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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치아]가 2014 봄/여름 패션위크 동안 밀착 취재한 러시아 패셔니스타 5명.

Style Hunter Special

On November 06, 2013

‘러시안 갱’이라 하면 마피아부터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달구는 ‘러시안 갱’은 패션쇼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불과 몇 시간 전 런웨이에 올랐던 디자이너의 옷을 입으며, 벌 떼 같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을 이끈 채 거리를 걷는다. 전직 모델 엘레나 페르미노바, 러시아 <태틀러> 패션 디렉터 아냐 지오우로바, 패션칼럼니스트 미로슬라바 듀마, 패션 디자이너 비카 가진스카야, 그리고 쿠튀르 디자이너 율리아나 세르젠코의 얘기다. 어떤 이는 러시아 인형들이라 하고 누구는 신데렐라(그들의 삶 자체가 동화 같기에)라 하는 아름다운 러시안 패셔니스타 5명을 2014 봄/여름 컬렉션이 열렸던 4개 도시에서 밀착 취재했다.

  • 파리 2014 봄/여름 컬렉션 기간 중, 스텔라 매카트니의 리조트 컬렉션을 입은 엘레나 페르미노바.
  •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넬 쿠튀르로 무장한 그녀. 홍보 대사답다.

ELENA PERMINOVA
엘레나 페르미노바, 전직 모델 & 소셜라이트
“나도 내 삶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가끔 살을 꼬집어본다.”


시베리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화려한 옷이라곤 추위를 견디기 위한 가짜 퍼 코트가 전부였던 그녀. 지금은 억만장자 남편을 만나 한 시즌에 샤넬의 쿠튀르 앙상블을 20여 벌씩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만도 하다. 물론 재력만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두 아들과 남편이 삶의 전부라는 그녀는 옷보다 책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평소에는 갭 청바지와 티셔츠(물론 루이비통 제품)만 입는다. 처음 패션계의 집중을 받은 건 지난 2008년, CFDA 시상식에 로다테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다. 빚어놓은 듯한 아름다움에 반한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삼았고, 그 후로 매 쇼 프런트 로에 앉혔다. 칼 라거펠트 역시 충실한 고객이자 친구인 엘레나를 샤넬의 홍보 대사로 삼은 것은 물론, 화보를 위해 그녀의 자택에서 직접 촬영까지 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엘레나는 한 디자이너의 옷을 입는 것보다는 믹스 매치를 선호한다. 특히 하이와 로를 맛깔나게 섞는다. 이를테면 샤넬의 원피스에 H&M의 재킷을 매치하거나, 리바이스 데님 팬츠에 루이비통 트위드 재킷을 걸치는 식. 그런 그녀가 항상 빼놓지 않는 건 가이아 레포시의 주얼리. “가이아는 좋은 친구이자 디자이너이며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나의 옷차림을 완성해 주는 사람이죠”라고 말했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그녀의 삶.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하다. 간접 경험이라도 하고 싶다면 이미 2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볼 것.

출산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그녀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몸매 관리를 한다.

ANYA ZIOUROVA
아냐 지오우로바, 러시아 <태틀러> 패션 디렉터
“쿠튀르 기간 중 옷을 차려입는 건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늘려주기 위함이 아니다. 쿠튀르는 장인의 손으로, 디자이너의 영혼으로 만들어지는 옷이다. 그걸 보여주는 자리인 만큼 예의를 갖추는 게 당연한 일이다.”


종잇장처럼 마른 몸, 거친 금발의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아냐 지오우로바는 우아하고, 여성스럽고, 절제된 스타일을 즐긴다. TV 채널이라곤 고작 2개였던 작은 마을에 태어난 아냐는 작은 마을에서조차 알라이아와 웅가로를 즐겨 입던 어머니에게서 패션과 스타일을 배웠다.

16살에 처음 잡지를 접한 그녀는 18세에 뉴욕으로 떠나 짧은 모델 생활을 거쳐 <보그> 액세서리 어시스턴트로 업계에 발을 디뎠다. 2009년 러시아로 돌아와 <태틀러> 창간을 도우며 패션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됐고, 2012년 러시아 <얼루어>의 고문이 된다. 전 세계를 돌며 화보 촬영을 진행하고 두 개 잡지의 1년 커버를 기획하는 아냐. 올해 초 예쁜 딸까지 출산한 그녀는 말 그대로 24시간이 모자랄 정도.

  • 셀린느의 모던한 노트 드레스를 입은 그녀.

