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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를 외우고 다니는 가을 여자, [왔다! 장보리]의 오연서.

내내 어여쁘소서

On September 22, 2014

오연서가 좋아하는 이상의 ‘이런 시(時)’ 마지막 구절이다. 그녀는 이상을 읽고, 추리소설을 100권 소장하고 있으며, 욕심은 독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몰랐던 오연서.

재킷 질 by 질스튜어트(Jill by Jill Stuart). 셔츠 구호(Kuho). 초커 스타일난다.

옷도 말투도 털털하네요.
샤방샤방함과는 거리가 멀죠. 간지러워요. 펑키한 티셔츠나 청바지를 즐겨 입고, 성격도 남자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 좀 여성스러워질까 했는데 안 그렇더라고요.

주위에 사람이 많아요?
그런 편이죠. 슬픈 게 나이 먹으니까 다들 바빠서 자주 못 봐요.

20대 후반이면 한창 일할 나이죠.
맞아요. 사업하는 친구도 있고, 조그맣게 가게 연 친구도 있고, 뮤지컬 하는 배우 친구도 있는데 다들 살기 바빠요. 저도 드라마 때문에 정신없고.

<왔다! 장보리>가 50부작인데 지치지 않아요?
오히려 주말 드라마는 미니시리즈보다 자는 시간이 좀 있어요.
고정으로 쉬는 날도 있고. 대신 극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편이라 힘들어요.

부모님이 보약이라도 해주셨나요?
드라마 초반에는 첫 신부터 끝 신까지 계속 나와 촬영하느라 몸이 아팠어요. 그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죠.

건강을 위해 따로 챙겨 먹는 거 있어요?
오메가 3, 비타민, 달맞이유, 각종 유산균까지 좋다는 거 다 먹어요. 아침에는 6~7개 알약을 털어 넣고 나오고요.
식사 때마다 고기를 먹는데, 그 힘으로도 버티는 것 같아요.

촬영 끝난 뒤에도 갤러리아 백화점 식품관으로 고기 먹으러 간다면서요.
고기 없으면 밥을 잘 안 먹어요. 반찬은 제육볶음, 특식은 삼겹살 이런 식이에요. 하다못해 고기만두라도 챙겨 먹어야 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날씬해요?
관리할 땐 잘 안 먹어요. 먹으면 먹는 대로 찌는 스타일이라 굶어서 빼요. 솔직히 살 빼는 데 비법이 따로 있겠어요?

운동한다고 할 줄 알았어요.
운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죠. 누워서 퍼져 있는 거 좋아해요. 살찌기 좋은 습관은 다 가지고 있어요.
남에게 보이는 직업이다 보니 의지로 안 먹고 운동하고 그러는 거죠.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인스타그램 소개말이 ‘내내 어여쁘소서’던데, 이상의 ‘이런 시’ 마지막 구절이네요.
요즘 시에 빠졌어요. 꼭 시집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 좋은 시를 발견하면 캡처해 두고 읽어요.

왜 그 시에 빠졌어요?
솔직히 이상의 시들은 너무 어렵죠. 그는 천재고, 나는 보통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에게 굉장히 끌려요.
제일 좋아하는 소설도 『날개』예요.

『날개』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누구나 국어 시간에 ‘날개’를 배우잖아요. 우리나라 최초의 모더니즘 소설이고, 문체도 세련되고 등등. 전 그저 읽을 때 특유의 이상적인 느낌들, 묘사법이 좋아요. 자연스레 소설 속 장면들이 상상되죠.

『날개』를 온전히 읽은 사람은 많이 없을걸요.
되게 재밌어요. 어른이 돼서 읽으면 다르게 느껴지는 소설이니까 다시 펼쳐 읽어보세요. 저도 고등학생 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요즘 새로 읽혀요.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몸을 파는 술집 여자의 마음이 전과는 다르게 와 닿죠. 문체도 예쁘고 나른하게 쓰여 있어서 감성적이고요. 특히 이 구절이 기억에 남아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혹시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에도 가봤어요?
몇 시까지 열어요? 꼭 가보고 싶어요.

집에 추리소설도 100권 넘게 있다죠.
서점을 좋아해서 자꾸 다니며 사들이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워낙 어려서부터 읽었거든요.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히가시노 게이고, 미나토 가나에 등 주로 일본 작가들이 많아요. 그들의 치밀한 묘사를 좋아하거든요. 스토리에 치중하는 추리소설이 많은데, 일본 소설들은 묘사가 예뻐요. 같은레몬티라도 영미 추리소설은 ‘레몬티가 있다’에서 끝나고, 일본 소설은 ‘햇빛을 받아서 밝게 부서지는 레몬티’라는 디테일한 설명이 들어가요. 그게 매력 있어요.

