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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에도 기술이 있나요?

On December 04, 2014

바야흐로 드립의 시대다. 드립의 제왕들에게 대놓고 물었다.

‘요즘 강남 쪽에 가면 워낙 잘 고친 예쁜 애들이 많아서 괜히 위축된다. 내 얼굴은 뭐랄까, 약간 용산 전자상가 쪽이나 구로 공구상가 쪽 얼굴임.’ 퇴근길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 트윗이 올라왔을 때 일단 한 번 피식 웃은 후 RT를 했다. ‘자조드립’이 주를 이루는 이 트위터리안의 팔로워는 7천 명에 가깝고, 저 트윗은 200번 가까이 RT가 됐다.

이 계정뿐만이 아니다. 요즘 SNS에는 ‘140자 인생 진리’ 대신 연애도 못하는 노처녀 캐릭터의 ‘자괴드립’부터 어리고 예쁜 여자(남자)를 대놓고 밝히는 ‘섹드립’이 넘실댄다. 팔로워 수나 RT의 횟수도 유명인 못지않다. 하나같이 이상한데 웃기고, 딱히 남는 건 없다. 의미도 대의도 명분도 없는 그야말로 ‘드립’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 오픈 국어사전에서 한 누리꾼은 드립을 이렇게 정의했다. 1 ‘발언ʼ을 낮추어 이르는 말. 2 공연한 행위나 시도를 낮추어 이르는 말. 드립은 본래 ‘애드립’에서 나온 말로, 어이없는 발언이나 앞뒤가 안 맞아 누가 봐도 막 지어낸 듯한 발언을 가리켜 누리꾼들이 ‘개-(애)드립’이라 지칭한 것으로부터 발생한 단어. 지금 SNS에서 인기 있는 ‘드립’들은 여기서 조금 더 발전돼 누구라도 ‘풉’ 정도의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유머까지 곁들였다. 드립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여기에서조차’ 피곤하고 싶지 않다는 젊은 세대들의 강한 욕구의 반영. 퍽퍽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다. 이 시류에 잘 편승한 공공 기관이나 기업은 공식 SNS에 ‘드립력’을 탑재해 젊은 층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부산경찰, 고양시청, 콘돔 브랜드 듀렉스, 편강한의원 등이 그 경우다.

드립의 내용은 보통 ‘선 황당, 후 웃음’이다. 때문에 예측 불가능함도 필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드립과 비슷하게 보이는 ‘무의식의 농담’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의식의 농담 효과는 농담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켜 그 무의미 뒤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려 애쓰게끔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며 그것들은 실제로 무의미하다. 그와 같은 기만의 순간에 우리는 무의미에서 쾌락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다.” 이성, 비판적 판단, 억제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비용의 절약이라는 것이다. 처음 염두에 두었던 드리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정보가 보도되면 SNS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없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비교적 ‘작정하고’ 드립을 치는 두 명과 시종일관 별 의미 없이 던졌을 뿐이라는 드리퍼 한 명을 만났다.



남심 여심 들썩이는 드립 ❶
이환천의 문학살롱

페이스북 좋아요 약 4만. ‘일기도 엔터만 잘 치면 시가 된다’는 자기소개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들에 대해 조소 섞인 드립을 날린다.

이환천의 문학살롱

게시물을 올릴 때의 기준은?
펜으로 종이에 대충 써서 올리는 줄 알겠지만 사실 문학살롱에는 품질 검사팀이 있어요. 학창 시절 반에서 드립으로 이름을 떨친 지인 4명이 모여 드립의 강도는 적절한지, 많은 공감을 살 수 있는지, 사람들이 보기에 내용이 너무 거칠거나 비위 상할 정도로 더럽지는 않은지 등 철저한 기준과 검수 과정을 거쳐 합격한 게시물만 업로드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많이 얻지 못했을 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게시물을 올림에 있어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고민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회의하면서 밤을 새워요.

사람들의 반응은 예측 가능한가?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무조건 빵 터질 거야라고 생각한 글이 처참한 무관심을 받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쓴 글이 예상치 못하게 빵 터졌던 경험이 여러 번 있죠. 그래서 글을 올릴 때는 나부터가 재미있고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작업해요.

