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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신랑을 위해 신부가 나섰다. 내 남자의 슈트 맞춤기.

내 남자에게 맞춤 슈트를

On February 19, 2014

난 이 칼럼의 주제를 여자 친구가 골라주는 남자 친구의 맞춤 슈트라 들었다. 이 말은 틀렸다. 이 칼럼의 제목은 그가 직접 자신의 취향대로 고른 맞춤 슈트다. 나의 그는 취향 있는, 아니 취향이 넘치는 남자니까. 그래서 힘들었다는 얘기다.

맞춤 슈트는 한 번의 가봉 과정을 거친다. 이때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의 맘을 남자도 느끼게 된다. 그 어색함이란!

나는 남성지 패션 에디터다. 그리고 여자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네 남자 친구는 좋겠다. 여자 친구가 예쁜 옷도 사주고, 뭘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알려줄 테니까.” 예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주는 옷을 입으며 초콜릿을 입에 문 아이처럼 기뻐했고, 그걸 보는 나도 흐뭇했다.

내 취향이 그의 취향이 되는 게 내 행복이었다. 그는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내게 잘 맞춰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의기양양했다. ‘나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니’라는 표정을 수없이 지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내게 남은 건 그들의 옷을 사느라 줄어든 내 통장 잔고뿐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를 만났다. 같은 남성지의 피처 에디터이며, 취향이 분명하다. 그는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을 사랑한다. 어른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옷 입는 취향이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내 옷을 살 때도 내 취향을 누르고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그를 위해 쇼핑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런 그와 1년을 연애하고 곧 결혼한다. 남성지 패션 에디터로서 나는 결혼식 복장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그래서 내 결혼식에서만은 그를 내 뜻대로, 결혼식 예의에 어긋남 없는 옷을 입히고 싶었다. 물론 ‘추리닝’을 입고 예식장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맘대로 입겠다는 남자 친구를 설득해 권오수 클래식을 찾아갔다. 권오수 클래식은 턱시도로 유명한 한국의 맞춤 슈트 브랜드다. 남자 스타들이 각종 시상식에 권오수 클래식의 턱시도를 입고 나온다.

  • 가봉 시 제일 중요한 건 테일러와의 교감이다. 이건 부부간의 그것만큼이나 진하다. 그 순간 만큼은!

예복을 전문으로 만들지만, 격식을 갖춘 슈트도 제작한다. 이곳은 ‘맞춤’이니까 나의 뜻과 그의 뜻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일단 낮에 결혼식을 치르니까 턱시도는 안 입는 게 좋겠다는 내 의견은 겨우 받아들여졌다. 그는 말했다. “유난 떨지 말고 대충 해.” 그가 나를 존중해서 내 의견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저 슈트를 갖고 싶어 한 그의 마음 때문에 이 슈트 맞춤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슈트를 고르기로 했다. 권오수 클래식의 전문 상담사는 우선 옷감과 디자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가지 종류의 원단을 보여주며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그는 슈트를 자주 입지 않으니까 혼방 원단보다는 100% 모직 원단이 좋겠다고 했다. 모직 원단은 혼방 원단에 비해 잘 구겨지고 내구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결은 훨씬 곱다. 그는 짙은 감색을 선택했다. ‘역시 내 남자의 취향은 고급스럽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의 의견이 일치한 건 여기까지였다.

맞춤 슈트의 장점은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는 데 있다. 기성복에서 보기 힘든 스리피스도 이럴 때 시도해 보도록.

그는 싱글 버튼 재킷에 피크드 라펠을 달겠다고 했고, 나는 더블 버튼 재킷에 피크드 라펠 달기를 원했다. 그는 재킷 오른쪽 주머니를 두 개 만들고 재킷 소매 끝 단추를 다섯 개 달겠다고 했다. 나는 주머니 두 개는 과해 보인다 했고, 소매 끝 단추는 이번 시즌 제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테파노 필라티가 한 것처럼 세 개만 달자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선 말했다. “걔나 그렇게 만들라고 해.” 걔는 옷을 잘 만들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끝내주게 잘 입는다 소문난 스테파노 필라티다.
전문 상담사가 말했다. “보통 신부의 의견을 많이 따라요. 신랑은 결국 신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데….” 그러나 나의 남편이 될 사람은 소신이 있었다. 쓸데없이.

다음은 팬츠 디자인을 고를 차례였다. 그는 허리에 핀턱을 넣을지 말지, 밑단을 턴업할지 않을지를 놓고 제법 고민했다.

나는 남자 잡지 패션 에디터니까, 슈트에 관해 일반인보다 잘 안다. 그래서 내 남자 친구가 내게 당연히 의지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는 원하는 게 있었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이미지를 결혼식에 입을 슈트에 투영했다.

갑자기 그가 물었다. “뭐가 좋겠어?” 내가 대답했다. “나는 네가 핀턱이 있는 바지를 입었을 때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바지 턴업이 있는 게 너의 다리 길이엔 더 멋져 보일 것 같아.” 그는 나의 절절한 눈빛을 보더니 허리에 핀턱을 잡았고 밑단을 턴업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베스트. 그가 내 말에 귀 기울인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 있게 말했다. “베스트엔 라펠을 넣는 게 좋겠어.”
그는 내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권오수 클래식의 카탈로그 속 모델이 착용한 베스트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결국 베스트에 라펠을 달기로 결정했다. 그가 내 의견을 존중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그게 좋아 보였던 것이다.

