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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내가 웹상에 남긴 수많은 흔적은 어떻게 될까?

내가 사라지면 이메일은요?

On July 04, 2014

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는 사실상 인터넷에 있다.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이메일, 페북, 블로그… 속의 기록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준비라도 해야 할까?

뉴스를 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몹쓸 상상이 시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손에 꼭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특히 찜찜했다. 재산이랄 것도 없고, 어차피 물건은 가족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법적인 근거도 있을 테고. 하지만 내 이메일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각종 포털의 클라우드에 올려둔 자료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아, 최악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 발달된 해킹 기술을 가진 누군가에게 비밀번호가 털리기라도 한다면? 인터넷에 흩뿌려둔 흔적들을 떠올리니 그야말로 아찔했다.

사실 나는 지나치게 사적인 그 모든 기록을 결코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 디지털 시대의 이심전심인지 이미 유사한 공포를 맞닥뜨린 이들이 전 세계에서 법적인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달 유럽사법재판소는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었다. 공익성에 배제되지 않는 한 개인 정보를 삭제할 권리를 인정한 거다. 구글이 유럽에서 개인 정보 삭제 요청 링크를 제공하자 자신에 관한 정보를 검색 엔진에서 지워달라는 요구가 하루 동안 무려 1만2천 건이나 쏟아졌다.

지난주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블로그, 이메일, 홈페이지, 카카오톡 계정, 게임 머니 등을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하고 생전에 상속 여부 및 상속인이나 승계자를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국가적인 비극을 몇 번씩 겪어도 그때만 잠깐 이슈가 될 뿐. 관련 법안 개정안은 몇 년째 국회 계류 중이고, 아직 사회적 협의나 공감대는 한참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지금으로선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각자 준비하거나 마냥 손을 놓고 있거나.

그래서 뭐라도 실천해 보기로 했다. 가장 큰 덩어리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개인 정보 검색 엔진 삭제는 아직 유럽 한정이라지만 알고 보니 구글은 지난해부터 ‘휴면 계정 관리자 설정’이라는 옵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일정 기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구글 계정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자동 삭제되도록 미리 설정할 수 있었다. 10년 가까이 사용해 온 지메일에 남겨둔 7675개의 대화들은 물론, 1428개의 전화번호가 담긴 주소록, 언제 쓰다가 말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캘린더, 매일 쓰는 크롬 브라우저에 북마크해 둔 889개의 사이트들, 우울할 때 다시 보려고 분류해 둔 유튜브의 비공개 리스트들, 예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작성하며 공유하던 문서들까지 모두. 구글은 이렇게 자동 폭파되는 대신 미리 누군가를 지정해 나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옵션도 마련해 뒀다.

이 대목에서 잠시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멈칫했지만, 역시나. 사랑한다고 나의 전부를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아니 딱 그만큼의 거리감을 지켜내고 싶어서, 나는 기꺼이 ‘모든 데이터 삭제 설정’ 항목을 클릭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 홀가분했지만 부담은 훨씬 커졌다. 고작 계정 하나였을 뿐인데 내가 남겨둔 흔적들의 방대한 양과 종류에 새삼 압도당했다. 사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내 땅이 아니었는데 남이 울타리를 쳐주니 착각하고 눌러 앉아 있었다는 자각. 눈앞의 편안함, 손 안의 기동성에 안주해 남의 땅에 멋대로 짐을 풀고 살았구나 싶다. 하지만 일기는 일기장에 쓰지 않은 나의 원죄려니 해도 이미 ‘네트’는 너무 방대하고 기억은 희미하기만 해서 더욱 문제다. 디지털 장의사들처럼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할지는 조금 더 두고 판단해 볼 생각이다. 계절마다 옷장을 정리하듯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을 되돌아보고 뭔가 남긴다면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맡길 건지 고민해 보면서.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나는 언젠가 때가 됐을 때 잘, 제대로 사라지고 싶다.


가상 유언장 “나를 지워주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 은밀한 금고에 보관하거나 변호사 사무실에 보내 공증을 해둬야겠지만, 그전에 나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적어보는 가상 유언장.

하드웨어 딸아, 엄마가 집에서 쓰던 두 대의 컴퓨터와 구형 모델까지 두 대의 아이패드는 미련 없이 포맷하길 바란다. 세 개의 외장 하드엔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엄마의 취미 생활이었던 영화와 드라마 컬렉션이 담겨 있단다. 1테라 용량을 거의 살뜰하게 채웠으니 심심할 때마다 열어보렴. 혹시 비밀번호가 걸린 폴더가 있다면 굳이 열어보려 애쓰지 않는 걸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친구 C야. 가족이 아니어도 신고를 하면 추모 페이지로 변환해 준다고 하니 이건 가장 IT 친화적인 너에게 맡긴다. 한 줌의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명징하게 드러나는 페이스북은 그들과 잘 헤어질 수 있도록 6개월 정도 살려두고, 트위터는 괜히 모르는 사람들이 말 걸지 않도록 바로 폭파시켜 주길.




블로그 딸아, 엄마가 파워 블로거가 되어 물려줬어야 하는 건데 미안하구나. 성향인 걸 어쩌겠니. 혹시라도 엄마의 오래된 블로그를 발견하게 된다면 조용히 읽고 폭파시켜 주길. 아마 수많은 비밀 글이 있을 거야. 너에게 네이버를 비롯해 나의 포털 사이트들의 메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따로 남길 거야. 클라우드에 올려둔 사진 및 원고들은 다운받고, 그다음엔 차분히 없애주렴.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맥북에어까지 고스란히 연동되는 애플 계정에 대한 판단은 구입한 앱이 많으니 네게 맡길게.

메신저 카카오톡과 라인, 두 개의 메신저는 조금 고민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공중에 흩어졌을 대화들이 텍스트로 남는다는 건 놀라운 일인 것 같아. 딸아, 혹시 추억이 필요하다면 너와 나의 대화창의 기록만 남겨두고 계정을 삭제해 주면 좋겠다.

회사 이메일 내가 쓰던 회사 컴퓨터를 포맷하고 계정을 가볍게 리셋할 IT 담당자님. 네, 하던 일 계속하셔도 됩니다. 하드 디스크에 있는 파일들은 모두 삭제하고, 원한다면 메일도 읽으시던가요. 일로 가득한 대화들이라 좀 지루하겠지만. 회사 계정으로 사적인 대화 따윈 절대 하지 않는(이메일이 한 개도 아닌데 대체 왜?) 나의 분류벽을 이럴 때나마 칭찬해 주고 싶네요.

EDITOR : 박소영
PHOTO : Dollar Photo Club

발행 : 2014년 33호

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는 사실상 인터넷에 있다.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이메일, 페북, 블로그… 속의 기록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준비라도 해야 할까?

Credit Info

2014년 07월 01호

2014년 07월 01호(총권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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