인기 있는 게시물을 쓰기까지의 시행착오가 있다면?
초반에는 친구들이 평가를 하다 보니 더럽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도 서로 재밌다고 신이 나서 쓰고 읽었어요. 그런 글들이 진짜 재미있는 줄 알고 더 자극적으로 강도가 높은 글들을 썼더니 읽는 사람들이 인상 찌푸리는 걸 봤죠. ‘여자 친구가 왁스로 앞머리를 세워줬는데 머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잘 세웠다고 칭찬을 하자 세우는 것은 무엇이든 자신이 있다’고 한 것처럼 예전에는 모두가 보는 공간에서 다루기 힘든 내용을 수위 조절 못하고 썼지만, 지금은 다양한 연령층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어요.

내 ‘드립력’의 출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지긋지긋한 못생김이 나의 드립력을 여기까지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외형이 볼품없다 보니 어떻게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드립을 살길로 삼았나 봐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치거나 애드리브를 구사하여 친구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지만, 대신 선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신명 나게 맞기도 했죠. 또 많은 여성이 모인 술자리에서 기가 막힌 드립을 구사해 여러 여성의 마음을 훔쳐본 기억도 있고요. 이러한 경험이 나의 드립력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 흥 풀면 팽 하고 나오는 드립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계정만큼 위트 넘치는 인간인지?
계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웃기고 더 신선할까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순발력 넘치는 애드리브는 존재하지 않아요. 여러 사람과 예상치 못한 상황 속,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트리는 것이 애드리브의 묘미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보면 온라인상에서는 내 진정한 드립력을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오프라인에서 단련된 인생, 온라인보다 못할 이유 없습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드립을 자랑한다면?
“일 그만두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물으시는 아버지, ‘한 며칠 쉴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필요한 것은 없느냐?’고 물으시기에 ‘부의 세습’이라고 대답했더니 예능감 좋다면서 칭찬을 들었다.”


가시 같은 드립 ❷
신림동캐리

트위터 팔로워 약 1만1천여 명.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으로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들을 드립으로 포장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 발행 : 2014년 43호
  • BLUMARINE

인기 있는 게시물을 쓰기까지의 시행착오가 있다면?
인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어요. 원래 대기업 SNS 관리를 몇 년 했었거든요. 그런 쪽으로 취업을 한 거였는데, 그때 ‘이 정도까진 글을 쓰는 게 좋고 이 이상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는 감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일로 쓰다 보니 SNS에 집착하지 않게 됐고, 기업 계정을 관리하면서 반응이나 팔로워 수에도 약간 득도하게 됐죠.

내 ‘드립력’의 출처는?
유난히 황당한 일이 잦은 내 인생. 예를 들면 첫 번째 사귄 남친이랑 밥을 먹던 중에(심지어 계산한 것도 나인데) 내가 반찬을 많이 먹는다고 남친이 내 뺨을 때렸어요.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난 이런 놈과도 사귀어봤다’ 이런 얘기하면 맨날 1등 먹는다고 트위터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인생에서 좀 많았어요. 내가 남다른 경험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 SNS를 하면서 얻은 수확인 것 같아요(씁쓸).

내 계정이 인기 있는 이유는?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이 황당해하면서 ‘이런 일이 있기도 해?’라고 하거나 ‘나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라며 공감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좀 전에도 페북에 서울에서 여자가 혼자 자취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지를 썼더니 많은 사람이 공감하더군요.

오프라인에서도 계정만큼 위트 넘치는 인간인지?
거의 같다고 보면 돼요. 주변에서 내 계정을 다 알고 있고, 곧 결혼한다고 회사 대표님이 ‘신림동 캐리’라고 적힌 라이터를 1천 개 찍어주셨어요.

가장 반응이 좋았던 드립을 자랑한다면?
“가상 결혼을 콘셉트로 한 예능 방송을 한 번 봤는데 짜증이 확 올라오는 게 결혼 준비의 대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이며 예단이며 양가 자존심 싸움이며 전세 대출이며 다 생략하고 한강 보이는 32평 아파트에서 발 씻겨주고 자빠졌네.” 별생각 없이 쓴 건데 일간지에까지 실렸었죠.