내일도 새벽 5시에 드라마 촬영이라면서, 그렇게 바쁜데 책은 언제 읽어요?
자기 전이나 쉬는 시간 짬짬이 읽어요.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추리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안 나서 좋아요.

블랙 니트 캘빈클라인.쇼트 슬랙스 루키버드.초커 스타일난다.슈즈 마르니.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도 스릴러나 공포물을 좋아해요?
피가 나오거나 귀신이 나오는 영화는 절대 못 봐요. 친구들이 그래서 더 변태 같대요. 차라리 눈으로 보지,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느냐고. 그게 더 이상하다고.

그럼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로맨틱 코미디요. 어렸을 때는 심오하고 진지한 예술 영화를 찾아봤는데, 나이 들면서 편하고 재미있는 게 좋아지더라고요.

하고 싶은 영화 장르도 그런 거예요?
맞아요. 사랑스러운 로코 해보고 싶어요. 좀 망가지고 못생기게 나오는데 귀여운 여자. 전 코믹 연기할 때 더 생기발랄해지거든요. 평소의 저와 닮아서 그런가 봐요.

장보리도 지나치게 밝잖아요.
맞아요. 초반에 했던 뽀글뽀글 파마머리도 제가 제안한 거예요. 너무 상투적이지 않느냐고 다들 우려했지만, 엄마들도 돈 아깝고 시간 없다며 그런 파마머리 하잖아요. 그럼 얘도 분명히 돈 아까워서 파마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 머리와 장보리의 밝은 성격이 잘 어울렸죠?

오늘은 머리를 길게 붙이고 싶어 했는데, 평소에 이미지 변신을 즐기나요?
네. 긴 생머리 안 한 지 진짜 오래됐어요. <넝쿨당>에서도 철없는 시누이 역할 하느라 어려 보이게 앞머리를 잘랐잖아요. 사실 첫 촬영하고 나서 잘림을 당했죠. 그 뒤부터 극에 맞게 변화를 주다 보니 머리를 계속 자르게 되더라고요. 드라마에서는 한 번 이미지가 잡히면 계속 그렇게 보여야 하잖아요. 화보에서만이라도 변신하고 싶었어요.

촬영 콘셉트를 상의할 때, 시도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SNS로 보내와서 놀랐어요.
SNS로 패션 관련 사진들을 계속 봐요. 할리우드 파파라치 사진들도 되게 좋아하고요. 쇼핑도 좋아하는데 집에 쟁여두고 안 입게 되더라고요. 보는 것만 좋아하나 봐요.

쇼핑은 주로 어디서 하는데요?
가로수길이오. 사람들이 알아보긴 하지만 빨리 해치우면 돼요. 요즘은 인터넷 쇼핑도 하고요.

좋아하는 스타일 아이콘은 누구예요?
이 사진 좀 볼래요? 메간 폭스가 주유하는 사진인데, 어쩜 이렇게 섹시하죠? 이 사진은 어때요? 이런 분홍 머리도 해보고 싶어요. 관심은 많은데 귀찮아서 정작 하는 건 몇 개 없죠. 이런 귀여운 아이돌 이미지도 해보고 싶은데, 키가 커서 안 어울릴 거 같아요.

키가 170cm나 돼서 놀랐어요. TV에서는 그렇게 안 커 보이거든요.
다들 그래요. 남자 배우들이 제발 힐 신지 말아 달래요.

추석 당일만 쉰다죠. 바로 내일인데, 고향에는 가요?
못 가요. 명절 때 내려가 본 지 3~4년은 된 것 같아요.

부모님이 섭섭해하지 않아요?
엄마는 서울에서 같이 살아요. 아빠는 고향에 계시지만 2주에 한 번씩 올라오시고요.
제가 장난으로 “또 왔어? 그만 와”라고 놀려요.

부모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편인가요?
집안 분위기가 그런 편이에요. 다들 친하고 스스럼없어요.

부모님께 맛있는 것도 자주 사드리나요?
요즘은 밥 안 먹어도 배부르대요. 특히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세요. 제가 주말 드라마를 하니까,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더 알아보시나 봐요.

유년기 때는 어떤 딸이었나요?
조용하고 무난했죠. 연예인 한다고 서울 올라오면서 속을 좀 썩였죠. 지금에야 무척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주지만, 초반에는 엄청 반대하셨거든요. 집도 지방인데 서울 가서 고생하는 딸을 누가 안 말리겠어요.

코트, 티셔츠 모두 보브(Vov). 뱅글 스타일난다(Stylenanda).

가슴이 답답할 땐 뭘 해요? 친구들과 술 한잔해요?
밖에 나가서 술 마시는 거 좋아했는데, 최근에 끊었어요.

