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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마산으로, 진도로. 4명의 필자가 보내온 구수한 겨울 여행 안내서.

겨울 맛 휴가

On January 09, 2014

강릉으로, 마산으로, 진도로. 4명의 필자가 보내온 구수한 겨울 여행 안내서.

  • 2013 진도 관광 사진 전국 공모전 입선작, 진도의 세방낙조대(김용선).

진한 섬에서 따뜻한 술 한 잔
WORDS 서효인(시인) PHOTO 진도군 관광문화과

INFO 차로 가면 서해안고속도로로 가는 게 좋다. 진도는 큰 섬이므로 차를 권한다. 대중교통은 버스를 이용하고, 섬 앞에서 렌터카를 활용하길. 섬 안과 바깥을 샅샅 돌아보면 어디 하나 빼놓을 곳이 없는, 진도는 진짜 섬이다.
운림산방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 문의 061-543-0088
용장산성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문의 061-543-8522

겨울 여행의 백미는 겨울이 주는 차갑고 잔인하며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에 있다. 형형색색의 스키복이 산등성이를 수놓는 스키장, 얼음덩이가 또 다른 얼음덩이를 껴안아 만들어낸 아기자기한 설경, 무릎까지 쌓인 눈이 누구 하나 밟은 흔적 없이 흰 도화지마냥 넓게 깔린 설원.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전남 진도의 겨울이다. 미안하게도 진도에는 앞선 문장들이 없다. 진도에는 그저 진도라는 섬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진도에는 진도만이 가진 유일한 겨울이 있다.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눈은 별로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쌓이는 일이 많지 않다. 바람은 강하나 땅은 얼지 않는다. 차를 가지고 다니기에 좋다는 말이다. 섬이 크므로, 사륜구동에 힘이 좋은 차를 가지고 섬을 찾는다면 더욱 좋겠다.

  • 운림설경(채규상).

섬의 초입은 명량해전과 울돌목으로 유명한 진도대교다. 다리 아래에서 바다를 살펴보면 차가운 그것이 이상하게도 생긴 롯데 스크류바처럼 회오리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은 왜군을 저곳에 수장시켰고, 우리는 이곳에서 숭어를 많이 건져 먹는다. 진도 하면 신비의 바닷길을 많이 떠올린다. 사실 나는 코흘리개 시절 그 길을 걸어보았지만, 신기한 건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뿐이었다. 겨울에는 바닷길이 열리지 않는다. 다만 바닷길의 시작점에 있는 ‘뽕할머니 동상’ 근처에 가면 바다에 바투 붙어서 굿을 하는 무속인을 만날 수도 있다. 진도에 사는 사람은 거의 다 프로 소리꾼에 가까우니, 씻김굿 소리를 잠시 감상해도 좋겠다. 겨울에는 바다도 마침 겨울이니, 어쩐지 으스스하고 어쩐지 아름다운 코스가 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당신의 한 또한 씻어낼지도 모르는 일.

  • 조기 풍어(전미숙).

그 밖에 운림산방, 용장산성 등도 진도에 가면 꼭 가야 할 여행지이긴 하다. 하지만 겨울 여행이라 바깥에 오래 머무는 동안 어김없이 엄습할 추위는 감내해야 할 것이다. 추위에 잘 어울리는 장면은 따로 있다. 지는 해의 아찔함이 손에 닿을 듯한 그곳은 세방낙조다. 겨울 여행이라면 해가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서두르는 게 좋다. 물론 바락바락 쫓아온 추위 덕에 당신은 아까부터 서둘렀겠지만. 낙조의 빛깔은 꼭 홍주를 닮았다. 낙조처럼 하루를 마무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홍주를 한 잔 걸치면 좋겠다.

진도에서의 겨울 여행은 결국 ‘진도 홍주’를 먹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이다. 홍주의 붉은빛은 소주가 지초뿌리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다. 보리누룩과 지초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빛깔에 마시기도 전에 먼저 취하는 술이 홍주다. 겨울 여행은 추위를 피하기 위한 행로가 아니다. 오히려 추위를 가까이 느끼러, 그리하여 반쯤 얼어버린 몸 안에 아름다운 술을 붓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진도는 너무 삭막한 겨울을 당신에게 툭 던져줄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따뜻한 술이 더더욱 필요할 터. 곁에 앉은 사람의 얼굴에 낙조가 인다면 ‘아, 좋은 여행이구나’할 것이다.


그 겨울, 마산의 맛
WORDS 박찬일(요리사) PHOTO 박찬일

  • 마산 오동동 아귀찜 거리.