공감 드립의 최고봉 ❸
회의하는 회사원

페이스북 좋아요 약 1만. 회사 보고서 형식으로 회사원들의 애환과 고달픔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

게시물을 올릴 때의 기준은?
1 재미가 있거나, 2 공감이 되거나. 둘 다 충족되면 가장 좋지만 생업에 치어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쉽지 않은 관계로 둘 중 하나만 맞아도 성공이에요. 1번은 말 그대로 보고 웃을 수 있는, 평소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격한 말을 대신 해준다든가 말 자체가 재미있거나 하면 되죠. 2번은 단순 재미 추구보다는 마음속 깊이 담고 있던 얘기나 씁쓸하지만 적나라한 회사원의 현실 등이 주제가 됩니다.
인기 있는 게시물을 쓰기까지의 시행착오가 있다면?
시행착오라고 하기엔 애매한 것이 반응이 적어도 실패한 거라고 생각지 않아요(변명 아닙니다. 내 글은 모두 주옥같아요). 비정규직이나 잃어버린 청춘 등 현실에 대한 진지한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은 반응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확산이 작다고 공감이 작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는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댓글이 적더라도 깊게 공감하는 분들이 있어서 만족해요. 상사에게 반말 혹은 격한 말을 하는 콘텐츠가 확실히 인기가 많긴 하지만(내가 익명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름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의 장르가 다양하기 때문에 조절해서 올리고 있어요.

내 ‘드립력’의 출처는?
아무래도 타고난 센스 덕이 크긴 하겠지만, 이 정도 드립은 조금만 고민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나 역시 페이지 운영을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흘려 하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어떤 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인지 고민하게 되었죠. 순발력이 필요한 드립력은 타고난 것이겠지만 이렇게 정제된 콘텐츠에 대한 드립력은 흥미 있는 주제에 대해 연구한 만큼 나오는 것 같아요.

내 계정이 인기 있는 이유는?
대리 만족. 본인이 참고 있었던 얘기를 시원하게 상사에게 한다든가, 다들 쉬쉬하는 주제가 공개적으로 던져지는 것에서 오는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불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지만 힘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감 코드도 많은 분의 사랑을 받는 이유인 것 같고요.

오프라인에서도 계정만큼 위트 넘치는 인간인지?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생각해요. 비주얼도 호감형이라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면 훨씬 즐거운 답변이 되었을 텐데 아쉽네요. 정체가 탄로나 회사 잘리는 날, 연락 한번 하겠습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드립을 자랑한다면?
“몸이 처지고 힘이 없는 게 비가 와서 그런가? 관련 문서 : 회사 와서 그래.”


드립의 고수들이 밝히는 드립의 기술

자괴를 생활화하라
유머 감각은 내 행동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않는 자기 비하로부터 시작된다. 남을 비웃는 것보다는 나를 비웃고, 남을 비웃게 되면 나를 훨씬 더 비웃으며, 내 인생을 밑도 끝도 없이 비웃는다.

누군가의 입이 되라
평소 말하지 못했던 불만 사항이 나 혼자만의 불만인지 아닌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공감을 확신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살리라
‘회의하는 회사원’은 관련 문서(제목)가 핵심이다. 이건 반전의 재미인데 본문에서는 예측하기 힘든 내용을 관련 문서(제목)로 빵 터뜨린다. ex) 못 본 사이 팍 늙었네. 무슨 일 있었어? 관련 문서 : 나 회사 다녀.

커피는 쓰지만 카피는 달다
동일한 어감이나 글자의 반복 형태인 언어유희. 진부한 것 같아도 잘 활용하면 이보다 재치 있고 위트 있을 수가 없다. ex) 동기 껀 잔치, 선배 껀 눈치, 상사 껀 정치 : 결혼식 참석.

핫한 이슈에 촉수를 세우라
어떤 상황이 벌어져 모두가 그 상황을 보고만 있을 때, 한발 빠르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들을 생각해 내 ‘이 상황은 마치 ~와 같네’라고 드립을 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황과 이슈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할 경우 주위 사람들에게 ‘쓰레기, 나가 죽어라’ 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소하고 강한 단어들을 사용하라
이때다 싶을 때 짧고 강한 한 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다급한 마음에 욕이나 더러운 단어를 사용하면 단기간에 높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쓰레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사용에 앞서 많은 생각을 빠르게 해야 한다.

상황극을 자유롭게 받아줄 조연급 친구들을 항상 데리고 다니라
스폰지밥에게 뚱이가, 고니에게 고광렬이 있듯 착 하면 착 맞는 조연급 친구를 구하자. 유의할 점은 반드시 조연급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 자신이 친구를 빛내주는 조연이 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EDITOR : 김소영
PHOTO : Getty Images

발행 : 2014년 43호

바야흐로 드립의 시대다. 드립의 제왕들에게 대놓고 물었다.

Credit Info

2014년 12월01호

2014년 12월01호(총권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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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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