈길이 가고, 이번 시즌 출시된 신상 백보다 이번 시즌 복귀한 운동선수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다.

기획 회의 중에 나와 내 동료들은 매번 진지한 얼굴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양말을 신는 게 섹시하다니까?” “아니, 맨발이지. 선미를 봐라.” “그럼 절충해서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여캐(여자 캐릭터)처럼 니삭스를 한쪽 다리에만 신기는 건 어때?” 알고 있다, 이런 나를 보는 극과 극의 시선이 존재함을. 주로 남자들은 열광적이고, 여자들은 냉소적이다.

한번은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 거기서 야한 사진이나 찍고 그러는 거야?” 야한 사진이나? ‘야한’ 사진이 아니라 야한 사진‘이나’에 울컥했다. 난 ‘야한 것 =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노력을 (그따위 것)‘이나’의 태도로 깔아뭉개는 건 나쁘다고 생각한다(참고로 <맥심>에서 여자 화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채 안 된다. 나머지 대부분은 텍스트 위주의 피처 기사다.



뭐, 그녀는 영원히 궁금하지 않을 팩트겠지만. 누군가는 이 매체의 마초적인 콘셉트에 불편할 수 있다는 거, 인정한다. 나도 여잔데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난 <맥심>에 나오는 섹시한 여자들이 좋다. 페미닌하고 러블리한 매력도 좋지만, 글래머러스하고 섹시한 매력이야말로 여성미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게 “같은 여자면서 어떻게 남성의 관음적인 시선을 부추기고 여성의 성 상품화에 일조할 수 있지?”라고 비난의 화살을 쏜다면,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음흉한 시선으로 ‘대물 아이돌’ 운운한 적 정말 단 한 번도 없어?”라고 되묻겠다.

‘야한 사진이나’와 더불어 자주 접하는 또 한 가지 부정적인 시선은 ‘에디터가 연예인도 아니고 왜 자꾸 잡지에 나오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건 에디터 개인의 기획도, 한국판 매거진의 로컬 전략도 아닌 전 세계 <맥심>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맥심> US판 에디터들은 경찰이 휩쓸고 간 마약 제조 현장에 잠입해 잔해를 뒤지고, 우주인 중력 체험 아카데미에 등록해 자신의 신체 변화를 기록한다. 술자리 게임을 집대성한 기사에 실제로 자기들이 벌인 술판을 적나라하게 내보낸다.

작년 이맘때 나는 겨울철 아르바이트 체험 기사 때문에 금요일 저녁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군밤을 팔았다(대충 흉내만 낸 게 아니라 원통형 화로에 연탄을 피워서 구운 리얼 직화 구이 군밤이었다). 거기에 들어간 여러 장의 현장 사진 중 군밤을 판 당사자인 내가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부자연스럽지 않나?

몇 달 전에는 남자 20명과 여자 20명이 각각 3분씩 짧게 대화를 나누는 ‘스피드 데이트’에 참가해 기사를 썼다. 참가자 대부분이 모자이크와 익명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그 기사에 얼굴이 팔려도 괜찮은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었나? 어? 가끔은 선배들 촬영에 ‘동원’되기도 한다. 트레이닝복에 뺑뺑이 안경을 쓰고 밤샘 작업을 하다가 끌려가서는, 입 주변의 마른 침 위로 파운데이션을 펴 바르고 ‘쭉빵’한 맥심 모델들 옆에서 무수리 역할을 맡아야 한다. 아아, 그 굴욕 안 당해 본 사람은 말을 마시라.

과정이 어찌 됐건 이런 종류의 체험 기사에도 나름의 진정성은 있다. 내가 ‘그림’을 연출하고자 군밤을 판 거라면 뭣 하러 카메라 뒤에서 연탄가스 마시며 개고생을 했겠나. 다행히 독자들도 그 진정성을 알아봐 주는 것 같다.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와 자고 싶어지는 순간’, ‘로맨틱한 분위기를 망치는 이상한 체위’, ‘임자 있는 남자만 꼬시는 여자들의 심리’ 같은 자극적인 내용의 섹스 칼럼보다 정원풍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두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인 소개팅 취재 기사에 독자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던 건, 내가 키보드 앞에 앉아서 ‘소설’을 쓴 게 아님이 전해졌기 때문 아닐까? 어찌 됐든 이번 기회에 오해는 풀고 싶다. 내가 ‘오빠들 저 어때욧? 예뻐욧? 데헷~’류의 태도로 잡지에 얼굴을 들이미는 게 아님을.