왜소한 그녀는 짧은 드레스를 즐긴다. 이날은 레이스 장식이 깜찍한 발렌티노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

Miroslava Duma
미로슬라바 듀마, 패션 칼럼니스트
“값싸고 튼튼한 드레스가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러시아니스타(러시안과 패셔니스타의 합성어) 그룹의 리더(?) 격인 미로슬라바 듀마의 어린 시절 얘기다. 지금은 절친인 비카 가진스카야의 옷이나 셀린느, 디올 그리고 발렌티노를 즐겨 입는다. 아버지가 정부 고위 간부였지만 1990년대 이전 패션이라곤 없었던 러시아에서 자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는 패션 ‘역사’가 없어요. 이제 겨우 15살이 됐다고 생각하는 게 맞죠.

하지만 비카나 율리아나, 니나 도니스의 옷을 보면 모스크바도 곧 패션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겨요.” 러시아 <하퍼스 바자> 에디터로 일했던 그녀는 현재 패션 뉴스 사이트 뷰로24(Buro 24)를 운영하며, 프리랜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걸 즐기는 미라. “한때 엄청나게 두꺼운 목걸이들을 레이어드했던 적이 있어요. 그 후로 목에 통증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요새는 스카프를 두르거나 벨트를 즐겨요.” 컬렉션 기간 중에는 안나 델로 루소보다 옷을 더 자주 갈아입는다. 그렇지만 고민은 하지 않는다. “도나 카란이 ‘자신 있는 여성이라면 거울 앞에서 20분 이상을 소요할 필요가 없다’ 는 말을 했어요. 맞는 말이죠. 옷장 앞에서 한숨을 쉬며 ‘입을 게 없다’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역시 그녀는 타고난 패셔니스타인 게 확실하다. 하지만 스텔라 매카트니, 샤넬 , 디올이 가득 찬 옷장 앞에서 그 어떤 여자가 ‘고민’을 할까? 발렌티노 드레스, 셀린느 가죽 스커트, 샤넬 드레스를 입고 2014년 봄/여름 컬렉션장을 휩쓴 그녀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세 단어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변화, 열정 그리고 실험.”

  • 셀린느의 가죽 플리츠스커트가 미로슬라바를 얌전한 여성으로 만들었다.

  • 최근 사랑스러운 컬러에 빠진 비카의 2013 가을/겨울 시즌 슈트.
  • 폭포 같은 러플과 건물의 기둥 같은 팬츠. 그녀의 옷은 항상 모던한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VIKA GAZINSKAYA
비카 가진스카야, 디자이너
“매일 이 정도로 ‘차려입고’ 산다는 건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그래서 캐주얼 라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완벽주의자. 1부터 10까지 모두 자신의 손을 거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디자이너 비카 가진스카야. 칼로 자른 듯한 단발머리와 작은 얼굴, 그리고 반짝이는 보랏빛 눈을 가진 그녀는 현대적인 건축물을 사랑하고 값비싼 직물에 집착하는 콧대 높은 고집불통 디자이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옷은 단추 하나까지 완벽하다. 패션위크 때마다 자신의 옷을 입고 쇼장 앞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광고 한 번 하지 않은 브랜드로 굉장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비카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 포토그래퍼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나의 홍보 매니저예요.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는 게 꼭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은 아니죠. 하지만 전 세계 여성들이 블로그에서 내 옷을 보고 연락을 해요.”

  • 자카드에 한땀 한땀 손으로 수를 놓은 귀여운 앙상블.
  •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쇼를 위해 모던한 스커트 슈트를 차려입었다.

러시아 크루 중 가장 가깝게 지내는 미로슬라바 역시 비카의 옷에 반해 그녀를 찾았다. “어느 날 미라가 내 쇼룸을 찾아왔어요. 차를 마시며 옷 이야기를 했죠. 다음 날 전화를 걸어 컬렉션의 반 이상을 구매했어요.” 비카는 100%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며 오로지 러시아에서만 제작한다. 공방에는 10명 남짓한 장인들을 데리고 있다. 유난히 직물에 대한 욕심이 많은 비카는 자카드는 샤넬에 공급하는 프랑스의 공장에서, 실크는 로저 비비에와 같은 이탈리아 공장에서, 면은 100% 스위스에서만 구매한다.

그리고 프린트와 단추 색까지 모두 손으로 완성한다. “그래서 비싸요. 하지만 그 값어치는 해내죠”라고 자신감 넘치게 말한다. 럭셔리를 지향하지만 결코 퍼와 가죽은 사용하지 않는다. “고객들이 퍼나 가죽으로 코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요. 러시아는 추우니까요. 하지만 저는 채식주의자예요. 가죽이나 퍼를 사용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2007년 봄/여름 시즌 첫 컬렉션을 발표했던 비카는 이제는 꽤 인정받는 디자이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조금 더 값싼, 하지만 손으로 꼼꼼하게 만든 캐주얼한 옷을 론칭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이렇게 덧붙인다. “매일 이 정도로 ‘차려입고’ 산다는 건 정말 끔찍하니까요.”

