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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사로 임명된 캐럴라인 캐네디의 스타성.

캐럴라인 케네디, 인기도 능력!

On August 29, 2013

정치는 곧 인기라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 정치인은 더욱 스타성이 필요하다. 백악관 신입, 캐럴라인 케네디가 미국 최초의 여성 주일 대사로 임명된 이유도 그녀가 스타이기 때문이다.

캐럴라인캐네디와 오바마 대통령.

지난 7월 24일, 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55세)가 주일 대사로 임명됐다.
미국 최초의 여성 주일 대사다. 정치 경험도 미미하고, 일본과의 인연은 1980년의 신혼여행이 전부이기에 더욱 파격적인 인사였다. 일부에선 초보 외교관인 그녀가 업무를 잘해 낼지 우려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가 원하는 외교 대사는 언제든지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옹호했다. 사실 그녀가 주일 대사가 된 데는 ‘스타성’이 한몫했다.
일본에서도 ‘셀럽 정치인’의 임명을 크게 환호하는 분위기다. 일본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캐럴라인 케네디는 오바마 대통령의 큰 신뢰를 받는 인물”이라며 “그의 대사 임명은 양국의 친밀감을 보여주는 결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1970년 이후로 스타 정치인을 주일 대사로 받아왔다며, 캐럴라인의 임명은 그만큼 미국이 자신들을 중히 여기는 것이라 판단했다. 지난 2009년 실리콘밸리의 유능한 변호사지만 인지도는 없었던 존 로스를 주일 대사로 임명하자 관계를 격하시키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정도다.


그렇다면 캐럴라인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아버지인 케네디 전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 그녀의 나이 5세. 그때부터 가여운 국민 공주로 성장해 왔다. 모던 귀족이나 다름없는 케네디 가문의 후손이라는 후광, 빼어난 미모, 어머니 재클린에게 물려받은 패션 감각, 특히 어두운 흑역사를 밟은(마약, 자살 등) 다른 후손들과 달리 변호사·작가·정치인으로 훌륭히 자라준 그녀에게 미국인들은 지지를 보냈다. 1960년대에는 가수 닐 다이아몬드가 그녀를 위해 ‘스위트 캐럴라인’이란 노래를 불렀을 정도.

이 스타를 잡기 위해 정치계가 얼마나 애썼을지 뻔하다. 그녀는 한때 부통령 후보, 영국 대사, 뉴욕 주 상원 의원 후보 등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후광으로 정치한다는 반대 세력을 감안해 그때마다 고사했고, 스타 정치인의 강림이 필요한 주일 대사 자리에 적절히 들어섰다. 버락 오바마로서도 당연한 임명이었다.

그녀는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 대신 무명 정치인인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고, 엄청난 선거 자금을 모아줬으며, 오바마를 ‘검은 케네디’로 묘사하며 당선에 절대적 역할을 했으니까. 2012년에도 오바마의 재선 캠프 공동 의장을 맡았다. 오바마는 그녀의 스타성 덕분에 주일 대사라는 보은이 수월했을 거다. 그녀는 올가을에 본격 취임할 예정이다. 주일 대사 다음엔 어떤 자리를 꿰찰지 지켜볼 만하다.


캐럴라인의 인기 요인은?

1969/ 모녀가 밀리터리 코트를 맞춰 입고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태생부터 다른 모던 귀족
아메리칸 드림은 있지만, 왕실이나 유구한 역사는 없는 미국 시민들에게 케네디 가문은 특별하다. 왕실 대신 만들어낸 모던 귀족이 케네디 가문인 셈. 심지어 캐럴라인은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케네디 사이의 장녀다. 1961년부터 백악관의 로열 키즈였고, 아버지가 암살당한 후에도 이 가여운 공주님의 성장 과정에 미국 시민들은 꾸준한 관심을 보냈다. 자살, 추락사고, 마약 등 불미스럽게 쓰러져 간 후손들을 여러 차례 봐왔으니까. 잘 자라준 그녀에게 가문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냉정과 열정을 입증하는 직업들
캐럴라인은 직업이 3개다. 주일 미국 대사로 그 포문을 여는 정치인, 하버드 대학교와 컬럼비아 법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사회 첫 직업으로 가진 변호사, 그리고 작가다. 그녀는 총 10권의 책을 출간했고, 그중 4권은 시집이다. 최근엔 『가슴으로 외는 시』를 출간하며 북 투어도 나섰다.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시를 외우게 했어요. 동생과 저는 경쟁하듯 시를 베끼곤 했죠.” 지성과 감성을 모두 탑재했음을 입증하는 그녀. 케네디 기념 도서관 회장직,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 고문 같은 명예직도 맡고 있으며, 때때로 자신의 직업에 ‘엄마’를 추가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에서는 대학 졸업자의 49%가 여성이지만, 전체 CEO 중 여성 비율은 1% 미만이다. 변호사이자 작가이자 세 자녀의 엄마인 그녀가 일본 여성들의 롤 모델로 꼽히고 있다”라며 주일 대사로서 그녀의 능력을 지지했다.

굴욕 없는 패션 센스
캐럴라인의 룩은 아메리칸 로열 패션을 상징한다.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 쇼의 프런트 로에 앉고, <베네티 페어>의 칵테일파티에도 참석한다. <인터뷰> 매거진은 그녀를 프랑스의 카를라 브루니, 백악관의 미셸 오바마와 더불어 3대 로열 패션 아이콘으로 꼽았다. 백악관의 로열 키즈였던 시절부터 그녀는 남달랐다. 재키 스타일을 창조한 어머니 재클린 여사의 센스였겠지만, 캐럴라인이 스스로 스타일링했을 10대 후반부터도 굴욕은 없었다.

승마, 테니스 등을 즐기며 보여준 로열 스포츠 룩, 히피 룩을 연상시키는 20대, 1980년대 오버사이즈 룩을 보여준 30대, 그리고 갈수록 엘레강스해지는 그녀의 패션! 40대부터는 특히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의 우아한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어머니는 스타일 때문에 더 인기 있었죠. 하지만 다 할머니에게 배운 거예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엘레강스한 여성이었고, 그 스타일을 지금도 참고하죠.” 이젠 백악관 키즈들이 미셸 오바마와 더불어 그녀의 패션 센스를 참고한다.

  • 1970
    당시 유행이던 모즈 룩으로 그리스를 찾은 틴에이저 캐럴라인.

EDITOR : 김나랑
PHOTO : Getty Images, Wenn-Multibits

발행 : 2013년 13호

정치는 곧 인기라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 정치인은 더욱 스타성이 필요하다. 백악관 신입, 캐럴라인 케네디가 미국 최초의 여성 주일 대사로 임명된 이유도 그녀가 스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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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 01호

2013년 09월 01호(총권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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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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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Wenn-Multibits