넌 이해해 줄 줄 알았어
사실 ‘야한 사진이나 찍는 애’, ‘카메라 앞에 얼굴 들이미는, 뜨고 싶어 작정한 애’ 식의 비난보다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사람들이 내가 당연히 연애를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남성지의 업무상 남자들의 관심사를 꿰뚫고 있어야 하니 상대적으로 내 또래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과 말이 더 잘 통하는 건 사실이다. 소개팅이나 낯선 남자와의 첫 만남에서 내 직업을 밝히면 남자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도 사실이고. 여기에 “그거 들었어요? 알리스타 오브레임(종합격투기 UFC 헤비급 선수)이 이번 시즌 복귀한대요”, “LOL 하세요? 주력 캐릭터는요? 저는 아린데…” 식의 이야기를 툭 던지면 호기심은 금세 호감이 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란 말이다! 남자 취향을 잘 안다고 남자와 연애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

헤어진 남자 친구 뒷담화 좀 해볼까? 전형적인 교회 오빠 스타일이었던 그는 내 일 이야기만 나오면 똥 씹은 표정부터 지었다.
언젠가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너와 <맥심>의 발랑 까진 누나 사이의 갭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 이게 불편한 정도에서 끝났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내가 이 일을 그만두기를 은근히 바랐다. 이해는 한다. 파티 취재한다고 클럽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거기서 헐벗은 <맥심> 모델들과 같이 어울리다 어부지리로 엮여 번호를 주기도 하고, 그때의 일을 나중에 섹스 칼럼 소재로 우려먹는 이런 여자 친구가 교회 오빠에게 용납될 리 없지.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섹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항상 그 콘텐츠처럼 섹시할 거라는 믿음은, 어렸을 때 내가 치킨 집 딸 보고 “넌 좋겠다. 맨날 치킨 무 먹어서”라고 날린 물색없는 드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맥심>에서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마치 대단한 프리섹스주의자인 양 대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꽤 있다는 점이다. ‘섹드립’을 잘 받아줄 것 같아서일까? 심지어 인터뷰어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들은 일도 있다. “그럼 제가 느끼게 해드릴까요?”라는 말로 순식간에 현장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모 뮤지션. ‘이 XX가 터진 주둥이라고 어디 감히 말을 XXXXX, 경찰서, 어? 철컹철컹 당해 볼래?’라고 소리치며 다 뒤엎어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직도 한이다.

각설하고, 자유롭게 섹스하고 구속을 싫어하며 잘 노는 쿨한 여자로 기대하고 내게 다가왔던 뭇 남자들은 이내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라는 사실에 실망해 차갑게 돌아섰다. 관계가 깨지고 나면 그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넌 이해해 줄 줄 알았어.” 다른 여자랑 바람피워 놓고 그걸 딱 걸린 남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도 ‘너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란 답이 전부다. 연인 사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런 애매한 관계가 싫다고 말해도 ‘너도 좋아하는 줄 알았어’! 프리섹스를 즐기고 누군가의 구속을 극도로 싫어하는 <맥심>의 좀 놀아본 누나와 남자 친구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저 평범한 20대 여자의 간극은 이처럼 크다. 심지어 나 지금 솔로라고요.

EDITOR : 김현민
WORDS : 손안나(<맥심> 에디터)
PHOTO : ⓒMaxim

발행 : 2015년 46호

여자들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준 연예인 급이다. 손안나가 털어놓은 [맥심]의 여자 에디터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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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2호

2015년 01월 02호(총권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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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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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나(<맥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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