왜 끊었어요?
솔직히 옛날엔 되게 많이 마셨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네요.
게다가 피부도 안 좋아지고. 이젠 답답하면 드라이브 나갈까 해요. 얼마 전에 운전면허를 땄거든요.

이제야 땄어요?
겁도 많고, 귀찮기도 했고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차 안 사준대서 ‘그래? 그럼 안 딸래’ 이런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차 살 능력이 되니 너무 바쁜 거예요. 매니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떨어졌을 거예요.

한 번에 붙었어요?
그럼요. 저보고 처음 배우는데도 잘한대요.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이 있다기보단 어렸을 때부터 하도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습득하는 감각이 있어요. 무용도 배웠고, 예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수업도 들었고요.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약수동에 있는 아파트예요.

그럼 살고 싶은 곳은 어디?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어요. 하와이 같은 휴양지도 좋을 거 같아요. 따뜻한 날씨에 맛있는 음식도 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사회생활을 일찍 하다 보니 늘 여유가 없었어요. 결혼하면 한적한 곳에 머물 거예요.

일은 결혼해도 할 거잖아요?
그럼요. 서울로 출퇴근하면 되죠. 효리 언니처럼. 인터뷰마다 긴 무명 생활에 대해 묻던데, 그때마다 담담하게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 되게 여려요. 연예계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욕심내면 스트레스만 받고 될 일도 안 돼요.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죠. 과하게 예뻐지려는 욕심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하면 조금씩 예뻐지더라고요. 마사지나 레이저 시술 정도가 적당해요.

그런 생각은 언제부터 갖게 됐어요?
재작년에 힘들었을 때부터요.

소위 뜬 다음 아니에요?
갑자기 <넝쿨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힘들었거든요. 드라마 끝나고 한 달 반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었어요. 몸무게도 8kg이나 찐 걸요. 그냥 나를 놓고 싶었어요. <메디컬 탑팀> 하면서 여유가 좀 생겼고, <왔다! 장보리>도 마음을 비우고 들어갔어요. 솔직히 이 정도까지 잘될 줄 몰랐어요. 작품마다 마음을 비우니까 더 큰 선물을 받는 거 같아요. 잘돼야 한다고 나를 압박하면 힘만 들고 실망만 커지잖아요. 기대를 줄이니 과분한 사랑을 받는구나, 다시 한 번 느꼈죠.

<왔다! 장보리>가 끝나면 뭐 할 거예요?
가까운 일본에라도 여행을 가고 싶어요. 화보 촬영으로 한 번 가봤는데 호텔에만 있었거든요. 제가 일본 추리소설이나 만화책도 좋아하니까 이번엔 제대로 놀려고요. 친한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함께 떠나는 스페인 여행도 잡아놓긴 했어요.
데뷔하고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기려나 봐요.

Epilogue
오연서를 얘기할 때 긴 무명 시절이 빠지지 않는다. 2002년 16세에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말숙이가 되기까지 10여 년의 공백. 그 기간에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작품에 출연했지만, 우린 오연서를 말숙이부터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이날만큼은 그녀가 인터뷰마다 지겹도록 대답했던 무명의 설움을 묻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날수록 털털함의 연유를 거기에서 찾게 됐다. ‘되게’라는 말을 많이 쓰고, 평소엔 제육볶음 특식으로 삼겹살을 원하는 고기 지향의 식성, 매니저의 연애사를 걱정하는 귀여운 오지랖. 지극히 ‘도시 여자’처럼 생긴 오연서가 구수한 장보리로 캐스팅된 데는 이런 성격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시청률 40%로 치닫는 드라마의 성공을 기대도 안 했다. “지난 10년간 제가 배운 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죠.”
그동안 어디 꽂히는지도 모른 채 화살을 쐈지만, 지금은 정중앙 렌즈를 맞혀도 들뜨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오늘 파리 여자처럼 입었으니 파리를 꼭 한 번 가고 싶고, 이마저도 안 되면 촬영 때 한 번 가본 적 있는 일본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정도.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그녀 말대로 예뻐지는 것도 주사기가 아니라 마사지부터 차근차근.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오연서는 욕심 없이 조금씩 나아간다.

EDITOR : 김나랑
PHOTO : 박자욱
HAIR : 김희애
MAKEUP : 최윤미
STYLIST : 박희경
LOCATION : 매스티지데코

발행 : 2014년 39호

오연서가 좋아하는 이상의 ‘이런 시(時)’ 마지막 구절이다. 그녀는 이상을 읽고, 추리소설을 100권 소장하고 있으며, 욕심은 독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몰랐던 오연서.

Credit Info

2014년 10월 01호

2014년 10월 01호(총권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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