INFO 서울에서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를 타고 육호광장 오거리를 지나면 오동동 복요리 거리에 도착할 수 있다.
마산 어시장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2가 문의 055-221-0671
초원식당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1동 84-2 문의 055-294-0306

흔적 안에서 우리는 쉬이 절망하고, 남루한 의복은 추위를 막아주지 못한다. 천성적인 싫증도 그 자연의 강고한 무심함에 지치기 마련. 어디 히말라야의 한가한 로지(Lodge)에서 주인장이 곱은 손으로 만들어주는 뚝바(네팔식 수제비)에 창이라 부르는 네팔 술을 한잔 곁들이는 겨울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 세계에서만 존재할 뿐, 네팔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은 가망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마산으로 간다. 마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덜커덩거리며, 서너 번은 족히 고속 열차를 피해 주느라 하염없이 철로에서 시간을 눅이게 되는 그 열차가 좋다. 쉭쉭 김이 나오며 기름내 섞인 낡은 난방기는 오히려 운치 있고, 더워서 목을 조인 풀오버 셔츠의 섬유가 까슬까슬해질 즈음에 너른 창밖으로 폭설이라도 오고!

  • 발행 : 2014년 22호
  • <꽃보다 누나>에서도 수시로 스트레칭!

마산은 한때 아주 큰 어항이었고, 부자 도시였다. 마산상고는 야구를 아주 잘했고, 마산 사람들은 아주 잘 먹었다.
그 흔적이 도시 곳곳에 깃들어 있다. 신마산(요즘 만든 흔한 신도시가 아니라, 일제 때 만든 신지역이라는 뜻)에 가면 그 혼란스러운 ‘오래된 새것’의 요망함이 있고, 구시가지엔 갈 데 없는 근대의 쓸쓸함이 우리를 반긴다. 오동동이라는, 박자에 맞춰 젓가락 두드리는 작부가 분내를 피우며 금세라도 내 허리춤을 잡을 것 같은, 구시가지의 낡은 골목에 서보라. 막 수은등이 켜질 것 같고, 골목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오동동은 한때 전설적인 선창 술집들이 늘어서서 성업했으나, 이제는 나그네를 맞아 회를 저미고 생선을 굽는다. 통술집이라고 부르는 왁자한 느낌의 술집들이 즐비한데, 알아서 안주가 ‘통으로 나온다’는 뜻으로 그리 명명되어 회자된다. 3만원이든 5만원이든 술상 값을 치르면 마산의 진미가 솜씨 좋은 아낙에 의해 가득 상에 오른다.

유명한 복집 골목과 아귀찜을 맛보는 것도 빠트리지 말 것. 초원식당의 아귀찜을 추천하는데, 잘 발효된 아귀의 맛이 짭짜름하고 깊다. 원래 아귀는 겨울 생선이며, 겨울에야 제맛을 낸다. 간혹 이런 유명 아귀 집 옥상에선 아귀가 찬 바닷바람에 말라간다. 덕장이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작아 구경거리가 안 되지만, 천하의 일미가 되어버린 아귀의 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산에서 유명 관광지를 만사 젖히고 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어시장이다. 어시장의 선창가를 아침 일찍 쭉 걸으면, 왜 이 도시가 물고기로 밥을 먹고 살았는지 알게 되며 윤택했던 어항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풍요로운 마산만으로 들어오는 통통배들을 보며 한겨울의 서정에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여기에 마산에서 볼만한 여행지를 몇 곳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쓸쓸한 군산에서 단 술 한 잔
WORDS 박세회 PHOTO 송화양조장, 군산 관광문화과, 박솔희

  • 히로쓰 가옥.
  • 한산 소곡주.

INFO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서천 공구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서천IC에서 잠시 국도를 타고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들러 소곡주를 산 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군산으로 간다. 군산에는 빵집 이성당, 중식당 복성루, 게장 백반집 금강식당, 한성옥 등이 유명하다.
이성당 전북 군산시 중앙로1가 12-2 문의 063-445-2772
금강식당 전북 군산시 경암동 644-6 문의 063-443-5760

여행이라고 해봐야 남는 건 사진뿐인데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아 보통은 풍광보다는 먹을거리를 찾아다닌다. 물꽁식당의 아귀간과 신발원의 만두를 먹기 위해 부산행 KTX를 타고, 군만두를 먹으러 송탄까지 차를 몰고 가는 게 내 여행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시각적 경험을 위해 찾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군산항이다.

물론 오로지 군산항을 보기 위해 그 먼 길을 운전하는 건 아니다. 군산으로 가는 길목에 겨울의 술 소곡주를 살 수 있다는 게 어찌 보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소곡주 마을로 유명한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일대에는 전통 깊은 한산 소곡주 명인의 공장이 있다.
전화를 하고 가면 이곳에서 익어가는 소곡주를 견학하고 맛볼 수도 있다. 공정화되지 않은 형태의 ‘밀주’를 파는 가호도 있다.
아는 집에 전화를 걸어두는 편이 안전하지만, 번호를 모르면 그냥 잠시 기다리면 된다. 서울에서 온 세단들이 줄지어 향하는 집이 바로 술 빚는 집이다. 이런 가양주는 집집마다 다른 곰팡이로 술을 빚어 향도 다르니 여러 집에서 한 병씩 사서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다만 소곡주는 한성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도 눌러앉혀 필름이 끊기게 만든다는 ‘앉은뱅이 술’로 유명하니, 입도 대지 않은 채 트렁크에 넣어두고 군산으로 향한다.