  • 매 단에서 빛나는 여자 친구의 이니셜. 여자는 이런 작은 것에 감동한다.

도대체 난 누구고 여긴 어딘가?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때 그가 내게 당근을 던졌다. “셔츠 소매에는 여자 친구 이름의 이니셜을 새길게요.”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럴래?” 입꼬리가 조커처럼 확 올라갔다. 결혼식 날 신랑이 내 이름이 새겨진 셔츠를 입고 내 옆에 서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냥 좋았다. 나를 화나게 했던 순간은 다 사라졌다. 이 당근 하나로 내 남자의 취향은 나에게 존중받을 수 있게 된 것.

일주일 후 가봉을 하러 갔다. 나이 지긋한 테일러가 직접 가봉을 해주었다. “여기는 좀 더 짧게, 여기는 좀 더 길게.” 테일러가 말할 때마다, 그는 연신 “맞아요, 제가 원하는 게 그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남자가 원하는 게 뭘까…. 나는 앉아서 보고만 있었다.
가봉 단계에선 내 이름이 새겨진 셔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분 좋을 일이 없었다. 고수의 포스가 느껴지는 테일러는 핀을 수십 개나 꽂았다. “배에 힘을 주고 있을까요? 빼고 있을까요?” 그가 물었고, “빼야지”라고 테일러가 답했다. 그는 배에 힘을 조금 빼긴 했지만 정말 조금만 뺀 것 같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비용 재킷, 팬츠, 베스트로 구성된 스리피스와 셔츠,
총 1백40만원대
기간 상담부터 약 3주. 1회 가봉

3주 후 옷이 완성되었다. 그가 입고 나왔다. 옷을 맞출 때는 부분 부분을 결정했지만, 완성된 옷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었다.
어울리나, 안 어울리나? 다행일까? 정말 멋졌다. 역시 내 남편이 될 자격이 있군. 핀턱과 턴업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믿겠지만, 그건 내 판단이었다. 이 점을 명확하게 알아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가 움직여 내게 왔을 때 소매에 반짝반짝 새겨진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역시 내 남자.









Go With Him!
맞춤 슈트는 숍 선택이 중요하다. 지금 장안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맞춤 숍 세 곳을 소개한다.

테일러와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라. 맞춤 슈트의 성공 열쇠는 거기에 달렸다.

권오수 클래식
새신랑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 턱시도의 성지라 알려진 권오수 클래식이다. 1967년 처음 문을 연 권오수 클래식은 맞춤 슈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테일러 권오수(그 외에도 머리가 희끗한 2명의 테일러 고수가 더 있다)의 48년 경력에 프랑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아들의 감각이 보태져 유행에 뒤지지 않는 클래식 슈트를 선보이고 있다. 권오수 클래식의 모든 옷은 비스포크 방식(100% 맞춤)으로 진행되며, 가격은 75만~4백만원.
문의 02-514-1222

보우타이
맞춤 슈트 숍을 고를 때 중요한 건 ‘맞춤’이란 작업을 같이해 갈 매장의 직원들이다. 대부분이 처음 맞춤옷을 만들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을 잘 이끌어줄 안목 있는 조언자가 필요한 것!
신사동에 위치한 보우타이는 제일모직 란스미어 출신의 경력 많은 매니저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디테일까지 꼼꼼히 체크해 주니 초보자들이 가기에도 알맞다. 반맞춤인 슈미주라와 가봉이 필요한 비스포크 방식이 있는데, 슈미주라로 할 경우 10일 정도면 슈트가 완성된다. 가격은 60만원대부터 시작.
문의 02-514-1453

테일러블
맞춤 슈트는 고루하다는 생각을 지워줄 젊은 테일러 숍이다. 소재나 디자인을 클래식의 범위 안에서 변주한다. 단추 홀 컬러를 레드로 한다든지, 바지의 턴업을 과감하게 넓게 한다든지, 재킷 목 뒤에 이니셜을 새기는 식으로 맞춤이란 점을 최대한 살려 갖가지 기교를 발휘한다. 한남동 매장은 구두부터 넥타이·양말까지 클래식 슈트에 관한 모든 아이템은 물론이고 멋스러운 카페까지 운영하고 있어, 슈트 마니아들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가격대에 따라 블루 라벨과 와인 라벨로 나뉜다.
문의 070-7651-7801

WORDS : 정소영(<엠 프리미엄> 패션 디렉터)
EDITOR : 김민정
PHOTO : 김영훈

발행 : 2014년 24호

난 이 칼럼의 주제를 여자 친구가 골라주는 남자 친구의 맞춤 슈트라 들었다. 이 말은 틀렸다. 이 칼럼의 제목은 그가 직접 자신의 취향대로 고른 맞춤 슈트다. 나의 그는 취향 있는, 아니 취향이 넘치는 남자니까. 그래서 힘들었다는 얘기다.

Credit Info

2014년 02월 02호

2014년 02월 02호(총권 24호)

이달의 목차
WORDS
정소영(<엠 프리미엄> 패션 디렉터)
EDITOR
김민정
PHOTO
김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