  • 1950년대에나 입었을 법한 목가적인 디자인의 드레스.

ULYANA SERGEENKO
율리아나 세르젠코, 쿠튀르 디자이너
“솔직히 옷은 수없이 많다. 단 한 번도 세어본 적은 없지만, 헤드피스만 족히 1천 개가 넘는다. 드레스는 방이 모자랄 정도. 가방과 신발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모두 다 구매한 것들이다.”


토미 톤이었다. 그녀를 하룻밤 새에 ‘스트리트 스타일 공주’로 만들어놓은 건. 2011년, 루이비통의 쇼장 앞에서 마크 제이콥스의 ‘간호사’ 복장을 한 율리아나 사진엔 “저 여자는 또 누구야?”라는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옷을 배우지 않았다. 당시엔 새 옷을 살 돈이 없어 옷을 알아서 만들어 입어야만 하는 시대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온 뒤 남들과는 눈에 띄게 다른 옷차림(1950년대 소련 스타일) 때문에 학교에선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고집 또한 남달랐다. “할머니와 바느질을 하곤 했어요. 평범한 드레스뿐 아니라 교복조차도 허리는 잘록하게, 치마는 크게 부풀리곤 했죠.”

그런 차림으로 치과를 방문했던 율리아나에게 한눈에 반한 건 억만장자 사업가(현재 남편) 다니르 카차투로브. 그를 만난 후 율리아나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런던과 파리, 뉴욕을 다니며 벼룩시장을 찾았고,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구매했던 쿠튀르 드레스는 런던 벼룩시장에서 찾아낸 움베르토 지방시의 드레스. “저는 모든 디자이너들의 충실한 고객이자 진지한 수집가에요. 협찬이나 대여 같은 건 결코 받지 않죠.” 연예인이든 에디터든 전화 한 통이면 컬렉션 샘플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녀는 구매를 고집한다. “쇼가 끝나기 무섭게 홍보 부서에 전화를 걸어요.” 그녀가 말한다. “방금 한 쇼의 그 옷을 사고 싶어요. 제발 저에게 파세요. 부탁이에요.” 그녀는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조른다. 이미 웬만한 명품 브랜드의 홍보 매니저들은 율리아나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당신 외에는 그 드레스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안심시키지만 그녀는 드레스가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불안에 떤다.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이너들을 괴롭히는 것도, 홍보 담당자에게 매달리는 것도 지친 율리아나는 자신의 스타일을 살린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현재 65명의 직원을 둔 율리아나의 공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지난 2012년 봄부터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위크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충실한 고객은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촬영장에서 그녀의 드레스를 입어보곤 첫눈에 반했어요. 쇼룸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아름다운 옷들을 칭찬했죠. 다음 날, 율리아나가 자신의 전 컬렉션을 집으로 보내줬어요. 달콤한 초콜릿과 함께.” 깊은 애정을 갖고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피스를 모으는 수집가이자, 리타 오라·리한나·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사랑하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인 율리아나 세르젠코. 그녀는 자신의 말처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골룸인 동시에 환상적인 드레스를 만드는 노동자”이다.

  • 승마복에서 영감을 받은 점프슈트도 골드 버튼을 더해 쿠튀르적으로 완성했다.

EDITOR : 김민지

발행 : 2013년 17호

‘러시안 갱’이라 하면 마피아부터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달구는 ‘러시안 갱’은 패션쇼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불과 몇 시간 전 런웨이에 올랐던 디자이너의 옷을 입으며, 벌 떼 같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을 이끈 채 거리를 걷는다. 전직 모델 엘레나 페르미노바, 러시아 &lt;태틀러&gt; 패션 디렉터 아냐 지오우로바, 패션칼럼니스트 미로슬라바 듀마, 패션 디자이너 비카 가진스카야, 그리고 쿠튀르 디자이너 율리아나 세르젠코의 얘기다. 어떤 이는 러시아 인형들이라 하고 누구는 신데렐라(그들의 삶 자체가 동화 같기에)라 하는 아름다운 러시안 패셔니스타 5명을 2014 봄/여름 컬렉션이 열렸던 4개 도시에서 밀착 취재했다.

Credit Info

2013년 11월 01호

2013년 11월 01호(총권 17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민지

2013년 11월 01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