군산항에 도착하면 그 거리의 압도적인 쓸쓸함에 ‘대체 여길 왜?’라며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군산항은 근대의 축복을 듬뿍 받고 현대사에서 소외된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군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복한 도시였다. 조선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덕에 신문물의 혜택 역시 제일 먼저 받았다. 신식 관청과 은행이 세워지고 부유한 상인들이 저택을 지었다. 군산항 바로 앞에 조그만 일본식 소도시가 형성됐고, 돈이 돌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방 이후 군산은 쇠락했고, 당시의 건물들은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고 박제됐다. ‘근대 역사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하고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데다 겨울엔 더욱 적다. 추운 날씨에 한국의 근대 역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인데, 이게 바로 내가 겨울에 군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화 양조장에서 스님이 직접 고두밥에 불을 떼고 있다.

박제된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로 한복판을 걷자면 마치 다른 시대, 다른 시간으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어 완벽한 의미의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에서 산 빵을 우적우적 씹으며 그 거리를 산책하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 이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사진관에 들러 다림이의 새침함을 흉내 내며 유리창에 돌멩이를 던져보고는 발길을 옮긴다.

돌아오는 길에는 서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완주에 잠시 들러 수왕사의 주지 스님에게만 전승되는 비법으로 담그는 송화 백일주를 사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 주지인 벽암 스님은 대부분 수왕사 산중에 있어 만날 수 없지만 스님의 제자가 술을 내어주니 걱정 말 것.











입 안의 축제, 강릉 커피 여행
WORDS 최갑수(시인, 사진가) PHOTO 최갑수

  • 강릉의 바다.

INFO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IC로 나오면 된다. 현재 강릉에는 약 200곳 가까운 커피 전문점이 있다.
강릉커피축제 홈페이지에서 강릉 커피 지도를 볼 수 있다. 경포, 안목, 사천, 연곡, 주문진, 시내 등 구역별로 나눠 커피 전문점을 안내한다.
보헤미안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181 문의 033-662-5365
테라로사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973-1 문의 033-648-2760

몇 해 전부터 겨울마다 강릉에 가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강릉의 어느 카페에서 오전 10시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기꺼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샤워를 하고, 방한복을 챙겨 입고, 비니를 눈썹까지 눌러쓰고,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집을 나선다. 여행에는 여러 종류와 수많은 이유가 존재하는데,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해도 뜨지 않은 새벽 6시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 보헤미안 외관.

강릉 시내를 벗어나 속초로 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연곡이라는 동네에 보헤미안이라는 카페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난 시멘트 길을 5분여 올라가면 3층짜리 하얀색 건물이 우두커니 서 있다. ‘보헤미안’이라는 간판이 없다면 아무도 커피 가게임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다. 누가 이런 곳에 커피 가게를 차렸을까? 보헤미안은 세상사에는 별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는 자세로 서 있다.

  • 커피 전문점 보헤미안의 박이추 선생.

카페의 주인은 박이추 선생이다. 우리나라 커피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1서徐 3박朴(고 서정달, 고 박원준, 박상홍, 박이추) 중 한 명이다. 다크 로스팅과 핸드 드립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몇 해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커다란 로스팅 기계의 윙윙거리는 소음을 들으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그는 갓 볶은 커피콩을 들여다보며 내 질문에 답하곤 했다.
“왜 모든 커피를 직접 뽑으시나요?”
“커피를 마시는 분들께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죠.”
“어떤 커피가 맛있습니까?” 커피 잔을 비운 후 그에게 물었다. 우문.
“좋은 사람과 마시는 커피가 맛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현답.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셨다. 솔직히 말해 정확하게 묘사를 못하겠다. 그냥 정말 맛있다, 어딘지 모르게 몸이 따스해지는 것 같다, 이 정도밖에는. 그러니까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일단 말로 해버리면 가장 중요한 뉘앙스를 잃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경험이었다. 박이추 선생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이 차가운 세계에 이런 맛도 있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강릉에 갈 것이다. 아니, 사실 내일 떠나기로 했다. 새벽녘 길을 나서 보헤미안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첫 손님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빈속에 마시는 커피가 좋다. 커피를 마신 후 경포대든, 선교장이든, 어디든 돌아다니겠지. 속초로 가거나 양양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테라로사로 갈 수도 있겠다. 그곳에서는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으니까. 몇 해 전 마셨던 과테말라 라스 마카다미아스를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 한 모금 머금었는데, 입 안에서 축제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꽃처럼 만발했던 쓴맛과 신맛을 아직 잊지 못한다.

  • 테라로사의 원두.

EDITOR : 김소영

발행 : 2014년 22호

강릉으로, 마산으로, 진도로. 4명의 필자가 보내온 구수한 겨울 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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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매거진 그라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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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